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책장 정리를 할 필요를 느낀다.

 

그럼에도 쉽사리 책장 정리를 잘 못하게 되는데...

 

한 때 내 손을 거쳐 내가 읽고 그것을 다시 아이들이 읽은 우리와 함께 한 책들이기에 그렇다.

 

그렇다고 책을 마냥 놓아둘 수도 없는 일.

 

집이라는 공간이 한정이 되어 있고, 책장은 정해져 있고, 새로운 책들은 계속 들어오고, 또 아이들이 커가면서 이제는 과거의 책으로만 존재하게 되는 책도 있기 때문에.

 

큰맘 먹고 읽은 책, 그리고 앞으로 보지 않게 될 책들을 끄집어낸다. 그래, 과감하게 처리하자.

 

헌책방에 갖다 줄 책은 갖다주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책은 주고, 그럼에도 이도저도 아닌 책들은 폐휴지가 된다.

 

다른 사람의 손으로 들어간 책들은 그들의 쓰임을 계속 할 수 있어서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책들도 많다. 특히 아이들이 보던 참고서, 문제집, 교과서 등은.

 

그리고 시일이 지난 동화책. 이들은 남주기에도 민망하다. 이제는 활자가 달라져버려 읽기에도 불편하다. 고서로써의 가치가 있지도 않다.

 

눈 딱 감고 처리하기로 한다. 혹시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길 바라면서.

한 때 내 일부였고, 아이들의 일부였고, 이들이 머리 속에, 마음 속에 들어와 우리를 구성해주고 있는 책들.

 

헤어져야 할 시간, 과감하게 헤어진다.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

 

이 중 아까운 책들. 헤어짐이 서운한 책들, 몇 권.

 

짱뚱이 시리즈. 시튼 동물기, 안데르센 동화집, 앞집에 살던 친구 베렐레 등등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갈, 그러나 이미 내 일부가 되어 있는 책들.

 

    책 9 -책수집가에게

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금강경에서)


인생 굽이굽이,

건너야 할 강이 얼마.

마지막

망각의 강까지

셀 수 없을 그 강을,

건네주는 배.

뗏목, 나룻배, 통통배, 유람선, 쾌속선……

강마다

다른 것을 타고

건너는

형형색색, 대소경중(大小輕重)

모두 내 삶의

방편.

내 삶,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비상하는 방편.

그러나 

건넌 뒤,

미련 없이 두고 와야 하는

더 함께 할 수 없는

놓아야 할 무엇.

놓아야

쓸모가 있는 것,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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