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피었던 꽃이 겨울에 다시 피다

 

봄에 피었던 꽃이

가을에 겨울에 다시 피었구나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던 꽃이

뜨거운 열기를 전해주러 다시

광장 한복판에 피었구나


발갛게 세상을 밝히던 꽃이

세상이 더위에 헉헉거릴 때

땅 밑에 그 열기를 담아두고

세상이 추위에 덜덜 떨 때

다시 길가에 피어나는구나


4월의 바다 속에서

5월의 함성 속에서

6월의 승리 속에서

다시 우리 곁에 온

밝음과 뜨거움을

우리가 어깨를 걸고

손에 손을 잡고 피우고 있구나


세상이 얼어붙을 때 다시

세상을 녹이려 하는구나


봄에 피었던 꽃이

겨울에 다시 피는구나


꽃은 

겨울을 위해 졌던 거구나


겨울에 우리들 손에서 피어나려고

그 화사했던 봄에

졌던 거구나


이렇게,

겨울 광장에 밝고 따스한

꽃으로 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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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들려주는 문화 이야기
전세화 지음 / 예경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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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이런 말이 있었다. 연예인의 인기도를 알려면 광고를 보면 된다고. 즉, 광고에 얼마나 출연하느냐가 인기의 척도라고.

 

그만큼 광고는 유명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꼭 연예인만이 아니다. 유명인이면 광고에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유명한 만큼 광고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쉽다는 이유였으리라.

 

그렇다고 유명인이 나온다고 모두 그 광고를 보고 제품을 사지는 않는다. 아니 꼭 광고만 보고 제품을 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광고를 통해서 제품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면 아무래도 제품을 구입할 때 참조하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서 어떤 것을 구매해야 한다면 많이 들어본 것, 아는 것에서 선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광고에 그만큼 투자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광고기획자들은 소비자들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줄 만한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지나치는 광고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흥미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는 그 시대의 문화를 따르거나 또는 그 문화를 토대로 넘어서는 무엇을 제시해야 한다.

 

그냥 자기 멋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과 장소에 맞는 광고를 기획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당시 유명인을 출연시킨다든가 또는 문화적 공통성이 있는 광고를 만든다든가 아니면 그 시대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이게 무슨 광고인가 생각하게 하는 광고를 만들기도 한다.

 

어떤 형태로든 소비자의 눈을 잡아야 한다. 눈을 잡고 마음에 닿게 해야 발을 이끌 수 있고, 광고된 제품을 손에 잡히게 할 수 있다.

 

그러니 광고에는 그 시대의 문화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광고를 보면 그 사회의 문화를 알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광고를 보아야 할까? 이 책은 2004년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광고들, 해외 광고제에서 수상한 작품들과 우리나라에서 펼쳐진 광고들을 대상으로 광고 읽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냥 광고를 아무 생각없이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광고의 이면에 숨겨 있는 문화까지 읽어낼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 광고가 나왔는지, 그 광고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 광고에서 사용한 방법이나 의도는 무엇인지를 기존의 광고를 중심으로 해설해주고 있다.

 

따라서 광고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그 광고의 문화적 맥락을 읽어내는 재미도 있다. 그런 재미를 통하여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광고를 더 넓고 깊이있게 만날 수도 있고.

 

광고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그 광고를 능동적으로 읽어내려고 하는 사람을 위한 광고에 관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 광고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구나, 이 광고에는 이런 문화가 깃들어 있구나 하면서, 광고가 이렇게 변해왔구나까지... 그렇다면 지금 나오는 광고는 이런 맥락에서 이런 문화적, 사회적 상황에서 나오는 거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소비자가 되기 위한 광고 읽기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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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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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관한 책은 재미있다.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서 화가의 삶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 그 당시의 사회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가의 삶과 당시의 사회, 역사를 만난다는 것, 그림을 통해 통합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와 상통한다. 여기에 미적 감상을 통해 감수성을 키울 수도 있으니, 인문학도 이런 인문학이 없다.

