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의 배신 - 편리함은 어떻게 인류를 망가뜨리는가
바이바 크레건리드 지음, 고현석 옮김, 박한선 해제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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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티 응우옌 킴이 쓴 [세상은 온통 화학이야]에 나오는 구절 때문에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다. 그 책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제2의 흡연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책 제목은 '의자의 배신'이다.

 

의자, 우리가 앉아 있는,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존재 아니던가. 그런데 의자가 배신을 한다는 것은 편리함보다는 위험을 준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물론 이 책 영어 제목인 'Primate Change'는 의자의 배신이 아니다. '영장류의 변화 또는 지극한 변화(455쪽)'라고 해석이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우리들 몸을 변화시켰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의자로 대변되는 우리들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 제목을 '의자의 배신'으로 한 것은 '영장류의 변화'나 '지극한 변화'보다는 훨씬 더 잘 이 책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 의자의 배신 그러면 왠지 읽고 싶어지지 않는가.

 

편하라고 있는 의자가 배신을 한다니, 그렇다면 결국 현대인의 편리한 생활이 우리 몸에 위해를 가한다는 뜻인데, 이 책은 거기서 더 나아간다. 현대만을 다루지 않는다. 인간 역사 전반을 다룬다. 인간 역사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 몸에 어떤 건강상의 위험이 닥쳤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이런 학문을 '진화 의학'이라고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구석기 시대, 수렵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인간들은 몸의 활동량이 적을 수가 없었다. 그런 시대에 맞게 인간 몸이 진화되었다고 한다. 진화란 몇백, 몇천, 몇만 년에 걸쳐 일어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오랜 세월 우리 유전자 또는 우리 몸을 변화시킨다. 그러니 문명 생활을 하던 인간들이 겨우 몇만 년의 변화로 몸을 그에 맞게 변화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과 몸의 진화가 불일치하는 현상. 그래서 결국 우리 몸은 앓게 된다.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움직임이라고 한다. 움직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발을 움직여 돌아다니는 것. 걷기의 부족. 전체적인 활동량의 감소.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걷기라고 할 수 있다.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점점 줄어든다. 의도적으로 걷지 않으면 그나마 걸을 수 있는 시간도 없다. 사무실에서 앉아 일하고, 이동을 할 때는 차로 움직이고, 건물 내에서는 최소한의 이동 거리만이 존재할 뿐더러, 층을 옮길 때에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로 움직이니 활동량이 너무도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이런 활동량을 채우기 위해 헬스클럽에 다니거나 요가와 같은 다른 운동을 돈을 들여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것은 바로 걷기라고 한다. 그것도 조금 빠르게 걷는다면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 점을 발부터 턱, 허리, 손까지 인류의 역사와 우리 몸이 지닌 구조, 그리고 현대로 올수록 겪게 되는 질병을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여기에 친절하게도 어떻게 하면 우리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 아주 간단한 방법도 제시해주고 있으니, 여러모로 참조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항들을 몇 개 옮겨 적어 본다.

 

볼프의 법칙은 '뼈의 밀도는 이용하지 않으면 잃게 된다'는 것이며, 데이비스의 법칙은 연조직에서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현대적인 삶을 사는 우리에게 이두박근 위축 외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해 준다. 이 법칙은 관절 가동 범위나 인대와 힘줄의 에너지 저장 능력도 사용하지 않으면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87쪽)

 

한편 돼지나 닭에서는 새로운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이 아주 작다. 하지만 이 작은 가능성도 수십억 번 겹치면 '어쩌면'이 '언젠가'로 바뀌어서 실제로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동물은 이렇게 집중적으로 키워지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보면 하나의 돌연변이인 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자유롭게 퍼져 나가는 유행병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148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래, 이렇게 우리는 언젠가 대유행이 될 감염병의 위험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경고도 나왔다. 그럼에도 우리들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지금 팬데믹이 일어난 코로나19를 보라.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들 생활방식이 초래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 점을 알고, 이에 대한 백신, 치료제도 중요하지만, 삶의 방식을 돌아보고, 우리들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병행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의 몸에 나쁘다. 오랜 시간 가만히 있으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이는 대사 폐기물이 근육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일반적인 생각은 고관절 굴근이라는 근육을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287쪽)

 

앉아서 일하는 45-64세 사람들이 은퇴 후 요양원에 들어갈 확률이 40퍼센트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나는 러닝 머신에서 걸으면서 아이패드를 보기 시작했다. (299쪽)

 

