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29
김지숙 지음 / 다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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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이 말이 떠올랐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 그것은 사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많은 일들 중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골라 그것만을 사실이라고 믿고 살 수도 있다는 것.


그러면 사실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분명 함께 겪은 일인데도 기억하는 것이 다를 때가 있음을 알고 놀라곤 하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마음으로 볼 수는 없으니,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 다들 수밖에 없다.


이 다름을 인정하면 되는데, 자기가 본 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사람들은 잘못 보았다고 말할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내가 기억하는 일은 진실인데 남은 왜곡된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분명 함께 겪은 일인데도...


함께 겪은 일임에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많은 일들때문에 사람들은 다르게 기억하고,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다름을 인정하면 더 심한 갈등으로 나아가지 않는데, 다름을 잘못으로 몰아가면 해결할 수 없는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관계다.


이 소설에서는 '타로'가 등장한다. 같은 사건일지라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생각과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소재가 바로 '타로'다.


동양에서 '주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타로 카드 하나하나가 지닌 의미도 있지만, 그것은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즉 하나의 타로 카드가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숨어 있는 수많은 의미들을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타로 카드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주역(周易)'도 마찬가지다. 각 괘마다의 해석이 있지만, 이 해석이 고정되지 않는다. 좋은 괘라고 해서 늘 좋지는 않다. 나쁜 괘라고 해서 늘 나쁘지는 않다. 관계 속에서 변해가는 것이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나나'의 카드, 운명의 수레바퀴라고 할 수 있다.


고정되어 있지 않음, 변함.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운명. 그런 운명을 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속으로만 들어가서는 안 된다. 자신의 바깥에서, 자신을 가리고 있는 장벽 너머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는 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이 소설은 '나는 나'임을 찾아가는 다섯 명의 인물(주변 인물까지 하면 더 되지만)을 보여주고 있다.


단단한 껍질에 가둔 호두, 잘 나가던 과거에 매여 있는 고릴라, 가난 때문에 춤을 포기할 뻔한 고세, 왕따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이기도 했던 소녀A, 그리고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지만 지금은 타로점을 운영하고 있는 나나.


이들은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를 만들어 간다. 서로가 관련이 되어 있지만, 이 관계는 소설을 읽어가면서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왕따시켰던 소녀A가 유명인이 되자, 예전 일을 폭로하는 호두, 유명해진 소녀A보다 한때 자신이 더 잘나갔다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릴라 역시 과거 사진을 올리고... 하지만 외로웠을 때 자신의 곁에 있어준 소녀A를 지지하는 고세와 소녀A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나나. 이렇게 이들은 모두 소녀A와 관계를 맺고 있다.


자신의 틀에 갇혀 자신만을 보던 이들이 타로를 통해 또다른 관계들을 통해 자신을 밖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자신을 밖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편견의 틀을 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편견의 틀이 깨지면서 사실들을 관통하는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서로가 지니고 있는 상처들을 감추기 위해 상대의 상처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었음을 인식하게 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한다.


즉 자신이 알려 하지 않았던 자신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기 때문에 소설은 훈훈한 마무리를 향해 가지만, 그럼에도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상처는 계속 남아 있다. 다만 그 상처가 더이상 자신을 후벼파지 않을 뿐이다.


상처와 함께 하면서, 내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상처도 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또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해도 소녀A처럼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 바로잡아야 함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나만의 상처에 갇혀버려서는 안 되고, 그 상처로 다른 사람의 상처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면 상처는 꽃이 될 수 있다.


다섯 명의 관점에서 소설이 전개되지만, 하나로 모이게 되고, 사건의 전모와 인물들의 관계가 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 인물들을 통해서 내 상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한다.


내 감정에 푹 빠지기 쉬운 청소년기, 다른 사람들의 감정도 볼 수 있는, 그런 바깥을 이 소설이 제공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기에 소설을 읽는 이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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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 - 10년 앞선 고령사회 리포트
김웅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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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초고령사회(65세 이상의 인구가 20%이상인 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초고력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일본이 먼저 고령사회의 일들을 겪었다면, 우리는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에 대한 호오를 떠나서 일본은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를 맞이하여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우리나라에 올 초고령사회를 준비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도로 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일본 사회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으며,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처음에 일본의 '치매 카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에 걸렸다고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치매 카페의 발상이고 좋은 결과를 낳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치매 카페'와 더불이 노령으로 이동이 힘든 사람을 위한 '주문형 교통, 가사 대행 서비스, 슬로 계산대'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일본은 고령 사회를 맞이하여 다양한 방법을 실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반려동물의 노령화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니, 곧 우리에게 닥칠 일들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고령자들의 연금은 어떻게 될까? 노령자들이 일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소득이 특정 금액을 넘으면 연금을 깎는 제도라고 하는데, 이를 일본은 연금을 삭감하지 않게 하는 최고 소득을 인상해서 노령자들이 적극적으로 일에 참여하도록 한다고 한다.