 

단순한 그림의 역사와는 다르게 책을 신과 왕, 그리고 민중의 3부로 나누어 그림의 역사를 알 수 있고, 그림들이 사회적 변화에 어떻게 맞물려 변하는지도 알 수 있게 해주었지만, 그 시대에 유행했던 미술사조로 국한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 사람에게서는 딱 하나의 특징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특징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여러 특징들 중에서 화가의 말년에 또는 맨 마지막 그림에 나타난 정신, 기법, 모습, 사회, 역사 등을 고찰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고 화가의 마지막 그림만 나오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화가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그림도 나오며, 그 화가의 생존시에 유명했던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따라서 읽다보면 자연스레 미술사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편제를 신과 왕, 민중으로 한 이유도 그것이다. 또 등장하는 화가도 연대순으로 배치하여 자연스레 미술사를 익히게 된다. 여기에 화가의 삶을 통해서 단 하나의 사조가 아닌 여러 사조가 그의 그림에 나타남을 보여주기도 하고.

 

먼저 화가와 신 편에는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엘 그레코, 루벤스가 나온다.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음 직한 화가들이다. 그들의 대표작도 직접 미술관에서 보지는 못했더라도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았을테고.

 

이들이 말년에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그때의 상태는 어땠는지, 특히 보티첼리 같은 경우는 화려하고 기교가 넘치는 그림에서 그 기교를 쪽 뺀 그림이 말년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한 화가에게 공존하는 여러 모습에 대해, 화가를 한 유파로만 정리해서는 안됨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가와 왕 편에는 벨라스케스, 반다이크, 고야, 다비드, 비제 르브룅이 나온다. 소위 궁정화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그림에 궁정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은 그들이 속한 지위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 나름대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으며, 고야의 경우에는 어느 하나로 국한시킬 수 없는 다양한 그림들이 나오고 있다. 그 점을 볼 수 있는 장인데... 비제 르브룅이란 작가에 대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고맙다.

 

궁정화가가 되어 마리 앙투아네트의 화가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여성 화가.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음에도 자신의 실력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날렸던 화가.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어느 부인의 초상'도 그의 그림이라고 하니, 편견을 딛고 우뚝 선 화가라 할 만하다.

 

또한 이들로 인해 왕가의 사람들이 역사에 남았다는 사실, 별 볼 일 없는 왕이나 왕족이 이들의 그림으로 영원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당시에는 왕가가 갑이었겠지만, 지금은 화가들이 갑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로 남기도 한다.

 

마지막 편인 화가와 민중에서는 브뤼헐, 페르메이르, 호가스, 밀레, 고흐가 나온다. 이제는 시민사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시민들의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그림도 변한다. 궁정화가들의 시대는 끝났고, 시민화가들의 시대, 시민들에게 그림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 그들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은 시민들의 의식에서 관심에서 멀리 벗어나면 안 된다. 그렇게 그림은 시민사회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활약했던 화가들 중에 몇 사람을 뽑아 그들 그림의 마지막 작품에서 작가의식과 사회를 읽게 해주고 있다.

 

얼마나 다양한 그림들이 나오는가. 얼마나 다양한 기법과 소재가 동원되는가. 이제 그림은 어느 한 분야로 국한되지 않는다. 화가에 따라 수천 수만의 그림이 나오게 된다.

 

이런 식으로 흥미롭고 재미있게 책을 읽어가는 중에 그간에 읽었던 미술사에 관한 내용들과 더불어 새롭게 한 화가에게 들어 있는 많은 특성들을 읽어가게 된다. 더불어 그 시대의 특성 등도 함께.

 

그러니 단순히 그림만을 감상하는 책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화, 적응해 가는 예술에 관한 책이다. 그것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 것과도 통한다. 너무도 난해해지는 현대미술이지만, 언제까지 난해할 수만은 없다.

 

난해함 속에서도 사람들 곁으로 다가오는 미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조가 역사 내내 지속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 우리 시민들 속으로 들어올 예술은 어떤 예술일까, 그런 생각도 하게 한 책이기도 하다.

 

풍부한 그림을 통해 눈요기도 맘껏 하고, 다양한 삶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화가의 모습을 통해 시대와 예술가에 대한 공부도 하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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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판이 워낙 개판이라 묻혀서 그렇지, 지금 우리나라 생태계는 난리다.

