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 - 우리가 오해한 ‘과학적 상상력’에 관한 아주 특별한 강의
이상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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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상상력이라고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이나 아주 기발한 발상을 떠올린다. 그래서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상력이란 과연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엄밀한 체계를 추구하는 과학에서는 상상력이 필요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들 삶에도 필수적임을, 그리고 과학이나 예술에서 모두 상상력이 작동됨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수렴적 사고와 발산적 사고의 긴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내재적과 외재적이라는 말로 단순화시켜 설명할 수도 있는데, 기존의 지식에 정통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과학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혀 다른 틀을 가져야 기존의 틀을 대체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앞부분의 예로 코페르니쿠스를 예로 든다. 우리는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꾸어놓은 사람, 또는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알고 있는 사람인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까지 그는 프톨레마우스의 천문학에 정통한, 그것도 당대에 가장 뛰어난 학자였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그가 기존의 천동설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은 기존 천문학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정통했기에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틀 내에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상상력은 갑자기 외부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적인 고민, 공부를 거듭한 결과에 이어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결부되었을 때 발휘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상력은 집요함, 정교함과 더불어 새로움이 합쳐져야 발휘된다고 할 수 있다.

 

뒷부분은 상대성 이론을 들 수 있다. 뉴턴 역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론. 이렇게 이 책은 상상력을 한정짓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 칙센트미하이의 이론을 빌려 상상력이 발휘되는 네 가지 조건을 이야기한다. 새겨들을 만하다.

 

비판적으로 읽고 이해한다. 이때 비판은 분석적 평가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내용과 연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247쪽)

 

집요하게 문제에 도전한다(249쪽)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진 일이 아님을, 정말로 집요하게 고민하고 정리하고 여러 시행착오에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서 이루어졌음을 알려주고 있다.

 

주의 깊게 관찰한다.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현상과 이론에 대한 지식에서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측면에 주목할 줄 알았던 것이라고 한다. (252쪽)

 

다양한 자원을 종합한다(254쪽)

 

이 네가지 조건에 대해 읽으면서 세종을 생각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게 되는 과정이 상상력의 이 네가지 조건과 어쩌면 이리도 잘 맞을 수 있는지... 그렇다. 세종이 한글을 어느 순간, 예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야담식으로 전해지던 볼일을 보던 중 문틀을 보고 생각해냈다는 그런 말처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세종은 기존에 쓰인 문자인 한자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말과 그를 표현하는 문자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분석적 사고를 하고, 삶과 연관지을 수 있었다는 것.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하면서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 과정에서 홀로 하지 않고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 집현전 학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왕세자와 왕자, 공주 그리고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신미대사 등등... 또 중국의 학자 등 다양한 자원들을 종합하는 것이다.

 

그러니 세종은 상상력이 넘치는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문자를 넘어서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이 책은 과학에서 말하는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문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적용할 수가 있다. 그만큼 상상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몇몇 문장들 속에서 우리 사회를 생각할 수 있다. 그 문장들을 보자.

 

항상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접근 방식을 검토하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자신에게 유용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적절하게 '변형'해서 가져다 쓰는 연구 태도가 필요합니다. ... 그런 의미에서, 어렸을 때부터 다른 분야는 무시하고 수학이나 과학만 공부시키는 (물론 그것만 하고 싶어 하는 학생에게 억지로 다른 분야의 공부를 강요해도 안 되겠지만) 영재교육이 바람직한가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200-201쪽)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되지 않는 과학연구가 무가치하다는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과학연구는 '문명의 이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나 예술의 결과물이 그러하듯 인류의 지적·문화적 성취이기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226쪽)

 

우리가 '탈추격형' 과학기술 개발, 즉 주어진 정답을 쫓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와 답을 동시에 제시하는 방식으로 과학기술을 개발하려면,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성공적으로 실패하는' 방법을 먼저 익혀야 합니다. (269-270쪽)

 

