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시봉이야기
원택 지음 / 김영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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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성철 스님하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말이 떠오른다. 선승으로 유명하신 분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불교 조계종의 종정을 역임하신 분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철저한 수행으로도 유명한 스님인데, 최근에 법정스님과의 대화를 엮은 '설전(雪戰)'을 읽고 성철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름을 들어본 것에 비해서 성철 스님의 글을 읽어본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읽을 인연이 되었는지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설전'도 원택 스님이 엮은 것인데, 이 책 역시 원택 스님이 쓴 것이다. 성철 스님이 입적하기 전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다는 분.

 

시봉이라는 말이 모신다는 뜻이니, 성철 스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글들이 실려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원택 스님이 출가를 하게 되는 과정도 나오지만 이 책의 중심은 성철 스님에 대한 이야기다.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던 성철 스님의 과거를 알 수 있게 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잣집 큰아들로 태어나 출가를 하기까지의 과정, 결혼을 했음에도 출가를 했고, 그 따님까지도 그리고 부인까지도 출가를 했다는 것, 조계종의 기본을 세운 스님이 바로 성철 스님이라는 것 등등.

 

이런 개인적인 일화말고도 불교에 관한 성철 스님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성철 스님의 주장은 '돈오돈수'라는 것. 학교에서 불교 사상에 대해 배울 때 - 국사 시간에 조금이지만 - 지눌의 '돈오점수'라는 말을 들어보았지만, 돈오돈수라... 단박에 깨우쳤는데, 무슨 조금씩 조금씩 닦아갈 것이 있겠느냐는 말.

 

그런 깨우침을 위해 정진, 또 정진을 해야 한다는 성철 스님의 말, 수행. 음식 하나에도 최선을 다해 생활한 분이라는 것. 그리고 결코 중들을 위해, 절을 위해 불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중을 위해, 아니 대중이 바로 부처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 불교가, 스님이, 절이 존재함을 역설한 스님이라는 것.

 

그렇다. 그렇게 큰스님이 된 성철 스님은 도시로 나와 대중 앞에 서기보다는 산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실천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절에 가면 실망을 할 때가 많다. 점점 더 멋져지는 절들, 산 입구에서부터 걸어가는 스님보다는 비싼 차를 타고 가는 스님을 보게 될 때, 과연 절이, 스님들이 도시에 있는 교회들을 닮아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종교는 자신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자비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지 않는가. 성철 스님은 그렇게 불교가 존재하기를 바랬을 텐데, 지금 불교는 어떤가... 조계종은 지금 몇 분파로 나뉘어 서로 싸움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불교의 모습인가? 성철 스님이 바라던 불교의 모습이던가. 아닐 것이다. 종단이 권력이 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불교는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철과 같은 스님들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겉으로 내세우지 않지만 자연스레 그 법력이 드러나는 스님들이 여전히 있기에.

 

성철 스님의 이야기... 불교에 대해서, 스님에 대해서 아니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신문에 커다랗게 난 불교 갈등의 광고를 보면서 다시금 성철과 같은 스님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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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기쁨2

                   - 연


가느다란 실로

겨우

내 손에 잡혀 있는 넌

내게서 멀어져 갈수록

네 존재를 더 알릴 수 있는데,

아직 꽉 쥐고

널 잡고 있지만

언젠간 놔줘야 하리

훨~ 훨~

자유롭게

네 세상을 찾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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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4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4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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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의학,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활환경이 나아졌고, 그 나아진 환경으로 인해 평균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예전에는 환갑이라고 하면 오래 산, 경사스러운 일이었는데, 요즘 환갑잔치를 한다고 하면 젊은데 무슨 잔치냐는 핀잔을 듣게 된다.

 

환갑을 넘어 80이 기본이 된 지 오래. 이제는 백세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백세 시대에 예상하지 못한, 어쩌면 예상한 복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치매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상태... 이 소설에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상반된 죽음이 나온다.

 

인간이 살아있는 것을 머리와 몸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그렇게 분류를 한다면 머리가 먼저 멈춰버리는 사람이 있고, 몸이 먼저 멈춰버리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소설은 그렇게 분류하고 있다.

 

할머니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멈춰버린 분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기억은 온전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몸보다 머리가 먼저 멈춰버린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치매다. 몸은 움직이는데, 머리는 멈춰버린 상태.

