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살아간다
리즈 마빈 지음, 애니 데이비드슨 그림, 김현수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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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늘 만날 수 있는 존재. 움직임 없이 보이나 늘 움직이고 있는 존재. 변화를 못 느꼈는데 어느 새 확 변해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 상처를 입어도 상처를 메우고, 가지를 잘려도 새로운 가지를 내는 존재. 우리 몸에 해로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해 주는 존재. 물을 흡수하고, 토양을 묶어주고 또 땡볕일 때 그늘을 제공해주는 존재. 잘려나가도 그루터기로 남아 우리가 앉아 쉴 수 있게 해주는 존재. 잘려 나간 가지들이 땔감이 되어 우리에게 온기를 주는 존재. 우리들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예술 대상이 되어 주는 존재.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좋은 점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그림책이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 삶에서 나무를 제외하면 과연 삶이 유지될까 싶을 정도니, 나무는 우리 삶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나무를 우리는 우리 이익을 위해 가차없이 가지를 잘라버리거나, 밑둥을 베어버리거나 하고 있으니.


이 책에는 많은 나무가 나온다. 나무의 생태를 이야기해준다기보다는 그 나무를 통해서 우리가 삶에서 지녔으면 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가령 '솔송나무'편에서는 '햇살 누리기'를 배우라고 한다. 우리가 해가 없으면 삶을 유지할 수 없듯이, 자외선이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햇볕은, 햇살은 우리들 건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리고 햇살, 햇볕은 우리들 정신 건강에도 좋다. 그러니 솔송나무처럼 햇살 좋은 날에는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자고 한다. 이렇게 아주 짤막하게 나무와 삶의 자세를 연결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한 나무만 더 보자. 그냥 아무 쪽이나 펼쳐도 된다. 그래도 '사시나무' 편을 들고 싶다. '우리는 서로의 힘'이라는 제목이다. (이 책, 14쪽)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인간이 인간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음에도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이 시대에, 나무를 통해서 위험에는 서로 경고도 해주고, 또 좋은 것, 필요한 것은 함께 공유하는, 힘들수록 서로 손을 굳게 잡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함을 사시나무의 뿌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는 삶이라면 소외라는 말이 사라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나무는 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다른 존재들까지 포용해서 숲을 이룬다. 그 숲을 통해서 지구가 더욱 아름다워지게 하고 있다.


  우리들 삶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말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삶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많은 나무들을 통해서 삶에 대한 경구를 얻는 그런 느낌을 주는 책이다. 힘든 때 여유를 지닐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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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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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쉽게 읽힌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시작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결말이 끝에 가서야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사례들이 나온다.


핵심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할 때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제목이 '타인의 해석'이라고 번역을 했다. 그냥 '낯선 이와 이야기할 때'라든지, '낯선 이와 만날 때'였으면 훨씬 좋은 제목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때 낯선 사람은 자신과 관련되어 처음 만난 또는 여러 번 만난 사람이다. 여기서 예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정보부에 일하는 사람, 경찰과 관련된 사람, 그리고 학교와 관련되거나 그와 비슷한 경우에 만난 사람, 또 유명한 시인인 실비아 플라스 같이 자살을 한 사람이다.


결국 낯선 이라고 하지만 이 낯선 이는 나와 관련을 맺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 책은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서로의 갈등을 줄이면서 소통하면서 잘 지낼 수 있는가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상대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세 가지 쟁점을 들어서 우리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진실 기본값'이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우선 의심하기보다는 환대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진실하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진실 기본값이고, 이 진실 기본값 때문에 종종 속아넘어간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해 아무런 의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믿음은 의심의 부재가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한 의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107쪽)


그러니 우리가 그 사람이 진실하다고 전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문에 속아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상대를 무조건 의심하는 것보다는 믿고 시작하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속는 것은 이런 경우라고 한다.


당신을 믿음의 경계 너머로 밀어낼 만큼 충분한 위험 신호가 있었는가? 만약 없었다면, 진실을 기본값으로 삼은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다. (107쪽)


만약 경찰이 진실 기본값을 지니지 않고 시민들을 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수많은 시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 책 처음에 나온 경찰과 시민의 갈등처럼...