영재교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글과 과학연구가 꼭 실용적이어야 하나 하는 문제제기와 앞으로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과학기술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다른 존재와 함께 지내면서 자신과 다른 관점을 익히는 것, 그런 다름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이 꼭 실용적이지 않아도 예술처럼 자신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집요하게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 그래서 실패를 하더라도 패배자, 낙오자가 되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이것이 상상력을 살릴 수 있는 사회이지 않을까 싶다. 상상력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넘어선다는 것. 함께 하는 삶이 필요함을 이 책이 잘 말해주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일 것 같은 상상력이 사회적일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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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 그 생태와 문화의 역사
리처드 루트위치 지음, 윤철희 옮김 / 연암서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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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우리가 많이 먹는 음식을 제공하는 동물이기도 하지만, 인수공통감염병의 원인이 돼지에게 있다는 글을 읽고 돼지에 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기대에는 어긋난 책이다. 그냥 돼지의 생태와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돼지가 우리 인류와 꽤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다는 것. 또 돼지의 몸과 인간의 몸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 그래서 돼지를 가지고 실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 여기에 돼지가 생각보다는 똑똑하다는 것.

 

개가 할 수 있는 일은 돼지도 모두 할 수 있다는 것. 서커스 묘기부터, 양치기, 심지어는 애완동물로 키워지기까지 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돼지가 청결한 동물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는 자주 강조하고 있기도 하고. 사람들이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서 그렇지 돼지는 개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이 배설할 공간을 정해 볼일을 본다고 하니.

 

하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어떻게 돼지를 통해서 우리 인류에게 감염병들이 전파되는가 하는 점들을, 즉 돼지의 질병도 좀 많이 다뤄주었으면 하는 거였는데. 그 점이 많이 아쉽다.

 

돼지는 앓지 않을지 몰라도 돼지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걸릴 수도 있는 질병도 꽤 많을 테고, 돼지의 피를 빤 모기가 사람을 물었을 때 감염되는 질병도 있을텐데... 여기에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이, 특히 박쥐의 터전에 인간이 진출하면서 박쥐와 함께 지내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박쥐에게서 인간으로는 질병이 직접 전파가 되기는 힘들어도, 박쥐에게서 돼지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전파되기는 무척 쉽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돼지의 생태와 문화에 대해서 중요한 사항을 잘 정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돼지를 음식을 제공하는 동물로만 보지 않게 하고 있고, 또 읽으면서 영화 [옥자]가 생각나기도 했으니... 영화 [옥자]에서 옥자는 살아남아 시골에서 소녀와 함께 잘 살고 있지만, 더불어 새끼 돼지도 한 마리 데리고 와 함께 살게 됐지만... 별 생각 없이 그 장면을 보았는데, 이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했다.

 

대부분의 포유동물 및 다른 모든 가축과 달리, 암퇘지는 새끼들을 핥아서 물기를 닦아주지 않는다. 새끼돼지는 털가죽이 없어서 몸이 더 빨리 마르므로 어미돼지가 핥는 건 불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어미가 핥아주지 않기 때문에 어미와 새끼 사이의 유대감이 크게 형성되지 않고, 그래서 암퇘지가 다른 암퇘지가 낳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일이 더 흔해지고 암퇘지는 다른 암퇘지가 낳은 새끼들을 기르는 걸 더 쉽게 받아들인다. (94-95쪽)

 

이렇게 돼지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그러나 간략하게 잘 알려주고 있다. 그냥 음식을 제공하는 동물로서의 돼지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동물로서 돼지를 인식하게 해주고 있다. 그러니 공장식 축산에 대해서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돼지도 생명체로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주변에서 돼지를 만나기는 힘들다.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서 멧돼지가 도심에 출몰했다는 이야기로 접하거나, 구제역이나 아프리카 돼지열병이라는 질병으로 접하거나, 아니면 정육점에서 고기가 된 돼지를 만날 뿐인데...