 

머리가 점점 기능을 상실해 갈 때 할아버지는 손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러 이야기를 한다. 이 소설은 그렇게 하루하루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로부터 멀어져 가는, 이별해 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열쇠로 시작해서 사람들로 끝나는 거야." (103쪽)

 

할아버지의 상태는 이것이다. 최후까지 할아버지는 할머니와의 기억을 놓지 않는다. 그것을 놓아버릴 때, 그에게는 이제 기억 속의 사람은 없다. 새로운 사람만 있을 뿐이다. 얼마 전에 본 "장수상회"에서 기억이 없지만 감정은 살아남아 있는 상태.

 

그것과 유사하다고 해야 할까? 결국 몸과 머리가 모두 멈춰버릴 때 이제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삶을 위해서 자리를 비켜준다. 그 비켜줌에 머리가 먼저일지 몸이 먼저일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결국 비켜주는 것은 일치한다.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그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받아들이는 모습을 짧막한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짧지만 소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결코 짧지 않다. 우리 인생이 시작될 때는 아주 조금밖에 나아가지 못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멀리 나아간다. 멀리 나아가더라도 자신이 돌아올 길을 잊지는 않는다.

 

그러나 더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너무도 멀리 나간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올 길을 찾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맨 처음에는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 잊어버리다 지금까지 어디를 지나왔는지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지금 있는 곳이 어딘인지를 잊어버리고……" (107쪽)

 

마지막,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잊어버리게 되면 그때는 떠날 때이다. 다른 세대에게 자신의 자리를, 자신의 모험을 물려줄 때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한다.

 

이별을 맞이하는 자세... 소설에서 손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이별에 대해서 알아간다. 이별에 대해서 더이상 알 수 없게 될 때 그때는 자신이 떠날 때이다.

 

소설에서 손자는 자신의 자식과 함께 나온다. 다시 할아버지와 손녀의 관계가 시작된다. 그렇게 이별을 하지만 우리는 또다른 만남을 통해 이별을 완성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이제는 이별을 맞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짧은 분량 속에 결코 짧지 않은 삶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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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 자기들끼리는 - 일본의 아베 총리를 비롯한 정권을 잡고 있는 자들과, 한때 우리나라에서 정권을 잡고 있던, 또는 그를 추종하는 - 이미 해결된, 불가역적이라고 발뺌하고 있는 문제.

 

  나라의 잘못으로, 개인이 처절하게 고통을 받아야 했던 문제였음에도 사회가, 나라가 책임지지 않고 문제 해결을 오로지 개인에게 또는 시민단체에게 넘겨버렸던, 그래서 감추거나 버려졌던 문제.

 

  환향녀라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문제.

 

  창피한 일이다. 건국절이니 뭐니 하는 쓰잘데없는 일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는 외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과를 일본에게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만이 이나라 우리나라에서 정권을 잡았던, 또 정권을 잡고 있는 지배층에게 먼저 사과를,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너희들이 잘못하지 않았냐고... 꽃다운 나이의 사람들을 전장에 내몰고, 왜 너희들은 반성하지 않냐고. 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 하지 않냐고. 그러고도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있냐고.

 

부끄럽지 않나고,. 그렇게 그들이 몸과 마음을 유린당할 때 그때 총칼을 들고 제국주의 앞잡이 노릇을 한 자들이 정권을 잡기도 한 이 나라 지배층에 대해서.

 

자신들이 먼저 반성하고 참회하고 용서를 구해야 일본에게 더 강하게 요구할 수 있을텐데... 자신들의 약점이라고 감추기에 급급했던 시절이 있었으니.

 

개인이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비극을 개인이 온전히 책임을 져야했던, 나라에 버림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가족에게도 버림받아야 했던 그 비극을... 영화를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영화는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이 나온다. 해체된 가족이 나온다. 하지만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정치권은 나오지 않는다. 나와도 그들은 자신들을 알릴 뿐이다.

 

반면에 민중들은 고통을 함께 한다. 그들에게 남일이 아니다.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 이들에게 이미 생존을 위협받았던 위안부 문제는 옛날에 있었던 일이 아니다. 현재 자신들에게 닥친 일이다.

