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책장 정리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럼에도 쉽사리 책장 정리를 잘 못하게 되는데...

 

한 때 내 손을 거쳐 내가 읽고 그것을 다시 아이들이 읽은 우리와 함께 한 책들이기에 그렇다.

 

그렇다고 책을 마냥 놓아둘 수도 없는 일.

 

집이라는 공간이 한정이 되어 있고, 책장은 정해져 있고, 새로운 책들은 계속 들어오고, 또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제는 과거의 책으로만 존재하게 되는 책도 있기 때문에.

 

큰맘 먹고 읽은 책, 그리고 앞으로 보지 않게 될 책들을 끄집어낸다. 그래, 과감하게 처리하자.

 

헌책방에 갖다 줄 책은 갖다주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책은 주고, 그럼에도 이도저도 아닌 책들은 폐휴지가 된다.

 

다른 사람의 손으로 들어간 책들은 그들의 쓰임을 계속 할 수 있어서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책들도 많다. 특히 아이들이 보던 참고서, 문제집, 교과서 등은.

 

그리고 시일이 지난 동화책. 이들은 남주기에도 민망하다. 이제는 활자가 달라져버려 읽기에도 불편하다. 고서로써의 가치가 있지도 않다.

 

눈 딱 감고 처리하기로 한다. 혹시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길 바라면서.

한 때 내 일부였고, 아이들의 일부였고, 이들이 머리 속에, 마음 속에 들어와 우리를 구성해주고 있는 책들.

 

헤어져야 할 시간, 과감하게 헤어진다.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

 

이 중 아까운 책들. 헤어짐이 서운한 책들, 몇 권.

 

짱뚱이 시리즈. 시튼 동물기, 안데르센 동화집, 앞집에 살던 친구 베렐레 등등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갈, 그러나 이미 내 일부가 되어 있는 책들.

 

    책 9 -책수집가에게

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금강경에서)


인생 굽이굽이,

건너야 할 강이 얼마.

마지막

망각의 강까지

셀 수 없을 그 강을,

건네주는 배.

뗏목, 나룻배, 통통배, 유람선, 쾌속선……

강마다

다른 것을 타고

건너는

형형색색, 대소경중(大小輕重)

모두 내 삶의

방편.

내 삶,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비상하는 방편.

그러나 

건넌 뒤,

미련 없이 두고 와야 하는

더 함께 할 수 없는

놓아야 할 무엇.

놓아야

쓸모가 있는 것,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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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이야기 2 - 한글과 문화 한글 이야기 2
홍윤표 지음 / 태학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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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트인데.. 두 번째 책이다. 한글에 관해서 쓴.

 

1권을 재미있게 읽어서 2권도 계속 손에 들게 된다. 이번에는 작은 제목이 한글과 문화이다.

 

한글로 이룬 문화라고 하기보다는 문화 속에 나타난 한글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커다란 제목을 보면 '예술과 한글', '생활 속 한글1,2", '한글과 놀이문화', '한글과 과학'으로 되어 있다.

 

즉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나타난 한글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고 하겠다.

 

예술과 한글에서는 한글 서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글이 기본적으로 딱딱한 모양으로, 거의 직선으로 창제가 되었는데, 이것이 곧 곡선의 서체로 변한다는 내용. 이유는 단순하다. 직선으로 쓰기에는 붓이 별로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

 

붓으로 글씨를 쓰다보니, 직선보다는 곡선이 더 쓰기에 편했으며, 그렇게 쓰다보니 수직으로 연결되던 기역자가 사선으로 연결이 되기 시작했고, 3획으로 쓰던 지읒자가 2획으로 쓰게 되었고, 꼭지가 없던 이응이 꼭지가 있는 이응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얘기.

 

이것을 지금 존재하는 여러 책들을 비교하면서 보여주고 있어서 한글이 창제되고 사용되었다는 면에서 그치지 않고 한글의 모양이 때에 따라서 또 쓰기에 따라서 변해왔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한글이 참 많이 사용되었다는 사실. 다듬이돌도 한글이 쓰였으며, 옹기에도, 그리고 버선본에도 쓰였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는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놀이에서도 한글이 광범위하게 쓰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의 문화유산이 일본인들에의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도 '훼손된 한글 문화재' 장에서 보여주고 있다. 단지 일본인들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글로 쓰여진 책들을 장롱의 안쪽이나 벽에 벽지로 바르기도 했고, 어떤 이는 땔감으로 쓰기도 했다고 했으니... 할 말은 없지만.

