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 그 생태와 문화의 역사
리처드 루트위치 지음, 윤철희 옮김 / 연암서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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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우리가 많이 먹는 음식을 제공하는 동물이기도 하지만, 인수공통감염병의 원인이 돼지에게 있다는 글을 읽고 돼지에 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기대에는 어긋난 책이다. 그냥 돼지의 생태와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돼지가 우리 인류와 꽤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다는 것. 또 돼지의 몸과 인간의 몸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 그래서 돼지를 가지고 실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 여기에 돼지가 생각보다는 똑똑하다는 것.

 

개가 할 수 있는 일은 돼지도 모두 할 수 있다는 것. 서커스 묘기부터, 양치기, 심지어는 애완동물로 키워지기까지 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돼지가 청결한 동물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는 자주 강조하고 있기도 하고. 사람들이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서 그렇지 돼지는 개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이 배설할 공간을 정해 볼일을 본다고 하니.

 

하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어떻게 돼지를 통해서 우리 인류에게 감염병들이 전파되는가 하는 점들을, 즉 돼지의 질병도 좀 많이 다뤄주었으면 하는 거였는데. 그 점이 많이 아쉽다.

 

돼지는 앓지 않을지 몰라도 돼지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걸릴 수도 있는 질병도 꽤 많을 테고, 돼지의 피를 빤 모기가 사람을 물었을 때 감염되는 질병도 있을텐데... 여기에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이, 특히 박쥐의 터전에 인간이 진출하면서 박쥐와 함께 지내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박쥐에게서 인간으로는 질병이 직접 전파가 되기는 힘들어도, 박쥐에게서 돼지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전파되기는 무척 쉽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돼지의 생태와 문화에 대해서 중요한 사항을 잘 정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돼지를 음식을 제공하는 동물로만 보지 않게 하고 있고, 또 읽으면서 영화 [옥자]가 생각나기도 했으니... 영화 [옥자]에서 옥자는 살아남아 시골에서 소녀와 함께 잘 살고 있지만, 더불어 새끼 돼지도 한 마리 데리고 와 함께 살게 됐지만... 별 생각 없이 그 장면을 보았는데, 이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했다.

 

대부분의 포유동물 및 다른 모든 가축과 달리, 암퇘지는 새끼들을 핥아서 물기를 닦아주지 않는다. 새끼돼지는 털가죽이 없어서 몸이 더 빨리 마르므로 어미돼지가 핥는 건 불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어미가 핥아주지 않기 때문에 어미와 새끼 사이의 유대감이 크게 형성되지 않고, 그래서 암퇘지가 다른 암퇘지가 낳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일이 더 흔해지고 암퇘지는 다른 암퇘지가 낳은 새끼들을 기르는 걸 더 쉽게 받아들인다. (94-95쪽)

 

이렇게 돼지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그러나 간략하게 잘 알려주고 있다. 그냥 음식을 제공하는 동물로서의 돼지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동물로서 돼지를 인식하게 해주고 있다. 그러니 공장식 축산에 대해서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돼지도 생명체로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주변에서 돼지를 만나기는 힘들다.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서 멧돼지가 도심에 출몰했다는 이야기로 접하거나, 구제역이나 아프리카 돼지열병이라는 질병으로 접하거나, 아니면 정육점에서 고기가 된 돼지를 만날 뿐인데...

 

예전에는 쉽게 접하는 것이 돼지였다는 것, 서민들에게는 특히 흔히 키울 수 있는 동물이었다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돼지 역시 생명체라는 것,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비록 우리가 살기 위해서 죽일 수밖에 없지만 그때까지는 생명체로서 존중해야 할 만큼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덧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48쪽에... 돼지는 인간과 달리 아래턱을 위아래로만 움직일 수 있다. 엄니가 있는 탓에 턱을 수평적으로 움직이는 데에는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돼지는 턱을 수직방향으로만 움직여 식사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 결과로 씹는 데에는 제약이 따랐고, 이런 제약은 지저분하게 먹는 결과로 이어졌다.

54쪽에는... 돼지의 턱은 1차원으로만 움직인다. 그 탓에 돼지는 지저분하게 먹을 수밖에 없다. 습기가 있는 먹이일 경우는 특히 그렇다. 돼지는 턱을 위아래로 움직일 수 없는 까닭에 먹이를 소량씩 즐길 수가 없다. 이게 입을 벌리고 먹는 성향과 결합하면서 볼썽사나운, 가관이라 할 식사시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54쪽의 내용 중에 턱을 '위아래로 움직일 수 없는'이 '위아래로만 움직일 수 있는'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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