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석의 시집을 읽다. 그의 시집을 다 갖고 있지는 않지만, 예전에 그가 쓴 시에 반해 몇 권을 사둔 적이 있다. 그때는 사자마자 한 번에 주욱 통독을 했는데, 시집의 좋은 점은 두고두고 또 읽을 수 있다는 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501/pimg_7744201131197873.jpg)
읽을수록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읽을 때마다 마음에 다가오는 시가 달라진다는 점. 그리고 더 많은 울림들을 내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의 시집에 이상하리만큼 "꽃"이라는 말이 많이 들어가는데, 다른 책에서 이에 대해서 시인 자신이 이야기한 적도 있으니, 그와 꽃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집 제목도 "성에꽃"이다. 사실 이 시집에는 꽃보다는 사람에 대한,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읽어가면서 마음이 울리기도 하지만 머리 속에 시에 나타난 상황이 그림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한 편의 이야기. 그는 한 때 "이야기시"를 주장하기도 했었다.
시가 운율로, 압축으로, 상징으로 마음을 울리기도 하지만, 시에도 분명한 이야기가 있음을,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야기와 함께 하고 있음을,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들은 대부분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시임을, 그의 '이야기시론'을 통해 알 수 있었고, 또 그의 시를 통해서도 체험할 수가 있다.
시에 수록된 시들과 제목의 시가 어떻게 어울릴까? 사실 우리는 "사람꽃"이라는 말도 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말도 쓰고 "꽃보다 00"라는 말도 쓴다.
이렇듯 꽃과 사람은 함께 한다. 꽃이 화사한 꽃도 있고, 눈에 띄지 않는 아주 작은 꽃도 있고, 어디엔가 숨어 있는 꽃도 있고, 대우받지 못하는 꽃도 있듯이 사람도 그렇다.
최두석이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은 앞에 나서서 남에게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 사회의 한 켠에서 소외된 채로 살아가는 사람, 역사의 격랑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이 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가는 "꽃"임을 그는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고은의 "만인보"와는 또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시'가 바로 이 시집에 잘 나와 있다.
소외되었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로 인해 사회는 지속되고 발전되고 있음을, 고단한 삶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이 시집을 통해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제목이 된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성에꽃"
식물로서의 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도 아닌, 자연과 사람이 어려운 환경에서 만나 피워낸 꽃. 그는 이 꽃에서 민중들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키려던 친구를 만난다.
성에꽃. 차가운 계절에 피는 꽃. 그러나 그 꽃은 우리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를 잘 보여준다.
시를 보자.
성에꽃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최두석, 성에꽃, 문학과지성사, 1991년 3쇄. 12-1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