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평점 :
통상 고등학교에 가면 문과와 이과로 나눠서 공부를 한다. 사실 공부라기보다는 진학을 위해서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 요즘은 통합이라고 해서, 문이과 구분을 없앴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찐 문과, 찐 이과'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과는 과학에 약하고, 이과는 문학에 약하다고 주로 말하면서 자신들이 약한 분야를 문과니까, 이과니까라는 말로 합리화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래야 할까?
이 책은 '운명적 문과'라는 말로 시작한다. 운명적이라는 말을 쓴 것은 자신이 원하기보다는 수학을 하지 못해서, 또는 수학을 어려워해서 문과로 진학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말에 대한 짝으로 '운명적 이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들어보지는 못했다. 누군가는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수학에 약하다고, 그래서 문과를 지원했다고 하는 유시민은, 그럼에도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사실 문과 중에서 수학과 관련이 깊은 분야가 경제학 아닌가. 물론 유시민은 경제학을 배우는데 수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자신과 같은 운명적 문과들은 경제학에 나오는 수학에 쩔쩔매는 반면 부전공으로 듣는 수학과 학생들이 너무도 쉽게 거의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21쪽)
그렇다면 문과는 태생적으로 수학을 못한다.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논외로 하고, 문과가 수학을 못한다고 수학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수학은 유시민이 언급하듯이 범용 학문이고, 우주적 언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수학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하다는 듯이 과학도 못한다는 말이 따라온다. 또 그렇게 과학에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수학과 과학이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듯이, 문과들은 수학과 과학을 멀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과연 그럴까? 우리 세상이 문과와 이과로 나뉘고, 어느 한쪽만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의 학문이 발달하면서 여러 분야로 갈라져서 지금은 너무도 많은 분야가 있지만, 학문도 진화처럼 처음에는 하나로 시작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시작한 학문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수학이고 과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인식을 하는, 언어를 지닌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서술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그것을 실현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관찰과 추론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기술하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밝히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노력들이 수학과 과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그것들을 기반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궁금해하고 '나'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찾는 과정, 그 과정에서 많은 학문들이 나왔을 것이고... 그러니 학문을 문과와 이과로, 인문학과 과학으로만 나눌 수는 없다. 인문학과 과학이 합쳐지지 않을 영원히 분리된 학문이라는 말도 성립이 되지 않을 것이고.
이런 내용이 파인만의 말을 빌려 이 책의 처음에 나온다. '거만한 바보'라는 말이다. 자신의 분야에 정통하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다른 분야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학문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존재들. 그런 존재들에게 융합이란, 통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에 하나였던 학문이라고 한다면, 그 학문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진화를 보면 그렇지 않은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생명체들도 유전지 분석을 해보면 공통적인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속속 밝혀지고 있으니. 이를 과학과 인문학에 적용한다면 이 학문들도 공통점이 분명 있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니 통섭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통섭이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인문학자는 과학을 공부해야 하고, 과학자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러면서 서로의 학문을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서 상호보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 아닌가 한다.
유시민의 이 책을 읽으면서 '운명적 문과'라고 했던 그가 '거만한 바보'였음을 깨닫고, 과학 공부를 하면서 인문학이 과학을 배제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가 과학자가 아니니 과학자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이 책에서는 할 필요가 없었을 듯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공부한 과학을 '운명적인 문과'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너희들이 문과라고 과학을 멀리해도 된다고, 수학을 멀리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아예 그들을 제쳐두면 안 된다고, 그러면 너희들은 '거만한 바보'가 된다고...
놔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에 관한 여러 글들을, 자신이 읽은 책들을 명료하게 정리해서 알려주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관련지어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운명적 문과'들이 이해하기 쉽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습득할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많은 과학 지식들이 나오지만 그것들이 인문학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통섭'을 느낄 수 있다.
학문적 통섭이 아니라 우리가 생활에서 문과 이과를 나누고, 그것들이 교류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니라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문과 이과를 넘나들며 살고 있고, 그런 지식들을 배우고 있는데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모르고 있었을 뿐이라는 점을 이 책은 생각하게 해준다.
이 책 덕분에 문과라고 과학을 멀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 그러면 바보가 된다고. 그것도 '거만한 바보'가. 자신이 바보인지도 모르는 바보가 된다고, 그러니 문과 이과 나누지 말고, 다양하게 공부하라고.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