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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평점 :
인류의 의학,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활환경이 나아졌고, 그 나아진 환경으로 인해 평균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예전에는 환갑이라고 하면 오래 산, 경사스러운 일이었는데, 요즘 환갑잔치를 한다고 하면 젊은데 무슨 잔치냐는 핀잔을 듣게 된다.
환갑을 넘어 80이 기본이 된 지 오래. 이제는 백세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백세 시대에 예상하지 못한, 어쩌면 예상한 복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치매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상태... 이 소설에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상반된 죽음이 나온다.
인간이 살아있는 것을 머리와 몸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그렇게 분류를 한다면 머리가 먼저 멈춰버리는 사람이 있고, 몸이 먼저 멈춰버리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소설은 그렇게 분류하고 있다.
할머니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멈춰버린 분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기억은 온전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몸보다 머리가 먼저 멈춰버린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치매다. 몸은 움직이는데, 머리는 멈춰버린 상태.
머리가 점점 기능을 상실해 갈 때 할아버지는 손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러 이야기를 한다. 이 소설은 그렇게 하루하루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로부터 멀어져 가는, 이별해 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열쇠로 시작해서 사람들로 끝나는 거야." (103쪽)
할아버지의 상태는 이것이다. 최후까지 할아버지는 할머니와의 기억을 놓지 않는다. 그것을 놓아버릴 때, 그에게는 이제 기억 속의 사람은 없다. 새로운 사람만 있을 뿐이다. 얼마 전에 본 "장수상회"에서 기억이 없지만 감정은 살아남아 있는 상태.
그것과 유사하다고 해야 할까? 결국 몸과 머리가 모두 멈춰버릴 때 이제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삶을 위해서 자리를 비켜준다. 그 비켜줌에 머리가 먼저일지 몸이 먼저일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결국 비켜주는 것은 일치한다.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그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받아들이는 모습을 짧막한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짧지만 소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결코 짧지 않다. 우리 인생이 시작될 때는 아주 조금밖에 나아가지 못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멀리 나아간다. 멀리 나아가더라도 자신이 돌아올 길을 잊지는 않는다.
그러나 더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너무도 멀리 나간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올 길을 찾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맨 처음에는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 잊어버리다 지금까지 어디를 지나왔는지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지금 있는 곳이 어딘인지를 잊어버리고……" (107쪽)
마지막,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잊어버리게 되면 그때는 떠날 때이다. 다른 세대에게 자신의 자리를, 자신의 모험을 물려줄 때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한다.
이별을 맞이하는 자세... 소설에서 손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이별에 대해서 알아간다. 이별에 대해서 더이상 알 수 없게 될 때 그때는 자신이 떠날 때이다.
소설에서 손자는 자신의 자식과 함께 나온다. 다시 할아버지와 손녀의 관계가 시작된다. 그렇게 이별을 하지만 우리는 또다른 만남을 통해 이별을 완성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만큼 이제는 이별을 맞이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짧은 분량 속에 결코 짧지 않은 삶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