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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 반의 아이들
솽쉐타오 지음, 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평점 :
영화 <벌새>는 9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당시 중학생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90년대 중국의 중학생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중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작가 솽쉐타오의 소설집 <9천 반의 아이들>에 그 힌트가 나온다.
표제작 <9천 반의 아이들>의 주인공 '리모'는 1997년 중국 둥베이 지역의 한 중학교에 진학한다. 당시 중학교 배정 방식은 이랬다. 명목상으로는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면 자동적으로 진학할 학교가 결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중학교에는 일반 학급과 구별되는 갑, 을, 병, 정 반이 따로 있었다. 갑, 을, 병, 정 반에 들어가려면 시험을 보고 별도로 9천 위안의 입학금을 내야 했다. 돈 있고 교육열 높은 부모라면 당연히 자식을 일반 학급이 아닌 갑, 을, 병, 정 반에 넣고 싶어 했다. 리모의 부모도 그랬다. 그 결과 리모는 시험을 보고 입학금을 치른 뒤 '정'반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리모와 같은 아이들을 '9천 반의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정'반에 배치된 아이들은 대체로 부모가 부유하고 공부도 곧잘 했다. '안더례'라는 아이만 예외였다. 안더례는 옷차림도 후줄근하고 학업 성적도 나빴다. 어떻게 안더례 같은 아이가 9천 위안을 내고 9천 반에 들어온 건지 다들 의아해했다. 안더례는 비록 성적은 나빠도 머리는 좋고 말싸움도 잘했다. 그런 안더례를 담임 교사는 대놓고 미워했다. 복도에 면해 한기가 들어오는 교실 뒷문 옆자리에 3년 내내 안더례를 앉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반에서 사고를 친 아이는 안더례의 옆자리에 앉혔다. 리모도 안더례의 옆자리에 앉은 적이 있다. 학교에 가져오면 안 되는 <신조협려>, <슬램덩크>, <제3군단> 같은 책들을 학교에 가져왔다는 누명을 썼을 때의 일이다.
이어지는 <평원의 모세>라는 단편 역시 90년대 중국의 실상을 보여준다. 리페이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아버지가 집을 비울 때마다 옆집에 사는 좡수의 어머니 푸둥신이 리페이의 집으로 찾아와 함께 성경 공부를 한다. 푸둥신은 리페이가 머리도 좋고 글도 잘 쓴다고 칭찬하면서, 리페이가 열심히 공부해 시험에 합격해도 9천 위안이 있어야 좋은 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리페이의 아버지는 지금 임시 해직된 상태라 돈을 낼 여유가 없으니 자신이 돈을 내주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때만 해도 푸둥신이 전직 대학교수의 딸이라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의 아버지와 남편이 얽힌 비극적인 과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이 밖에도 90년대 중국의 실상을 짐작하게 해주는 총 열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같은 시기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며 읽어도 좋고, 현재의 중국 상황과 대조하며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을 작가의 길로 이끈 스승들에 관해 쓴 작가 후기도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