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페미니스트 - 식민지 일상에 맞선 여성들의 이야기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 보아서는 조선시대 여성들 이야기인 줄 알겠다. 조선의 페미니스트라는 제목을 붙였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조선이라는 이름이 언제까지 불렸나? 일제강점기가 되고 사라진 이름인가 하면 아니다. 일본인은 조선인을 조센징이라고 불렀으니까. 

 

남북이 분단되고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조선이었을 것이다. 조선공산당. 그러다가 조선공산당이 남조선노동당과 북조선노동당으로 갈라서니까, 해방 정국까지도 우리는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조선은 바로 여기까지다. 해방 정국까지. 그 이후의 일은 없다. 없는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았다. 또 이들 중에 역사에서 지워진 인물들도 많다. 그들이 빛을 발한 것은 해방 정국까지다. 

 

그렇다면 해방 정국에서 빛을 발했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어떤 인물이기에 여성으로서 해방이 된 뒤 이름을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일까 이런 생각을 지닐 수 있다. 당연한 질문이다. 식민지에서 해방이 된 나라에서 나름대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일 수밖에 없다.

 

독립운동가들... 여기에 여성 독립운동가들... 여성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여성이라는 말을 꼭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활동에 비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시적으로 여성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기로 하자. 그렇게 붙일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 아직은 오지 않았다는 씁쓸한 마음을 되새길 수 있게.

 

솔직하게 말하면 여성 독립운동가를 대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유관순밖에 없다. 최근에 영화로도 알려졌고 또 여러 책에서 언급한 사람들도 있지만, 퍼뜩 머리에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만큼 그들은 해방이 된 이후 많이 가려져 있었다고 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일곱 명의 여성을 들고 있다. 일곱 명의 이름을 적어본다. 몇 사람이나 알고 있는지?

 

유영준, 정종명, 정칠성, 고명자, 허균, 박진홍, 이순금

 

각자 자신이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 이들은 모두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 해방 이후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여성들이 독립된 존재로 인정받고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 구조다. 즉 남성과 여성이 또는 다른 성이 서로 대립하는 사회, 또는 어느 성이 다른 성에게 종속되어 사는 사회가 아니다. 

 

그만큼 일상에서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 이들은 사회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다. 조선이라는 사회,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는 여성들에게 억압과 착취, 불평등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구조를 그냥 놓아두고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등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은 힘을 지니지 못한 헛된 구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 지금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월북을 했기 때문이다. 또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말년이 어떻게 되었는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가 바로 분단에 있다는 것, 분단으로 인한 갈등이 같은 이념을 지닌다는 북쪽에서도 사상투쟁을 거쳐 숙청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이들이 한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니다. 어디 역사가 한방에 변했던가. 이런 활동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어느 순간에 폭발적으로 변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나름대로 씨를 뿌렸던 이들의 활동을.

 

이 책이 소중한 이유가 그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논란이 많지만, 그런 논란 자체도 바로 페미니즘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 느낄 수가 있다. 같이 활동을 해서 검거가 되어도 언론은 남성들에게는 절대로 쓰지 않았을 기사를 여성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가 아니라 악의적으로 오도하는 기사를 쓴다.

 

독자들의 흥미를 끌려는 목적도 있지만 여성들의 활동을 폄훼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런 기사들이 종종 나는데... 일부 언론은 일제시대 언론의 관행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언론의 그런 태도는 이 책 '박진홍, 이순금' 편에 너무도 잘 나와 있다.

 

'식민지 일상에 맞선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데, 식민지 일상은 바로 여성들에게는 이중 억압이다. 식민지로서의 억압과 가부장제가 일상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에서의 억압. 이런 이중의 억압을 끊는 길은 눈에 띠는 사회적인 억압에 대항하면서 얼핏 가려진 것처럼 보이는 일상에서의 억압을 함께 끊으려고 해야 한다. 이중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식민지 시대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힘든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중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을 테니 더더욱 힘들었을 거고.

 

그것을 이겨내려 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의 활동을 각 편 제목에서 간결하고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영준(1890-?) : 여남평등 이룩하여 평등조선 건설하자!

정종명(1896-?) " 여성들이여! 분노하라 그리고 경제적 독립을 쟁취하라!

