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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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목을 보고 마음에 위안을 주는 책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험난한 세상, 자꾸 불안감을 조성하는 세상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고 싶었다.

 

제목만 보면 '상처받지 않을 권리'다. 그래, 지금 내가 받는 상처는 내 탓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야. 나만 너무 상처받을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하고 책을 골랐다.

 

그런데, 아니다. 개인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힘들게 살아가는 이 시대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이다.

 

그러므로 작가도 나오지만, 그 작가와 짝이 되는 철학자, 사회학자들이 나온다. 작품과 사상의 조화. 그런 조화를 통해 우리 시대를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분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 대안도 제시하고 있지만, 대안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다. 작가가 제시한 협동조합은 지금도 많이 논의되고 시도되고, 실천되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주요 운동으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왜 그럴까? 인문학적 성찰이 부족해서? 아니면 실천력이 부족해서? 그도 아니면 자본주의 세력이 너무도 강고해서?

 

이것저것이 다 합쳐진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협동조합 운동이 지지부진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큰 요인은 불안감 아닐까 한다.

 

이 책의 3장에서 부르디외로 설명되는 이야기가 아마도 지금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가능성보다는 잠재성에 매몰되어 있다고. 가능성은 구체적인 실천 가능성이고, 실천을 의미한다면, 잠재성은 막연히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의 아비투스는 가능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이나 소시민들은 잠재성을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그들이 혁명을 일으키지 못하고 현재에 주저앉아버린다는 것.

 

그러니 그들보고 용기없다고, 또 생각없다고, 한심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즉 그들을 구별지워 그 틀 속에 가두워버린 체계에 대해서 숙고해야 한다고 하는 부르디외의 논의는 시사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상처받으며 살고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현재를 즐기기 보다는 잠재적인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끈 드라마 "미생"을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현재를 희생하면서, 현재를 불안하게 살아가는지, 미래가 가능성이 아니라 잠재성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 있다.

 

"미생"이 그렇게 인기를 끈 이유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 "미생"이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그 대답이 바로 4장에 있다. 보드리야르. 그가 제시하고 있는 상징으로서의 선물. 바타유의 영향을 받았다는 저주의 몫. 즉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증여, 선물.

 

우리는 그런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 추구가 가라타니 고진이 이야기한 '생산-소비 협동조합'(428쪽)일 것이다.

 

노동자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다. 생산자의 자리에 섰을 때 노동자는 '을'이되지만, 소비자의 자리에 섰을 때 노동자는 '갑'이 된다. 그런데 생산자의 자리에 섰을 때도 노동자가 '갑'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생계의 기로에 서지 않았을 때, 그의 자유의지로 노동을 선택할 수 있을 때다. 그럴 때 노동자는 '갑'의 위치에서 생산의 위치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계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소비자의 자리에 섰을 때 '갑'인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지금 사회에서는 소비자의 위치에서도 노동자는 '을'이다. 자신이 욕망이라고 생각한 것이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의해 조작된 욕망이 내 욕망인 것처럼 들어와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소비조차도 '을'의 행위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가 누려야 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8명이 등장한다.

 

이상, 짐멜; 보들레르, 벤야민; 투르니에, 부르디외; 유하, 보드리야르

 

돈에서, 도시로, 다시 아비투어로, 그리고 그 현란한 자본주의의 극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우리들의 일로 내용은 이렇게 점점 넓고 깊게 전개가 된다.

 

마지막에 '선녀와 나무꾼'으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넘어섰지만, 이제는 상징가치가 우세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 상징가치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증여, 즉 선물이라는 사실. 이것은 바로 '공동체'에서 가능한 일이고,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생산-소비 협동조합'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기본소득이 연결이 되지 않을까 한다. 생계 문제에서 노동자가 벗어나게 하는 것. 그 때에서야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인문학적 성찰은 여유에서 올 수밖에 없으니, 정작 노동자에 대해서 글을 써도 노동자들이 읽을 시간이 없고, 읽지도 않고 오로지 지식인들만 읽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즉 노동자들에게 잠재성이 아닌 가능성을 사유하게 하려면 그들이 최소한 생계 문제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것.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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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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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책을 부른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읽기 교육을 하는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를 읽다가 보게 된 책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해서는 예전에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때 한겨레21에 연재된 내용을 대충은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냥 뭐 기자들이 한 달 동안 일터에 가서 노동자 체험을 한 책이네 하고 만 기억이 있다.

