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밖 국어 공부 - 세상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국어로 인문적 사고하기
오은주 지음 / 팜파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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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말 할 줄 알고, 우리글 쓸 줄 아는데 국어 왜 배워야 해요? 이런 질문들을 자주 한다. 국어교과가 만만하게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입시에서 국어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생들이라면 당연히 말하고 쓸 줄 아는데도 국어라는 과목의 비중이 큰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 이유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거나 납득을 시키는 경우는 별로 없다.

 

국어라는 과목을 배우는 학교에서는 정해진 교과서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내용을 수업하고, 그것을 토대로 평가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른 활동을 할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국어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그냥 배우게 한다면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국어 교육을 할 수가 없다.

 

왜 배워야 하는지, 우리의 삶에서 국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이해한다면 국어에 대해서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해질 것이고, 배움의 효과도 훨씬 클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에서 시작한다. 교과서 밖 국어공부. 국어지식을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는다. 오로지 국어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유용한가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국어의 영역을 네 가지로 나누어 각 영역이 실생활에 필수적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읽기 / 듣기 / 쓰기 / 말하기

 

이렇게 국어의 영역을 크게 나누어 이것들이 얼마나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국어공부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안 된다. 국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니까.

 

우리는 단순히 읽고/듣고/쓰고/말하는 것 같지만, 이것들은 여러 번의 반복과 학습을 통하여 우리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그냥 읽고/듣고/쓰고/말하는 것이 아니라 읽고/듣고/쓰고/말하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

 

그 배움을 채워주는 교과목이 바로 국어다. 그러므로 국어를 제대로 배웠다는 것은 자신의 생활에서 잘 읽고/듣고/쓰고/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 읽고/듣고/쓰고/말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과 소통이 잘 된다는 뜻이다. 소통이 잘 되는 사람, 관계맺기를 잘하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좋은 사회가 된다.

 

결국 국어는 입시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부가 되는 것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옛사람의 말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선 자기의 이해, 표현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어 공부를 통해 자연스레 습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어란 입시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공부, 너무도 중요한 공부라는 것을 이 책이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 책은 중학생이 되기 전에, 또는 중학생 때 읽어야 하는데... 저자가 우려하는 것과 같이 너무도 바쁜 우리 아이들, 스마트폰 속에 얼굴을 묻고 사는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나 마음을 지닐 수 있을까 우려된다.

 

그래도 국어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왜 국어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데 참고자료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학생들이 국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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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8 0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자의 문맹율은 낮아도 문장의 문맹률은 높으니 국어를 배워야죠.

kinye91 2016-11-18 10:05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단지 한글이라는 문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들이 문장을 이루었을 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소통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어떤 말들을 써야 하는지, 잘 읽고/쓰고/듣고/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바로 국어라는 과목이라고 생각해요. 참 중요한 과목이지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국어교육의 필요성을 더 느끼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글 알베르 카뮈 전집 19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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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사가가 아니라면 굳이 제대로 발표도 되지 않은 카뮈의 젊은 시절의 글들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호사가도 아닌 나는 그럼에도 왜 읽는가. 그냥 읽고 싶기 때문이다. 카뮈란 사람의 글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그에 대해서 맞춰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부연 공기들, 세상이 짙은 안개에 쌓여 있을 때, 그 속에서 무엇인가가 명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왠지 그곳을 거닐고 싶은 욕구를 느끼듯이, 카뮈의 작품은 내게 그렇게 다가온다.

 

실체가 팍 잡히지 않는다. 그냥 안개 속에서 여기저기를 거닐며,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을 뿐이다.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현실이 너무도 잘 드러나 있는 작품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카뮈란 사람에게서는 어떤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미술에서 스푸마토 기법이라고 하는 것이 연상된다.

 

그래서 더 매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거다라고 딱 규정할 수 없으므로.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시절,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반에 쓴 글들이다. 습작이라고 해도 좋고, 치기어린 감상들이 나열된 글들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이 글들이 나중의 카뮈를 이루게 된다. 이 책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가난한 동네의 목소리들'을 읽는데, 여기서 나온 글들이 나중에 카뮈의 작품이 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과 겉'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 속에 '아이러니'라는 부분에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그만큼 그는 여러 글들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읽을 만했다고 할 수 있고, 다른 글에서 읽은 카뮈의 집안 내력이 이 책에서도 살짝 살짝 나오고 있어서 반갑기도 했고.

 

무엇보다 카뮈가 젊은 시절에 지녔던 예술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어서 더 좋았다고나 할까...