아이들을 더 자유롭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교사들은 창의적이거나 혁신적이라고, 또는 순진하거나 관대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앉아 있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299쪽)

 

이 부분, 아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 속에서 떠오른 작품은 김기택의 [사무원]이란 시집이다. 이 시집은 현대인의 생활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 종일, 아니 평생을 일만 하는 사람을 '사무원(김기택. 사무원. 창비. 2010년 초판 10쇄.19-21쪽)'이라고 하는데 김기택 시를 보면 그 점이 너무도 슬프게 잘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사무원은 결국 '화석(같은 시집. 58-59쪽)'이 된다. 왜 그들은 새들보다도 땅을 적게 밟기 때문이다. 그만큼 걷지 않는다.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같은 시집. 75쪽)'

 

와! 역시 시인은 시인이다! 이렇게 진화 의학에서 각종 사례를 들어 말하는 것을 시인의 직관으로 표현하고 있다니... 김기택 시인의 [사무원]은 [의자의 배신]과 함께 꼭 읽어야 할 시집이다.

 

이렇게 우리는 사무원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학교에서 조용히 앉아 있기를 강요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 수업 시간에 문제를 일으킨 학생에게 주는 벌이 교실 뒤에 서 있거나, 또는 복도에 나가게 하는 것이었겠는가.

 

앉아 있는 것은 모범생, 서 있는 것은 문제 학생이라는 이분법이 우리나라 교육에 너무도 오래동안 자리를 잡았고, 이것이 결국 우리들을 사무원처럼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현대인의 표상인 것처럼 여기게 하지 않았던가. 섬뜩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걷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기적의 치료제이다. 걷기는 수백만 년 전 초원에서 살던 종들과 우리를 연결하는 일종의 고리이며, 인간의 모든 면에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걷기는 전만으로 인해 허리에 부하가 걸리는 현상을 줄여 주며 디스크 건강을 증진시킨다. 이는 큰 의미를 지닌다. 디스크가 크고 건강할수록 골연관절을 더 잘 보호하기 때문이다. (399쪽)

 

걸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병원 몇 개를 짓는 것보다 우리들 건강에 더 좋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어디 그런가? 우리나라 도시에 걸어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을 얻기가 어디 쉬운가? 직장에 가기 위해서 걸어서 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겠지만,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걸을 테니, 가까운 학교조차도 버스 정류장으로 한 정거장만 넘으면 버스를 타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이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성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부분에서 지리산 자락에 있는 간디 학교가 생각났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 그런데 이 학교를 설립한 양희규에 의하면 기숙사는 학교에서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이 등교하면서 지리산 자락이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해서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했는데, 이것과 더불어 건강 측면에서도 이는 너무도 훌륭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양희규, 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가야넷)

 

앞으로 몇십 년 안에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시대 이전의 두 배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그로 인해 지구가 받을 영향을 논하기는 너무 이르지만, 이미 그로 인해 단백질과 미네랄 농도가 떨어지고 있으며 탄수화물 범벅인 먹거리에 당과 녹말이 더 첨가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인류세에 높아지는 이산화탄소에 의해 먹이사슬 밖으로 축출되고 있는 미량 영양소와 이를 갈망하는 인간의 식욕이 앞으로 비만을 얼마나 널리 퍼뜨릴지 궁금하다. (356쪽)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단순히 온실가스의 증가, 그래서 기후 위기를 초래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기후위기가 심각한 만큼 우리들 먹을거리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우리에게 주지만,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그 많아진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다른 영양소들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겉으로는 더 크고 색깔도 좋은 식물들, 열매들이 맺어지지만, 내용물은 점점 없어지는, 영양소가 훨씬 줄어들어 우리들로 하여금 더 많이 먹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이거야 원.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기후위기와 더불어 식량을 통한 우리들의 건강까지도 위협하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경각심을 지녀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들 삶이 지속될 수가 없다.

 

과학기술, 의학기술의 힘으로 지속되더라도 건강하지 않은, 병원의 삶, 요양원의 삶, 즉 연명하는 삶밖에는 안 될 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 생활방식을 다시 검토하자. 아니, 나부터 내 생활방식을 검토하고 바꾸려고 노력해야겠다.

 

가능하면 걷고, 걸어야겠다. 의자나 소파에 몸을 온종일 맡기는 일을 삼가야겠다. 무엇보다도 내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이런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적어도 교육 현장에서는. 에고, 책을 많이 읽으리고 그렇게 강요하는 교육 관료들, 정작 본인들은 이런 책을 읽는지 모르겠다. 너무도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교육 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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