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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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고 해도 좋고, 에세이라고 해도 좋다. 아마도 소설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으면 에세이로 생각하기 쉬운 글들이다. 여러 장소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 그리고 그 장소에서 사람을 떠올리면서, 그들과의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각 장소에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사람이 현재 살아 있지 않더라도 과거에 살았던 그 장소에 그 사람은 계속 존재한다. 내가 존재하는 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기억하는 한. 그래서 나는 내가 있던 장소에 가면 그 사람과의 일을 떠올린다. 장소는 사람과 동떨어질 수가 없다.


그러니 책 제목이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이다. 과거에 만났던 곳이 아니라 다시 그 장소에서 만나는 곳이다. '여기'는 바로 그런 장소다.


소설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그 전에 읽은 애트우드의 [숲 속의 늙은 아이들]이 떠올랐다. 티그가 떠난 뒤 살고 있는(있던) 곳곳에서 티그의 존재를 발견하는 넬의 모습처럼, 존 버거의 이 소설은 어떤 장소에서 버거가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들을 현재로 불러내 함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장소와 사람. 과거와 현재가 한데 어우러져 한편의 소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특별한 갈등은 없지만 잔잔하게 장소와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버거는 특정 사건들도 소환하고 있는데, 버거가 살았던 시대를 감안하면 2차 세계대전 때의 일들이 이 소설에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럼에도 그것이 주가 되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개가 되고 있다. 죽은 자도 불러내어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상상이 소설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상상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 그 장소에서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을 불러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일화를 통해서 그 시대를 보여주고, 그런 시대 속에서 삶이 어떠해야 했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버거의 이 소설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각 장소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줌으로써, 희망을 지니게도 한다. 우리 역시 그들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


버거는 '한국의 독자들께'라는 글에서 '세계 곳곳, 너무나 다른 여러 역사 속의 망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냘픈 희망이지요. 하지만 살찐 희망은 헛소리입니다. 그러니 이 가느다란 희망을 간직해 나갑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곳에 없는 사람들을 불러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가냘픈 희망을 지니게 하는 것. 그것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 지금-여기의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예전-여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


그래서 이 소설에는 희망이 있다. 버거가 불러온 사람들과 함께...그리고 존 버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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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8-28 09: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냘픈 희망! 어쩌면 그것이 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kinye91 2024-08-28 10:33   좋아요 3 | URL
네,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이 희망이라고 하니, 그 희망이 바로 가냘픈 희망이겠지요. 그것이 우리를,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고 저도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