정칠성(1897-1958?) : 사람이 있고 운동이 있다

고명자(1904-1950?) : 우리 자신의 해방은 우리 힘으로

허균(1904-?) : 부인 노동자에게 해방의 혜택이 무엇인가

박진홍(1914-?) : 십 년 감옥살이를 빼면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이라니까요

이순금(1912-?) 여성 대중은 민족해방운동을 위해 열심히 싸웠다

 

이들의 이름 뒤에 출생년도와 사망년도를 쓴 이유는 바로 물음표(?)에 있다. 일곱 명 모두 물음표(?)가 있다. 이 중에 사망한 년도가 그나마 추측 가능한 사람이 두 명. 나머지 다섯 명은 잘 모른다. 왜? 바로 이 글 제목에 그 이유가 있다.

 

조선부녀총동맹...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조선의 페미니스트](1권)은 조선부녀총동맹에서 활동했던 여성들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 해방공간의 식민지 일상을 바꾸고자 했던 여성들의 삶을 알고 싶었다.'(13쪽)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을 지닌 사람들. 남과 북 어디에서도 제대로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발전하도록 한 발 앞서 나선 사람들. 그들이 이렇게 영원히 물음표(?)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 역사에 있는 수많은 물음표(?)들을 이제는 사라지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으며 정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정상이라는 개념보다는 언어다. 바로 그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언어가 그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언어라는 것. 그래서 공자도 정명(正名)이라고 해서 올바른 이름을 써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경쟁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경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에 빠짐에도 불구하고, 경쟁이 없는 사회를 상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는 독일은 열번(텐샷10 Shot)의 기회가 있는 사회인데 우리나라는 한번(원샷 1Shot)의 기회만 있는 사회라는 말이 나온다.

 

한번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우월감을, 한번의 경쟁에서 진 사람은 좌절감을... 세상에 어렸을 때 한번 본 시험으로 일생이 결정되는 그런 승자독식사회라니... 경쟁을 내면화 하고 소비중심사회로 가면서 인권 감수성은 부재하고, 권위주의가 판치는 사회가 되었다고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있는데...

 

진단은 명쾌하다. 우리가 봐야 할 거울도 제시하고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에도 단점이 많지만, 그래서 고쳐야 할 점도 많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 처지에서는 배워야 할 점이 더 많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거쳤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우리를 약소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김누리 교수가 우리는 큰나라라고 하는 것에 놀랐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모르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30-50클럽'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도 처음 들어봤는데...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인 나라들을 '30-50 클럽' 국가라고 부른다고 한다. (25쪽 참조) 세계에 단 일곱 나라만이 있다고 하는데,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2019년에 이 그룹에 들어갔다고 하니, 큰나라라고 할 수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자꾸만 약한 나라, 작은 나라라고 해서 과감한 정책을 펼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움츠리기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인 김누리는 이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충분히 독일과 같은 정책을 펼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역사적으로는 우리는 68혁명을 겪지 못했고, 정치인들은 보수와 수구의 양대 구조로만 독식되어 있으며 분단으로 인한 냉전체제를 들 수 있다고 한다.

 

독일 총리인 메르켈이 독일정치 지형에서 보수에 해당하는데 메르켈의 정책을 우리나라 정치에 대입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보다도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말, 민주당은 메르켈 정책에서 보면 보수에서도 심한 보수에 해당한다는 말.

 

우리나라 국회는 이러한 수구와 보수가 90%를 넘는다는, 한마디로 독식되어 있다는, 그래서 복지정책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한다. 또한 이러한 국회의 모습과 더불어 이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대표성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세대 대표성입니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불과 0.6퍼센트가 대의되고 있다고 (97쪽), 또 세대 대표성 못지 않게 왜곡되어 있는 것이 직능 대표성입니다라고 (97쪽) 하고 있다.

 

결국 국회는 전문성이라는 이름만 앞세우고 정작 대의해야 할 국민들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이것이 정상적인 모습인 양 착각하고 지내왔다는 것. 독일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우리는 준연동형, 그것도 심하게 왜곡된 선거 형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으니. 

 

읽으면서 명쾌한 진단에 놀랄 때가 많다. 그리고 이렇게 현실을 직시해야지만 고칠 수 있음을,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상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불행 속에 빠져 그 불행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 불행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

 

불행이 당연하지 않고 우리 역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그런 거울이 바로 앞에 있지 않냐고, 거울을 보라고. 그리고 자신을 보라고. 행동하라고.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 또 경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라고.

