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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의 역사 - 역사 속 억압된 책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
베르너 풀트 지음, 송소민 옮김 / 시공사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금서. 강제로 읽히기를 금지당한 책.
분서. 금지에서 더 나아가 제거당한 책. 그것도 불태워져 버린.
예전에 '호기심 천국'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실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마, 하지마 하면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더 호기심을 가지고 해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도 금지한 것을 해보려고 한다.
금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역사에서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해롭다고 생각한 책들을 금서로 지정했지만, 이것은 오히려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했을 뿐이고, 그냥 놓아두었더라면 금세 잊혀졌을 책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중국 진나라 때 분서갱유라고 우리들이 사상을 탄압할 때 늘 쓰는 말이고, 이렇게 분서갱유를 했음에도 유교가 중국의 지도이념으로 자리잡게 하는데는 실패했음을 역사를 통하여 배우기도 했는데... 하다못해 중국의 이지란 사람은 자신의 책이름을 "분서"라고 짓기도 했으니...
이게 동양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일어난, 그것도 한 때 일어난 일이 아닌,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금서의 역사...
그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아무리 금서로 지정했어도 그 책을 뿌리뽑지는 못했고, 오히려 더 그 책이 많이 읽히게 만들었음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이유는, 금서로 지정하는 일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로마시대부터 중세시대, 이 중세시대는 책만 태운 것이 아니라 사람도 함께 태웠으니 무시무시한 시대였음에도 금서로 지정된 책들을 보관하려는 사람, 어떻게든 빼돌리려는 사람이 있었고, 또 이들이 성공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근대에 들어와서도 이러한 금서에 얽힌 일들이 무척 많았음을 이 책에서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가 오래 전부터 성숙해왔다고 생각해온 유럽과 미국에서도 아직까지도 금서가 존재하며, 그 이유가 반사회적이고 음란함, 지나친 폭력에서 이제는 개인의 인격 침해로 나아갔다고 하니, 어쩌면 금서는 표현의 자유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표현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국민들의 교양 수준을 알려주는, 또 지배권력의 포용정도를 알려주는 잣대로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자신 있는 사람은 주변의 시선에 무관심하듯이, 지배권력이 자신이 있다면 굳이 금서로 지정할 책은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개인적인 인격 침해가 상당히 인정되는 책에 대해서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는 사실이라면 제외하고, 내밀한 사적인 일에 해당될 때는 판매 금지할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는 그냥 놓아두면 자연스레 문화적인 수준에 의해 정화가 된다.
그러한 믿음이 없는 사회는 문화적인 수준이 낮은 사회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몇몇 작품들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세계명작이라고 배우는 작품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율리시즈", "1984", "로리타", "호밀밭의 파수꾼" 등등
이것들을 누가 지금 금서라고 하는가? 오히려 세계명작이라고 해서 추천도서 목록에 늘 오르는 작품들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은 법적인 금지나 또는 권력으로 인한 금지로 인해서 책이 읽히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러한 책이 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ㅡ문화적인 수준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바른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서 우리나라 상황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가가 독일 사람이라 우리나라 소식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그런지 중국까지는 다루었는데, 우리나라는 다루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시 다채로운 금서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사문난적'이라고 하여 글을 잘못 써서 추방당하거나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쟁 전후에는 책이나 글을 잘못 쓰면 감옥에 갇히거나 역시 죽음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나서 사회가 좀 안정이 되고 나서도 퇴폐 음란물이다, 반사회적이다 하여 금서가 된 책들이 꽤 있었는데... 지금 얼핏 떠올려도 몇 가지 책이 생각이 난다.
"임꺽정(林巨正)", 한 때 식자판까지 압수당했다는 그 책. 우리 말을 이렇게도 잘 살릴 수 있을까 한다는 책. 조선시대 풍습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고, 또 우리말의 보고라는 소리까지 듣는 이 책은 한 때 작가인 홍명희가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었다. 지금은 많이 읽히고 있지만.
또 남정현의 '분지' 미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던 책. 필화사건이라고 하지. 작가가 구속까지 되었다니까.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이 책을 가지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회적-정치적인 이유말고도 마광수의 작품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금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문화 수준이 소설을 읽고 사람들이 그것을 다 따라할 만큼 낮았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몇 년 전인가, 얼마 전에는 국방부에서 군인들이 읽으면 안 되는 책이라고 해서 국방부 금서 목록이 유츌이 된 적이 있었다. 시중에 이미 출판이 되어 유통되고 있는 책을 국방부에서는 군인들만 읽으면 안 된다고 했었는데...그 금서 목록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여럿 있었다는 사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어쩌면 그리도 통하는지...
하여간 참으로 많은 금서에 얽힌 이야기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아직 이 책처럼 우리나라 금서의 역사를 쓴 책을 만나보지 못했다. (이미 나왔는데, 내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무슨 필화 사건이라고 하는 책은 어디선가 제목을 본 듯도 한데...)
그런 책도 나와서 우리나라 금서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줘도 좋을 듯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명심해야 한다고 한 생각.
사람은 가둘 수 있을지 모르나 사상은 가둘 수 없다. 마찬가지로 책은 태울 수 있으나 그 책 내용까지 없앨 수는 없다. 결국 이기는 것은 수 권력이 아니라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