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29
김지숙 지음 / 다른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이 말이 떠올랐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 그것은 사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많은 일들 중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골라 그것만을 사실이라고 믿고 살 수도 있다는 것.


그러면 사실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분명 함께 겪은 일인데도 기억하는 것이 다를 때가 있음을 알고 놀라곤 하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마음으로 볼 수는 없으니,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 다들 수밖에 없다.


이 다름을 인정하면 되는데, 자기가 본 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사람들은 잘못 보았다고 말할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내가 기억하는 일은 진실인데 남은 왜곡된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분명 함께 겪은 일인데도...


함께 겪은 일임에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많은 일들때문에 사람들은 다르게 기억하고,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다름을 인정하면 더 심한 갈등으로 나아가지 않는데, 다름을 잘못으로 몰아가면 해결할 수 없는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관계다.


이 소설에서는 '타로'가 등장한다. 같은 사건일지라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생각과 다른 관점에서 볼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소재가 바로 '타로'다.


동양에서 '주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타로 카드 하나하나가 지닌 의미도 있지만, 그것은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즉 하나의 타로 카드가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숨어 있는 수많은 의미들을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타로 카드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주역(周易)'도 마찬가지다. 각 괘마다의 해석이 있지만, 이 해석이 고정되지 않는다. 좋은 괘라고 해서 늘 좋지는 않다. 나쁜 괘라고 해서 늘 나쁘지는 않다. 관계 속에서 변해가는 것이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나나'의 카드, 운명의 수레바퀴라고 할 수 있다.


고정되어 있지 않음, 변함.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운명. 그런 운명을 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속으로만 들어가서는 안 된다. 자신의 바깥에서, 자신을 가리고 있는 장벽 너머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는 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이 소설은 '나는 나'임을 찾아가는 다섯 명의 인물(주변 인물까지 하면 더 되지만)을 보여주고 있다.


단단한 껍질에 가둔 호두, 잘 나가던 과거에 매여 있는 고릴라, 가난 때문에 춤을 포기할 뻔한 고세, 왕따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이기도 했던 소녀A, 그리고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지만 지금은 타로점을 운영하고 있는 나나.


이들은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를 만들어 간다. 서로가 관련이 되어 있지만, 이 관계는 소설을 읽어가면서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왕따시켰던 소녀A가 유명인이 되자, 예전 일을 폭로하는 호두, 유명해진 소녀A보다 한때 자신이 더 잘나갔다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릴라 역시 과거 사진을 올리고... 하지만 외로웠을 때 자신의 곁에 있어준 소녀A를 지지하는 고세와 소녀A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나나. 이렇게 이들은 모두 소녀A와 관계를 맺고 있다.


자신의 틀에 갇혀 자신만을 보던 이들이 타로를 통해 또다른 관계들을 통해 자신을 밖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자신을 밖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편견의 틀을 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편견의 틀이 깨지면서 사실들을 관통하는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서로가 지니고 있는 상처들을 감추기 위해 상대의 상처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었음을 인식하게 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한다.


즉 자신이 알려 하지 않았던 자신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기 때문에 소설은 훈훈한 마무리를 향해 가지만, 그럼에도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상처는 계속 남아 있다. 다만 그 상처가 더이상 자신을 후벼파지 않을 뿐이다.


상처와 함께 하면서, 내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상처도 볼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또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해도 소녀A처럼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 바로잡아야 함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나만의 상처에 갇혀버려서는 안 되고, 그 상처로 다른 사람의 상처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면 상처는 꽃이 될 수 있다.


다섯 명의 관점에서 소설이 전개되지만, 하나로 모이게 되고, 사건의 전모와 인물들의 관계가 한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 인물들을 통해서 내 상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한다.


내 감정에 푹 빠지기 쉬운 청소년기, 다른 사람들의 감정도 볼 수 있는, 그런 바깥을 이 소설이 제공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기에 소설을 읽는 이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