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 2034년,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엘리트 계급의 세습 이야기 이매진 컨텍스트 72
마이클 영 지음, 유강은 옮김 / 이매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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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능력을 무엇으로 측정할까? 이런 기술적인 문제에 매달리면 도대체 왜 사람의 능력을 측정해야 할까? 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많다.


능력을 측정한다는 말은, 무언가 순위를 매긴다는 말이고, 순위를 매기는 일은 차이를 드러내고, 그 차이에 따른 대가를 다르게 지정한다는 뜻이다. 결국 능력을 측정한다는 행위 자체에는 이미 차이가 포함되어 있다. 단지 차이를 인식하는 것으로 끝나면 좋지만, 그 차이가 차별로 전환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왜? 대가에 차등이 생기기 때문이고, 이 대가로 인해 생활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고,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지만, 너는 능력이 없으니 그런 일을 해야 하고,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해라고 누구나 생각하는 사회.


그래서 능력에 따라 사람을 대하게 되는 사회가 과연 행복할까? 도대체 왜 우리는 능력을 측정하고 순서를 매기려고 할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아닐까?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평생을 보내지 말라고, 그러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능력을 측정해서 보여주는 것일까?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평생을 매달렸다고 과연 행복하지 않을까?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 행복할까? 그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행복일 수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능력을 하나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것도 능력을 '지능+노력'으로만 정리할 수 있을까? 노력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 노력은 지능에 비례한다고 하면, 결국 지능 하나로 결정이 된다고 할 수 있는데...


모든 국민의 지능을 검사해서 숫자로 나타내고, 구간을 설정해 등급을 나누고, 그 등급에 따라서 해야 할 일과 받아야 할 대우가 정해진다면? 그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게다가 지능을 여러 차례 검사하던 것에서 과학기술의 발달로 단 한 번의 검사, 그것도 태어나자마자 한 검사 한번으로 미래를 결정한다면 그런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왜 우리나라 수능이 자꾸 생각나지? 이 장면에서)


철저하게 그러한 능력(지능)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대우하는 사회, 그렇게 지능에 따라 다르게 살아가는 사회가 과연 행복할까?


이 책은 사회학이라는 논문의 형식을 띠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로 읽어야 한다. 마치 영국에서 이런 역사가 있었구나 하고 사실로 읽어서는 안된다. 저자는 미래에 지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과연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이 책에 그려진 사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그것 또한 비극이다.


능력이 있다고 판명된 5%의 소수는 온갖 혜택을 누리며 살지만, 하위 지능에 속한 사람들은 신분제 사회에서나 했었던 하인 역할을 해야 하는 사회. 그것도 이제는 아주 어릴 적 단 한번의 검사로 자신의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귀결되는지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능력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가 이르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책이 나온 지도 꽤 되었지만 지금 세계는 마이클 영이 걱정했던 '능력주의 사회'로 가고 있지 않은지...


거의 대부분의 일에서 '성과주의'를 표방하면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라고,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사회가 도래하지 않았는가? 물론 능력주의를 완전히 없애서는 안된다. 마이클 영이 주장하는 것도 이것이다. 


신분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만, 모든 것을 능력만으로, 그것도 능력의 일부인 지능만으로 결정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사람의 능력은 다양하고, 또 각 분야에 따라서 필요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하지만, 단 하나의 요소로 능력을 평가하고 평생을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렇게 다양한 능력이 다양한 곳에서 꽃 피울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 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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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시를 엮은 책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네팔어로 시를 쓴 것을 번역한 시집인데... 번역이 시의 맛을 정확히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 시집에서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이주노동자.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음에도 많은 차별에 시달리고 있기도 한데...