 

  예술은 죽음과 맞서 싸운다. 불멸의 획득을 위햐서 예술가는 헛된 자부심에, 그러나 올바른 희망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삶에서 멀어져야 하고 삶을 모른 체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삶은 과도적이고 치명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정지'가 되는 동안 삶은 빨리 지나가서 소멸한다. 삶이 연습해보고 시도해보는 (그것도 헛되이, 왜냐하면 삶은 스스로의 과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뒤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것을 예술은 실현한다. 삶과 우리의 의식 사이에 여러 가지 예술적 인상들이 무리 지어 응결되어서는 일종의 스크린을 형성한다. 이것은 즉각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다행스러운 프리즘같은 것이니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해방감을 느낀다.

  삶을 초월하는 곳에, 삶의 합리적인 틀을 초월한 곳에 예술이 존재하고 합일이 존재한다. (153-154쪽)

 

이렇게 예술은 흐름을 정지시킨다. 정지시켜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삶을 예술은 보여준다. 그리고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머물게 한다. 따라서 예술가는 죽음으로 사라져도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카뮈가 이렇게 예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결과들이 그의 작품으로 나타났다고 보면 된다.

 

그 점에 대해서 살펴보게 하는 카뮈의 젊은 시절의 글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 글들을 토대로 카뮈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 카뮈에게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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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고문이다 8

 -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병원비


건강보험이 잘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중한 병이 들면

이 검사, 저 검사, 이 약, 저 약

게다가 거부할 수 없는 특진비, 입원료, 식비 등등

한 순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최첨단 장비의 도움으로

진단, 검사, 치료가 쉬워진 만큼

더더 치솟는 병원비

의사의 처치가 쉬워질수록 의료수가는

더욱 올라가고

환자가 나아질수록 병원비는 올라가니

병원에 있으면 있을수록

병보다는 병원비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퇴원 후에도 후유증을 앓아야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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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호텔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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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란 결국 남의 일을 자신의 일로 기억하는 사람일 것이다'라는 이 시집의 뒷표지에 실린 김종철의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문재의 시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감수성이 뛰어나 자신의 일만이 아니라 남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사람, 그래서 자신과 남의 일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자신의 일인 것처럼 표현하는 사람, 그 표현을 통해 남을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시를 통해서 남을 자신에게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그 시는 성공했다고 말하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이문재의 이 시집은 성공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시집의 제목 "제국호텔"은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국에 침탈당하고, 생활은 물론 의식까지도 제국에 지배당하는 그런 상태를 보여준다고...

 

이 시집에서 '제국호텔'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시들은 이런 우리의 상태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보지 않으니, 시인이 우리더러 보라고 우리의 눈 앞에 그 상황을 펼쳐 보여준다. 안 보면 안 된다는 듯이.

 

컴퓨터 정보화시대, 초고속통신망시대, 스마트폰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까지도 지배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지구적 축제라는 월드컵에 갇혀, 그런 제국의 논리에 빠져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고 있지 못함을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제국이 어떤 나라를 의미하는지는 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나란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프런트에서 왼쪽으로 이십 미터를 가면 스타벅스 / 오른쪽으로 다시 백오십 미터를 더 가면 맥도널드다' ('제국호텔 -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57쪽)

 

제국에서는 우리가 꿈을 이루어도 그 꿈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제국에서 탈출해야, 제국을 없애야 비로소 꿈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 제국에서 / 이루어진 꿈은 꿈이 아니다 / 그대들은 꿈★은 늘 미루어지게 되어 있다' ('제국호텔-인도에서 소녀가 오다' 중 일부 56-57쪽)

 

그러니 제국의 환상 속에 갇혀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붉은 악마의 구호를 인용해서 현실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인은 '남의 일을 자신의 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단지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계속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럼에도 이 시집에 이런 시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들이 있고 (농업박물관 소식, 지구의 가을, 식탁은 지구다),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감성을 일깨우는 시들도 많다.

 

그 중에 이 시 '파꽃'을 사람이 배우는 이유에 대입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파꽃

 

파가 자라는 이유는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파가 커갈수록

하얀 파꽃 둥글수록

파는 제 속을 잘 비워낸 것이다

 

꼿꼿하게 홀로 선 파는

속이 없다

 

이문재, 제국호텔, 문학동네. 2012년 1판 5쇄. 93쪽.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야 한다. 자신이 비워져야 제대로 존재할 수 있다. 만약 파의 속이 꽉 차 있다면 그것은 이미 파가 아니다. 파로서 존재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많이 배운 사람이 제 속을 비우지 못했다면, 그것은 제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이 되었다면 차라리 안 배움만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우는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우리는 배움을 채움으로 잘못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배움을 오로지 채움으로만 생각하는 세태에 물들어 있지는 않은지, 이 시가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비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 파는 속을 비우지만 속을 비우기 위해서 자신은 꼿꼿하게 홀로 서야 한다. 꼿꼿하게 홀로 섬, 이것과 속이 빔이 함께 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파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우기나 채우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몸 자체, 항아리 그 자체이다. 몸은 튼튼해야 하고, 항라리는 단단해야 한다.'

