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일주일 심리학 3부작
박진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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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월화수목금금금 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때 토일이라는 휴일이 없는 상태라면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람은 쉴 때 쉬어야 원기를 회복하고,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다. 왜 우리들에게 월요병이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쉴 때 쉬었는데, 무언가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을 때 월요병은 더 심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월요병에 이어 화요일에는 피곤이 가중되고 수요일이 되면 정점에 올랐다가 목요일이 되면 이제 휴일이 다가온다는 기대에 차고, 금요일이 되면 하루만 견디면 휴일이다 이랬다가 막상 휴일이 되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미진함에, 일요일이 가는 아쉬움에 이대로 시간이 멈추거나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게 되는 것.

 

이런 일주일이 매번 반복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여기서 어떤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런 점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이 책의 지은이는 월화수목금토일을 나누어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꼭 요일과 그 다스림이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주일을 우리 인생의 주기로 생각한다면 우리 인생의 주기에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일주일에 빗대어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요일에 맞는, 상황에 맞는 처방을 해주고 있기에 읽으면서 과연 그렇구나, 이렇게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법들이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러한 방법들이기에 시도를 해본다면 조금은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리 멘탈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쉽게 붕괴되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이다. 특정 선수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들도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우리 마음이 순식간에 붕괴되는 경험을 많이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나서 곧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자신을 조금만 추스릴 걸, 그 때는 왜 그랬을까 하는 마음을 지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조금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막 흔들리는 내 마음을 보고, 왜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까, 왜 이리 불안하고, 신경질적이 되었을까 나를 바라보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이 책은 그런 내 마음을 알고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월요일이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피곤하다는 사실. 그렇다. 월요일은 다시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어쩌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월요일 아침은 중요하다. 물론 우리나라 말에 '아침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이라는 말이 있지만, 시작해야 할 때 에너지 보충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최소한 출발하기 위해서는 연료가 채워져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지나친 연료는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런 출발에서부터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잘 제시되어 있느니,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제 휴일. 잘 지내온 자신의 행복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과연 돈인지.. 아닌지... 돈은 어느 정도는 행복과 관련이 있지만,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말. 

 

이 행복감을 주는 최소한의 돈을 사람들이 걱정없이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그리고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로 문화를 바꾸어가는 일. 그것이 이 책의 뒷부분에서 이야기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너무도 낮은 것을 바꾸어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불안사회에 살고 있다. 남북대치 국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생존에 위협을 많이 느끼고 있다. 어느 한 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그렇게 되면 누구도 자신의 삶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그런 불안감이 우리를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이런 불안감은 또한 나를 나 자신인 나로 보게 하지 않고, 남의 눈에 비친 나로 보게 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길이다. 이런 길에서 탈피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지녀야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되 부정적인 면을 아예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고...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한다. 또 여유 있는 삶. 그리고 돈을 쓰되 물건에 쓰지 않고 경험에 쓰는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 등등.

 

세상이 어지럽다고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서 나온 결과 중에 충격적인 것은 행복감을 느끼는데 50%가 유전이라는 사실. 이거야 원. 그랬지만 거꾸로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개인적인, 또 사회적인 노력이 50%나 된다는 사실.

 

우리도(어, 이 말이 너무 집단적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라는 말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더 잘쓰고, 이게 몸에 배어 있다.), 우리 사회도 행복한 사회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 출발점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내일은 금요일. 자존감을 지니고 생활해야 하는 날이다. 그렇게 하자.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하겠는가.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나는 나다. 그러므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는 바로 '나'다.

 

힘내서 생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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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원 2016-09-13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화수목금토일 중에 해당돼는요일
 
제안들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배수아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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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는 난해한 작가다. 그만큼 그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 그의 작품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변신"만 해도 매우 많은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도 이 "변신"이 카프카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읽을 만하고 할텐데.

 

우리나라에서 이상이 작품이 해석이 곤란하거나 너무도 다양한 것과 비교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이상의 작품 중에서 사람들이 "날개"를 가장 많이 읽고 또 해석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카프카의 글 가운데 "꿈"에 관한 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꿈"에 관한 카프카의 모든 글을 모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글을 모아놓아, 또 다른 한 편의 글을 우리로 하여금 만나게 하고 있다.