 

예전에는 쉽게 접하는 것이 돼지였다는 것, 서민들에게는 특히 흔히 키울 수 있는 동물이었다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돼지 역시 생명체라는 것,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비록 우리가 살기 위해서 죽일 수밖에 없지만 그때까지는 생명체로서 존중해야 할 만큼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덧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48쪽에... 돼지는 인간과 달리 아래턱을 위아래로만 움직일 수 있다. 엄니가 있는 탓에 턱을 수평적으로 움직이는 데에는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돼지는 턱을 수직방향으로만 움직여 식사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 결과로 씹는 데에는 제약이 따랐고, 이런 제약은 지저분하게 먹는 결과로 이어졌다.

54쪽에는... 돼지의 턱은 1차원으로만 움직인다. 그 탓에 돼지는 지저분하게 먹을 수밖에 없다. 습기가 있는 먹이일 경우는 특히 그렇다. 돼지는 턱을 위아래로 움직일 수 없는 까닭에 먹이를 소량씩 즐길 수가 없다. 이게 입을 벌리고 먹는 성향과 결합하면서 볼썽사나운, 가관이라 할 식사시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54쪽의 내용 중에 턱을 '위아래로 움직일 수 없는'이 '위아래로만 움직일 수 있는'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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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의 배신 - 편리함은 어떻게 인류를 망가뜨리는가
바이바 크레건리드 지음, 고현석 옮김, 박한선 해제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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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티 응우옌 킴이 쓴 [세상은 온통 화학이야]에 나오는 구절 때문에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다. 그 책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제2의 흡연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책 제목은 '의자의 배신'이다.

 

의자, 우리가 앉아 있는,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존재 아니던가. 그런데 의자가 배신을 한다는 것은 편리함보다는 위험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물론 이 책 영어 제목인 'Primate Change'는 의자의 배신이 아니다. '영장류의 변화 또는 지극한 변화(455쪽)'라고 해석이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우리들 몸을 변화시켰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의자로 대변되는 우리들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 제목을 '의자의 배신'으로 한 것은 '영장류의 변화'나 '지극한 변화'보다는 훨씬 더 잘 이 책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 의자의 배신 그러면 왠지 읽고 싶어지지 않는가.

 

편하라고 있는 의자가 배신을 한다니, 그렇다면 결국 현대인의 편리한 생활이 우리 몸에 위해를 가한다는 뜻인데, 이 책은 거기서 더 나아간다. 현대만을 다루지 않는다. 인간 역사 전반을 다룬다. 인간 역사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 몸에 어떤 건강상의 위험이 닥쳤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이런 학문을 '진화 의학'이라고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구석기 시대, 수렵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인간들은 몸의 활동량이 적을 수가 없었다. 그런 시대에 맞게 인간 몸이 진화되었다고 한다. 진화란 몇백, 몇천, 몇만 년에 걸쳐 일어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 우리 유전자 또는 우리 몸을 변화시킨다. 그러니 문명 생활을 하던 인간들이 겨우 몇만 년의 변화로 몸을 그에 맞게 변화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과 몸의 진화가 불일치하는 현상. 그래서 결국 우리 몸은 앓게 된다.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움직임이라고 한다. 움직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발을 움직여 돌아다니는 것. 걷기의 부족. 전체적인 활동량의 감소.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걷기라고 할 수 있다.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점점 줄어든다. 의도적으로 걷지 않으면 그나마 걸을 수 있는 시간도 없다. 사무실에서 앉아 일하고, 이동을 할 때는 차로 움직이고, 건물 내에서는 최소한의 이동 거리만이 존재할 뿐더러, 층을 옮길 때에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로 움직이니 활동량이 너무도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이런 활동량을 채우기 위해 헬스클럽에 다니거나 요가와 같은 다른 운동을 돈을 들여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것은 바로 걷기라고 한다. 그것도 조금 빠르게 걷는다면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 점을 발부터 턱, 허리, 손까지 인류의 역사와 우리 몸이 지닌 구조, 그리고 현대로 올수록 겪게 되는 질병을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여기에 친절하게도 어떻게 하면 우리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 아주 간단한 방법도 제시해주고 있으니, 여러모로 참조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항들을 몇 개 옮겨 적어 본다.

