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없는 사회 - 카페에서 만난 어느 아나키스트와의 대화
에리코 말라테스타 지음, 하승우 옮김 / 포도밭출판사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말라테스타는 파리코뮌과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의 시대를 살았던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다.'(168쪽)라는 말로 말라테스타를 설명하고 있다.

 

낯선 인물, 아나키스트 하면 크로포트킨이나 바쿠닌을 떠올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스페인 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두루티, 그리고 미국의 촘스키, 또 여성으로는 엠마 골드만 정도를 떠올리던지, 아니면 톨스토이까지를 생각해 내는 사람, 우리나라에서 박열이나 신채호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겠지만, 말라테스타라는 이름은 생소할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말라테스타라는 인물은 생소했다. 게다가 그가 이탈리아 사람이고 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을 했으니 낯설 수밖에... 나에게 이탈리아의 사상가는 '그람시'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가 아나키스트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사상과 행동의 일치, 감정과 이성의 균형, 설교와 실천의 일치, 완고한 투쟁 에너지와 인간의 선함을 결합시키고 우아한 상냥함과 매우 엄격한 완고함을 함께 가진 사람이었다'(162쪽)는 평가를 받는다는 옮긴이 후기를 읽고 말라테스타라는 인물에 의해 아나키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 아나키즘 쪽에 많은 관심이 갔지만, 아나키즘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는 사실 의문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의문이 가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에는 몇 가지 고민하고 있던 문제들에 대한 답이 나와 있다.

 

물론 그 답은 말라테스타가 살았던 당시의 해결책이겠지만, 지금에도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제법 있고, 또 그의 생각을 현재에 맞게 변용해서 적용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라는 생각도 든다.

 

카페에서 하는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질문과 대답, 반박, 재반박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내용을 파악하는데 어렵지가 않다. 적어도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알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이루어진 17번의 대화. 이것은 주제가 17개라는 얘기고, 17개의 문제를 가지고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대책을 제시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17개의 주제를 보자. 지금도 유효한 주제들이 꽤 있는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 지금 현실과 비교해 보면 좋을 듯하다.

 

사회의 악은 왜 생기나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우리는 왜 가난한가                        가진 자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소유란 무엇인가                            누가 소유를 독점하나 

자유로운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정부가 인민을 대변할 수 있나  

자유로운 결사란 무엇인가                가족은 자유로운가    

범죄자의 자유도 존중되나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인민의 의지가 대변될 수 있나            정부 없이 혁명이 가능한가       

경찰은 왜 폭력적인가                      애국심은 왜 보수적인가        

누가 평화로운 변화를 가로막는가

 

지금 토론해도 좋을 주제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찬찬히 이 책을 읽어보자. 도대체 이 책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적어도 아나키즘이라는 것이 어떤 사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나키즘의 입문서로써 이 책이 참으로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읽기에 편하고, 분량도 적당하고, 또 주제별로 나뉘어 있어서 그러한 주제에 아나키즘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아나키즘. 무모한 공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무정부주의가 아닌, 반강권주의로 번역하자는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의 자율, 자치, 협동을 세 덕목으로 삼고, 그러한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자치를 이룬 집단들이 연대해서 사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니, 꼭 공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가 먼저 읽은 박홍규의 인디언의 민주적 아니키즘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었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아나키즘은 단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사상가들의 말들도 다 아나키즘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가 말했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도 세상에 나만큼 귀한 존재가 없다는 말은 나만큼 너도 유일한 존재라는 뜻이니 서로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말이고, 공자가 말한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라고 하지 마라는 말 또한 내 자유와 남의 자유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고, 노자의 소국과민이라는 말 자체는 이미 아나키 사회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예수가 말하고 있는 사랑의 나라 역시 아니키 사회 아니겠는가.

 

그러니 사실 아나키즘은 근대에 나온 사상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상인데, 이를 현대에 실현하기 위해서 현시대에 맞게 재구성한 사상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이러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어떤 권위에 자신의 권리를 내주지 않고 스스로 자치를 행한다는 주장에서 아나키즘이 꼭 필요한 사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 옮긴이가 끝부분에서 제기한 질문... 정말 아나키즘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질문은 이 책에 나와 있는 여러 주제들과도 통한다. 지금 우리는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심각하게 던져야 할 때에 처해 있으니 이 책을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아나키즘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이것이 실현되는가 마는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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