더불어 홀로 남은 노인을 위한 상속제도도 개편하고 있다고 하는데, 소득에 관해서 노령자들도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 이것이 나이가 들어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제도가 된다.


또한 나이가 들었다고 그냥 집에만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농사일이나 보육 활동에 종사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도 배워야 한다.


간병이나 의료 문제에 대해서도 노인들을 배려하는 제도를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역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기 시작했으니, 일본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들을 면밀히 살펴서 우리 실정에 맞도록 개선해서 도입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갈수록 늘어나는 '데이케어선테와 요양원, 요양병원' 등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는 일본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아니라 건강하게 다른 일도 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그들의 정책은 우리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실시하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어서 초고령사회에 대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일본의 고령자들은 상당한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1,900조 엔, 우리 돈으로 1경 9000조 원에 달하는 전체 개인 금융자산 가운데 3분의 2(64.5%)가 60세 이상 고령자들의 주머니에 들어 있다.(2018년 일본은행 자산통계) 75세 이상 고령자의 자산만 해도 전체의 22%에 달한다.
치매 머니 - 치매 환자 계좌의 돈은 원칙적으로 인출이 불가능하다. 인출에 대한 본의의 동의가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 예금뿐만 아니다. 치매 고령자 명의의 부동산이나 자산은 사실상 동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치매 환자의 자산도 치매에 걸리는 셈이다. - P71

이들은 치매 머니 동결 방지책으로 ‘가족신탁‘과 ‘성년후견인‘을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 P72

60세가 지나도 사회와 인연을 유지하려고 하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무리하게 애쓰지 않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현재의 생활에 집중하는 세대 - P128

입주 고령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요양원이 일본에 등장했다. 148쪽

한 그룹은 농작물 재배-판매 일을, 또 한 그룹은 인근 보육원에서 육아보조 일을 한다. 149쪽. - P149

기저귀를 사용하지 않는 자립 배설은 이 요양원이 운영하고 있는 자택 복귀를 위한 네 거지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자택 복귀를 위해 가자 먼저 수반되어야 할 것이 자립 배설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자택 복귀를 위한 세 가지 케어 프로그램은 충분한 수분 섭취, 충분한 영양 섭취, 충분한 운동량 확보를 위해 짜여 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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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쟁 - 글로벌 인공지능 시대 한국의 미래
하정우.한상기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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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현재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큰 화두이지만, 너무 부풀려져도 안 되고 너무 어렵게 받아들이거나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9쪽)라고 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한상기는 말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면 결국 종속으로 가는 길만 남게 된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배웠습니다. 개인들은 인공지능의 능력과 한계를 제대로 알고 써서 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니다. 아직은 초창기의 불완전한 기술입니다.' (345-346쪽)라고 또다른 저자인 하정우는 말하고 있다.


두 사람의 말은 맥락이 같다고 할 수 없다. 이미 우리 곁에 온 인공지능이다. 거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계적인 추세와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피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이야기한 것이 이 책이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보니 우리나라도 인공지능 강국이라고 한다. 세계 10위 안에 드는 나라라고 하고, 이미 많은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니, 인공지능에 관한 것이 다른 나라의 일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세계는 앞으로도 인공지능의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미 시작된 인공지능에 대한 개발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류에게 주어진 큰 화두라는 말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어느 한 나라가 멈추었다고 해서 모두가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멈추지 않은 나라는 다른 나라들 위해 군림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어느 한 나라도 인공지능 개발을 중단할 수가 없다. 뒤처질 것이 뻔한 것을 알면서, 그러면 다른 나라에 종속될 것을 알면서도 개발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공지능 개발의 윤리다. 사회적 합의, 숙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무한정 앞으로 나갈 것이고, 인류에게 어떤 치명적인 해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지능만으로도 인류가 위협을 느끼기도 하는데,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움에 차서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개발할 때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이드라인은 '인공지능은 사람의 목숨과 관련해서는 가치판단을 하지 말라'(310쪽)여야 한다고 한다.


