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로 머리가 아픈 한 주다. 긴 책을 읽기에는 머리가 정리가 안된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짧은 시집이다.
시집이 짧다고 하는 말이 우습기도 하지만, 소품이라고 해야 하나, 시가 많이 수록되지 않은 시집이다. 그리고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주로 나무, 곤충, 삶과 죽음 등을 다루고 있다.
제목도 모자나무인데... 죽은 사람들의 모자를 달고 있다는 모자나무, 그런데 이 모자나무는 죽은 사람들만 보아야 하는데, 그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건, 죽음과 삶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고, 삶이 곧 삶이 아니고, 죽음이 곧 죽음이 아닌 상태. 삶과 죽음이 우리곁에 늘 함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집에서는 이중성을 다루되, 이중성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이것이 그것이고, 그것이 이것인 상태가 된다. 결국 시집의 뒷부분에 가면 작은제목이 '노자의 가르침'인 연작시가 나오는데 노자란 있음보다는 없음을 추구한 사람 아니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뒤집어 생각하게 한 사람 아니던가.
이 시집에서 '노자의 가르침'은 순서를 거꾸로 편집되어 있다. 보통은 1,2,3...이런 순으로 나가는데... 이 시집에서는 8,7,6,...이런 순서로 편집되어 있는데... 이는 앞과 뒤를 구분하는 것이 덧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하여 산을 오르는 길은 곧 내려오는 길임을, 반복되지 않는 길은 곧 죽음의 길임을, 우리의 삶은 이러한 반복을 통해 이루어짐을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한다.
여기에 눈에 확 들어온 시 하나. 산문시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이 내 마음을 끌었다고 할 수 있다.
불안을 꿈꾸는 사과... 불안을 꿈꾸는 사람. 결국 불안을 꿈꾼다는 얘기는 자신의 처지를 바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즉 자신을 끝까지 끌고 가본 사람... 그 사람이 자신의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내 자신이 나를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 나를 극한까지 끌고 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
'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거기부터 시작하는 자세. 그래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
지금, 시대... 우리는 '불안'에 떨고 있다. 세상이 다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안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 결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우리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우해 불안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불안 자체를 꿈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참, 여러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 시다.
사과나무의 불안
사나과무가 불안한 것은 사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꼭 떨어지기 때문이다. 불안에는 요행이 없다. 불안은 이루어진다. 불안이 이루어지지 안흔 경우는 불안을 꿈꿀 때이다. 불안을 꿈꾸면 불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과나무의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 남아 있는 사과나무의 사과알들을 보라. 불안을 꿈꾸는 사과알들이다. 떨어지지 않는 사과알들이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불안을 꿈꾸는 사과들은 더 빨리 떨어진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이지 불안을 꿈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남아 있는 사과나무의 사과알들은 오로지 불안을 꿈꾼 사과알들이다. 떨어져 주려고, 기꺼이 떨어져 주려고 마음먹은 사과알들이다. 불안에 쾌히 시달리자는 사과알들이다. 불안을 꿈꾸는 사과나무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꿈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박찬일, 모자나무. 민음사. 2006년. 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