 

볼프의 법칙은 '뼈의 밀도는 이용하지 않으면 잃게 된다'는 것이며, 데이비스의 법칙은 연조직에서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현대적인 삶을 사는 우리에게 이두박근 위축 외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해 준다. 이 법칙은 관절 가동 범위나 인대와 힘줄의 에너지 저장 능력도 사용하지 않으면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87쪽)

 

한편 돼지나 닭에서는 새로운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이 아주 작다. 하지만 이 작은 가능성도 수십억 번 겹치면 '어쩌면'이 '언젠가'로 바뀌어서 실제로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동물은 이렇게 집중적으로 키워지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보면 하나의 돌연변이인 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자유롭게 퍼져 나가는 유행병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148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래, 이렇게 우리는 언젠가 대유행이 될 감염병의 위험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경고도 나왔다. 그럼에도 우리들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지금 팬데믹이 일어난 코로나19를 보라.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들 생활방식이 초래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 점을 알고, 이에 대한 백신, 치료제도 중요하지만, 삶의 방식을 돌아보고, 우리들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병행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의 몸에 나쁘다. 오랜 시간 가만히 있으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이는 대사 폐기물이 근육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일반적인 생각은 고관절 굴근이라는 근육을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287쪽)

 

앉아서 일하는 45-64세 사람들이 은퇴 후 요양원에 들어갈 확률이 40퍼센트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나는 러닝 머신에서 걸으면서 아이패드를 보기 시작했다. (299쪽)

 

아이들을 더 자유롭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교사들은 창의적이거나 혁신적이라고, 또는 순진하거나 관대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앉아 있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299쪽)

 

이 부분, 아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 속에서 떠오른 작품은 김기택의 [사무원]이란 시집이다. 이 시집은 현대인의 생활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 종일, 아니 평생을 일만 하는 사람을 '사무원(김기택. 사무원. 창비. 2010년 초판 10쇄.19-21쪽)'이라고 하는데 김기택 시를 보면 그 점이 너무도 슬프게 잘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사무원은 결국 '화석(같은 시집. 58-59쪽)'이 된다. 왜 그들은 새들보다도 땅을 적게 밟기 때문이다. 그만큼 걷지 않는다.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같은 시집. 75쪽)'

 

와! 역시 시인은 시인이다! 이렇게 진화 의학에서 각종 사례를 들어 말하는 것을 시인의 직관으로 표현하고 있다니... 김기택 시인의 [사무원]은 [의자의 배신]과 함께 꼭 읽어야 할 시집이다.

 

이렇게 우리는 사무원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학교에서 조용히 앉아 있기를 강요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 수업 시간에 문제를 일으킨 학생에게 주는 벌이 교실 뒤에 서 있거나, 또는 복도에 나가게 하는 것이었겠는가.

 

앉아 있는 것은 모범생, 서 있는 것은 문제 학생이라는 이분법이 우리나라 교육에 너무도 오래동안 자리를 잡았고, 이것이 결국 우리들을 사무원처럼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현대인의 표상인 것처럼 여기게 하지 않았던가. 섬뜩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걷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기적의 치료제이다. 걷기는 수백만 년 전 초원에서 살던 종들과 우리를 연결하는 일종의 고리이며, 인간의 모든 면에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걷기는 전만으로 인해 허리에 부하가 걸리는 현상을 줄여 주며 디스크 건강을 증진시킨다. 이는 큰 의미를 지닌다. 디스크가 크고 건강할수록 골연관절을 더 잘 보호하기 때문이다. (399쪽)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병원 몇 개를 짓는 것보다 우리들 건강에 더 좋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어디 그런가? 우리나라 도시에 걸어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을 얻기가 어디 쉬운가? 직장에 가기 위해서 걸어서 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겠지만,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걸을 테니, 가까운 학교조차도 버스 정류장으로 한 정거장만 넘으면 버스를 타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이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성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부분에서 지리산 자락에 있는 간디 학교가 생각났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 그런데 이 학교를 설립한 양희규에 의하면 기숙사는 학교에서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이 등교하면서 지리산 자락이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해서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했는데, 이것과 더불어 건강 측면에서도 이는 너무도 훌륭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양희규, 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가야넷)