또다른 하나는 '투명성 가정'이다. 표정이나 행동에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면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표정과 이런 행동, 저런 상황에서는 저런 표정과 저런 행동을 한다고 하는 투명성 가정.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가정인지는 여러 실험을 통해서 밝혀졌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감정을 전혀 다르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장소와 시간, 그리고 사건에 따라서 거의 모두가 다른 표정과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표정이나 행동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면 오판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여러 장에 걸쳐서 주장하고 있다.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을 예로 들었을 때, 그런 표정, 행동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하긴 이 책에는 더 중요한 예가 있다. 바로 영국 수상이었던 체임벌린과 히틀러의 대담. 체임벌린이 히틀러를 만나 그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판단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이었는지, 2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없는 방향으로 체임벌린의 판단이 내려졌던 것. 


여기에 미국 판사들이 피의자들의 얼굴이나 태도를 보고 판단한 결과가 컴퓨터가 피의자들을 보지 않고 판단한 결과보다 형편없었다는 통계. 또 세계적인 경제 사기범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사람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들을 들어, 투명성 가정이 얼마나 낯선 사람을 잘못 이해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명심해야겠다고 생각한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술이고 또 하나는 고문이다. 술로 인한 성폭행 사건이 비일비재한데, 술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린다고, 그래서 우리나라 사법부에서는 심신미약으로 형을 감형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술은 판단력을 흐리는 근시의 위력이라고 한다. 


즉 눈앞에 있는 일만 보이는 것. 그 뒤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 정말 심신미약이 아니라 판단력이 지금 당장 자신의 앞에 있는 일에만 작동한다는 것. 그래서 술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이 성폭력(폭력사건 등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 심신미약이라고 감형하는 것이 아니라. 술로 인해 이미 자기 행동의 결과를 잘 예측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많이 마시는 것 자체가 미필적 고의가 아니라 '고의' 그 자체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고문으로 인한 자백은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에서 그 점을 입증하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모건의 연구에서 이 점이 잘 나와 있는데... 이런 구절을 참고할 수 있다.


심문의 관건은 대상자의 입을 여는 것이었다. 대상자의 기억을 억지로 열어서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만약 굴복을 확보하는 과정이 대상자에게 너무도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해서 그가 실제로 기억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칠 정도임이 밝혀졌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모건은 성인이 아이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303쪽)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들인 군인들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억을 왜곡한다. 그러니 고문을 통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낯선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의 진실에 다가가기가 매우 힘들다. 자신을 복잡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남을 단순하게 판단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글래드웰은 이렇게 제안한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탐색에 실제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절대 진실의 전부를 알지 못할 것이다. 온전한 진실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311쪽)


그러면서 세번째는 행동이 특정 장소나 특정 대상과의 결합됨을 제시한다. 어떤 행동에는 장소나 대상이 결합되어 있어서, 장소를 바꾸거나 대상을 바꾸면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실비아 플라스다. 실비아 플라스를 예로 들고 있지만, 이는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아간다.


즉 그들의 행동은 특정 장소나 대상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들의 행동을 막으려면 그 장소에서 행동하기 힘들게 하든지,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


경찰이 단속을 전국적으로, 수시로 하는 일이 얼마나 효과 없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장소나 대상을 고려하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여 이 세 가지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낯선 이를 판단하고 행동했을 때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낯선 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만약 낯선 이와의 대화가 틀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그 낯선 이를 비난한다. (401쪽)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경우, 책임을 나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 마지막 구절이 머리를 때린다. 그래, 낯선 이를 비난하긴 쉽다. 그러나 낯선 이를 비난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자신은 낯선 이와 얼마나 제대로 이야기를 했는가를...


감수한 사람이 쓴 글(감수사)에서 타인을 파악하려 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 세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 내용을 정리했다고 보면 된다.


