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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온 지 오래된 책이다. 개정판이 나왔지만, 도서관에서 옛날 판을 빌려 읽다. 늦은 감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많은 고민을 주는 책에 이르다 늦다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개정판이 나왔다는 얘기는 이 책이 아직도 쓸오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이 책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랆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사람은 고민하는 자를 능가하지 못하는 법이다.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 남성이 자기를 알려면 '여성 문제(젠더)'를 알아야 한다.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다. 여성이라는 타자의 범주가 존재해야 남성 주체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는 보편과 특수라는 이분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젠더는 특수한 문제도, 소수자 문제도 아니다. (12-13쪽)
이제까지 유일한 것으로 군림해 온 목소리가 조금 낮아질 때, 비로소 다른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은 가부장제지, 여성의 '직설적인'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43쪽)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 이른바 신사회운동이나 '탈근대적' 사회운동에서도 성(gender)은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고, '평화운동가'라고 해서 저절로 성평등 의식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254쪽)
인용한 세 부분을 더 생각해 본다.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로 만들지 않고 여럿이 있음을 드러낸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 다름을 같음으로 치환하려 하지 않고 (우리가 남이가!)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그 다름의 소리들이 사회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그래, 우리는 남이다. 그런 남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바로 사회다)
이러한 여성주의는 남성성에 갇힌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남성에게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들은 질문을 만든다. 질문은 곧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가부장제라는 단일한 목소리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그러니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이 어느 목소리인지 생각해야 한다. 왜 다른 목소리들이 나왔는지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그간 조화롭다고 생각했던 것이 강자의 일방적인 문화에 불과했다는 것, 약자의 희생 또는 약자의 희생이 드러나지 않고 당연시 되었던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정희진이 이 말은 새겨두어야 한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라는 이 말.
그렇다면 소위 진보진영이라는 곳에서 불거지는 성폭력 문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진보'라는 말에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진보'라는 말로 다른 갈등을 뭉뚱그리고, 무마했던 것은 아닌지.
'진보'는 오히려 다른 목소리들을 드러내고, 그것들이 제시하는 문제제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좀더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진보'는 더 고민하고 더 질문하고, 더 성찰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15년도 지난 과거에 쓴 글이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만큼 페미니즘의 도전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지만,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여길 수 없게 한다. 모든 문제가 끝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제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질문을 한다는 것이고, 좀더 나은 사회를 향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목소리들을 누를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목소리들이 나왔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희진의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소통과 공존'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