 

앞으로 몇십 년 안에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시대 이전의 두 배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그로 인해 지구가 받을 영향을 논하기는 너무 이르지만, 이미 그로 인해 단백질과 미네랄 농도가 떨어지고 있으며 탄수화물 범벅인 먹거리에 당과 녹말이 더 첨가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인류세에 높아지는 이산화탄소에 의해 먹이사슬 밖으로 축출되고 있는 미량 영양소와 이를 갈망하는 인간의 식욕이 앞으로 비만을 얼마나 널리 퍼뜨릴지 궁금하다. (356쪽)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단순히 온실가스의 증가, 그래서 기후 위기를 초래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기후위기가 심각한 만큼 우리들 먹을거리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우리에게 주지만,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그 많아진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다른 영양소들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겉으로는 더 크고 색깔도 좋은 식물들, 열매들이 맺어지지만, 내용물은 점점 없어지는, 영양소가 훨씬 줄어들어 우리들로 하여금 더 많이 먹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이거야 원.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기후위기와 더불어 식량을 통한 우리들의 건강까지도 위협하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경각심을 지녀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들 삶이 지속될 수가 없다.

 

과학기술, 의학기술의 힘으로 지속되더라도 건강하지 않은, 병원의 삶, 요양원의 삶, 즉 연명하는 삶밖에는 안 될 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 생활방식을 다시 검토하자. 아니, 나부터 내 생활방식을 검토하고 바꾸려고 노력해야겠다.

 

가능하면 걷고, 걸어야겠다. 의자나 소파에 몸을 온종일 맡기는 일을 삼가야겠다. 무엇보다도 내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이런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적어도 교육 현장에서는. 에고, 책을 많이 읽으리고 그렇게 강요하는 교육 관료들, 정작 본인들은 이런 책을 읽는지 모르겠다. 너무도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교육 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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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화학이야 - 유튜브 스타 과학자의 하루 세상은 온통 시리즈
마이 티 응우옌 킴 지음, 배명자 옮김, 김민경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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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 자런이 쓴 책 '랩걸'을 읽다가 화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단 생각을 했다. 화학이 우리들 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화학에 대해서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들 삶은 화학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가 입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등등 화학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화학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수포자(수학포기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는 과학을 포기했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수포자는 결국 과포자이고, 그래서 과학은 우리들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이 우리들 삶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우리들 삶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과학에서 점점 멀어지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학교 교육을 받을수록 몇몇을 제외하고는 과학과는 담을 쌓고 살게 되는데...

 

담을 쌓는다고 과학이 우리 삶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하루 생활을 이렇게 화학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니... 경이로운 책이다. 그리고 과학에 관심을, 특히 화학에 관심을 갖게 한다.

 

유튜브로 화학을 알리는 일을 한다고 하는데,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의 화학자 마이 티 응우엔 킴의 책이 쓴 이 책은 화학이 이토록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의 끝부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학 스피릿을 널리 퍼트리는 것이 나의 진짜 미션이다. (294쪽) ... 나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과학 스피릿이라는 단어를 썼다.