 

  고병원성 조류독감(AI-그냥 조류독감이라고 하겠다. 영어보다는 이게 더 친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처음 용어가 조류독감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고 한다.

 

  그게 왜 문제냐고? 조류가 병에 걸렸는데,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냐고? 그 조류에 닭이나 오리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열에 조리해 먹으면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하지만, 안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삼가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기도 하다.

 

  병에 걸린 닭이나 오리를 처리하면 되지 않냐는 생각, 그런데 이것이 전염성이라서. 그리고 인간에게도 전염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조류독감에 걸린 닭이나 오리가 있는 농장은 물론이고, 근처 몇 킬로미터에 있는 농장의 조류들까지 모두 살처분(죽이는 것)해야 한다고 한다.

 

벌써 천만 마리가 넘는 닭, 오리들이 살처분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감염의 요인을 철새로 보고 있다. 조류독감에 걸린 철새가 날아와 퍼뜨렸다는 것.

 

그런데, 철새들은 걸려도 몇 마리만 죽어나갈 뿐, 집단적으로 죽는 경우는 없다. 또한 철새는 지구 탄생이래 계속 이동을 거듭해 왔고, 그들이 이렇게 여러 곳을 다니는 동안에 온갖 질병에 걸리기도 했을 거고, 질병균들을 전파하기도 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문제가 없었던 일들이, 최근에 들어 급속도로 퍼지면서 재앙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인간에게는 전염이 안 되던 것이 이제는 인간에게 전염이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철새를 막을 방도도 없고, 또 철새를 막아서도 안 된다. 대책은 다른 데서 나와야 한다. 역시 답은 정해져 있다.

 

지금의 좁은 공간에서 대량으로 사육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이런 일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지금처럼 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일을 계속하면 안 된다는 것.

 

조류들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이번에는 소와 돼지들이 수난을 당한다. 연좌제에 걸려 수많은 소, 돼지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

 

결국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환경이 문제라는 것인데, 환경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이렇게 살처분으로 나아간다면 상황은 바뀌지 않고 반복될 뿐이다. 그때만 벗어나고, 다시 시작되는 악순환의 반복.

 

촛불이 활활 타올라 우리나라 정치권을 바꿔가고 있는데, 이제는 정치권만이 아니라 생활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지속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촛불 정국이라는 이름으로 묻히고 있지만 지금 고병원성 조류독감, 너무나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철새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만들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헌책방에 산 "지구는 아름답다"란 시집을 꺼내 읽었다. 생태시를 표방해서 한국시인협회에서 시인들에게 생태시를 받아 수록한 것. 401명의 시인들 시가 실려 있다. 모두 환경, 생태를 소재로, 주제로 한 시들이다.

 

이 시들을 읽으며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고, 변화가 시급함을 느꼈다. 정치권의 변혁만큼이나 우리 생활의 변혁도 필요함을.

 

그것들이 따로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함을, 함께 갈 수밖에 없음을, 지금의 정치권력으로는 생태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니.

 

이 시를 보자.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너의 일상을 돌아보라

                    - 강상기

 

강이 오염되었어!

누구 짓이야?

산이 파괴되었어!

누구 짓이야?

오존층이 파괴되었어!

이 또한 누구 짓이야?

 

한국시인협회 엮음, 지구는 아름답다. 뿔. 2007년. 13쪽.

 

누구 짓? 우린 알고 있다. 범인은 바로 우리라는 것을.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언제까지 책임 회피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촛불이 정치권을 바꾸듯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바꿔 환경이 더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하자. 지구에 있는 생물들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그것은 바로 내 일상을 되돌아보고, 일상에서 고칠 수 있는 것, 바꿀 수 있는 것은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책이다.