 

7-80년대에는 '농활'이라고 하여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이 되면 농촌에 가서 농사 체험을 하고, 또 나름대로 농민들과 함께 공부하기도 하는 활동이 있었고, 농활과 상대적으로 '공활'이라고 하여 공장에 들어가 노동체험을 하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공부하는 활동도 있었다.

 

이런 '공활'체험만이 아니라 아예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공장으로 들어간 대학생들도 많았다. 이들을 일러 학출이라고 하였고, 이들 대부분은 위장취업으로 공장에 들어가 노조를 만드는데 힘을 썼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87민주화 투쟁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지고, 그 때 들불처럼 노동조합이 생겨났고, 노동자들의 의식도 강해지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이라는 한국노총에 상대가 되는 노동자 단체도 생겨났고...

 

그런데, 이와 반대로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던 많은 대학생들이 노동과 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할 일을 다했다는 뜻이던가, 공장으로 들어갔던 많은 노동활동가들이 공장에서 나와 정치판에 뛰어들게 되었고, 이제는 학출이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학출이라고 할 필요도 없이 청년들의 실업이 심각해 지고 있는데도 노동현장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 나라에서 모두들 노동현장으로 떠나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노동현장을 자의적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타율적으로 떠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노동현장은 열악하기 때문이고,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을 신성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는 배치되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노동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사회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은 노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그들에게 노동에 대해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는데... 사실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땅콩 회항' 사건만 하더라도, 아버지 잘 만나서 고생을 모르고, 노동현장의 힘듦에 대해서 한 번도 경험하지도,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

 

노동이 힘들다, 노동현장이 열악하다 아무리 말을 해도 한 번 경험한 것만 못하다고, 기자들이 그런 현장을 자신들이 직접 체험해서 그 결과를 기사로 내보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생생한 노동현장의 어려움이, 그 현장에서 죽도록 일을 하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도대체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하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은 노동이 생활이 아니라 생계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이 책에 너무도 잘 나와 있다.

 

결국 기자들이 경험한 노동은 절대로 신성한 노동이 아니었다. 노동의 신성성은 책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고, 이들이 경험한 노동은, 이들이 만난 노동자는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는, 아니 때우는,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할 수조차 없는 그러한 일이었고, 사람들이었다.

 

이게 특정한 직업 이야기라고? 아니다. 이들이 어디에서 일했는지 책을 읽어보면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간다. 이들이 일한 곳은 우리가 주변에서 너무도 흔히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 추상적인 인식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기자들이 경험한 것과 같이 구체적인 노동현장, 살아있는 노동자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음식점에서 일하기가 첫번째로 나온다. 음식점에서 일해봄으로써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특히 여성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으니, 고용한 사람에게 당하는 무시, 손님들에게 당하는 무시, 그리고 일을 마치고도 집에 들어가 다시 집안일을 해야 하는 고통이 잘 나타나 있다.

 

자영업자들도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더 많은 식당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겠지만, 크나큰 홀 서빙을 단 한 명이서 하게 하는 그런 식당일, 게다가 주인의 사적인 일까지 시키는 식당의 모습이 단지 특이한 모습이 아니라 일반적인 모습이라니...

 

식당에 가서 재촉하지 말것, 느긋하게 기다려 줄 수 있을 것, 작지만 이것이 대안이라고 하니 그래, 거창한 사회구조 운운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엔 마트에서 일해보기, 마석 가구공단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해 보기, 난로 공장에서 일하기 등이 나오는데, 그 힘듦은 대동소이하다. 구구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데...