첫째, 세계를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둘째, 사물 내부의 아름다움을 알아본다. 셋째, 무작위 대조 시험을 기뻐한다. 넷째, 충족되지 않는 호기심 갈증을 느낀다. 다섯째, 복합성을 기뻐하고 단순한 대답을 거부한다. 여섯째, 숫자와 사실을 사랑한다. (295-296쪽)

 

이게 어디 과학자만이 지녀할 자세일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자세 아닌가. 그러므로 이런 과학 스피릿은 우리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 점을 자신이 하루 동안 만나게 되는 화학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렇게 만나는 화학 중에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었던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한다는 문제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불소가 함유된 치약을 쓰는 것에 대해선 환경단체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수돗물에 일률적으로 불소를 첨가한다는 것을 반대했는데... 화학자가 본 불소에 대한 생각은 바로 이렇다.

 

치약의 불화물 함유량은 철저히 통제되어, 효력을 내되 안전한 농도에 맞춰진다. ... 단, 수돗물에 이 정도의 농도로 불화물이 들어 있으면 위험하다. 명심하자. 농도는 언제나 맥락을 봐야 한다. 양치질의 경우 입안에 한정되고, 치약의 양을 조절할 수 있으며, 대부분 다시 뱉어낸다. (63쪽)

 

수돗물은 그렇지 않다. 치약보다 낮은 함유량을 넣어도 농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러니 수돗물에 불화물을 넣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는 지자체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논쟁이 일었을 때 우리나라 화학자들이 어떤 논리를 제공했는지 궁금하다. 물론 마이의 이 주장도 검증할 필요가 있지만. 마이 자신의 주장에 의하면 말이다.

 

여기에 놀랄 만한 이야기를 읽고, 처음 듣는 말은 아니지만,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제2의 흡연이다'라는 말(83쪽)이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한다.

 

오래 앉아 있는 건 운동을 하지 않는 수동적 행위일 뿐 아니라 건강을 해치는 적극적 행위이기도 하다. (83쪽)

 

운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체육 시간을 대폭 늘리지 않았던가. 체육 활동을 주당 4시간 이상은 하라고 하는데... 이것이 너무도 당연함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알게 됐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학생들에게 운동을 권장하고 있나? 코로나19로 쉬는 시간마저 없앤 학교가 많지 않은가. 하루 5-6시간을 꼼짝않고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강요하는 학교라니... 이 책을 읽으니 이건 정말 문제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의 운동량, 한번 진지하게 연구해 봐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들이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단지 학생만이 아니다. 사무원들도 그렇다. 직장인들도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운동할 시간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화학이야기에서 이렇게 운동까지 나아갈 수 있다니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 든다.

 

또 이건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반려 동물과 지내지 않아서 무관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개나 고양이에게 초콜릿을 먹여서는 안 된다는 것. 초콜릿에 들어 있는 테오브로민이라는 성분을 개나 고양이는 분해하기가 많이 힘들다는 것.

 

개에게는 초콜릿이 아주 위험하다. 테오브로민을 매우 느리게 분해하기 때문에, 아주 소량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다. 우리 몸은 독성이 있는 각성 물질을 무해한 다른 분자로 재빨리 바꾸지만, 개의 테오브로민 화학은 그렇게 민첩하지 못해서 분자가 체내에 쌓인다. ... 고양이에게도 똑같이 위험하다. (237쪽)

 

반려 동물과 살면서 그들을 우리 처지에서만 판단하고 대우하면 안 된다는 것을 화학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화학은 우리들 삶과 밀접하다.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새상은 온통 화학이야]다. 화학 아닌 것이 없다. 하긴 우리 몸 자체도 화학이니... 하여 화학은 내 삶을 위해서도 알 필요가 있다.

 

알아야 한다고, 그게 우리 삶을 더욱 잘살게 해준다고 마이는 말하고 있다. 유튜브는 보지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 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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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학교 안의 인문학 1~2 세트 - 전2권 학교 안의 인문학
오승현 지음 / 생각학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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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

 

  거울, 펜과 노트, 교복, 성적표, 책상과 의자, 급훈, 가방, 출석부, 시계, 태극기, 교과서, 게시판

 

  총 12개 사물이다. 그냥 사물이 아니라 학생들과 늘 함께 있는 학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 존재에 의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규정당하고 있는지, 아무런 생각없이 지낼 수도 있지만, 이들에 대해서 생각하면 우리들 삶에 더 깊이 들어갈 수가 있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들이지만, 그 사물들은 바로 우리들 삶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거울은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우리를 비춰주는 역할을 하니까 말이다. 단지 비춰주는 역할을 해서 우리를 반성하게 하면 좋은데, 비교를 하게 만들어 삶을 힘든 지경에 이르게 한다. 그게 문제다.