 

그의 편지, 일기 등에서 언급된 꿈에 관련된 말들이 작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주해나 또 해설에서 잘 설명을 하고 있어서 꿈과 그의 문학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은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그의 꿈에 관한 글들은 계속 읽힌다. 무언가 무언가 안개 속에서 어렴풋한 그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실체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흐릿한 안개 속에서 그의 작품을 명료하게 해줄 수 있는 방편으로 꿈에 관한 글들을 읽어간다.

 

그는 "꿈같은 삶의 기록"이라고 했는데(이말은 우리나라 번역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카프카에게 있어서 꿈과 현실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붙고 얽혀 있는 하나의 동일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그는 꿈을 통해 작품을 쓰기도 했고, 또 많은 날들을 불면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꿈과 현실의 중간에 머무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하니...

 

인간은 이거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듯이,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꿈과 현실을 함께 경험하면서 살아갔다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꿈이 그의 작품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고...이런 특징으로 인해 카프카의 작품은 우리에게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된다. 무언가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의 작품은.

 

장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 단편 소설이 삶의 어느 한 단면을 그려서 결말이 확정적이지 않고 다른 사건을 유발하는 듯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많다고 한다면...장편들은 끝이 명확하게 이루어져 작품이 완결지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편들은 무언가 계속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마치 단편처럼 여운이 계속 남는다.

 

그나마 그래도 "소송"이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기에 더이상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그래도 이상하게 주인공의 죽음이 꿈에서 겪은 일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하는데...

 

나머지 장편들은 미완성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계속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나중에 우리가 꿈을 꾸지 못하면 그것은 죽음에 불과할테니...

 

카프카의 꿈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그런 꿈은 그의 문학이 지속됨을 보장하는 요소라고도 할 수 있는데...

 

기가막히게도 이 책의 옮긴이의 말은 또 하나의 작품이다. 카프카의 작품에 조응하는 또 하나의 작품으로 옮긴이의 말을 하고 있다. 도무지 실체를 찾을 수 없는, 꿈 속을 헤매는 듯한, 아니 실제에서도 어디론가 가고 있지만 도달은 하지 못하는... 주변에 사람이 있지만 그들의 실체 또한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그런 옮긴이의 작품.

 

하여 카프카의 "꿈"에 대한 글들과 카프카의 "꿈과 작품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해설과 카프카에 조응하여 작품으로 옮긴이의 말을 대신한 글이 이 책을 이루고 있다.

 

책의 편제 자체도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그런 편제다.

 

우리도 꿈을 꾼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꿈을 꿈이라고 실제가 아니라고 허황된 것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꿈은 그냥 꿈에 불과해진다. 여기서 꿈이 그냥 꿈이 아니라 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 꿈이 현실을 이루어내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보다 다른 자리를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꿈을 통해 현실을 보고, 현실을 통해 꿈을 보는 그런 자세... 어쩌면 그것이 카프카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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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평전 -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
김경재 지음 / 삼인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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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장공, 김재준.

 

구구만리 비어 있는 드넓은 하늘. 그것이 김재준이 지닌 호이다. 그의 다른 이름이 바로 이런 '장공(長空).

 

노자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비움은 무언가를 채울 수 있음이고, 무언가가 존재할 수 있음은 바로 이 비어있음 때문인데... 얼마나 비어있느냐에 따라 그릇의 크기가 달라지니.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그 비어있음의 크기로 늦게 이루어지나니... 늦게 이루어진다고 무시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되는 일.

 

김재준. 그는 늦되어 기독교에 입문했다. 정식 학교 교육을 조금밖에 받지 못한 그가 동향 사람인 송창근의 권유로 서울에 유학을 하고, 그 때 그는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자신의 인생을 바꾼다. 나이 20이 넘어서야.

 

그때부터 일본 유학, 그리고 미국 유학을 거쳐 신학 공부를 하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기독교에 종사한다.