 

하여 저자 김누리는 진보란 정치적 좌우 개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 '고통과 억압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정의(137쪽)한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진보다. 고통과 억압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그런 정책들. 그들을 보듬어 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정당들. 그런 정당이 바로 진보다. 말만 앞세우는 사람, 정당들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질문을 하자. 한국 남성으로 권위적인 학교 교육을 받고, 3년이라는 기간을 군대에 다녀온 김누리의 질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12년 동안 교육을 받고, 3년 동안 군대를 갔다 온 저 같은 남성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게 가능한가? 제 경험으로는 불가능합니다.(139쪽)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소리냐고? 교육은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고, 군대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의무 활동인데 그런 과정을 거친 사람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냐고?

 

여기서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답은, 학교에서 몸에 익힌 권위주의, 경쟁,승자독식 등과 군대에서 익힌 병영문화 -상명하복이라는 절대 복종, 일사분란을 강조하는 전체주의 등-가 몸에 밴 사람이 인권감수성을 지니고 강한 자아를 지니면서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로 해석을 할 수 있다.

 

자연스레 몸에 배어야 할 인권감수성,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등을 의식적으로 다시 익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왜곡되어 있다는 말인데, 단지 비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비판이다.

 

불행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교육개혁을 해야 하고, 남북간에 평화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여기에 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또 그런 사례를 우리는 독일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 사례를 참조해서 우리 현실에 맞게 적용해서 우리 후손들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미룰 수 없다. 그러기엔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 너무 크다.

 

이 책은 그 점을 깨우쳐 주고 있다. 제목을 반복하자.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4-10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10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혐한의 계보
노윤선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전히 갈등이 심하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단지 정치 ·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에서도 많은 갈등이 있다. 경제나 정치만큼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제는 일본에 오고가는 것도 힘들어지고 있는 정도니.

 

[혐한의 계보]를 읽으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한이 최근에 발생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혐한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라고 하는데, 벌써 30년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혐한이라고 해봤자 극우에 해당하는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것이 아니다. 일본 사회에 깊숙히 혐한 감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것이 자신들이 살기 힘들어질 때 노골적으로 드러날 뿐이지, 일본 사람들 내면에는 혐한 감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혐한이라는 단어가 없었을 뿐이지, 조선인들에 대한 악감정, 또 탄압들이 있었음을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으니.

 

그러니 요즘 혐한 시위에서 말하는 '좋은 한국인, 나쁜 한국인 모두 몰아내자'는 구호가 나오는 것이겠지. 한국이라는 범주만이 중요하지 개인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혐한 감정이 내면화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영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서. 이 책에서 분석하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보면 이들의 혐한 감정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혐한을 표방하는 작품들이 몇백 만부씩 팔리고 있다고 하는데... 문학은 알게 모르게 의식 속에 스며들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이성으로 제어하기 보다는 감정이 먼저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문학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문학을 다루고 있는 것은 그래서 더 타당하고, 혐한 감정에 대해서 우리가 직시하는데 도움을 준다. 단지 미워하는 것이 혐한은 아니다. 우리도 일본을 미워하지만 일본사람들 죽이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반일과 혐일을 구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살기 힘들어지면 비이성적인 면이 부각되고, 상대적으로 적대할 존재를 만들려고 하는데, 일본에게는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우리나라가 아닌가 싶다. 두 가지 면에서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니...

 

하나는 영토 문제다. 독도. 그리고 위안부나 징용공들에 대한 보상.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이제는 교과서에까지 명시를 한다고 한다.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교과서가 어떤 책인가.

 

전국민이 한번씩은 거의 암기하다시피 읽어야 하는 책 아닌가. 그런 책에 버젓이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하고,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명시하면 대다수 일본 청소년들은 한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다. 이런 반감들이 쌓이고 쌓이면 혐한으로 흐르게 된다.

 

여기에 위안부나 징용공 문제, 자신들은 충분히 사과했다고, 그런데도 한국이 계속 떼쓴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왔다고 한다. 정치인들부터 시작해서 몇몇 언론, 일본인들이 많이 보는 만화에서까지. 자연스레 사람들 의식 속으로 한국은 떼장이, 일본은 그에 시달리는 나라라는 생각이 스며든다고 한다.

 

반성 없는 역사 속에서 일본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역사를 정당한 역사로 받아들이고 주변 국가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잃어가게 된다. 게다가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 자연스레 원망은 밖으로 향하게 된다. 정치권이 바라는 방향이기도 하고.

 

혐오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실제로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때는 5단계까지 갔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도 거의 4단계까지 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레빈의 증오의 피라미드라고 한다는데...