 

지금도 한글은 멋있는 도배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조금 고풍스러운 음식점에 가면 벽면에 한글 벽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이상봉이란 디자이너는 한글로 옷을 디자인하기도 하니... 한글은 그 자체로도 예술품으로 활용이 될 수 있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는 얘기기도 하겠고.

 

윷놀이라든지, 윷점, 또는 제사상 차리기 놀이 등에서도 한글이 사용되 예를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제문으로 쓰일 때 풍부한 감정이 잘 표현될 수 있음을 여러 제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한글이 과학적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 장에서는 한글 자체의 과학성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떻게 한글과 과학이 만났는지, 전신부호로 변용된 한글과 컴퓨터 코드화된 한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한글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 문자인 한글을 사랑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책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한글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보게 해주고 있으니까.

 

덧글

 

많은 책들에서 년도를 표기할 때 오타가 나곤 한다. 숫자라는 것, 아무리 조심해서 봐도 가끔은 틀릴 수밖에 없는데.. 다행스럽게도 앞뒤를 살피면 제대로 된 년도를 알아낼 수 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났는데... '1935년 1월에 어머니인'이라는 구절에서 1935년이 아니라, 1535년이 맞는 년도일 것이고...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 반포 이전에 만들어진 책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떤 곳에서는 1445년이라고 나오고, 어떤 곳에서는 용비어천가 사진 밑에 1447년이라고 나오는데... 판본이 달라서 그런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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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로 머리가 아픈 한 주다. 긴 책을 읽기에는 머리가 정리가 안된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짧은 시집이다.

 

시집이 짧다고 하는 말이 우습기도 하지만, 소품이라고 해야 하나, 시가 많이 수록되지 않은 시집이다. 그리고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주로 나무, 곤충, 삶과 죽음 등을 다루고 있다.

 

제목도 모자나무인데... 죽은 사람들의 모자를 달고 있다는 모자나무, 그런데 이 모자나무는 죽은 사람들만 보아야 하는데, 그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건, 죽음과 삶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삶이 곧 삶이 아니고, 죽음이 곧 죽음이 아닌 상태. 삶과 죽음이 우리곁에 늘 함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집에서는 이중성을 다루되, 이중성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이것이 그것이고, 그것이 이것인 상태가 된다. 결국 시집의 뒷부분에 가면 작은제목이 '노자의 가르침'인 연작시가 나오는데 노자란 있음보다는 없음을 추구한 사람 아니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뒤집어 생각하게 한 사람 아니던가.

 

이 시집에서 '노자의 가르침'은 순서를 거꾸로 편집되어 있다. 보통은 1,2,3...이런 순으로 나가는데... 이 시집에서는 8,7,6,...이런 순서로 편집되어 있는데... 이는 앞과 뒤를 구분하는 것이 덧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하여 산을 오르는 길은 곧 내려오는 길임을, 반복되지 않는 길은 곧 죽음의 길임을, 우리의 삶은 이러한 반복을 통해 이루어짐을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한다.

 

여기에 눈에 확 들어온 시 하나. 산문시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이 내 마음을 끌었다고 할 수 있다.

 

불안을 꿈꾸는 사과... 불안을 꿈꾸는 사람. 결국 불안을 꿈꾼다는 얘기는 자신의 처지를 바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즉 자신을 끝까지 끌고 가본 사람... 그 사람이 자신의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내 자신이 나를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 나를 극한까지 끌고 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

 

'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거기부터 시작하는 자세. 그래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

 

지금, 시대... 우리는 '불안'에 떨고 있다. 세상이 다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안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 결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우리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우해 불안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불안 자체를 꿈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참, 여러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 시다.

 

사과나무의 불안

 

  사나과무가 불안한 것은 사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꼭 떨어지기 때문이다. 불안에는 요행이 없다. 불안은 이루어진다. 불안이 이루어지지 안흔 경우는 불안을 꿈꿀 때이다. 불안을 꿈꾸면 불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과나무의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 남아 있는 사과나무의 사과알들을 보라. 불안을 꿈꾸는 사과알들이다. 떨어지지 않는 사과알들이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불안을 꿈꾸는 사과들은 더 빨리 떨어진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이지 불안을 꿈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남아 있는 사과나무의 사과알들은 오로지 불안을 꿈꾼 사과알들이다. 떨어져 주려고, 기꺼이 떨어져 주려고 마음먹은 사과알들이다. 불안에 쾌히 시달리자는 사과알들이다. 불안을 꿈꾸는 사과나무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박찬일, 모자나무. 민음사. 2006년.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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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 그리고 에밀 졸라.

