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시집을 읽으며 '스미다'란 낱말을 떠올렸다. 한번에 확 변하지 않고 시나브로 다가와 어느 순간 전체가 바뀌어 있음을 알게 하는 것.


  스며들다. 스미다. 그의 시집을 읽으며 무언가 촉촉한 기운이, 물기가 내 맘 속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스미다'란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듯이.


  '그가 올라앉은 뱃전을 적시던 물기가 / 내가 올라와 있는 이층 방까지 스며들고 있다' (이병률 '스미다' 중 일부분)


  이병률 시집을 읽으며 그렇게 그의 시가 내 마음에도 스며들었다.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이병률 시의 무엇이 이토록 내 마음에 스며들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에 대한 자세 대문이 아닐까? 우리는 한곳에 머물러 있지만 언제든 다른 곳으로 떠나갈 수 있는 것.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 그런 욕망을 표현한 것이 이병률의 이번 시집 제목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어딘가로 가려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렇게 어딘가로 가려 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빚' 때문이 아닐까?


평생을 갚아도 갚아도 갚지 못할 빚. 그런 빚을 갚기 위해서는 어딘가로 가야 한다. 빚을 갚을 수 있는 곳으로. 빚을 다 갚았을 때 우리가 있을 곳은 단 한 곳. 바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일테니.


    가슴을 쓸다


빚을 갚지 않은 인연이 있어

나무에 대고 비는 일이 많아졌다

빚을 빚으로 손에 쥐어주지 않아

오래도록 마음 녹지 않는 사람 있어

들에도 빌다 물에도 빌고 뿌리에도 빈다

흔들리는 긴 머리의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도 빌고

초겨울 밭에 다 익어 떨어졌겠지 싶은 

열매에게도 고개 수그린다

빌어 갚아지는 것이 빚이 아님에도 빌고

빌고 쌓아야 하는 것이 공덕이 아님에도 빈다

스스로 조아리지 않더라도

멀리 날던 새가 몸을 낚아 비탈에 끌어다 벌주기도 하고

하다못해 식탁 옆에 떨어져 밟힌 쌀알에도 놀라

양손을 모으다 통곡하게 한다

빚으로 야위어 세월의 중심에 눈길 주지 못하는 이

이자도 갚지 않아 길에 나돌아댕기지 못하고

마음만으로 미쳤다 소용돌이치는 값이 있다

저녁 그림자는 달에 닿은 지 오래건만

진종일 물가를 다 돌고도 모아지지 아니하는 생빚이 있다


이병률,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 2013년 2판 10쇄. 14-15쪽.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빚으로 여겨도 좋지만, 이 시에서 빚은 우리가 금전적으로, 또는 다른 사람에게 신세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다르게 해석할 때 더 큰 울림이 있다는 생각이다.


무언가 태어났다는 자체가 빚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빚을 갚기 위해 평생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해야 하는 존재. 그럼에도 다 갚아질 수 없는 빚이라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하는.


하지만 그 빚으로 인해 우리는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빚이란 신세고, 신세란 함께 함이니, 내가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빚이 있다고 해야 한다. 그것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손에 만져지든 만져지지 않든,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리 곁에 늘 존재한다.


이런 빚의 존재를 깨달은 사람. 그 사람이 어떻게 막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빚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서는 늘 변하는 존재여야 한다. 


이 시를 읽으며 이 '빚'이라는 존재가 어느덧 내게 '스며들'었음을 느끼게 된 이병률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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