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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의 계보
노윤선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12월
평점 :
여전히 갈등이 심하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단지 정치 ·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에서도 많은 갈등이 있다. 경제나 정치만큼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제는 일본에 오고가는 것도 힘들어지고 있는 정도니.
[혐한의 계보]를 읽으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한이 최근에 발생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혐한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라고 하는데, 벌써 30년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혐한이라고 해봤자 극우에 해당하는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것이 아니다. 일본 사회에 깊숙히 혐한 감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것이 자신들이 살기 힘들어질 때 노골적으로 드러날 뿐이지, 일본 사람들 내면에는 혐한 감정이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혐한이라는 단어가 없었을 뿐이지, 조선인들에 대한 악감정, 또 탄압들이 있었음을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으니.
그러니 요즘 혐한 시위에서 말하는 '좋은 한국인, 나쁜 한국인 모두 몰아내자'는 구호가 나오는 것이겠지. 한국이라는 범주만이 중요하지 개인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혐한 감정이 내면화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영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서. 이 책에서 분석하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보면 이들의 혐한 감정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혐한을 표방하는 작품들이 몇백 만부씩 팔리고 있다고 하는데... 문학은 알게 모르게 의식 속에 스며들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이성으로 제어하기 보다는 감정이 먼저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문학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문학을 다루고 있는 것은 그래서 더 타당하고, 혐한 감정에 대해서 우리가 직시하는데 도움을 준다. 단지 미워하는 것이 혐한은 아니다. 우리도 일본을 미워하지만 일본사람들 죽이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반일과 혐일을 구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살기 힘들어지면 비이성적인 면이 부각되고, 상대적으로 적대할 존재를 만들려고 하는데, 일본에게는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우리나라가 아닌가 싶다. 두 가지 면에서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니...
하나는 영토 문제다. 독도. 그리고 위안부나 징용공들에 대한 보상.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이제는 교과서에까지 명시를 한다고 한다.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교과서가 어떤 책인가.
전국민이 한번씩은 거의 암기하다시피 읽어야 하는 책 아닌가. 그런 책에 버젓이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하고, 한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명시하면 대다수 일본 청소년들은 한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다. 이런 반감들이 쌓이고 쌓이면 혐한으로 흐르게 된다.
여기에 위안부나 징용공 문제, 자신들은 충분히 사과했다고, 그런데도 한국이 계속 떼쓴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왔다고 한다. 정치인들부터 시작해서 몇몇 언론, 일본인들이 많이 보는 만화에서까지. 자연스레 사람들 의식 속으로 한국은 떼장이, 일본은 그에 시달리는 나라라는 생각이 스며든다고 한다.
반성 없는 역사 속에서 일본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역사를 정당한 역사로 받아들이고 주변 국가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잃어가게 된다. 게다가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 자연스레 원망은 밖으로 향하게 된다. 정치권이 바라는 방향이기도 하고.
혐오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실제로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때는 5단계까지 갔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도 거의 4단계까지 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레빈의 증오의 피라미드라고 한다는데...
이 증오의 피라미드는 첫 번째 단계를 선입견에 의한 행위 prejudiced attitudes(농담, 적대감 표명, 배려 없는 발언, 배제적 언어), 두 번째 단계는 편견에 의한 행위 acts of prejudice (비인간화, 비웃음, 사회적 회피, 비방 중상, 의도적 차별 표현), 세 번째 단계는 차별행위 discrimination (주거·교육·취업 차별, 사회적 배제, 괴롭힘), 네 번째 단계는 폭력 행위 violence (폭행, 협박, 방화, 테러, 기물파손, 모독죄, 강간, 살인), 마지막 단계는 제노사이드 genocide (의도적 · 제도적 민족 말살)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인 선입견과 편견에 의한 행위는 비형사적 행위이며, 세 번째 단계인 차별행위는 민사적 행위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단계인 폭력과 제노사이드 행위는 형사적 행위로 분류하고 있다. (117쪽)
지금 혐한은 네 번째 단계까지 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최근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끊임없이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인데...
무서운 것은 일본인들이 보는 신문에서, 잡지에서 이런 혐한이 걸러지지 않고 나온다는 것.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일본인들 의식에 침투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특정 정치인들이 불을 지펴서 혐한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혐오표현 방지법을 만들기도 했다지만 처벌 조항이 미미해서 별 실효성이 없으며, 카운터스라고 해서 혐오표현 반대 시위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들 역시 대세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일본과 교류가 끊어지고 서로 장벽을 쌓고 있으니 더욱 혐한 감정이 심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혐한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꽤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그리고 이러한 혐한 감정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음을, 또 이것을 이용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러한 혐한의 계보를 추적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나아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긴 일본이 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혐한 감정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역사 자료만이 아니라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일본인들이 지금 지닌 혐한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알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인을 알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은 해결책을 찾겠다는 것이니, 혐한을 우리가 인식하고 그 심각성을 느끼는 것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니까.
그 혐한 감정이 하루이틀에 쌓인 것이 아님을 이 책이 잘 보여주고 있으니, 해결과정은 더 지난하겠지만 그래도 그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임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