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선생 노릇3


아무도 없는 곳에서

베일에 가려진 사람에게서

고해성사를 듣는다.

철저히 비밀로 하여 주시고

고해자로 하여금

마음 편케 하소서.

누군가 그 내용을 알려 하면

말하지 않게 하고

영원히 고해로 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소서.


비밀이 

비밀인 것은

부끄러움인 것을.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보단

덮어둬야 하는 신부가 되어야 하느니.

나를 

나로 하여금

서게 해야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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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와 한국의 시인들 고려대학교출판부 인문사회과학총서 64
김재혁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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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알게 된 것이 언제였던가. 아니 안 적은 있었던가. 그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를 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릴케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인이다. 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릴케를 잘 모르면서도 한컴 타자연습에 있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이 릴케가 나오니, 이름을 들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학창시절에, 중학교 때쯤이던가, 책받침을 써야 하던 그 때, 연예인들의 사진이 책받침에 등장하기 전에 책받침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소재들이 시였고, 그 중에 릴케의 시도 있었다.

 

그렇게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함께 책받침을 통해 릴케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냥 시인으로. 그를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없이. 왜 그가 이렇게 유명한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아마도 내게 다가온 시는 '가을날'이었을 것이다.

 

가을날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풀어줍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하도록 명해 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낮을 주시어,

무르익는 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가는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이제 집에 없는 사람은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 것이며,

깨어 앉아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이 구를 때면 가로수 사이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방황할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주연 옮김, 검은 고양이, 민음사. 1994 개정증보판 1쇄. 22쪽.)

 

아마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언어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가을을 맞이하여 겸허하게 기도하는 그런 느낌을 받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기도조의 시로써 나에게 다가왔는데, 무언가 애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그런 시들이었는데, 그런 릴케를 우리나라 시인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시창작에 참조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릴케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살핀 책이 되는데, 일제시대에는 박용철과 윤동주, 해방이 되고 난 뒤에는 김춘수, 김현승, 전봉건, 김수영, 박희진, 허만하, 이성복, 김기택 등이 릴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릴케의 시에서도 영향을 받고, 그의 시가 지닌 소재라든지, 표현방식에서 영향을 받은 시인들, 그리고 시를 살펴 알려주고 있으며, 릴케의 산문에서 시적 지향점을 찾았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릴케의 산문으로 유명한 것이 두 편인데, 그 중 하나는 "말테의 수기"이고 또 하나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모두 릴케가 시를 대하는 태도를 알게 해주는 산문들인데, 그런 글을 읽고 자신의 시창작에 영감을 얻은 우리나라 시인들이 한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릴케의 영향이 이렇게 지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릴케의 시를 그냥 따라한 것이 아니라 시인의 성향과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 그의 시를 창조적, 능동적으로 받아들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방적인 영향이 아니라 변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그래서 우리나라 시가 더욱 풍요로워졌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비교문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향관계를 살펴 창조적 변용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밝히고 우리나라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그런 연구.

 

새삼 예전에 교과서에서 배웠던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를 다시 읽으면서 릴케의 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살펴보는 좋은 시긴이었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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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은 여인의 뱃살을 본 적이 있는가.

 

이제는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난 여인의 뱃살. 아이를 뱃속에 두었을 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늘어난 뱃살, 갈라지고 터진 뱃살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더 이상 줄지 않아 이제는 똥배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뱃살.

 

뱃속에 있을 때만 아이를 돌보았겠는가. 아이가 자라 제 앞가름을 할 때까지 늘어났던 배가 다시 줄어들어, 자욱이 남을 정도로 아이를 위해 살았던 어머니.

 

배에 있는 자욱들은, 그 금들은 바로 아이를 살렸던 삶의 흔적들.

 

그러나 나이들면 축 늘어진 뱃살을 안고 살아가는, 아랫목에 누울라치면 뱃살이 축 처져 방바닥에 닿고 마는 그런 뱃살.