  이 지구상에 유독 사람들에게 국경이 강력하게 작동을 해서, 사람들을 편 가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국경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고 있고, 우리는 모두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 곳에 정착해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이럴 때 이주노동자들의 생활, 감정을 담은 시를 읽는 것도 좋다. 그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 중에서 '외국에서 만난 동생'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이 되려면 낯선 나라에 가야 하는구나 / 자신을 알려면 또 자신의 의무를 이해하려면 / 낯선 나라에 가야 하는구나 / 자신의 나라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려면 / 나라를 떠나봐야 하는구나

(씨꾼 아수, '외국에서 만난 동생' 부분. 47쪽)


낯선 나라에서 고생을 하면서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일. 이것이 긍정적이면 좋겠지만, 조국보다도 더 열악한 현실에서 자신을 깨닫게 한다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그들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슈퍼 기계의 반란'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삶이 이토록 어려운 시기가 도래해서 / 이제는 당신 기계의 족쇄를 차고 / 슈퍼 기계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어요 / 그럼에도 / 땀을 흘린 대가로 / 왜 무시를 당해야 하나요? / 내 자존심에 / 왜 상처를 받아야 하나요?

(니르거라즈 라이, '슈퍼 기계의 한탄' 부분. 73쪽)


이러면 안 되는 거다. 노동자들 없이 어떻게 산업이 돌아갈 수 있겠는가. 노동 없이 우리 삶이 유지될 수 없는데, 우리는 노동을 천시하고, 노동자를 무시하고 있으니, 이러면 안되는 거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을 이렇게 무시하면 안 된다. 그들이 우리 산업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된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이런 시를 비롯하여 네팔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시들, 그리고 이주노동자로서의 신산한 삶이 나타난 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읽어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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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3-05 0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두 편만 읽었어도 정서가 확 느껴지네요. 출판, 기획의도가 궁금해지는 시집입니다. 소개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kinye91 2021-03-05 09:39   좋아요 1 | URL
이주노동자의 정서를 잘 느낄 수 있는 시집이에요. 읽으면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 생각나기도 했고요.

붕붕툐툐 2021-03-05 2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박! 이 책 기획한 사람 상주고 싶네요~ 넘넘 읽고 싶어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해요!!

kinye91 2021-03-06 08:50   좋아요 2 | URL
맞아요. 좋은 기획이에요. 번역한 사람도 고생했고요.

감은빛 2021-03-06 08: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삶창에서 삶창 다운 책을 냈군요. 삶창이 오래 책을 낼 수 있는 첫 기반을 만든 게 바로 이주노동자와 이주 여성 이야기를 다룬 [말해요, 찬드라] 였죠. 이 책이 없었다면, 잡지사 <삶이 보이는 창>이 지금과 같은 출판사로 살아남기 어려웠을 거예요. [아빠, 제발 잡히지마] 도 다시 읽어보고 이 시집도 읽어봐야겠어요.

kinye91 2021-03-06 08:51   좋아요 2 | URL
감은빛 님 글을 보니, [말해요 찬드라]와 [아빠, 제발 잡히지마]를 읽었을 때 감정이 되살아나네요. 삶창이 꾸준히 좋은 책을 내면서 살아남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얄라알라 2021-03-06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그 분, 찬드라 말씀하시는 건가봐요. 꼭 찾아봐야겠어요^^

감은빛 2021-03-06 09:02   좋아요 2 | URL
네, 북사랑님. 아마 박찬욱 감독이 그 책을 통해 이야기를 접하고 영화를 찍었겠죠. 책에는 그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많아요. 반성해야 할 아픈 현실들입니다. ㅠㅠ

얄라알라 2021-03-06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삶창.....이름도 아름다운 출판사네요. 여기저기 도서구입 신청 많이하는데 삶창 책들을!
 
아, 평양아...
김찬구 지음 / 비봉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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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재미교포의 16년간 북한 사업 체험기'라고 한다. 16년간 북한을 왕래하면서 사업을 했다고 하면 북한에 대해서 많이 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이 한정되어 있어서 여전히 내게는 모르는 곳이기 때문에, 저자가 북한을 드나들면서 겪게 된 이야기들은 내게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겠다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참 자주 북한을 드나들고, 많은 북한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저자에게도 북한은 여전히 낯선 곳이다. 일이 될듯 하다가도 한순간 안 되어 버리는 곳. 약속이라는 것이 실행이 되기 전까지는 그냥 말이나 문서에 불과할 뿐이었던 곳.


여러 사업을 북한에서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저자의 이익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업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어떤 장애에 막혀 좌절하고, 돈과 시간과 정열을 흘려버리고 만 긴긴 시간에 대해서 책에 잘 나와 있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니 원칙대로 일이 처리 안 될 때도 많고, 또 수령과 당 중심의 사회니 그것에 배치되는 말을 할 수도 없고, 이동은 늘 안내원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사회. 만나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는, 16년이나 다녔어도 혼자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곳.