 

그렇다. 바로 우리 자신들부터 바로 서야 한다. 바로 서는 공부. 바로 서는 몸. 그 다음이 바로 비우기다. 비운 다음, 채우기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인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사람이다. 우리가 외면할 수 없게 바로 우리 눈 앞에, 우리 마음에.

 

이문재의 시집, "제국호텔" 그 역할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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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수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며 광화문에 모였다. 백만 명이라고도 하고 약 30만 명이라고도 한다. 숫자의 정확성을 따질 필요 없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거리로, 거리로 나왔음에는 틀림없다.

 

무엇이 이들을 다시 거리로 나오게 했는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제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지닌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 주권이 우롱당했기 때문에...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서 나왔음이다. 그렇다면, 주권을 잠시 위임받아 행사하는 대통령은 이런 국민의 뜻에 따라 대하(帶下)에 엎드려 잘못을 빌어야 했다.

 

석고대죄(席藁待罪)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국민 앞에 나와서 죄송하다고, 이 일에 책임지겠다고는 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곳 근처까지도 국민들이, 주권자들이 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명박 정권 때 만들어진 차들로 이루어진 산성, 한 때 명박산성이었던 것이 이제는 근혜산성이 되어 국민들의 발걸음을, 국민들의 소리를 막아 버렸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하여 다음 날 내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으며, 현 상황에 대한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국민들이 말이 어떤 말인지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얘기다. 당신은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으니 그 자리에서 내려와라 라고 하는데, 자신은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한다고 한다. 이거야 원, 금성과 화성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상황인식이고, 대화라고 할 수 있다... 현실 인식을 못하고 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데...

 

헌법을 뒤적이다가 이게 무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 있었다.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 67조 3항, 대통령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헌법 1조 2항에 의하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국민이 당신에게 더이상의 권력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권력을 이제는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한다. 이거 모순 아닌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헌법에 명시된, 그것도 헌법의 앞부분에 명시된 국민의 권력이 이렇게 무시당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헌법 67조 3항, 지금까지 단독 후보자가 나온 적이 없어서 유명무실한 조항이긴 하지만, 이것을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연계하여 생각하면 국민의 지지율이 형편없는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나던지, 아니면 탄핵을 할 수 있는 조항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대통령 시작도 하기 전에 국민의 3분의 1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아예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데,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5년이라는 임기가 보장되어 지지율이 5%에 머물러도 대통령으로서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니...

 

물론 대통령을 지지율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자릿수 지지율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특정한 정책에 대한 지지율이 아니고 대통령의 직무 수행 전반에 관한 지지율이고 또 장기간 유지되는 지지율이라면 그런 사람을 계속 대통령 자리에 머물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해봐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할 부분. 지지율이 자칫하면 인기투표 비슷하게 갈 확률도 있지만, 국민의 의식이 성숙한 나라라면 국익과 개인적 권력욕을 구분할 수 있는 시민들이 최소한 30% 이상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그것도 정책 하나하나의 지지율이 아니라, 국정 수행 전반에 관한 지지율이라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최소한 1/3 이상은 되어야지... 의원내각제라면 이미 정권이 바뀌었어야 하지 않은가)

 

5% 지지율에 주권자인 국민이 거리로 나와 물러나라고 하는데도, 그 소리들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대통령이라면 "헌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지경.

 

하 답답해, 너무도 오랫동안 읽고 있었던, 헌책방에서 구했던 황동규 전집을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발견한 시 '비망기'

 

왕들도 이래야 하는데... 하물며 선출된, 임기가 제한된 권력임에랴. 

 

비망기

 

첫째 갈피

 

제왕은 때로 신민의 그늘이다.

경들이 용상에서

대하(臺下)에 엎드린 짐을 일으켜

모란 핀 뒤뜰로 인도할 때

짐은 보지 않으련다

조간도 석간도

천리경도

다만 뜰에 호젓이 핀 꽃 사이를 말없이 거닐 뿐.

 

왕도(王道)는 때로 떠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을.

흉년에 스스로 불태워 죽는

추장 부자(父子)의 없는 외마디처럼

한숨도 병도 초가집도

초가집들이 둘러싼 조그만 낟가리도 없이

떠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을.

 

둘째 갈피는 생략

 

황동규, 황동규 시전집1, 문학과지성사. 1999년 초판 3쇄. 140쪽.

 

매주 주말마다 주권자들의 소리를 들으라고, 보라고 촛불집회를 하겠다고 한다.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 국민들은 이미 답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형기의 '낙화'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황동규의 시처럼 '떠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주권자에 대한 예의이고, 책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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