사람의 목숨은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 그래서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일에 인공지능이 가치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 이 사실 하나만은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인공지능을 개발한다고 해도 많은 문제가 생길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개발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처음에는 개발된 자료들을 공개했던 많은 기업들이 이제는 비공개로 돌아선다고 한다. 공개해서 인류가 협업을 해서 인류의 생활을 개선하는 쪽으로 나아가려는 목표를 지녔었다면, 이제는 돈이다. 자본이다. 이윤을 위해서 인공지능에 뛰어드는 기업이 늘어났다. 나라도 마찬가지고.


그런 이윤을 우선시하면 인류의 가치는 뒤로 처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 아닌가 한다. 


인공지능이 쓰이는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도 이 대담집에 잘 나와 있고, 그것의 한계에 대해서도 살피고 있다. 동의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지만,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내용도 많다. 아직도 규제가 많은 우리나라라서 인공지능이 각 분야에 도입되는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는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미 벌어진 인공지능 개발을 없던 것으로는 할 수 없으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 중 한 명인 하정우의 말처럼 자꾸 써 보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써보면서 개선점을 찾아가야 하는가. 그 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나라를 떠나서 인류를 위해서 모두 머리를 모아 이야기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윤을 넘어서.


이윤을 넘어서지 않으면 인공지능이 재앙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불길한 생각이 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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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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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많은 사람은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인성이다."라고 말했다. (436쪽)


명심해야 할 말이다. 과학 교육을 강조할수록 인성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함을, 아인슈타인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과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적이 좋다는 ('머리가 좋다는'과 '공부를 잘한다는'과는 다른 의미로) 학생들이 주로 의대에 간다. 의학을 공부한다. 그런데 이 의학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지성-실력도 필요하지만 인성-사랑이 우선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재능을 ('성적을'이라고 쓰고 싶지만, 성적이 우수한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니까) 쓸 뿐, 그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쓴다고 할 수 없다. 비록 그가 실력 있는 의사라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훌륭한 의사라는 소리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든 사례 중 두 가지가 의학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얼음송곳으로 머리를 뚫어 뇌절개술을 한 의사. 또 성적 지향은 문화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자신의 뜻대로 아이들의 성을 결정해버린 의사. 과연 그들의 인성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수술이나 치료를 통해서 사람에게 유익함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일으킬 결과에 대해서는 숙고하지 못했다. 또 자신의 재능 (실력)에 도취되어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듣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 지성은 있어도 인성은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지성만 믿고 남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결국은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되었다. 어디 이런 의사들만이겠는가.


과학-의학 분야에서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남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되는데... 박물학 분야에서 자신의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예 무역을 하는 상인들과 결탁한 사람도 있고, 의학의 발전을 이룬다는 목적으로 시체를 도굴해서 해부한 의사도 있으며, 성병을 치료한다고 사람들을 성병에 감염시킨 의사들도 있다.


이들은 사람을 살리겠다는 목적을 지니고 활동을 했겠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자신들에게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런 점에서 아인슈타인이 말했다는 지성보다는 인성이라는 말이 다가온다. 예전에 읽었던 '유나바머'의 경우도 이 책에 나온다. 그가 하버드 대학 재학 시절에 심리적 실험으로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 꼭 그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그러한 비윤리적인 방식이 사람의 행동을 왜곡할 수 있음도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런 과학-의학 분야에서 일어난 비윤리적인 사건들을 다룬다. 처음 시도할 때는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론적으로 그들의 행위는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는 초래할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성찰은 듣기에서 온다. 다른 사람의 말도 그렇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말들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바로 인성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과학자-의학자에게는 지성보다 인성이 더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 저자는 미래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멈추지 않고 달리기만 하는 현대 과학기술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함을,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과학사-의학사를 통해서 살펴봐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 책을 맺고 있다.


'기술이 남용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모든 악을 예방할 수는 없지만, 세계에 새로운 힘을 도입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완화시킬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458쪽)


이 말은 과학-의학에 삶을 투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또 그들에게 어떤 자세를 지니라고 해야 하는지를 지금 우리 사회를 살피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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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규모의 의학 - 루돌프 비르효, 자유주의, 공중보건학
이안 F. 맥니리 지음, 신영전 외 옮김 / 건강미디어협동조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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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의료 대란이다. 누구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겪어본 사람은 안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음을. 그것도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 소위 골든타임이라고 하는 시간을 지키기 힘들다는 사실을.