 

이 증오의 피라미드는 첫 번째 단계를 선입견에 의한 행위 prejudiced attitudes(농담, 적대감 표명, 배려 없는 발언, 배제적 언어), 두 번째 단계는 편견에 의한 행위 acts of prejudice  (비인간화, 비웃음, 사회적 회피, 비방 중상, 의도적 차별 표현), 세 번째 단계는 차별행위 discrimination (주거·교육·취업 차별, 사회적 배제, 괴롭힘), 네 번째 단계는 폭력 행위 violence (폭행, 협박, 방화, 테러, 기물파손, 모독죄, 강간, 살인), 마지막 단계는 제노사이드 genocide (의도적 · 제도적 민족 말살)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인 선입견과 편견에 의한 행위는 비형사적 행위이며, 세 번째 단계인 차별행위는 민사적 행위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단계인 폭력과 제노사이드 행위는 형사적 행위로 분류하고 있다. (117쪽)

 

지금 혐한은 네 번째 단계까지 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최근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끊임없이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인데...

 

무서운 것은 일본인들이 보는 신문에서, 잡지에서 이런 혐한이 걸러지지 않고 나온다는 것.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일본인들 의식에 침투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특정 정치인들이 불을 지펴서 혐한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혐오표현 방지법을 만들기도 했다지만 처벌 조항이 미미해서 별 실효성이 없으며, 카운터스라고 해서 혐오표현 반대 시위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들 역시 대세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일본과 교류가 끊어지고 서로 장벽을 쌓고 있으니 더욱 혐한 감정이 심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혐한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꽤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그리고 이러한 혐한 감정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음을, 또 이것을 이용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혐한의 계보를 추적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나아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긴 일본이 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혐한 감정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역사 자료만이 아니라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일본인들이 지금 지닌 혐한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알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인을 알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은 해결책을 찾겠다는 것이니, 혐한을 우리가 인식하고 그 심각성을 느끼는 것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니까.

 

그 혐한 감정이 하루이틀에 쌓인 것이 아님을 이 책이 잘 보여주고 있으니, 해결과정은 더 지난하겠지만 그래도 그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임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인의 도시 사용법 -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기 20
박경화 지음 / 휴(休)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환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환경을 지키면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선 플라스틱 사용 문제만 해도 그렇다. 플라스틱이 환경이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에서 플라스틱 줄이기가 얼마나 힘든가.

 

의식적으로 쓰지 않아야지 해도 어느 순간 주변에 플라스틱이 깔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비닐을 포함하면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플라스틱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최소한 줄이려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도시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신경을 써야만 한다. 그만큼 환경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그 피곤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인류 전체가 살아가기 어려운 조건을 계속 만들어 가게 된다.

 

어려운 문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인이 빠진 사회 구조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는. 이 책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지구인이고, 지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산다고 할 수 있으니, 도시에 살면서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생활방식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우선 적게 소유하는 것.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빌려쓰는 습관을 지닌다면 환경 보전에 일조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사회적으로 공유경제로까지 나아가면 좋을 것이라고.

 

마찬가지로 에너지 사용도 줄이면 된다. 콘센트만 잘 뽑아두어도 전기를 많이 절약할 수 있으니 작은 실천부터 하면 좋을 듯하다. 여기에 도시에서도 자투리 공간에 텃밭이나 꽃밭을 만들 수 있고, 또 만들고 있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으며, 농촌과 도시 사람들이 직거래를 하는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여행할 때도 환경을 생각하는 여행을 하면 좋다고, 다양한 환경보호 실천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지구인으로서 지구를 보존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우리 스스로가 지구를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준단 말인가. 그렇다고 지구를 보존하는데 거창한 일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된다는 것.

 

최소한 자신의 생활에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것부터 줄이면 되지 않을까 한다. 산더미처럼 쌓이는 쓰레기. 그래서 처리하기 힘든 것이 지금 도시 생활 아닌가. 오래 쓸 수 있고, 다시 쓸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물건들부터 쓰는 습관을 지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이러스 쇼크 - 인류 재앙의 실체, 알아야 살아남는다, 최신증보판
최강석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전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현대는 몇 년을 주기로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우리를 습격하고 있다. 습격이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 우리가 바이러스들을 불러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지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각자 고유한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있던 생명체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져,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담이 없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담장 안에만 있던 바이러스들이 담장을 넘어서 들어오니 '신종'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밖에.

 

국지적인 질병이란 이제는 없다.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종간 감염이 안 된다고 알고 있던 감염병들이 종을 넘나들면서 질병을 일으키고 있다. 종들간에 굳건히 닫혀 있던 문들이 열리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한 대로 종들 특유의 자물쇠가 있고, 그 자물쇠를 열 열쇠는 종 내부에만 있었는데, 이제는 종 외부에도 열쇠가 마련된 상황이라는 것.