 

그 뱃살에는 생명이 있다. 생명을 키운 젖줄이 있다. 뱃살을 따라 이리저리로 갈라진 금들, 그 금들은 바로 강이다.

 

강은 생명이다. 뭇 생명들을 거느리는 생명줄. 그것이 바로 강이다. 이런 강들을 제 몸에 지니고 사는 사람, 바로 어머니다.

 

누가 어머니의 늘어진 뱃살을, 갈라터진 뱃살을 비웃을 수 있겠는가. 그 어느 누가, 감히.

 

 

양수를 여섯 번이나 담았던

당신의 아랫배는

생명의 곳간, 옆으로 누우면

내가 제일 고생 많았다며

방바닥에 너부러진다

긴장을 놓아버린 아름다운 아랫배

누가 숨소리 싱싱한 저 방앗간을

똥배라 비웃을 수 있는가

허벅지와 아랫배의 터진 살은

마른 들녘을 적셔 나가는 은빛 강

깊고 아늑한 중심으로 도도히 흘러드는

눈부신 강줄기에 딸려들고파

나 문득 취수장의 물처럼 소용돌이친다

뒤룩뒤룩한 내 뱃살을

인품인 양 어루만지는 생명의 무진장이여

방바닥도 당신의 아랫배에 볼 비비며

쩔쩔 끓는다

 

이정록, 제비꽃 여인숙, 민음사, 2007 1판 6쇄. 63쪽

 

이정록의 시는 따뜻하다. 그의 시 "의자"를 보라. 얼마나 따뜻한가. 그리고 그의 시에서는 어머니가 많이 등장한다. 시집 제목으로 "어머니 학교"도 있다.

 

이번 시집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을 그린, 삶을 그린 시가 있다. 바로 '강'이란 시다. 어머니의 뱃살, 그 뱃살이 터진 자욱들, 그것을 강으로 표현했다.

 

강은 바로 삶의 터전이다. 어머니는 바로 우리 삶의 바탕이다. 그런 어머니를 그린 시. 따스하고 좋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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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
묘조 기요코 지음, 이민희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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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살아있을 때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은 것보다 죽은 다음에 받은 관심이 훨씬 크고, 그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작가는 살아있을 때 인기가 있다가 죽은 다음에는 곧 잊혀지고 마는데, 그래서 문학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지도 못하는데, 카프카는 몇몇 작품으로 또 일기로 편지로 세계 문학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그의 작품 중에서 "변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읽는 작품, 읽지 않았어도 얘기는 들어본 작품이지 않은가.

 

그가 쓴 작품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는데...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해서 다원적인 해석이 되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카프카는 문학에 자신의 전 삶을 걸었던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평가받아 왔다. 작품에서 완전을 추구하기에 미완성 작품이 많았다고, 그가 죽으면서 남긴 유언은 자신의 작품을 모두 폐기하라는 것.

 

유언집행자인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의 유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가 남긴 작품들을 출판해서 전세계에 알렸다는 것.

 

이 정도는 모두가 공유하는 사항이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카프카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문학은 도끼여야 한다'는 그런 말.

 

그만큼 그는 문학에서만은 완전함을, 범속함을 뛰어넘으려고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물론 문학에서 완전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카프카 하면 생각나는 우울, 절망, 고독 등을 전복시킨다.

 

카프카는 명랑하고 재치가 있으며 여자를 좋아하고 또 장사에도 무척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할 줄 알았다는 것. 비령한 카프카가 되나?

 

그렇게 카프카의 편지와 작품과 일기를 연관시켜 주장하고 있다.

 

카프카가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순진무구하지 않았음은 알고 있었으니 별 다른 문제는 아닌데, 그가 장삿속에도 밝았다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고 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했다는 것, 특히 자신이 만난 여인들과 가족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카프카란 사람이 문학에만 목숨을 걸었다면 그가 보험공사의 직원으로 끝까지 다니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이 있고 살아야 하고 무명작가에 불과한 카프카가 직업을 그만두긴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들고, 그러기에 더욱 직업과 문학의 경계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리긴 힘들다. 이 책을 읽었음에도.