 

지금 계속 번지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독감 소식을 접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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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8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8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6-12-18 1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치권만이 아니라 생활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생활 역시 정치가 나서서 주도하고 좋은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정치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가 과거의 악습을 그대로 고수하기에 시민들이 나서야겠지만 시민들 역시 대량 사육, 대량 소비로 인한 저가의 고기를 먹는데 길들여져 있어 그 틀을 깨기는 어렵다 생각합니다. 지금 촛불 집회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데 촛불 집회와 소비자 운동 또는 시민운동은 차이가 있다고 보입니다. 지금의 촛불 집회는 분노(물론 정의감에 기인한 분노)가 추동하지만 친환경이나 유기농 사육에 비해 저가일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대량 사육의 결과물들을 마다할 리가 없고 그런 점에서 분노해 무엇인가 운동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육식 위주의 생활을 지양하는 길 밖에 없지 않을지요?

kinye91 2016-12-18 14:19   좋아요 2 | URL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분노를 운동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정치겠지요. 지금 현실 정치세력들로서는 이런 일에 나설 일이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지녀왔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치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언론에서 다루지 않지만 그런 정치세력은 비록 힘이 약하지만 존재하고요. 그런 정치세력들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주고, 내 생활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꿔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ysj0722 2016-12-1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꼬마요정 2016-12-18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경제는 어려워지고, 유기농이나 친환경이 유행한다지만 가격을 포기하기엔 우리가 너무 길들여져 있겠죠.. 그래도 저라도 동물복지 계란 먹고, 가능한 육식을 줄이고, 먹더라도 농장에 풀어놨다는 곳에서 파는 고기를 삽니다. 아울러 삭스핀 같은 거 좀 안 팔면 좋겠고, 잔인하게 채취하는 모피나 거위털, 오리털 좀 안 쓰면 좋겠구요. 이래저래 가슴 아플 때가 많은 요즘입니다. 많은 생각을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6-12-18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qualia 2016-12-18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류 독감(AI, Avian Influenza, Avian Flu, Bird Flu)이나 신종 플루(Swine Flue) 바이러스가 미국의 한 비밀 실험실에서 만들어져 퍼뜨려졌다는 음모론도 있더군요. 이와 관련해 의문스러운 점은 대략 1990년대쯤까지는 조류 독감이나 신종 플루 발생/확산이 거의 없었거나 미미한 수준이었는데, 2000년대 중후반부터 매년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해서 뭔가 수상한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본격 유행하기 시작한 시점, 발생 빈도, 발생 대륙, 확산 속도나 범위, 전염성 여부나 그 병증의 강도, 백신 개발 제약사의 백신 독점 판매, 등등에 대한 상세 사항과 음모론자들이 지목하는 ‘바이오테러’를 획책하는 비밀단체나 비밀국가기관 따위의 음모 내역이 뭔가 서로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지는 느낌도 들고요. 음모론이라 해서 걍 소설로만 여기기에는 뭔가 좀 수상쩍은 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kinye91 2016-12-18 19:22   좋아요 0 | URL
음모론인지 아니면 소설 소재에 불과한지 관심을 가지고 추적, 조사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 방면에는 문외한이라, 처음 들어보는 말이네요.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하니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지겠지요.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이 비극을 먼저 막았으면 좋겠어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12-1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거친 생각에 공감해주시니 다행입니다. 고민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정치가 나아지듯 우리 삶도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랑, 백남준 -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말하는 백남준과 함께한 삶, 사랑, 그리고 예술
구보타 시게코 지음, 남정호 옮김 / 이순(웅진)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백남준.

 

그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더 적을지도 모른다. '비디오 아트'라는 분야를 창시한 세계적인 미술가. 우리나라 사람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몇 안 되는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비디오 아트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른다. 어떤 감동을 받은 적도 없다. 그냥 거대한 전자기기들의 모음이라는 단순한 생각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되어 있는 '다다익선'을 보고서도 어떤 감흥도 받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그만큼 그의 예술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그의 개인사에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다. 하지만 백남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알고 싶었다.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가 세계적인 예술가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이제는 세상을 뜨고 없는 그지만, 그의 작품은 세계 미술관에 남아 그를 기억하도록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와 우리나라 기자의 합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합작품이라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화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이다.