그럼에도 자주 다니다 보니 북한 사회의 행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결국 북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제대로 하지는 못한 저자의 이야기.


그럼에도 저자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는데, 사업가의 관점에서 쓰였기 때문에 간혹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있기도 하지만 (요즘 같으면 성감수성 미비로 비판받을 말과 행동들이 있다. 그 점을 유념하고 읽어야 한다, 또 기업가들의 접대 문화 등도) 그럼에도 90년대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는 어려움을 겪는 때의 모습을, 북한 소설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또 그들만의 사고에 갇혀 지내는 모습도 만나게 되고. 북한 지도부의 일처리 방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가 있다. 그리고 북한이 폐쇄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들이 북한을 돕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도 알 수 있고.


우리가 통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자유로운 교류가 가장 좋은 답이겠지만, 국제 제재도 있고, 또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려는 모습 때문에 자유로운 교류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제 유지를 우선시 하는 집단은 자유로운 교류를 가장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통제할 수 없는 만남은 다양한 생각을 양산하게 되고, 이것은 단일 체제를 고수하는 집단에게는 가장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쉽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런 쪽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이렇게 체제 바깥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아도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는 체제 바깥의 사람들과 만남이 자유롭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다. 가장 당성과 출신성분이 좋다는 평양에 사는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못하고, 북한을 그렇게 자주 드나드는 저자에게도 안내원 없이는 외출이 통제되는 상황, 그럼에도 저자는 아침 산책을 위해 안내원 없이 외출하기도 하는데, 이런 특혜를 받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어느 정도 북한에서 인정하는 사람도 이렇게 많은 제약을 받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 심한 제약이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많은 사업을 하려고 했고, 우리나라 기업과들과 북한 산업을 연결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지만, 난관에 부딪혀 성사된 일은 많지 않다. 그런 저자의 고군분투가 이 책에 오롯이 드러나 있다.


저자의 사업 경험과 더불어 저자가 만난 많은 북한 사람들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어, 이 책을 읽으면 여전히 폐쇄된 사회인 북한에 대해서, 적어도 북한의 90년대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게 된다.


한때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입주 등으로 교류가 이루어졌었는데, 이제는 그나마도 모두 끊겨 다시 이 책의 저자가 활동했던 시기로 돌아갔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북한은 우리가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 삶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다. 지금 북한을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90년대 북한의 모습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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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률 시집을 읽으며 '스미다'란 낱말을 떠올렸다. 한번에 확 변하지 않고 시나브로 다가와 어느 순간 전체가 바뀌어 있음을 알게 하는 것.


  스며들다. 스미다. 그의 시집을 읽으며 무언가 촉촉한 기운이, 물기가 내 맘 속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스미다'란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듯이.


  '그가 올라앉은 뱃전을 적시던 물기가 / 내가 올라와 있는 이층 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이병률 '스미다' 중 일부분)


  이병률 시집을 읽으며 그렇게 그의 시가 내 마음에도 스며들었다.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이병률 시의 무엇이 이토록 내 마음에 스며들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자세 대문이 아닐까? 우리는 한곳에 머물러 있지만 언제든 다른 곳으로 떠나갈 수 있는 것.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 그런 욕망을 표현한 것이 이병률의 이번 시집 제목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어딘가로 가려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렇게 어딘가로 가려 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빚' 때문이 아닐까?


평생을 갚아도 갚아도 갚지 못할 빚. 그런 빚을 갚기 위해서는 어딘가로 가야 한다. 빚을 갚을 수 있는 곳으로. 빚을 다 갚았을 때 우리가 있을 곳은 단 한 곳. 바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일테니.


