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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
얀네 S. 드랑스홀트 지음, 손화수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1월
평점 :

북유럽 소설 하면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라는 인식이 있다. 그런 인식을 깬 작품이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다. 항상 심통 맞은 표정으로 이웃에게 독설을 뿜어대는 노년의 남성 오베가 어떤 만남을 계기로 180도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이 웃고 울었다. <오베라는 남자>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노르웨이 작가 안네 S. 드랑스홀트의 장편소설 <잉그리 빈테르의 아주 멋진 불행>이 반가울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잉그리 빈테르는 마흔을 앞둔 여성이다. 노르웨이의 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하며, 변호사인 남편과 천방지축인 세 딸을 키우고 있다. 잉그리가 사는 모습은 한국의 워킹맘이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보다 남편과 세 딸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지각을 겨우 면해 출근하면 이번엔 직장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을 상대하느라 바쁘다. 일찍 퇴근하면 애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소리나 듣고, 늦게 퇴근하면 애 엄마가 되어서 가정은 뒷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지.
이 소설의 묘미는 평범한 워킹맘인 잉그리 빈테르의 일상을 그리는 가운데 쉴 새 없이 터지는 유머다. 이를테면 잉그리는 딸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길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다가 와인병을 깨트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 바람에 와인이 외투 소매에 묻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시간이 급해 옷을 갈아입지 못한 채 출발한다. 다행히 딸들을 제시간에 데려다주는 데 성공하지만, 어느 후각 신경 예민한 아이가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이렇게 말한다. "알바(잉그리의 딸 이름) 엄마에게서 술 냄새가 나요." 그리고 잉그리는 딸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술 냄새나는 엄마'로 소문이 난다.
이것은 잉그리가 얼마 후 저지를 실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딸 셋을 키우기에는 집이 좁다고 느낀 잉그리는 그럴 형편이 안 된다는 남편을 졸라 이사를 하기로 한다. 때마침 잉그리가 어릴 때부터 꿈꿔온 스타일의 집이 나타나 잉그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집을 사겠다고 결심한다. 남편은 오래된 집이라서 공사비가 더 들 거라고 말리지만, '드림 하우스'에 살 생각에 푹 빠진 잉그리는 남편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설상가상으로 팔려고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아서 남편의 분노 게이지가 점점 높아진다.
자기가 저지른 실수는 그래도 낫다. 이다음에 벌어지는 일들은 잉그리가 자처한 것도 아니다. 얼마 후 잉그리는 대학 사절단의 일원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화롭게(?) 세 딸을 키우던 평범한 워킹맘이었는데...! 이 밖에도 사고뭉치 잉그리 빈테르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볼 수 있는 소설을 찾는 독자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