 

이 중에 학교에서 지금은 없어진 것이 무엇일까 찾아보니, 세상에 없다. 게시판 정도가 없어졌을라나? 대부분의 학교에 사물함이 들어오고 게시판을 만들 공간이 부족해지다 보니, 게시판은 아주 적게 축소되거나 없어지거나 했다. 그것뿐이다.

 

또 있나? 급훈? 내가 알기론 많은 학교에서 없어졌다.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은 급훈도 있었으니, 세상에 그런 급훈을 버젓이 걸어놓고 교육이랍시고 했다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 책에서는 그래도 유교 윤리에 가까운, 전근대적인 급훈을 예로 들어 비판하고 있지만, '미팅할래? 미싱할래?'와 같은 노동을 무시하는 급훈도 있었으니... 이런 것이 학교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반교육적이다. 그러니 이런 것들은 사라져야 한다.

 

한데 없어지지 못한 것들, 아직도 살아남은 것들, 한때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한 것들, 교복. 성적표 등등. 그래 이것들을 통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이 아마 학교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늘 만났던 이런 존재들을 통해 각인되었을 수도 있다. 그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곁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148쪽. 오찬호가 쓴 [우리는 차별에 반성합니다]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 오찬호가 쓴 책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다. 반성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 [동주]의 마지막 부분에 송몽규가 절규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말. 그래 차별에 반성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책 제목도 또 내용도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다. 그래서 더 슬프게 읽었던 책이다. 제목을 쓰는데, 작가인지 또는 편집자인지의 희망이 들어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214쪽. 한국에서는 만 19세가 되어야 투표를 할 수 있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책이 2019년에 출판이 되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투표 연령은 만18세로 하향 조정이 되었다. 이제는 생일이 지난 고3 학생들도 투표를 할 수 있다. 2020년 1월에 선거법이 개정되었다 *****

 

 

2권

교실, 도서관, 음악실· 미술실· 체육관, 탈의실, 교문, 운동장, 복도, 교무실, 화장실, 식당, 계단, 학교의 안팎

 

이번에는 공간이다. 학교 건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너무도 획일적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어느 도시를 여행해도 어느 건물이 학교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다 똑같기 때문이다.

 

이런 학교에서 창의성을 기른다고? 답답한 노릇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새겨들어야 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건축계의 금언이 있다. 오늘날 학교 건축은 학교 교육의 딱딱함, 획일성 등을 정확히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9쪽)

 

'~인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반영한 것이다라고 해야 옳다. 학교의 건축에서 창의적인 학생이 나온다는 것은, 체제에 반항하는 특출한 개인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도대체 이렇게 획일적인 건축물에서 무엇을 바라나? 아무리 발달한 기계들을 들여와도, 학교의 틀인 건축을 바꾸지 않으면 그게 그거인 교육이 될 가능성이 많다. 여기에 필요한 시설들이 다 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한 12개의 시설 또는 공간 중에 여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특히 탈의실은 없는 학교가 많다. 있더라도 형식적인 학교도 많고.

 

체육복으로 갈아 입을 때, 교실에서 갈아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탈의실은 있더라도 유명무실하다. 너무 멀리 있어 가기가 힘들다. 탈의실보다 더 심한 건 몸을 씻을 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한여름에 체육 활동을 하고 씻을 장소가 없어서 땀난 몸 그대로 다음 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이라니.

