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학교 안의 인문학 1~2 세트 - 전2권 학교 안의 인문학
오승현 지음 / 생각학교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권

 

  거울, 펜과 노트, 교복, 성적표, 책상과 의자, 급훈, 가방, 출석부, 시계, 태극기, 교과서, 게시판

 

  총 12개 사물이다. 그냥 사물이 아니라 학생들과 늘 함께 있는 학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 존재에 의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규정당하고 있는지, 아무런 생각없이 지낼 수도 있지만, 이들에 대해서 생각하면 우리들 삶에 더 깊이 들어갈 수가 있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들이지만, 그 사물들은 바로 우리들 삶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거울은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우리를 비춰주는 역할을 하니까 말이다. 단지 비춰주는 역할을 해서 우리를 반성하게 하면 좋은데, 비교를 하게 만들어 삶을 힘든 지경에 이르게 한다. 그게 문제다.

 

이 중에 학교에서 지금은 없어진 것이 무엇일까 찾아보니, 세상에 없다. 게시판 정도가 없어졌을라나? 대부분의 학교에 사물함이 들어오고 게시판을 만들 공간이 부족해지다 보니, 게시판은 아주 적게 축소되거나 없어지거나 했다. 그것뿐이다.

 

또 있나? 급훈? 내가 알기론 많은 학교에서 없어졌다.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은 급훈도 있었으니, 세상에 그런 급훈을 버젓이 걸어놓고 교육이랍시고 했다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 책에서는 그래도 유교 윤리에 가까운, 전근대적인 급훈을 예로 들어 비판하고 있지만, '미팅할래? 미싱할래?'와 같은 노동을 무시하는 급훈도 있었으니... 이런 것이 학교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반교육적이다. 그러니 이런 것들은 사라져야 한다.

 

한데 없어지지 못한 것들, 아직도 살아남은 것들, 한때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한 것들, 교복. 성적표 등등. 그래 이것들을 통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이 아마 학교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늘 만났던 이런 존재들을 통해 각인되었을 수도 있다. 그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곁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148쪽. 오찬호가 쓴 [우리는 차별에 반성합니다]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 오찬호가 쓴 책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다. 반성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 [동주]의 마지막 부분에 송몽규가 절규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말. 그래 차별에 반성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책 제목도 또 내용도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다. 그래서 더 슬프게 읽었던 책이다. 제목을 쓰는데, 작가인지 또는 편집자인지의 희망이 들어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214쪽. 한국에서는 만 19세가 되어야 투표를 할 수 있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책이 2019년에 출판이 되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투표 연령은 만18세로 하향 조정이 되었다. 이제는 생일이 지난 고3 학생들도 투표를 할 수 있다. 2020년 1월에 선거법이 개정되었다 *****

 

 

2권

교실, 도서관, 음악실· 미술실· 체육관, 탈의실, 교문, 운동장, 복도, 교무실, 화장실, 식당, 계단, 학교의 안팎

 

이번에는 공간이다. 학교 건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너무도 획일적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어느 도시를 여행해도 어느 건물이 학교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다 똑같기 때문이다.

 

이런 학교에서 창의성을 기른다고? 답답한 노릇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새겨들어야 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건축계의 금언이 있다. 오늘날 학교 건축은 학교 교육의 딱딱함, 획일성 등을 정확히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9쪽)

 

'~인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반영한 것이다라고 해야 옳다. 학교의 건축에서 창의적인 학생이 나온다는 것은, 체제에 반항하는 특출한 개인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도대체 이렇게 획일적인 건축물에서 무엇을 바라나? 아무리 발달한 기계들을 들여와도, 학교의 틀인 건축을 바꾸지 않으면 그게 그거인 교육이 될 가능성이 많다. 여기에 필요한 시설들이 다 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한 12개의 시설 또는 공간 중에 여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특히 탈의실은 없는 학교가 많다. 있더라도 형식적인 학교도 많고.

 

체육복으로 갈아 입을 때, 교실에서 갈아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탈의실은 있더라도 유명무실하다. 너무 멀리 있어 가기가 힘들다. 탈의실보다 더 심한 건 몸을 씻을 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한여름에 체육 활동을 하고 씻을 장소가 없어서 땀난 몸 그대로 다음 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이라니.

