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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풍경
김윤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평점 :
시는 어렵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시인은 남다르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어쩌면 학교에서 배운 시들이 마음을 울리기보다는 점수에 연연하게 만들어 시란 나하고는 상관없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시를 배워야 하는지, 뭔 말인지도 모르는 그런 시를 왜 외워야 하는지, 여기에 더한 부작용은 그것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아 문제풀이를 해야했다는 사실. 문제풀이를 하는 순간 시는 저 멀리 달아나버리고, 시인이란 다시는 상종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문학소녀, 문학소년이라는 감상적인 말은 옛말이 되어 버리고, 청소년들은 문학, 특히 시를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바쁘기도 하려니와 시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게 하는 주범으로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 시들은 난해하다. 도대체 이런 시들이 어떻게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마음을 울리기는커녕 머리조차도 울리지 못한다. 이 책에 나오는 최두석 시인은 노래와 이야기에서 노래는 심장을 이야기는 뇌를 자극한다고 했는데... 요즘 시들에서 심장과 뇌가 자극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뇌가 피곤해하고, 감성은 더욱 메말라가고 있다. 봄이 되었는데... 그 봄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지니기 힘든 시대. 이런 힘든 시대를 시인들이 똑바로 보고 표현해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들은 시대라 어지러울수록 더욱 명료한 언어로 시대를 표현해냈으면 좋겠다. 시대와 함께 어지러워진 언어들을 쓰지 말고.
세상을, 자연을, 사물을, 다른 사람을 자신의 감성으로 바라보고, 그것의 끝을 바라보고, 다시 언어로 표현해내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시인인데... 이런 시인을 우리가 전체로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인의 한 면만을 볼 수 있을 뿐. 시인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은 모두 다면적인 존재이고,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모두를 알 수는 없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시인은 더욱 다층적이고 다면적이고 다양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을 이렇게 그렇게 보고 표현해내는 사람들이 단순할 리는 없을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들은 언어로 인해 몸살을 앓아본 사람들이니.
이 책의 저자 김윤배는 시인이다. 시인이 시인을 만나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책에 담아내었다.
황동규, 신경림, 최하림, 김명인, 정진규, 황지우, 최두석, 이시영, 조창환, 이윤택, 송기원, 임영조, 고형렬, 홍신선, 채호기, 도종환, 이재무, 김명수, 송찬호, 장석남, 고 은, 최승호
꽤 알려진 시인들이다. 이런 시인들과의 교분도 교분이지만 이들과의 만남에서 시인들이 지닌 진솔한 한 면을 이 책을 통해 드러내주고 있다. 그래서 시인에 대해 전체적으로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그 시인의 특정한 한 모습은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 그 시인의 시에 대해서도.
그 사람을 아는 것이 그 사람의 글을 모두 알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의 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왜냐하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에 대해서 알게 되면 시인과 나 사이에 어떤 공통집합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 공통집합, 수학시간에는 이를 교집합이라고 하나, 그것은 그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 단서를 통해 시인의 시라는 성에 들어가는 열쇠를 마련할 수 있고, 이 열쇠로 성의 문을 여는 순간 시의 세계를 맛볼 수 있게 된다. 그때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시인을, 시를 이해하는 작은 단서를 제공한다. 이 단서들을 모아 잘 꿰어놓는다면 시의 세계, 시인의 세계에 들어가는 열쇠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시란, 시인이란 카프카의 "성"처럼 눈에는 보이나 이상하게도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어 결국 도달할 수 없는 대상은 아니다. 우리가 길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 길을 찾는 작은 단서. 그것이 이 책이다.
더 많은 단서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성은 안개에 쌓여 있지만, 결코 도달하지 못할 곳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