 

두 이름이 생각이 나는 요즈음이다. 신문을 보니 통합진보당에 이어 특정 시민단체에도 종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하던데...

 

신반공시대... 신유신시대...신긴급조치시대...이렇게 말해야 하나...

 

매카시는 한 때 미국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 의원이었다. 그의 말로 인해, 그의 주장으로 인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세상에서 쫓겨나야 했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미국에서도 냉전시대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하기야 우리가 알고 있는 찰리 채플린조차도 이런 매카시 광풍을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참...

 

그러나 매카시는 곧 몰락하고 만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광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가 진실이라고 믿었건 믿지 않았건을 떠나 그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보다 잘나가는 남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험담하고, 비난하고, 욕설하고 또 그들을 추방하려고 했다.

 

역사에서 이런 그는 부끄러움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또 반복되어서는 안될 이름으로도 남아 있고.

바로 유명한 용어 "매카시즘"

 

반면에 에밀 졸라. 그는 간첩죄로 기소된 유대인 드레퓌스를 변호하는 글을 썼다. '나는 고발한다' 이 글 때문에 그는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는 진실이 무엇인지, 진실을 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글로 공표했다. 그것이 자신을 힘들게 할지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지킬 양심이고, 자존감이었다.

 

그 때 졸라는 박해를 받고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후에 그의 이름은 정의의 대명사로, 참여하는 지식인의 대명사로 남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런 두 사람의 행태를 떠올리게 하는 시가 있다. 신현림의 '먼저 격려하고 축복하는 세상이 그리워'라는 시다.

 

먼저 격려하고 축복하는 세상이 그리워

- 진실을 죽이는 세상에 대한 통탄

 

먼저 격려하고 칭찬하는 세상이 그리워

험담 철조망이 아니라, 비난이 아니라, 욕설 작살이 아니라

격려하고, 칭찬하고, 축복해 주는 세상이 그리워

 

진실의 죽음은 어떤 씨앗도 되기 힘든 고통이었다

대체로 불혹이면 자기 이름이 상할 일들은 못 견딘다

달이 주르르 미끄러지고 해가 떨어져도 지킬 게 양심이고, 자존감이다

 

세상 밖에서 바라본 세상은

질투와 시샘, 선망, 뒤틀린 욕망을 전시한 싸구려 상점이다

까닭 없는 비난의 땅바닥엔 시샘과

질투의 뿌리가 징그럽게 엉켜 있음을 알기에 무시하며

화난 하이힐로 땅바닥은 안전한가 두드리며 지나친다

화려해 보였으나 초막처럼 쓸쓸한 진실을 애도한다

 

남의 노력에 박수 칠 여유가 없음 입 다물고 지나치시라

스스로 깊은 바다를 헤엄치지 못한 얄팍한 심장을 보이지 말고

고마워하시라 적어도 그대가 못 산 삶을 살지 않는다

 

나이 마흔이면 달이 주르르 미끄러지고

해가 떨어져도 지킬 게 양심이고, 자신의 이름이더라

진실을 죽인 일은 없는가, 고개를 숙이고

나도 나를 살펴볼 테니 님들도 자신을 돌아보시라

먼저 박수 치지 못할 바엔 그냥 지나쳐야 하고

먼저 격려하고, 칭찬하고 축복해야 참으로 사람 아니런가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102-121쪽

 

제목이 마음에 들어 헌책방에서 구입한 시집인데... 읽다보니 이런 시가 있었다.

 

'야, 이거 지금 우리 세태와 딱 맞는 시구나.'

 

낮은 곳으로, 자신들이 돌보지 못한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정당을 해산하라고 하는 정부와 집권여당, 그리고 방관하고 있는 또다른 거대 야당. 이들에게 진보정당은 시기, 질투의 대상인가? 오히려 진보정당은 자신들이 빠뜨리고 있던 일들을 상기시켜주는 고마운 정당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진보정당처럼 하지는 못할지라고 그들을 격려하고 칭찬해주어야 하지 않나... 그것이 거대 정당의 의무 아니던가.