 

나라가 힘 센 사람들에게 붙어 자신들을 내쫓으려 하고 있는 현실. 그 앞에 선 민중들에겐 과거 고난을 받았던 할머니의 일은 자신들의 일과 같은 것이 된다.

 

여기에, 정신 차린 공무원이 있다. 공무원, 바로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공무원을 만나기 힘들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이런 공무원을 한 사람 내세운다. 물론 그는 고위 공무원이 될 수 없다.

 

가장 밑에서 직접 국민들을 만나는 9급 공무원이다. 그가 진급해봤자 5급이라는 고위 공무원으로 올라가기는 힘들다. 영화에서도 공무원은 7급이 된다. 국민들에게 가까이 있는.

 

가족들과 함께 볼 만한 영화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일을 기억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이젠 고위 공무원들도 국민들과 함께 하는, 그래서 국민들이 무엇으로 고통을 받는지, 무엇을 해야 국민들 개인에게 책임지우지 않을 수 있는지,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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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0-02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제 보고왔는데 리뷰 읽고 다시 떠올려봅니다. 멋지 한가위 되세요^^

kinye91 2017-10-02 14:2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님께서도 멋진 한가위 되길 바라겠습니다.
 
두 섬 -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
이명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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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섬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와 오키나와를. 우리나라를 섬이라고 하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가 있지만, 육로로 다른 나라를 갈 수 없는 상황이니, 섬이라는 표현이 그리 잘못된 표현도 아니다. 저자 역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범위를 좁히면 오키나와와 제주도를 두 섬으로 연관시킬 수도 있다.)

 

오키나와는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는 곳이다. 관광지로 인기 있는 곳인데, 이곳에 얼마나 많은 비극이 묻혀 있는지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키나와에는 수많은 비극이 감춰져 있다. 그리고 그 비극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오키나와는 독립된 국가로 존재했다가 일본에 병합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는 미국의 지배에 들어갔다가 1970년대에 들어 다시 일본 영토로 복귀한다.

 

오키나와가 일본 영토로 다시 복귀했다고 해서 오키나와의 비극이 끝난 것은 아니다. 비극은 그 다음에 더 심화되었다. 이유는 일본에 만들어진 미군기지가 대부분 오키나와로 이전한 것이다. 결국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를 감싸안고 있는 땅이 된 것이다.

 

이것이 땅 문제이겠는가. 미군기지가 있다는 것은 평화의 섬이라기보다는 갈등의 섬, 언제든 자신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섬이라는 의미가 되지 않겠는가.

 

중국과 미국의 갈등, 북한과 미국의 갈등에서 오키나와는 언제는 군대가 출격할 수 있는 장소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러니 오키나와는 평화의 섬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중국과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드 배치' 문제만 보아도, 방패라고 하는 '사드'가 오히려 평화를 위협하는 그런 존재로 군림하고 있지 않은가.

 

대외관계뿐만이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고, 이것으로 인해 평화가 정착되기 보다는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니... 오키나와와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나 오키나와가 이렇게 된 데에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이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키나와에 대해서도 전쟁 중에 죽은 사람들, 학살 당한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은 반성과 책임을 지지 않으며,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징용이나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에 대해서 반성도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오키나와와 우리나라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오키나와의 역사를 살펴본다. 오키나와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곧 우리나라 역사를 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3부라 할 수 있는 오키나와에서 온 편지를 읽다보면 우리나라 상황과 자꾸 겹쳐진다. 겹쳐질 수밖에 없다. 오키나와에 끌려가서 군속이나 위안부가 된 조선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들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미군기지 이전을 주장하는 사람이 오키나와 지사로 뽑혔다고 하고, 우리나라 역시 탄핵을 통해 민주정권을 세웠으니, 지금도 오키나와와 우리나라는 비슷하게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평화를 이루는데 오키나와와 우리나라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점을 생각하면서 미군기지에 대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관광지로 유명한 오키나와, 그곳에 중첩되어 있는 역사를 알게 해주는 책이고, 또한 오키나와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그리고 세계 평화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오키나와로 여행하기 전에 먼저 읽으면 더 좋을 책이기도 하고...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잘 읽었다. 유사성이 많은 오키나와와 우리나라, 좀더 범위를 좁히면 오키나와와 제주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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