 

체육이 끝나고 다음 시간까지 10분. 씻을 장소가 있어도 씻을 시간이 없다. 시간 역시 너무도 획일적이어서 교과목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탈의실과 샤워실이 없는 것이 정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교육 현실에서는.

 

계단 역시 마찬가지고. 폭력이다. 계단은. 몸이 멀쩡한 사람에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리를 다치거나 다른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계단은 그야말로 거대한 장벽이다. 엘리베이터가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어야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우선 구석진 곳에 있고, 또 잠가 놓는 경우가 많아, 이용하려면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렇게 누구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한 것이 학교 현실이다.

 

이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학교 안의 인문학이라고 하지만, 이건 인문학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당연히 갖추어야 할 것인데, 학교라면, 적어도 교육을 하는 장소라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우선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인데도 나 몰라라 한 것이 교육 당국들의 행태 아니었나 싶다. 오히려 다른 데는 돈을 물 쓰듯 하면서,...

 

머리말을 계속 인용한다. 너무도 가슴이 아픈 말이기 때문에.

 

학교는 교사와 학생의 삶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깨달음으로 전해지는, 소통과 성장의 배움터여야 한다. 삶과 앎이, 생활과 배움이 겉돌지 않고 스미고 짜이는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 (11쪽)

 

이런 배움터가 되기 위해선 학교에 있는 시설들, 건물들이 바뀌어야 한다. 매일매일 생활하고 있는 장소가 학생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바뀌어야 하는데, 지독하게 바뀌지 않는 학교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6-2016)는 [부의 미래]에서 "기업이 시속 100마일로 가장 빠르게 변한다면, 비정부단체는 90마일, 가족은 60마일, 노동조합은 30마일, 관료조직은 25마일, 그리고 학교는 10마일의 속도로 변한다"고 했어. (115쪽) 

 

참, 마음이 아픈 지적이다. 그럼에도 학교는 여전하다. 변하지 않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원격수업이다 뭐다, 이 참에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컴퓨터 또는 온라인 화상 수업을 하겠다는 것 말고는 없다.

 

오히려 이 참에 학교 건축이라는 틀을 바꾸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숫자도 과감하게 줄여 밀집도를 낮추고, 지나치게 많은 수업량도 줄이고, 학교에 학생들을 위한 시설들을 더 많이 들여오고, 자율적으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은 없다. 그냥 온라인 화상 수업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구조가 바뀌지 않고는 교육 혁신은 없는데... 그러니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학부모, 학생들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틀은 그냥 놔두고 예산을 좀더 줘서 혁신을 한다고 하는데, 무엇이 혁신이 되겠는가? 과감하게 학교라는 틀부터 바꾸는 것이 혁신일 텐데...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대다수가 거치는 학교라는 공간이 어쩌면 교육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공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니 말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썼지만, 사실 이런 책은 교육 관료들이 읽어야 한다. 학교에서 관리자라고 하는 교장, 교감부터, 교육청 관료들, 그리고 교육부 장관, 여기에 거의 제왕적 권력을 쥐고 있는, 장관들이 대통령이 입만 바라보고 있는 경우도 많으니 대통령이 읽어야 한다.

 

학생들 수준에 맞는 책이 아니라 그들이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 교육관료들은 토플러의 말에서처럼 25마일의 속도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관료이기 때문에 이들은 채 5마일로 안 되는 속도록 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학생들도 당연히 읽어야 한다. 교사들도. 그리고 그들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변하기를 기다리면 절대로 학교는 변하지 않는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지 깨닫는 공부. 그래서 함께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 공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아니, 읽어야만 한다.

 

*****37쪽 유대계 독일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라고 하는데,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나고 자랐으니, 체코 소설가라고 해야 하지 않나? 다른 자료를 찾아보면 카프카가 살던 당시의 나라를 살려 오스트리아-헝가리 국적의 소설가라고 하는데... 독일 소설가라고 하는 것은 좀 그렇다. 물론 카프카가 독일어로 소설을 썼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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