 

시에서처럼 '먼저 박수 치지 못할 바엔 그냥 지나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렇게는 못한다. 그래도 너희는 그렇게 하니 잘 해봐라. 이정도는 되어야 거대 정당이라고 할 수 있고,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못 본체하는 것을 떠나 존재하지 못하게 막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이는 자존감이 없는 행동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하여 쓸쓸하고 우울하다. 씁쓸하다. 인생이. 이 사회가.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민주주의가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낙엽은 또다른 봄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추락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절망만을 남기고 있다.

 

치유가 필요하다. 위로를 받고 싶다. 그것을 사회에서 받아야 하는데... 함께 치유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선 자신만이라도 건강해야 할 터.

 

시인은 시를 써서 위로를 받는다지만, 나는 그런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시를 쓰는 밤

 

시를 쓰면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지 모른다 내 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소리에 밴 향기를 느낀다 시를 쓰면 시어들이 나를 밀어내며 끌어당긴다 왕릉의 빛을 받고 투명해지는 손, 손 닿는 물건마다 빛이 나듯이 물방울같이 투명해진 마음이 닿으면 책과 의자도 창밖 건물도 부드럽게 움직인다 참았던 비명도 쓸쓸함도 터져 바람 속에 기도 속에 녹아내린다

 

  시를 읽거나 쓴다는 건 살얼음판 세상에 사랑 하나 심고 침대 위에 사과꽃 무성히 피어내는 일이니 두 번 살 수 없는 생을 시로써 수없이 고쳐 가며 겸손히 다시 사는 고마움이니 인생을 비로소 누린다는 기분이니 깊은 어둠 와인처럼 마시는 시간 침대 타고 달리는 시간 빛의 왕릉이 내 집이 되는 순간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61쪽.

 

이렇게라도 위로를 받아야 하겠지. 더 많은 시들도 위로가 되는데...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 그래. 사회문제에서 이제는 개인으로 내려와 이런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이렇게 슬프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시를 읽으며 그나마 위안을 느낀다. 시인의 첫번째 시집 "세기말 블루스"도 읽어볼 것. 

 

침대를 타고 달렸어

 

누구나 꿈 속에서 살다 가는 게 아닐까

누구나 자기 꿈속에서 앓다 가는 거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누에가 고치를 잣듯

포기 못할 꿈으로 아름다움을 얻는 거

 

슬프고, 아프지 않고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찌 회오리 같은 인생을 알며

어찌 사랑의 비단을 얻고 사라질까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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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의 역사 - 역사 속 억압된 책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
베르너 풀트 지음, 송소민 옮김 / 시공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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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금서. 강제로 읽히기를 금지당한 책.

분서. 금지에서 더 나아가 제거당한 책. 그것도 불태워져 버린.

 

 

예전에 '호기심 천국'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실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마, 하지마 하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더 호기심을 가지고 해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도 금지한 것을 해보려고 한다.

 

금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역사에서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해롭다고 생각한 책들을 금서로 지정했지만, 이것은 오히려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했을 뿐이고, 그냥 놓아두었더라면 금세 잊혀졌을 책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중국 진나라 때 분서갱유라고 우리들이 사상을 탄압할 때 늘 쓰는 말이고, 이렇게 분서갱유를 했음에도 유교가 중국의 지도이념으로 자리잡게 하는데는 실패했음을 역사를 통하여 배우기도 했는데... 하다못해 중국의 이지란 사람은 자신의 책이름을 "분서"라고 짓기도 했으니...

 

이게 동양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일어난, 그것도 한 때 일어난 일이 아닌,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금서의 역사...

