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수피즘. 예전에 신비주의라고 들었던 적이 있다. 그들의 교리를 알지는 못하니 무어라 말을 할 수는 없고.
하지만 '루미'란 이름은 기억한다. 수피즘의 큰 스승이라고 기억하고 있으니...
헌책방 나들이를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책들을 발견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내가 구한 시집은 이런 표지가 아닌데, 알라딘에서 상품 검색을 하니 이 표지의 시집이 나온다. 이현주 목사가 번역한, 2014년에 초판이 나온, 늘봄 출판사에서 발행한 시집인데... 어떻게 표지 그림이 다른지...
하지만 다르다고 해도 상관없다.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겠지 한다. 수피즘. 신비주의. 그냥 무언가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시집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읽어가니 마음을 편하게 하는 시들이 많이 있다. 여기에 '중국 예술과 희랍 예술'(110-113쪽)이란 시를 보면 수피즘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꾸미지 않고 비우는 것.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 그야말로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비우는 것. 이것이 수피즘이다. 이 시에 나온 몇 구절을 보자.
'희랍인의 예술이 수피의 길이다 / 그는 철학에 관한 서적을 연구하지 않는다 / 자기 삶을 깨끗하게 더욱 깨끗하게 닦을 뿐 / 바라는 것도 없고 성도 내지 않는다 / 그 순수로 순간마다 / 여기서, 별들에서, 허공에서 오는 / 온갖 형상을 받아 되비친다 /그가 그들을 보고 있는 같은 빛으로 / 그들이 자기를 보고 있듯이 / 그렇게 그들을 받아들인다'
이 시를 보니 '묵자'에 나오는 '군자불경어수 이경어인(君子不鏡於水 而鏡於人)'이란 말이 떠올랐다.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보라는 말.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바로 그대가 나이다. 이 시의 표지에 있는 말처럼 '내가 당신이라고 말하라'(11-13쪽)인 것이다.
이런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바로 나이고, 그들은 바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들의 거울일 수밖에 없지만.
그러니 이런 자세가 '여인숙'(17-18쪽)이란 시로 이어진다.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이 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인숙
인생은 여인숙
날마다 새 손님을 맞는다
기쁨, 낙심, 무료함
찰나에 있다가 사라지는 깨달음들이
예약도 없이 찾아온다
그들 모두를 환영하고 잘 대접하라
그들이 비록 네 집을 거칠게 휩쓸어
방안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는
슬픔의 무리라 해도, 조용히
정중하게, 그들 각자를 손님으로 모셔라
그가 너를 말끔히 닦아
새 빛을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어두운 생각, 수치와 악의가
찾아오거든 문간에서 웃으며
맞아들여라
누가 오든지 고맙게 여겨라
그들 모두 저 너머에서 보내어진
안내원들이니
마울라나 젤랄렛딘 루미, 루미시초, 늘봄. 2014년. 17-18쪽
그래, 이런 마음이라면 세상에 평화가 넘치겠지. 평화로 가는 길. 그것이 루미가 쓴 시들이겠지. 비록 이 시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지라도 적어도 남들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고쳐나가려는 노력을 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시집이다.
참고로 루미는 지금 터키에서 신성시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춤이 '세마' 춤이라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며 빙글빙글 도는 춤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