응급실 뺑뺑이! 이런 말이 통용되는 현실이라니. 이렇게 환자를 거부하는 의료진들이 있다니... 거부가 아니라 할 수 없으니,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과연 그들이 지금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살펴보면 답답한 마음만 든다.


공공의료라는 말은 말로만 존재하나 보다. 의료가 이익과 결부되었을 때 의료의 공공성은 사라진다. 공공의료보다는 민간의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받는다고 단체 행동을 할 때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그들의 선의에 맡겨야만 한다.


상대의 선의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말만 번지르하게 하고 정작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그야말로 부작위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때 독일에서 공공의료(사회의료?)에 대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던 비르효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했다는 이 말.


"의학은 하나의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거대한 규모의 의학과 다르지 않다." (17쪽)


정치가와 의사는, 동일한 사람도, 같은 분야도 아니지만, 적어도 사회적 상처에 대한 정치적 처방을 위해 협력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18쪽)


이 말을 빌리면 의사들을 비난하기 전에 정치가들을 비난해야 한다. 정치가들의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그들은 의료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의료 대란 속으로 밀어넣었다. 한마디로 사회적 상처에 대한 정치적 처방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정치적 처방을 아예 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그러니 그들이 '거대한 규모의 의학'은커녕 작은 의료 행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의사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의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지고 일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의 책임이니, 우선 책임을 정치에 물어야 한다.


계속 비르효의 말을 보자.


의료개혁 운동은 언제나 사상과 이상주의의 하나였으며, 단순히 특수 이익을 위한 정치는 아니었다. (61쪽)


의료개혁은 사상과 이상주의의 하나라는 말. 우리 사회의 의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 의료 개혁을 시도했으나, 개혁이라는 말이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문제로 국한되어 버린 지금. 아니다. 의사 수가 늘든 줄든 의사들은 우선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것도 치료를 받기 힘든 사람을 우선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비르효는 '의사들은 빈자들의 천부적 옹호자이며 사회 문제는 상당 부분 그들의 관할권 내에 있다.' (64쪽)고 하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학적 개입이 진정한 사회의학의 가장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적용이며, 따라서 의료정치의 버팀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선 의료 분야의 부적절한 제도로 인해, 전염병과 일반적인 가난이 증가했다고 하면서, 의료는 가난한 사람들을 '그들의 비정상적 상황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69쪽.)고 한다.


이러면서 비르효는 의사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한다. 당시 의사들의 수입은 다른 직종에 비해 많이 낮았다고 하는데, 처우를 개선하면서 그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상했다.


그렇다면 이미 의사들의 처우가 최상층에 해당하는 우리 사회는 어떤가? 그들의 임금은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근무 환경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의사들은 환자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해서 자신들의 근무 환경을 좋게 바꾸어 달라고 주장해야 한다. 장시간 근무시간이라면 의사 수를 증원해서 교대 근무를 해야 하고, 시설이 열악하다면 시설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단지 의사 수 증원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공공의료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너무도 적은 지금, 공공의료를 확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당시 비르효는 상수도, 하수도 시설에 대해서 이런 주장도 했다. 즉 공공시설은 민간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르효는 시 상수도 시설에 대한 그들의 서투른 관리와 재정을 민간 기업에 넘기려는 열망을 지적하면서, 이 새로운 운하와 연결하도록 하는 권한은 반드시 지역사회 자체에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15쪽.)


여기서 의료는 '공공'에 해당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가 공공에 해당한다면 민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지자체가 담당해야 한다. 민간의료보다는 공공의료를 더욱 확충해야 한다.


공공의료 시설을 개선하고, 근무 여건을 좋게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응급실 뺑뺑이라는 말이 사라질 수 있다.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는 시설, 의사들도 확보해야 한다. 그들의 희생에, 선의에 기대지 말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의료의 공공성이고,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들도 함께 좋아질 수 있는 길이다. 이러한 논의를 해야 할 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비르효에 관한 이 책을 읽으면서. 물론 지금은 그의 생각이나 또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적어도 의료는 정치라는, 정치 역시 의료라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 '거대한 규모의 의학'이라면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치가 정신차리게 해야 한다. 예전에 미국에서 나온 말을 비틀자.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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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9-27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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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돈!

kinye91 2024-09-28 15:48   좋아요 2 | URL
정말 정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돈! 이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로 풀어야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