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카시. 그리고 에밀 졸라.

 

두 이름이 생각이 나는 요즈음이다. 신문을 보니 통합진보당에 이어 특정 시민단체에도 종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하던데...

 

신반공시대... 신유신시대...신긴급조치시대...이렇게 말해야 하나...

 

매카시는 한 때 미국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 의원이었다. 그의 말로 인해, 그의 주장으로 인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세상에서 쫓겨나야 했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미국에서도 냉전시대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하기야 우리가 알고 있는 찰리 채플린조차도 이런 매카시 광풍을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참...

 

그러나 매카시는 곧 몰락하고 만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광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가 진실이라고 믿었건 믿지 않았건을 떠나 그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보다 잘나가는 남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험담하고, 비난하고, 욕설하고 또 그들을 추방하려고 했다.

 

역사에서 이런 그는 부끄러움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또 반복되어서는 안될 이름으로도 남아 있고.

바로 유명한 용어 "매카시즘"

 

반면에 에밀 졸라. 그는 간첩죄로 기소된 유대인 드레퓌스를 변호하는 글을 썼다. '나는 고발한다' 이 글 때문에 그는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는 진실이 무엇인지, 진실을 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글로 공표했다. 그것이 자신을 힘들게 할지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지킬 양심이고, 자존감이었다.

 

그 때 졸라는 박해를 받고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후에 그의 이름은 정의의 대명사로, 참여하는 지식인의 대명사로 남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런 두 사람의 행태를 떠올리게 하는 시가 있다. 신현림의 '먼저 격려하고 축복하는 세상이 그리워'라는 시다.

 

먼저 격려하고 축복하는 세상이 그리워

- 진실을 죽이는 세상에 대한 통탄

 

먼저 격려하고 칭찬하는 세상이 그리워

험담 철조망이 아니라, 비난이 아니라, 욕설 작살이 아니라

격려하고, 칭찬하고, 축복해 주는 세상이 그리워

 

진실의 죽음은 어떤 씨앗도 되기 힘든 고통이었다

대체로 불혹이면 자기 이름이 상할 일들은 못 견딘다

달이 주르르 미끄러지고 해가 떨어져도 지킬 게 양심이고, 자존감이다

 

세상 밖에서 바라본 세상은

질투와 시샘, 선망, 뒤틀린 욕망을 전시한 싸구려 상점이다

까닭 없는 비난의 땅바닥엔 시샘과

질투의 뿌리가 징그럽게 엉켜 있음을 알기에 무시하며

화난 하이힐로 땅바닥은 안전한가 두드리며 지나친다

화려해 보였으나 초막처럼 쓸쓸한 진실을 애도한다

 

남의 노력에 박수 칠 여유가 없음 입 다물고 지나치시라

스스로 깊은 바다를 헤엄치지 못한 얄팍한 심장을 보이지 말고

고마워하시라 적어도 그대가 못 산 삶을 살지 않는다

 

나이 마흔이면 달이 주르르 미끄러지고

해가 떨어져도 지킬 게 양심이고, 자신의 이름이더라

진실을 죽인 일은 없는가, 고개를 숙이고

나도 나를 살펴볼 테니 님들도 자신을 돌아보시라

먼저 박수 치지 못할 바엔 그냥 지나쳐야 하고

먼저 격려하고, 칭찬하고 축복해야 참으로 사람 아니런가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102-121쪽

 

제목이 마음에 들어 헌책방에서 구입한 시집인데... 읽다보니 이런 시가 있었다.

 

'야, 이거 지금 우리 세태와 딱 맞는 시구나.'

 

낮은 곳으로, 자신들이 돌보지 못한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정당을 해산하라고 하는 정부와 집권여당, 그리고 방관하고 있는 또다른 거대 야당. 이들에게 진보정당은 시기, 질투의 대상인가? 오히려 진보정당은 자신들이 빠뜨리고 있던 일들을 상기시켜주는 고마운 정당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진보정당처럼 하지는 못할지라고 그들을 격려하고 칭찬해주어야 하지 않나... 그것이 거대 정당의 의무 아니던가.

 

시에서처럼 '먼저 박수 치지 못할 바엔 그냥 지나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현실적으로 그렇게는 못한다. 그래도 너희는 그렇게 하니 잘 해봐라. 이정도는 되어야 거대 정당이라고 할 수 있고,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못 본체하는 것을 떠나 존재하지 못하게 막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이는 자존감이 없는 행동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하여 쓸쓸하고 우울하다. 씁쓸하다. 인생이. 이 사회가.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민주주의가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낙엽은 또다른 봄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추락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절망만을 남기고 있다.

 

치유가 필요하다. 위로를 받고 싶다. 그것을 사회에서 받아야 하는데... 함께 치유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선 자신만이라도 건강해야 할 터.

 

시인은 시를 써서 위로를 받는다지만, 나는 그런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다.

 

                                시를 쓰는 밤

 

시를 쓰면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지 모른다 내 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소리에 밴 향기를 느낀다 시를 쓰면 시어들이 나를 밀어내며 끌어당긴다 왕릉의 빛을 받고 투명해지는 손, 손 닿는 물건마다 빛이 나듯이 물방울같이 투명해진 마음이 닿으면 책과 의자도 창밖 건물도 부드럽게 움직인다 참았던 비명도 쓸쓸함도 터져 바람 속에 기도 속에 녹아내린다

 

  시를 읽거나 쓴다는 건 살얼음판 세상에 사랑 하나 심고 침대 위에 사과꽃 무성히 피어내는 일이니 두 번 살 수 없는 생을 시로써 수없이 고쳐 가며 겸손히 다시 사는 고마움이니 인생을 비로소 누린다는 기분이니 깊은 어둠 와인처럼 마시는 시간 침대 타고 달리는 시간 빛의 왕릉이 내 집이 되는 순간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61쪽.

 

이렇게라도 위로를 받아야 하겠지. 더 많은 시들도 위로가 되는데...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 그래. 사회문제에서 이제는 개인으로 내려와 이런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이렇게 슬프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시를 읽으며 그나마 위안을 느낀다. 시인의 첫번째 시집 "세기말 블루스"도 읽어볼 것. 

 

침대를 타고 달렸어

 

누구나 꿈 속에서 살다 가는 게 아닐까

누구나 자기 꿈속에서 앓다 가는 거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누에가 고치를 잣듯

포기 못할 꿈으로 아름다움을 얻는 거

 

슬프고, 아프지 않고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찌 회오리 같은 인생을 알며

어찌 사랑의 비단을 얻고 사라질까

 

신현림. 침대를 타고 달렸어. 민음사. 2009년.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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