 

처음부터 목회 활동을 하지는 않고, 또 그는 평양 중심의 보수주의 정통기독교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기에, 교사 생활을 하면서 목회 활동을 한다.

 

이 때 만난 제자 중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강원룡 목사이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강원룡 목사는 김재준과 비슷한 삶을 살게 된다.

 

교사 생활을 접고 그가 한 일은 신학교를 세우는 일. 그 신학교가 지금의 한국신학대학교(일명 한신대)이니... 그는 우리나라 진보 기독교의 대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엄혹한 시기에 한신대는 우리나라의 등불이 되는 인재들을 많이 길러냈으니 말이다. 지금도 특정 교파에 치우치지 않고 진정한 종교인의 삶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대학이라고 생각을 하니, 그의 업적은 한신대 설립과 유지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만으로 대단하다 할 수 있다.

 

그는 보수주의 정통기독교(이 말이 좀 우습다. 모든 종교는 다 정통 아닌가?)와는 다른 길을 걸어 그들에게 파문도 당하고 했지만, 자신의 길을 멈추지 않는다.

 

옳은 길 앞에서 탄압과 시련은 그 길이 더욱 옳음을 알려주는 징표이기도 하리라. 하여 그는 편협되지 않은 기독교를 전파하기에 힘썼고, 이런 결과로 사회 문제에도 깊게 관여하게 되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

 

종교는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삶이 결코 낮지 않음을, 하늘의 삶이 그들에게 내려왔음을 알려주고, 그들의 삶이 하늘의 삶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 김재준은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았다.

 

부조리한 사회 현실. 독재로 치닫는 정권의 모습. 이런 사회의 모습을 고치기 위해 그는 앞으로 나섰다.

 

종교인이라고 뒤로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내면세계에 갇히지 않고, 또 신의 품 속으로만 들어가 다른 문제들은 거들떠 보지 않는 모습을 지니지 않고,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서게 된다.

 

암흑같은 시절에 김재준은 한 줄기 빛처럼 우리나라에 존재했고, 그런 존재가 우리 사회가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였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기독교에 매몰되어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밀어내지 않고, 다른 종교도 포용하는 너른 품을 지니고 있었기에 더욱 빛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장공(長空)이다. 큰 비움. 그 비움으로 모든 것을 채워넣을 수 있는 사람.

 

이런 김재준의 삶을 출생부터 죽음까지 평전으로 엮어냈다. 이 평전 하나로 김재준의 삶이나 사상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런 종교인이 있었다는 사실.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함석헌만큼 김재준도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니, 그 정도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요즘 파격적인 행보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그냥 교황이니까 그러려니 하지 말고 그런 교황의 모습이 파격이 아니라 당연히 지니고 해야할 모습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이미 교황의 그런 모습은 우리나라에 김재준을 통하여 발현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평전의 작가는 김재준의 기독교를 '대승적 기독교'라고 한다.

 

지금 시대. 다시 이러한 '대승적 기독교'를 실천하는 기독교인을, 아니 그러한 종교인들을 필요로 한다. 

 

덧글

 

소소한 오타. 그러나 잘못하면 착각해서 날짜를 놓칠 수 있는 것들

 

116쪽. 1960년 4월 20일 이승만은 대통력직 사임을 발표했다. -> 문맥에서 찾아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책은 날짜 하나하나에도 조심해야 한다. 20일은 26일의 오타.

  130여 명의 젊은 청년들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 4.19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은 사망자가 186명이라고 한다.(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 1960년대 1권) 또 이 때 희생당한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이라고 보면 130여 명이라고 하기보다는 180여 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150쪽. 그리고 1973년 3월 12일 김재준은 캐나다행 비행기에 오른다. ->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이 1973년은 1974년의 오타다.