    가슴을 쓸다


빚을 갚지 않은 인연이 있어

나무에 대고 비는 일이 많아졌다

빚을 빚으로 손에 쥐어주지 않아

오래도록 마음 녹지 않는 사람 있어

들에도 빌다 물에도 빌고 뿌리에도 빈다

흔들리는 긴 머리의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도 빌고

초겨울 밭에 다 익어 떨어졌겠지 싶은 

열매에게도 고개 수그린다

빌어 갚아지는 것이 빚이 아님에도 빌고

빌고 쌓아야 하는 것이 공덕이 아님에도 빈다

스스로 조아리지 않더라도

멀리 날던 새가 몸을 낚아 비탈에 끌어다 벌주기도 하고

하다못해 식탁 옆에 떨어져 밟힌 쌀알에도 놀라

양손을 모으다 통곡하게 한다

빚으로 야위어 세월의 중심에 눈길 주지 못하는 이

이자도 갚지 않아 길에 나돌아댕기지 못하고

마음만으로 미쳤다 소용돌이치는 값이 있다

저녁 그림자는 달에 닿은 지 오래건만

진종일 물가를 다 돌고도 모아지지 아니하는 생빚이 있다


이병률,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 2013년 2판 10쇄. 14-15쪽.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빚으로 여겨도 좋지만, 이 시에서 빚은 우리가 금전적으로, 또는 다른 사람에게 신세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다르게 해석할 때 더 큰 울림이 있다는 생각이다.


무언가 태어났다는 자체가 빚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빚을 갚기 위해 평생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해야 하는 존재. 그럼에도 다 갚아질 수 없는 빚이라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하는.


하지만 그 빚으로 인해 우리는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빚이란 신세고, 신세란 함께 함이니, 내가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빚이 있다고 해야 한다. 그것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손에 만져지든 만져지지 않든,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리 곁에 늘 존재한다.


이런 빚의 존재를 깨달은 사람. 그 사람이 어떻게 막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빚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서는 늘 변하는 존재여야 한다. 


이 시를 읽으며 이 '빚'이라는 존재가 어느덧 내게 '스며들'었음을 느끼게 된 이병률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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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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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온 지 오래된 책이다. 개정판이 나왔지만, 도서관에서 옛날 판을 빌려 읽다. 늦은 감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많은 고민을 주는 책에 이르다 늦다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개정판이 나왔다는 얘기는 이 책이 아직도 쓸오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이 책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랆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사람은 고민하는 자를 능가하지 못하는 법이다.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 남성이 자기를 알려면 '여성 문제(젠더)'를 알아야 한다.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다. 여성이라는 타자의 범주가 존재해야 남성 주체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는 보편과 특수라는 이분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젠더는 특수한 문제도, 소수자 문제도 아니다. (12-13쪽)


이제까지 유일한 것으로 군림해 온 목소리가 조금 낮아질 때, 비로소 다른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은 가부장제지, 여성의 '직설적인'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43쪽)


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 이른바 신사회운동이나 '탈근대적' 사회운동에서도 성(gender)은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고, '평화운동가'라고 해서 저절로 성평등 의식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254쪽)


인용한 세 부분을 더 생각해 본다.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로 만들지 않고 여럿이 있음을 드러낸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 다름을 같음으로 치환하려 하지 않고 (우리가 남이가!)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그 다름의 소리들이 사회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그래, 우리는 남이다. 그런 남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바로 사회다)


이러한 여성주의는 남성성에 갇힌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남성에게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들은 질문을 만든다. 질문은 곧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가부장제라는 단일한 목소리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그러니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이 어느 목소리인지 생각해야 한다. 왜 다른 목소리들이 나왔는지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그간 조화롭다고 생각했던 것이 강자의 일방적인 문화에 불과했다는 것, 약자의 희생 또는 약자의 희생이 드러나지 않고 당연시 되었던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정희진이 이 말은 새겨두어야 한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라는 이 말.


그렇다면 소위 진보진영이라는 곳에서 불거지는 성폭력 문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진보'라는 말에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진보'라는 말로 다른 갈등을 뭉뚱그리고, 무마했던 것은 아닌지.


'진보'는 오히려 다른 목소리들을 드러내고, 그것들이 제시하는 문제제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좀더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진보'는 더 고민하고 더 질문하고, 더 성찰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15년도 지난 과거에 쓴 글이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만큼 페미니즘의 도전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지만,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여길 수 없게 한다. 모든 문제가 끝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제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질문을 한다는 것이고, 좀더 나은 사회를 향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목소리들을 누를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목소리들이 나왔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희진의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소통과 공존'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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