 

너무도 열악한 환경, 제대로 된 대우가 없는 점, 그들에게 주어지는 최저임금,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 책이 나온 지 4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최저임금은 어느 정도나 올랐을까? 이 때에 비해 채 2000원도 오르지 않았다.

 

선진국에 들어선다고 광고하면서도 생계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최저임금을 주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도 나오는데, 전태일이 분신할 즈음에는 근로기준법이 최대의 조건이었다면, 지금은 근로기준법이 최소의 기본적 조건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에 맞추려는 노동현장도 꽤 있다고 하니.. 이래저래 없는 사람들 살기 힘든 세상이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대안은 없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하면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노동현장의 문제는 한 번에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를 안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노동현장이 보여주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자, 문제가 이것이다. 문제를 정확히 보라.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해결책은 우리 몫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

 

덧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 속에서는 '기본소득'이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이들의 노동은 생계를 떠나 생활의 세계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물론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예전에 근로기준법이 했던 역할을, 기본소득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더 많은 고민이, 실천이 필요하겠지. 지금 기본소득 문제를 정책으로 밀고나갈 정당이 있을까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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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운동의 세계적 현황과 전망 기본소득 총서 3
강남훈.권정임 외 지음 / 박종철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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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논의가 우리나라에서는 잠잠해졌다. 실제로 잠잠해진 것인지, 아니면 언론에서 무시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데, 복지정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언론을 통해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없으니...

 

무상급식 문제가 불거지고,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느니 마느니 각 지방의회에서 말들이 많은데, 무상이 아니라 '의무'라는 말로 바꾸자고 해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무상 중의 무상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국민에게 어떤 조건도 걸지 않고 균등하게 일정 소득을 보장해 주는 제도가 기본소득이니,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문제에도 두 팔 걷고 덤비는 사람들에겐 기본소득이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때문인지 언론들은 기본소득은 다루지지도 않는다. 현실의 문제만을 조금씩 다루고 있을 뿐인데, 복지정책에 관해서 앞서 가는 의제를 만들어내는 언론을 보기 힘든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충분히 논의가 되어야 하지만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이러한 기본소득에 대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논의되거나 실험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 이루어진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하여, 복지국가라고 하는 핀란드, 독일, 그리고 지금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스페인-카탈루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뉴질랜드, 아일랜드를 거쳐 아프리카에 있는 한 도시에서 기본소득을 직접 시행한 나미비아, 그리고 헌법에 기본소득 조항을 명시한 브라질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논의가 한창이고, 기본소득 이론을 구체화시켜가고 있다. 이것은 기본소득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얘기라고 받아들여도 된다.

 

함께 삶에 대해서 고민한다면 '기본소득'에 대해서 간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마음 속에 개운치 않은 점이 남아 있다. 왜 이렇게 오래 전부터 기본소득에 대해서 논의를 했고, 어떤 도시에서는 시행도 했고, 헌법에 기본소득을 명시하기도 했는데 왜 아직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는가?

 

기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그렇게 좋다고 하는, 또 단순하고 명쾌한 이 기본소득 정책이 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경제가 호황을 이루었을 때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쏙 들어갔다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본소득 논의가 재점화되는 모습이 이 책에 나타난 세계 여러나라의 모습이었는데, 그럼에도 논의는 활발했으나 실행을 되지 못하는 현실을 이 책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대해서 알리고, 실현가능성을 주장하는 책이지만 이상하게 읽으면서 기본소득이 실현되기가 참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재난 유토피아'라고 모두가 힘들어질 때 그 때 함께 살아감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

 

그렇다면 지나친 경제적 풍요는 기본소득 논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함께 어려워지자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출발점이 바로 여기다. 기본소득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노동을 신성시하는, 노동을 꼭 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사람 존재 자체가 바로 '일'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함께 삶 자체가 바로 일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존재 자체에 대해서 인정을 받고 존중을 받을 필요가 있으니, 그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이 되면 기본소득은 충분히 시행이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전제된다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가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들에서도 자주 나오는데 재원을 마련하는 문제는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의 세금에서 많이 올리지 않더라도 가능하다는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세금이 투명하지 않은, 고액 탈루자가 너무도 많은, 종교인들에게 과세를 하지 않는, 상위 소득자의 세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소득의 재원은 사실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그리 걱정할 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기본소득을 추진할 정당이 있어야 하고, 그 정당이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또 정당으로 하여금 기본소득을 추진하게 강제할 시민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무언가 찜찜한 마음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좋은 기본소득이 논의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기본소득은 분명 가능하다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책이다.