 

188쪽. '소화'는 나와 나이가 동갑이고, '히틀러'는 훨씬 아래다. 라고 김재준의 글이 인용되어 있는데, 소화는 일본 천황이었던 히로히토. 그는 1901년생이 맞으니 동갑이고, 히틀러에 대한 얘기인데... 히틀러는 1889년에 태어나 1945년에 죽었으니, 김재준보다는 한참 선배다. 그러니 이 인용문은 나는 '소화'가 동갑이고 '히틀러'보다 한참 아래다. 로 바뀌어야 하는데... 김재준이 착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인용을 하면서 단어가 빠진 것인지... 김재준이 착각을 해서 그의 글에 이대로 썼다면 편집자나 평전 작가가 주를 통해서 바로잡아야 했을테고... 편집 과정에서 단어가 빠졌다면...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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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목련꽃이 환하게 피었다.

순백의 아름다움.

그 옆에 산수유가 노랗게 피었다.

조금 옆 길에는 개나리가 피어 있고,

며칠 더운 날씨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고...

 

비가 내렸다.

꽃비가 되었다.

하얀 목련이 땅에 누워 있다.

이제 자신의 시대는 끝난 듯.

순백의 아름다움이 절정을 맞이한 듯

목련은 그렇게 서 있다.

목련꽃으로 차를 달여 마시면 그 향기가 온 몸으로 퍼지는데...

 

다시 봄.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자연의 이치는 이렇듯 어김이 없다.

우리네 삶도 이래야 하는데.

아니지, 우리네 삶은 우리의 자연처럼 이렇게 순환되어서는 안되지.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겨울을 또 겪어야 하니.

겨울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봄이 오기 전에 사라질 약한 존재들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인데.

누구는 시련을 겪어야만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삶 앎. 이것이 사람이라고.

세상에 겨울이 없는 봄은 그냥 봄이고 말듯이

시련이 없는 삶은 그냥 삶일 뿐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봄인가?

우리에게 봄은 왔는가?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물었지만

우리는 들을 빼앗기지도 않았는데

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지. 우리가 자연에게서 봄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며칠, 이상 고온이 지속되어 도대체 봄이 그냥 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는데.

 

이응인의 시집을 읽으며, 봄은 그렇게 가지 않음을 느꼈다.

이 시집에 담겨 있는 자연과의 어울림

자연에 공연히 사람자국을 남김의 허무함.

자연을 닮은 아이들의 모습.

그런 삶의 모습이 담담히 담겨 있는 시집

이 시집과 더불어 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자연은 이렇듯 무리 없이 다가오는데

왜 사람의 삶은 이렇듯 턱이 있고 멈춤이 있는지.

이 봄. 자연의 봄과 나의 봄이 하나로 만나게 하고 싶다.

시집을 읽으며 봄을 느낀다.

적어도 나는 어린 꽃다지가 나에게 다가오는데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

 

어린 꽃다지를 위하여

 

  보름 전에 보낸 편지 이적지 못 받았는가. 구들장만 지고 누워 있지 말고 좀 일어나봐 이 사람아. 그 어린 것들이 벌써 고개 넘어 자네 밭두렁쯤 가고 있을 거구만. 인자 동구에나 갔을지도 몰라. 볼에 솜털 보송보송한 그 어린 것들이 보고 싶지도 않은가. 자네도 참 해도 너무하이. 세상에 그 어린 것들이, 아직 털도 덜 마른 것들이 자네 찾아간다고 그 먼길을 나섰는데 이 무정한 사람아.

 

이응인, 어린 꽃다지를 위하여. 신생. 2006년. 78쪽

 

힘들어도, 아무리 힘들어도 구들장을 지고 누워 있지는 않겠다. 그 어린 꽃다지들도 이렇게 봄을 이야기하러 다가오고 있는데... 땅을 내려다보면 지금 제비꽃도 수줍게 꽃을 피우고,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는데...

 

세상이 힘들어도, 봄은 있음을... 그래, 꽃다지를 마중나가야지. 봄을 마중나가야지. 이제 구들장을 박차고 땅에 발을 디뎌야지. 이응인이 시 '발바닥이 하는 말'처럼 발로 걸어서 마중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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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유 - 실천하는 교사,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함영기 지음 / 바로세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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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이 말이 정답이다. 아무리 제도가 바뀌어도, 환경이 바뀌어도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존재는 교사다.

