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책을 부른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읽기 교육을 하는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를 읽다가 보게 된 책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해서는 예전에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때 한겨레21에 연재된 내용을 대충은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그냥 뭐 기자들이 한 달 동안 일터에 가서 노동자 체험을 한 책이네 하고 만 기억이 있다.

 

7-80년대에는 '농활'이라고 하여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이 되면 농촌에 가서 농사 체험을 하고, 또 나름대로 농민들과 함께 공부하기도 하는 활동이 있었고, 농활과 상대적으로 '공활'이라고 하여 공장에 들어가 노동체험을 하면서 노동자들과 함께 공부하는 활동도 있었다.

 

이런 '공활'체험만이 아니라 아예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공장으로 들어간 대학생들도 많았다. 이들을 일러 학출이라고 하였고, 이들 대부분은 위장취업으로 공장에 들어가 노조를 만드는데 힘을 썼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87민주화 투쟁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지고, 그 때 들불처럼 노동조합이 생겨났고, 노동자들의 의식도 강해지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이라는 한국노총에 상대가 되는 노동자 단체도 생겨났고...

 

그런데, 이와 반대로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던 많은 대학생들이 노동과 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할 일을 다했다는 뜻이던가, 공장으로 들어갔던 많은 노동활동가들이 공장에서 나와 정치판에 뛰어들게 되었고, 이제는 학출이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학출이라고 할 필요도 없이 청년들의 실업이 심각해 지고 있는데도 노동현장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 나라에서 모두들 노동현장으로 떠나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노동현장을 자의적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타율적으로 떠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노동현장은 열악하기 때문이고,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을 신성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는 배치되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노동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사회에서 내로라 하는 사람들은 노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그들에게 노동에 대해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는데... 사실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땅콩 회항' 사건만 하더라도, 아버지 잘 만나서 고생을 모르고, 노동현장의 힘듦에 대해서 한 번도 경험하지도,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

 

노동이 힘들다, 노동현장이 열악하다 아무리 말을 해도 한 번 경험한 것만 못하다고, 기자들이 그런 현장을 자신들이 직접 체험해서 그 결과를 기사로 내보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생생한 노동현장의 어려움이, 그 현장에서 죽도록 일을 하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도대체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하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은 노동이 생활이 아니라 생계일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이 책에 너무도 잘 나와 있다.

 

결국 기자들이 경험한 노동은 절대로 신성한 노동이 아니었다. 노동의 신성성은 책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었고, 이들이 경험한 노동은, 이들이 만난 노동자는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는, 아니 때우는,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할 수조차 없는 그러한 일이었고, 사람들이었다.

 

이게 특정한 직업 이야기라고? 아니다. 이들이 어디에서 일했는지 책을 읽어보면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간다. 이들이 일한 곳은 우리가 주변에서 너무도 흔히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 추상적인 인식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기자들이 경험한 것과 같이 구체적인 노동현장, 살아있는 노동자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음식점에서 일하기가 첫번째로 나온다. 음식점에서 일해봄으로써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특히 여성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으니, 고용한 사람에게 당하는 무시, 손님들에게 당하는 무시, 그리고 일을 마치고도 집에 들어가 다시 집안일을 해야 하는 고통이 잘 나타나 있다.

 

자영업자들도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더 많은 식당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겠지만, 크나큰 홀 서빙을 단 한 명이서 하게 하는 그런 식당일, 게다가 주인의 사적인 일까지 시키는 식당의 모습이 단지 특이한 모습이 아니라 일반적인 모습이라니...

 

식당에 가서 재촉하지 말것, 느긋하게 기다려 줄 수 있을 것, 작지만 이것이 대안이라고 하니 그래, 거창한 사회구조 운운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엔 마트에서 일해보기, 마석 가구공단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해 보기, 난로 공장에서 일하기 등이 나오는데, 그 힘듦은 대동소이하다. 구구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데...

 

너무도 열악한 환경, 제대로 된 대우가 없는 점, 그들에게 주어지는 최저임금,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 책이 나온 지 4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최저임금은 어느 정도나 올랐을까? 이 때에 비해 채 2000원도 오르지 않았다.

 

선진국에 들어선다고 광고하면서도 생계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최저임금을 주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도 나오는데, 전태일이 분신할 즈음에는 근로기준법이 최대의 조건이었다면, 지금은 근로기준법이 최소의 기본적 조건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에 맞추려는 노동현장도 꽤 있다고 하니.. 이래저래 없는 사람들 살기 힘든 세상이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대안은 없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하면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노동현장의 문제는 한 번에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를 안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노동현장이 보여주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자, 문제가 이것이다. 문제를 정확히 보라.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해결책은 우리 몫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

 

덧글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 속에서는 '기본소득'이라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이들의 노동은 생계를 떠나 생활의 세계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물론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예전에 근로기준법이 했던 역할을, 기본소득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더 많은 고민이, 실천이 필요하겠지. 지금 기본소득 문제를 정책으로 밀고나갈 정당이 있을까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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