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별하는 법을 모르는데 이별하고 있다
김정한 지음 / 미래북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의 모든 것은 불현듯이었다. 사랑이 찾아오는 것도, 사랑이 떠나가는 것도." 교사에서 전업 작가로 변신한 김정한의 에세이집 <나는 이별하는 법을 모르는데 이별하고 있다>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상을 스쳐가는 다양한 사건들과 그것들에 대한 감정과 단상을 소개한다.


가장 좋았던 글은 <가난이 울던 날>이라는 글이다. "2008년, 서울 하늘은 넓은데 내 하늘은 자꾸만 작아진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가난해서 하루 두 끼를 굶고 서랍에 고이 간직해 두었던 금붙이를 팔고 그 돈으로 밀린 공과금을 내고 포장마차에서 파는 값싼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 어느 날의 이야기를 그린다. 당선 연락을 받고 기뻐해도 그뿐, 글을 써도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고, 책을 내도 마땅한 금전적 보상을 받기 힘든 것이 오늘날 한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현실이다. 그런 작가가 예전 일을 회상해 쓴 글이기에 더욱 애달프게 다가왔다.


아버지, 어머니에 관한 글도 좋았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평소 말이 없었고, 일주일에 한두 번 마시는 술이 삶의 낙이었다. 어릴 때는 아버지란 으레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보니 아버지가 참 많이 외롭고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세상을 돌아가신 지 벌써 19년. 이제야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늦된 자신이 야속하다. 오랜만에 본가를 방문할 때면 혼자 계시는 어머니가 잘 걷지도 못하면서 자식 왔다고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게 고마우면서도 죄송스럽다.


책 제목에 '이별'이라는 단어가 있어서 연애나 사랑에 관한 글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연애나 사랑에 관한 글보다는 저자 개인의 삶과 인생에 관한 글이 많았다. 여리고 섬세한 저자의 마음은 햇볕이 좋아서 빨래를 널다가도, 오랜만에 바다를 찾아 해변을 걷다가도 다양한 일들에 반응하고 다양한 감정을 일으킨다. 나라면 미처 문장으로 담지 못했을 감정까지 포착해 꼼꼼하게 적어내린 저자의 글을 읽으며, 역시 27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낸 작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앞서 소개한 글 외에도 소중함을 알기 전에 떠나보낸 것들, 감사함을 전하기도 전에 이별한 것들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주변을 정리하며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