 

이제는 무상급식이나 뭐니 이런 논의를 떠나 좀더 발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우리나라도 이 책의 사례들처럼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으니, 서로 함께 살 수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의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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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과학자들 - 생명 윤리가 사라진 인체 실험의 역사
비키 오랜스키 위튼스타인 지음, 안희정 옮김, 서민 감수 / 다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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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

 

읽기에 너무도 마음이 불편하지만 꼭 읽어야만 하는 책.

 

어쩌면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 장래 과학자나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에게 반드시 읽혀야 할 책.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류를 위해서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또 인류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책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해서 입에서 상스러운 말이 막 튀어나오고, 내 마음의 파장이 깨지는 그런 경험을 하기는 하지만, 마음의 파장이 깨지면서 평정이 깨지는 것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에, 그러한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읽어야만 한다.

 

우리 인류가 인류애란 이름으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그것도 사람을 살린다는 의사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죽였는지, 그러면서도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요즘은 의사보다는 제약회사라는 다국적 기업이, 돈을 앞세워 사람을 실험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형편이니, 더더욱 이런 책은 읽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 기니 피그(실험용 인간)"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두 명의 과학자와 한 명의 시인이 생각이 났는데, 다 이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노구치 히데요, 황우석, 윤동주

 

노구치 히데요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닥터 노구치"라는 제목의 만화로 9권이 나와 있다. 그 만화 참 감동적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결국 인류를 위하는 세균학자가 되는 노구치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잘 표현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책에도 그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 물론 그 시대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황우석도 마찬가지다. 한 때 우리나라에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사람 아니던가. 배아복제, 줄기세포 등등에서 앞서 나가겠다는 일념으로 연구원들에게 난자를 제공하게 했던 사람.

 

난자를 제공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과연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것이 최선일까? 아니, 요즘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떨어뜨리는 일에 불과하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있다. 그 누구라도. 그러기에 인간은 태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

 

배아복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으니, 더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고.

 

여기에 윤동주. 일본의 생체 실험 대상으로 죽어갔다고 알려져 있는 순수한 시인. 그의 자기성찰이 나타난 시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럼에도 그는 실험용 인간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그런 일본인들의 만행에 대해, 특히 731부대에 관한(마루타라는 말로 유명해진)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하여간 읽어가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무엇보다도 실험용 인간이 된 사람들은 전시에는 군인들을 비롯한 사람들... 평상시에는 사회에서 정말로 힘 없는 약자들이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도 힘든 사람들, 사회로부터 낙오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약간의 이익을 주고 실험용 인간으로 사용했다. 그 실험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이것이 과연 인류를 위한다는 것인가.

 

정작 인류를 위하는 일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즉 인류를 위하는 일은, 수단이 목적과 일치되어야만 한다.

 

과학자들이, 의사들이 구하고 싶어하는 인류는 바로 그들이 실험대상으로 삼았던 그렇게 힘없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힘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막 다루면서 인류를 위한다고 하는 말은 거짓에 불과하다.

 

정작 인류를 위한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가장 낮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할 일이다.

 

이 책은 그 점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특히 책의 끝부분에는 토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으니, 우리나라 똑똑한 학생들, 특히 과학자나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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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없는 사회 - 카페에서 만난 어느 아나키스트와의 대화
에리코 말라테스타 지음, 하승우 옮김 / 포도밭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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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말라테스타는 파리코뮌과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의 시대를 살았던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168쪽)라는 말로 말라테스타를 설명하고 있다.