 

체육이 끝나고 다음 시간까지 10분. 씻을 장소가 있어도 씻을 시간이 없다. 시간 역시 너무도 획일적이어서 교과목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탈의실과 샤워실이 없는 것이 정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교육 현실에서는.

 

계단 역시 마찬가지고. 폭력이다. 계단은. 몸이 멀쩡한 사람에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리를 다치거나 다른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계단은 그야말로 거대한 장벽이다. 엘리베이터가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어야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우선 구석진 곳에 있고, 또 잠가 놓는 경우가 많아, 이용하려면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렇게 누구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한 것이 학교 현실이다.

 

이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학교 안의 인문학이라고 하지만, 이건 인문학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당연히 갖추어야 할 것인데, 학교라면, 적어도 교육을 하는 장소라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우선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인데도 나 몰라라 한 것이 교육 당국들의 행태 아니었나 싶다. 오히려 다른 데는 돈을 물 쓰듯 하면서,...

 

머리말을 계속 인용한다. 너무도 가슴이 아픈 말이기 때문에.

 

학교는 교사와 학생의 삶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깨달음으로 전해지는, 소통과 성장의 배움터여야 한다. 삶과 앎이, 생활과 배움이 겉돌지 않고 스미고 짜이는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 (11쪽)

 

이런 배움터가 되기 위해선 학교에 있는 시설들, 건물들이 바뀌어야 한다. 매일매일 생활하고 있는 장소가 학생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바뀌어야 하는데, 지독하게 바뀌지 않는 학교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6-2016)는 [부의 미래]에서 "기업이 시속 100마일로 가장 빠르게 변한다면, 비정부단체는 90마일, 가족은 60마일, 노동조합은 30마일, 관료조직은 25마일, 그리고 학교는 10마일의 속도로 변한다"고 했어. (115쪽) 

 

참, 마음이 아픈 지적이다. 그럼에도 학교는 여전하다. 변하지 않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원격수업이다 뭐다, 이 참에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컴퓨터 또는 온라인 화상 수업을 하겠다는 것 말고는 없다.

 

오히려 이 참에 학교 건축이라는 틀을 바꾸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숫자도 과감하게 줄여 밀집도를 낮추고, 지나치게 많은 수업량도 줄이고, 학교에 학생들을 위한 시설들을 더 많이 들여오고, 자율적으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은 없다. 그냥 온라인 화상 수업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구조가 바뀌지 않고는 교육 혁신은 없는데... 그러니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학부모, 학생들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틀은 그냥 놔두고 예산을 좀더 줘서 혁신을 한다고 하는데, 무엇이 혁신이 되겠는가? 과감하게 학교라는 틀부터 바꾸는 것이 혁신일 텐데...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대다수가 거치는 학교라는 공간이 어쩌면 교육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공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니 말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썼지만, 사실 이런 책은 교육 관료들이 읽어야 한다. 학교에서 관리자라고 하는 교장, 교감부터, 교육청 관료들, 그리고 교육부 장관, 여기에 거의 제왕적 권력을 쥐고 있는, 장관들이 대통령이 입만 바라보고 있는 경우도 많으니 대통령이 읽어야 한다.

 

학생들 수준에 맞는 책이 아니라 그들이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 교육관료들은 토플러의 말에서처럼 25마일의 속도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관료이기 때문에 이들은 채 5마일로 안 되는 속도록 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학생들도 당연히 읽어야 한다. 교사들도. 그리고 그들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변하기를 기다리면 절대로 학교는 변하지 않는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지 깨닫는 공부. 그래서 함께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 공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아니, 읽어야만 한다.

 

*****37쪽 유대계 독일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라고 하는데,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나고 자랐으니, 체코 소설가라고 해야 하지 않나? 다른 자료를 찾아보면 카프카가 살던 당시의 나라를 살려 오스트리아-헝가리 국적의 소설가라고 하는데... 독일 소설가라고 하는 것은 좀 그렇다. 물론 카프카가 독일어로 소설을 썼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