 

구보타 시게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백남준의 아내가 일본인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아내가 누구인지는 관심 없었다. 그의 아내가 그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예술가일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부부가 모두 예술가일 때 주로 남편 쪽은 유명하고, 아내 쪽은 묻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오노 요코-백남준과 친구였다고 한다-를 아는 사람보다는 그의 남편이었던 비틀즈 멤버인 존 레넌을 더 잘알고 있듯이, 백남준을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고 있지만, 그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를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남정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책 프롤로그에서 그의 글을 읽어보면 구보타 시게코라는 예술가, 백남준의 그늘에 가려버리는 예술가가 아니다.

 

미국의 뉴욕 현대미술관에 백남준의 작품과 같은 숫자의 작품을 보관하게 하고 있는 작가, 구보타 시게코... 그가 들려주는 백남준과 그의 예술 이야기.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백남준이라는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접한 사람을 통해서 듣게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적인 내용들도 이 책에 많이 나온다. 백남준의 예술세계 뿐만이 아니라 인간 백남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시게코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백남준의 기사를 보고, 그 기사에 난 사진을 보고 백남준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고. 그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싶었다고.

 

'스물일곱 살에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별처럼 멀리 있는 예술가였다. 남자로서도 좋아했지만 예술가로도 흠모했다. 저렇게 빛나는 남자를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느냐고 친구가 물었을 때, 나 역시 치열한 예술가가 되어 그에게 닿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의 연인으로, 그리고 아내로 살아온 지난 40년은 그의 예술적 동반자가 되기 위한 열망과 정진의 시간들이기도 했다. 때론 고통스러웠지만, 더 큰 희열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362-363쪽)

 

그리고 그를 자신의 남자로 만드는데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같은 예술가 동료로서 만남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일본도 아닌 미국에서, 백남준에게는 가정은 관심 밖의 일.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다가 헤어지고 다시 백남준에게로 돌아간 시게코.

 

헤어짐과 만남의 과정에서 백남준은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시게코가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대로 백남준은 따른다. 어린 시절 전쟁으로 일본으로 독일로 미국으로 세계를 유랑하다시피 한 백남준에게 한 곳에 머문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여자에게 매인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시게코와 함께 살면서도 결혼은 하지 않는다. 사실상의 혼인관계 생활을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는 시게코도 마찬가지다. 백남준과 함께 있으면 되니...

 

이런 그들이 공식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는 계기는, 바로 시게코의 병이다. 여자로서는 치명적인 병. 낯선 타국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걸리면 치료하기 힘든 그런 시절, 백남준은 시게코와 결혼식을 올리고, 시게코가 치료하게끔 한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순간, 그들은 함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삶. 함께 하는 예술가의 삶. 물론 앞에서 인용한 시게코의 말처럼 백남준의 예술 활동으로 인해 시게코는 손해를 많이 본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양 예술가 부부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보다는 남성 쪽이 좀더 활동하고 여성은 묻히는 경우도 꽤 있었으니... 그렇다고 시게코가 예술 활동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보완을 해주는 예술 동료로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백남준 쪽이 좀더 혜택을 보았다 할지라도 시게코는 그에 대해서 큰 불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그것을 앞에 인용한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체계적인 미술 공부를 하지 못한 백남준에게 체계적인 미술 공부를 한 시게코는 정말 좋은 동반자였을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동료.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다음의 일들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더이상 예술활동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접고, 그는 그 와중에도 예술활동을 한다. 마지막 열정을 불사른 것이다. 그리고 죽음.

 

이 과정을 글로 풀어낸 책. 그들의 사랑과 예술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그냥 전위예술가라고, 나와는 동떨어진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백남준을 내 곁으로 오게 만들어준 책이다. 그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 할까.

 

내가 읽은 책은 2010년 판인데, 2016년에 다른 판으로 다시 이 책이 나왔다고 한다. 그 사이 백남준의 부인인 구보타 시게코 역시 세상을 떴다고 하고. 2015년에.

 

이 책에 '야곱의 사다리'라는 예술 작품이 나온다.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백남준의 예술작품 이름이기도 하지만, 백남준과 시게코가 함께 올라간 사다리이기도 하리라. 두 분이 하늘에서 서로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지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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