 

교사들의 질이 교육의 질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다. 옛부터 스승에 의해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많았듯이, 교사들은 지금도 학생들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물론 요즘은 교사의 영향력이 많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교사다.

 

그런 교사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교육정책가이다. 교육정책가들이 제대로 된 교육정책을 펼칠 수 있게 하는 존재가 바로 민주시민들이고. 그냥 시민들이라고 하지 않고 민주라는 붙인 이유는, 민주란 자신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나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 세금만 잘 내면 되지라는 생각을 지닌 시민들이 아니라,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이기 때문에 제대로 운영되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고, 제대로 운영하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는 자각을 하고 있는 시민들, 그들이 바로 민주시민이고, 이런 민주시민들이 깨어 있는 눈으로 교육정책가들을 바라볼 때 학교 교육은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교사들의 질은 어떤가?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교사들의 경제적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지는 편이 아니라 다른 나라보다도 경제적인 대우는 높다고 한다. 물론 절대적인 금액에서 하는 말이지만, 지금 교사들의 급여수준은 다른 직장에 비해 그리 낮지는 않다.

 

초임교사들의 월급이 적고, 경력교사들의 월급이 많아서 평균이 높게 나왔다고 하는데... 이런 월급체계는 어쩌면 교직의 안정성에 기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계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더 안정감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이런 경제적 수준 말고 교사의 수업 능력은? 우리나라 교사들은 치열한 임용고시를 통하여(임용고사라고 하나, 다른 고시만큼 치열하다고 해서 고시라고도 한다) 임용이 되기 때문에 교사들의 지적 능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이들은 대학 내내 공부하고, 이런 공부를 바탕으로 시험을 통과한 교사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다른 나라 교사들에 비해 우리나라 교사들이 지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적능력과 수업능력이 일치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옛날처럼 제자가 몇 안되는 시대에 스승은 지적능력만으로도 뛰어난 수업을 할 수 있었겠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옛날과 비교하면 옛날엔 제자들이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 스스로 스승을 찾아 나섰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의 가르침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자는 스승에게서 어떻게든 배워냈기 때문인데... 단지 지식만이 아니라 삶 자체를 배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배우고자 해서 스승을 찾아온 제자들은 없다. 그냥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가라고 하니까, 부모들이 가라고 하니까,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유리하다고 하니까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스스로 배우고자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주어 최단시간 내에 최고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 가르쳐주길 바랄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교사의 수업능력이 뛰어나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 교육은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이건 절대로 자랑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워 해야 한다) 사교육에서 이루어진다. 이 책에서는 그 점을 짚어내고 있다. 무언가 산출을 기대하는 교육제도 아래에서는 단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사교육식의 교육이 판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교사의 수업능력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고, 이것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교사들의 수업능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교사들은 교육의 목적에 맞게 수업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런 노력들이 모여 여러 수업사례들이 발표가 되고 자신들끼리 동호회를 만들어 서로의 수업을 관찰하고 개선점을 찾으려 노력을 한다.

 

교사들은 흔히 말한다. 교사가 기분이 좋을 때가 언제인가 하면 수업이 잘되었다고 느낄 때... 그 때 뿌듯한 마음으로 교실을 나선다고... 수업이 잘 되지 않았을 때는 엄청난 자괴감을 느낀다고...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수업에 대해 생각하는 교사들, 이들의 수업능력이 떨어질 리가 없다.

 

그럼에도 교육청, 교육부에서는 교사들의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연수를 시켜야 한다고 한다. 어떤 능력... 그것이 수업능력이라는데, 수업능력이 어떻게 수치화될 수 있는지... 교육의 효과가 한 해 한 수업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 효과가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여기까지 살펴본 바를 이 책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우리나라 교사들의 질은 결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교육은 형편없다는 인식이 팽배할까? 교사의 질이 높다면서 교육의 질은 낮다고 여겨지는 이 역설은 무엇일까?