 

낯선 인물, 아나키스트 하면 크로포트킨이나 바쿠닌을 떠올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스페인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두루티, 그리고 미국의 촘스키, 또 여성으로는 엠마 골드만 정도를 떠올리던지, 아니면 톨스토이까지를 생각해 내는 사람, 우리나라에서 박열이나 신채호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겠지만, 말라테스타라는 이름은 생소할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말라테스타라는 인물은 생소했다. 게다가 그가 이탈리아 사람이고 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을 했으니 낯설 수밖에... 나에게 이탈리아의 사상가는 '그람시'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가 아나키스트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사상과 행동의 일치, 감정과 이성의 균형, 설교와 실천의 일치, 완고한 투쟁 에너지와 인간의 선함을 결합시키고 우아한 상냥함과 매우 엄격한 완고함을 함께 가진 사람이었다'(162쪽)는 평가를 받는다는 옮긴이 후기를 읽고 말라테스타라는 인물에 의해 아나키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 아나키즘 쪽에 많은 관심이 갔지만, 아나키즘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는 사실 의문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의문이 가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에는 몇 가지 고민하고 있던 문제들에 대한 답이 나와 있다.

 

물론 그 답은 말라테스타가 살았던 당시의 해결책이겠지만, 지금에도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제법 있고, 또 그의 생각을 현재에 맞게 변용해서 적용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라는 생각도 든다.

 

카페에서 하는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질문과 대답, 반박, 재반박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내용을 파악하는데 어렵지가 않다. 적어도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알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이루어진 17번의 대화. 이것은 주제가 17개라는 얘기고, 17개의 문제를 가지고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대책을 제시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17개의 주제를 보자. 지금도 유효한 주제들이 꽤 있는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 지금 현실과 비교해 보면 좋을 듯하다.

 

사회의 악은 왜 생기나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우리는 왜 가난한가                        가진 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소유란 무엇인가                            누가 소유를 독점하나 

자유로운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정부가 인민을 대변할 수 있나  

자유로운 결사란 무엇인가                가족은 자유로운가    

범죄자의 자유도 존중되나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인민의 의지가 대변될 수 있나            정부 없이 혁명이 가능한가       

경찰은 왜 폭력적인가                      애국심은 왜 보수적인가        

누가 평화로운 변화를 가로막는가

 

지금 토론해도 좋을 주제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찬찬히 이 책을 읽어보자. 도대체 이 책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적어도 아나키즘이라는 것이 어떤 사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나키즘의 입문서로써 이 책이 참으로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읽기에 편하고, 분량도 적당하고, 또 주제별로 나뉘어 있어서 그러한 주제에 아나키즘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아나키즘. 무모한 공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무정부주의가 아닌, 반강권주의로 번역하자는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의 자율, 자치, 협동을 세 덕목으로 삼고, 그러한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자치를 이룬 집단들이 연대해서 사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니, 꼭 공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가 먼저 읽은 박홍규의 인디언의 민주적 아니키즘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었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아나키즘은 단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사상가들의 말들도 다 아나키즘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가 말했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도 세상에 나만큼 귀한 존재가 없다는 말은 나만큼 너도 유일한 존재라는 뜻이니 서로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말이고, 공자가 말한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라고 하지 마라는 말 또한 내 자유와 남의 자유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고, 노자의 소국과민이라는 말 자체는 이미 아나키 사회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예수가 말하고 있는 사랑의 나라 역시 아니키 사회 아니겠는가.

 

그러니 사실 아나키즘은 근대에 나온 사상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상인데, 이를 현대에 실현하기 위해서 현시대에 맞게 재구성한 사상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이러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어떤 권위에 자신의 권리를 내주지 않고 스스로 자치를 행한다는 주장에서 아나키즘이 꼭 필요한 사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 옮긴이가 끝부분에서 제기한 질문... 정말 아나키즘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질문은 이 책에 나와 있는 여러 주제들과도 통한다. 지금 우리는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심각하게 던져야 할 때에 처해 있으니 이 책을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아나키즘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이것이 실현되는가 마는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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