 

여자 관계, 특히 이 책은 펠리체 바우어로 알려진 카프카와 두 번 약혼을 하고 모두 파기하게 되는 여자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이 책에서는 펠리스로 나오는데 - 독일어로 읽는 것이 (펠리체는 독일 사람이니)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또 우리나라 카프카 전집에도 펠리체로 번역이 되어 있으니, 펠리체로 한다 - 그 여인이 능력있는 여인이었기에 카프카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고... 외모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서 카프카의 관심 밖이었으나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에서 관심을 얻었다는 관점이다.

 

이는 카프카가 경제에 큰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하고, 그것을 그의 편지와 일기와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니, 특히 작가들은 자신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길 얼마나 갈망하는가... 직업을 가져서 시간을 뺏기지 않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면 하고 바라는 작가들이 많으니, 이를 카프카의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카프카답지 않은 카프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 카프카의 다른 면에 대한 고찰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다. 이 모든 것을 합쳐서 카프카가 되는 것이니.

 

한 가지 새로운 주장은 카프카의 작품은 모두 카프카의 편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가 작품을 출간하지 않겠다고 한 것, 유언으로 모두 불태우라고 한 것도 역시 작품을 출간하라는 주장, 그렇게 하라는 의도를 보인 것이라는 주장인데...

 

세상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읽히지 않길 바라겠는가. 그러니 편지가 읽는 사람을 생각하고 쓰여지듯이 작품 역시 읽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고 쓴다. 말은 "읽지 마, 읽지 마." 하지만 작가들의 이 말은 "제발 내 작품 읽어 줘."라는 것.

 

읽어달라는 말을 돌려서 작품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카프카의 작품이라는 말인데...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것이 카프카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카프카답다. 자기 작품에 흥미를 느끼게 만들고 있으니까.

 

읽기는 편한 책이다. 그리고 카프카의 작품에 대해서 편지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도 해주는 책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 생각은 이 책의 내용은 결국 '카프카다운 카프카'였다는 것. 새롭다기보다는 카프카에 대한 생각을 더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

 

덧글

 

203쪽 소소한 오타... 사실 관계 바로잡을 것.

 

'혼담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발리와 요제프 폴락은 1912년 9월 15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 이듬해인 1913년 1월에 여동생인 발리가 결혼했고...' 라고 되어 있는데, 앞뒤가 안 맞는다. 1912년 9월에는 결혼식이 아니라 약혼식이다. 이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 이 사실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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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정국이 어수선하다.

 

  깔끔하게 판결이 날 줄 알았는데, 지지부진이다.

 

  시간끌기 작전에 말려들었는가?

 

  지저분한 말들이 세상에 어지러이 돌아다닌다.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는 말들. 자기합리화. 개가 웃을 소리들이 말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닌다.

 

  그냥 말일 뿐이다. 이 말들을 제 말로 삼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지금 정국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개판'이다. 이런 개판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다. 말로는 안 되니 '깽판'을 놓아야 한다.

 

이윤택의 시선집을 읽다가 시 '깽판'을 읽게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개판,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것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그러니 이 시선집의 제목처럼 '나는 차라리 황야이고 싶다'고 할 수밖에.

 

시를 보자. 지금 정국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 이 시에 다 담겨 있다.

 

        깽판

 

사람들이 조금씩 뻔뻔스러워지면서

게임의 규칙은 무너졌다

뻘밭이 펼쳐지고

개처럼 싸운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일은 깽판을 치는 일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식량이라면

죽을 쑤는 일이다

 

이윤택, 나는 차라리 황야이고 싶다. 북인. 2007년 1판 1쇄.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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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7-02-11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가 딱 지금 상황이군요..

kinye91 2017-02-11 14:1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이런 시가 시로만 존재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