 

답은 이 책에 있다. 교사의 질이 아무리 높아도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라면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가 없다. 우리나라 교사들에게 무슨 자율권이 있는가? 자기가 가르친 내용을 자기 식으로 평가할 수도 없는 교사들이 어떻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르치는 방식은 다 달라도 평가방식은 다 똑같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떻게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지, 오히려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지금은 혁신학교다 뭐다 해서 많은 시도들이 있고, 또 평가에서도 자율성을 발휘하려는 교사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교사의 자율권 확보는 요원하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전권을 쥐고 있는 존재는 바로 교장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노력하고 학교 문화를 바꾸어가려고 해도 교장이 반대하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도저히 변화를 이끌어낼 수가 없다. 여기에 지금의 교장 임용제도를 보면 도대체 수업에서 자율성을 발휘하는 교사들이 교장이 될 수가 없다.

 

오로지 주어진 일에만 열심인 교사, 자신의 점수 관리만을 잘한 교사, 수업보다는 행정업무에 능숙한 교사, 이들이 주로 교장이 된다. 그리고 이들이 교장이 되었을 때 수업에 열심이고, 학생들과 잘 어울리며 학생지도를 잘하는 교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자신들과 비슷한 길을 가는 교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중심으로 교장은 또 학교를 운영한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수업능력을 키우는 교사,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교사, 행정업무보다는 학생들과 어울리기를 원하는 교사는 학교에서 제대로 인정을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학교의 변화없음에 좌절한다.

 

이런 교육의 현실이, 학교의 적나라한 모습이 이 책에 잘 드러나 있다. 지금 교육은 문제가 많다고 그 문제점들을 한 번 짚어보고 대책을 마련하자고 이 책을 시작한 지은이는 책을 쓰면서 정말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제안"을 담고 있다. 이 제안들 귀 기울일 만한데... 나는 무엇보다도 교장임용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교장을 그냥 하나의 보직으로 만드는, 그래서 교장 임기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교사가 되어야 하는), 또 교사들에게 자율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고 있지만... 교육청... 소위 본청이라고 하는 광역시도 교육청 하나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없애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말은 '교육지원청'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교육을 지원하지 않고 통제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이며, 교사가 수업에 전념하지 못하게 만드는 주역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지원청"이면 이들이 다른 행정업무를 전담하고 교사들은 수업 이외에는 신경쓰지 않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들이 교사들을 오라가라, 이것 내라 저것 내라 하면서 교사의 수업을 방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세 가지 정도만 이루어져도 교육은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일텐데... 하는 생각.

 

오랫만에 교육에 관한 책으로 쉽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을 읽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교육의 바꾸려면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마지막 제안 마음에 와닿았다. 그렇다. 교사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제도라면 교사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테니.. 교육의 질은 덩달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제발 교육정책가들 이런 책을 읽기 바란다. 또 깨어있는 시민들도...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 적어도 교육에 관한 이런 책은 읽어야 한다.

 

이 책에 나온 몇 구절을 결론 삼아 맺는다.

 

  나는 주장한다. 전문성 향상을 구실로 업무와 수업, 생활지도에 지친 교사들을 내몰아 소진시키지 말고 그들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어서 좋은 책과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대화를 많이 나누게 하라. 좋은 책과 좋은 경험, 풍부한 사유로 교사의 안목과 통찰력을 높이게 하는 것, 그래서 깊은 안목과 통찰력으로 아이들과 만남이 이루어지게 돕는 것,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요구되는 교사전문성의 핵심이다. (이 책 111쪽)

 

  수업이란 교실 안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으로 어떤 기준을 향해 내달리는 무지한 행위가 아닌 역동적이고 예술적이며, 독특하고 신비로운 경험을 연속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이럴 때만 지식은 학습자에게 내면화된다.

지적 호기심에 충만한 교사와 학생이 눈빛과 눈빛이 만나고 숨결과 숨결이 만나 섞이고 쌓이면서 화음을 만들어 가는 수업에 무슨 기준이 필요하고, 지표가 필요하단 말인가? (이 책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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