 

이 열쇠를 마련하는데 매개되는 동물이 있는데, 그 동물들은 예전부터 우리 인간들과 함께 지내왔던지, 아니면 최근에 인간들이 식용으로 먹는 동물들에게서 자물쇠를 여는 열쇠가 나온다는 것.

 

그래서 새로운 바이러스는 늘 나타날 위험성이 있다. 새롭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 그것은 모른다는 말과도 통하고,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단지 두려움을 넘어 공포로 넘어가면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된다.

 

2016년에 나왔던 책의 개정증보판이 나온 이유도, 메르스 공포를 넘어 이제는 코로나19로 우리 사회가 비상사태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때 바이러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이 책을 다시 펴냈다고 하는데...

 

마스크를 쓰는 것이 감염병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두말 할 것 없는데, 그것이 너무 심하게 작용하여 마스크 대란을 일으키고 결국 마스크 5부제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학교들이 개학을 연기하는 그런 재난 상황에 이르게까지 되었는데...

 

이제는 이런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이 한때 그랬지로 끝나지 않고 상존하는 시대에 접어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바이러스와 인간은 함께 지내왔지만, 그리고 공존하는 방법으로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진화란 늘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변화해 가니... 바이러스나 세균들과 인간들도 역시 위협과 공생을 통해 함께 지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바이러스나 세균을 완전히 박멸할 수 없듯이 세균이나 바이러스 역시 숙주인 우리 인간을 완전히 멸종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자신들도 사라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이러스에 대해서 그냥 그렇지 하고 넘어가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지나치게 공포심을 지니는 것도 옳지 못하다. 이때 우리게에 필요한 것은 바이러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 그리고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 및 행동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된다. 바이러스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도 도움이 되고, 그것들을 예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온 바이러스들이 창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구촌에서 신종 바이러스 출현 자체를 저지하는 선제적 예방 노력은 출발점, 그 선상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스 바이러스처럼 이미 바이러스 출현 경로가 알려진 경우와 달리, 그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어느 지역에서 어떤 경로로 나타날지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신종 바이러스 출현 배경을 제공하는 푸시&풀 여건 (산림파괴, 대도시화, 기업축산, 기후변화, 여행증가 등)을 개선하려는 발걸음은 여전히 출발선 이상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바이러스 학자들이 지구촌 야생세계에서 미지의 바이러스를 찾고 있고, 우리 주변의 동물인 가축에서 신·변종 바이러스 출현을 감시하고 있지만, 사람에게 위험이 되는 신종 방이러스를 찾아내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려운 일이다. 설령 그런 바이러스를  수집하더라도 향후 사람에게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지 판단하는 데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다. (350쪽)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호모 데우스로 가는 길목에 있다고 자부하는 인간에게 아직도 신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바이러스와 세균들 존재다. 인간이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존재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면 호모 데우스가 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 단계에 머물러도 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세상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가 바로 바이러스와 세균을 극복하는, 또는 그들과 공생하는 것이다.

 

적어도 인류가 절멸의 위험에 처하지 않게 이들을 적절히 예방하는 기술을 만들어야 하고, 또 이들로부터 건강을 지키며 살 수 있는 행동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알아야 이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야 대응할 수 있다. 많은 것들이 이 책에서 이야기되고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산림파괴, 대도시화, 여행증가 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금도 산림은 파괴되고, 거기서 살고 있던 동물들이 살기 위해서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해서 전파된 바이러스가 대도시화로 인해 밀집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퍼지는데, 비행기나 다른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하루 만에 전세계 퍼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개인위생에 만전을 기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신종이라는 이름을 단 바이러스가 최근에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인간이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

 

지금 신종 바이러스를 옮기는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박쥐들 이야기가 있는데, 이 책은 어떻게 해서 박쥐가 신종 바이러스를 옮기는 주 역할을 했는지, 왜 코로나19에도 박쥐가 의심을 받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 박쥐가 인간에게 복수심을 품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닌 것을 잘 알지만, 한번 퍼지기 시작한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은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니 조심해야 한다. 결국 서로의 영역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이 참에 우리들의 생활도 돌이켜 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감염병에 대해서 신종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많은 질병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공포심을 지닐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개인들 위생 수칙에서부터 생활방식과 더불어 각 나라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폭넓게 고민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사그라들기를 바라며, 또다시 이런 혼란을 겪지 않도록 많은 준비를 해야 함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