 

그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아무리 금서로 지정했어도 그 책을 뿌리뽑지는 못했고, 오히려 더 그 책이 많이 읽히게 만들었음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이유는, 금서로 지정하는 일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로마시대부터 중세시대, 이 중세시대는 책만 태운 것이 아니라 사람도 함께 태웠으니 무시무시한 시대였음에도 금서로 지정된 책들을 보관하려는 사람, 어떻게든 빼돌리려는 사람이 있었고, 또 이들이 성공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근대에 들어와서도 이러한 금서에 얽힌 일들이 무척 많았음을 이 책에서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가 오래 전부터 성숙해왔다고 생각해온 유럽과 미국에서도 아직까지도 금서가 존재하며, 그 이유가 반사회적이고 음란함, 지나친 폭력에서 이제는 개인의 인격 침해로 나아갔다고 하니, 어쩌면 금서는 표현의 자유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표현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국민들의 교양 수준을 알려주는, 또 지배권력의 포용정도를 알려주는 잣대로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자신 있는 사람은 주변의 시선에 무관심하듯이, 지배권력이 자신이 있다면 굳이 금서로 지정할 책은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개인적인 인격 침해가 상당히 인정되는 책에 대해서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는 사실이라면 제외하고, 내밀한 사적인 일에 해당될 때는 판매 금지할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는 그냥 놓아두면 자연스레 문화적인 수준에 의해 정화가 된다.

 

그러한 믿음이 없는 사회는 문화적인 수준이 낮은 사회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몇몇 작품들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세계명작이라고 배우는 작품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율리시즈", "1984", "로리타", "호밀밭의 파수꾼" 등등

 

이것들을 누가 지금 금서라고 하는가? 오히려 세계명작이라고 해서 추천도서 목록에 늘 오르는 작품들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은 법적인 금지나 또는 권력으로 인한 금지로 인해서 책이 읽히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러한 책이 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ㅡ문화적인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바른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서 우리나라 상황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가가 독일 사람이라 우리나라 소식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런지 중국까지는 다루었는데, 우리나라는 다루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시 다채로운 금서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사문난적'이라고 하여 글을 잘못 써서 추방당하거나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쟁 전후에는 책이나 글을 잘못 쓰면 감옥에 갇히거나 역시 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나서 사회가 좀 안정이 되고 나서도 퇴폐 음란물이다, 반사회적이다 하여 금서가 된 책들이 꽤 있었는데... 지금 얼핏 떠올려도 몇 가지 책이 생각이 난다.

 

"임꺽정(林巨正)", 한 때 식자판까지 압수당했다는 그 책. 우리 말을 이렇게도 잘 살릴 수 있을까 한다는 책. 조선시대 풍습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고, 또 우리말의 보고라는 소리까지 듣는 이 책은 한 때 작가인 홍명희가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었다. 지금은 많이 읽히고 있지만.

 

또 남정현의 '분지' 미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던 책. 필화사건이라고 하지. 작가가 구속까지 되었다니까.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이 책을 가지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회적-정치적인 이유말고도 마광수의 작품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금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문화 수준이 소설을 읽고 사람들이 그것을 다 따라할 만큼 낮았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몇 년 전인가, 얼마 전에는 국방부에서 군인들이 읽으면 안 되는 책이라고 해서 국방부 금서 목록이 유츌이 된 적이 있었다. 시중에 이미 출판이 되어 유통되고 있는 책을 국방부에서는 군인들만 읽으면 안 된다고 했었는데...그 금서 목록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여럿 있었다는 사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어쩌면 그리도 통하는지...

 

하여간 참으로 많은 금서에 얽힌 이야기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아직 이 책처럼 우리나라 금서의 역사를 쓴 책을 만나보지 못했다. (이미 나왔는데, 내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무슨 필화 사건이라고 하는 책은 어디선가 제목을 본 듯도 한데...)

 

그런 책도 나와서 우리나라 금서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줘도 좋을 듯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명심해야 한다고 한 생각.

 

사람은 가둘 수 있을지 모르나 사상은 가둘 수 없다. 마찬가지로 책은 태울 수 있으나 그 책 내용까지 없앨 수는 없다. 결국 이기는 것은 수 권력이 아니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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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금서의 역사> 금지조치 당한 책들의 모든 것
    from 책으로 책하다 2013-11-24 16:22 
    [서평] ⓒ시공사 시간을 거슬러 중국 진나라 시황제 때로 가보자. 당시 진나라는 상앙과 한비자 등의 법가를 국가 통치 체제의 주된 전략으로 받아들여 우민 정책과 함께 법에 의한 획일적인 사회 통제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중국 대륙에 뿌리내려져 온 유가 학문과 사상은 이 체제를 비판하였다. 중앙집권적 군현제를 반대하고 봉건제 부활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진나라의 승상 이사는 정부가 시행하려는 정치를 비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