첫째, 우리가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해석하는 것에 지독하게 서툴다는 점을 인정하자. (9쪽)


둘째, 낯선 사람을 보고 곧바로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그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하지 말라는 뜻이다. (10쪽)


셋째, 낯선 이와의 대화에서는 대화 내용보다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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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1-18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한 권 다 읽은 것 같은 페이퍼네요!! 감사합니다!!^^

kinye91 2021-01-18 09:30   좋아요 0 | URL
긴 글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를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 주네 지음, 윤정임 옮김 / 열화당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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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작품은 책에서만 봤다. 직접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는 책에서 본 자코메티의 작품만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장 주네 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는 아니다. 나 역시 그가 쓴 작품 중에서 읽은 것이라곤 [도둑일기]가 유일하니까. 하지만 그는 우리가 비천하다고 여기는 일들을 어린시절, 젊은시절에 다 겪은 작가니, 그가 만난 자코메티의 작품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책은 아주 얇다. 60쪽 정도니까, 문고판 책보다도 더 얇다고 보면 된다. 마치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이 너무도 가냘프듯이...

 

하지만 자코메티 조각상들이 주는 느낌은 가냘픔과는 다르게 무거움을 주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얇은 책이지만 그 속에는 상당한 두터움이 들어 있다. 구절구절 마음에 와 닿는데...

 

몇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장 주네가 자코메티 작품에 대해 하고픈 말을 가장 잘 전달하는 일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 (6-7쪽)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죽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또한 그의 작품이, 수많은 사람들이 탄탄한 뼈대 위에 살아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의 지대를 뚫고 들어가 저승의 구멍 난 벽들을 통해 스며 나올 수 있는 기이한 힘을 부여받은 예술 -유려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아주 견고한 예술-이 요구된다. ... 자코메티의 작품은 모든 존재와 사물이 인식하고 있는 고독을 죽은 자들에게 전달해 준다. 그리고 그 고독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우리의 영광이다.(16쪽)

 

자코메티의 조각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가장 멀리 떨어진 극한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친숙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그 왕복에 의해 지탱되는 것 같다. 이 오고감은 끝이 없으며, 그것이 바로 조각들에 움직이는 느낌을 주고 있다. (27쪽)

 

자코메티의 조각상들은 소멸해 버린 세대에 속한 느낌, 숱한 시간과 밤이 지혜롭게 갈고 닦아 부식시킨 후 부드럽고도 견고한 영원성의 기운을 담아 우리 앞에 내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30쪽)

 

사물을 고립시켜 그것이 갖는 유일하고 고유한 의미만을 집적시키는 능력은 관찰자의 역사성의 소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바라보는 이의 역사성을 없애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영원한 현재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한 어지럽고 끊임없는 질주, 휴기을 허용치 않는 양극단 사이의 긴장감있는 흔들림이 되어야 한다. (35쪽)

 

자코메티, 혹은 눈 먼 자들을 위한 조각가 (49쪽)

 

자코메티가 그려낸 대상들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안심시키는 것은 그 대상이 '좀더 인간적으로 - 인간이 쓸 수 있고 끊임없이 써 왔던 것이라는 의미로 - 표현되어서가 아니며, 가장 좋고 부드러우면서 감각적인 인간의 현존이 대상을 감싸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가장 순박하고 신선한 '그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것, 그리고 아무것도 함께 하지 않는, 그 전적인 고독 속의 대상 (59쪽)

 

그것은(자코메티 예술) 차라리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한 룸펜의 예술이며, 대상들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모든 존재, 모든 사물의 고독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순수한 지점에 이르고 있다. 대상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혼자다. 그러므로 내가 사로잡혀 있는 필연성에 대항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일 수밖에 없다면 나는 파괴될 수가 없다. 지금 있는 이대로의 나, 그리고 나의 고독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60-61쪽)

 

이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이 책을 읽으면서 장 주네가 이야기해 주는 자코메티를 만나면 된다.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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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꽃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 식물 시리즈
피오나 스태퍼드 지음, 강경이 옮김 / 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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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이란 말은 헛되다, 의미없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면 무엇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바니타스(vanitas)라고 하나,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말이 덧없다는 말과 가까울 것이다.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곧 사라지게 되는 꽃. 그래서 덧없다는 표현을 쓰는지도 모르지만, 영어 제목을 보니 짧은 생애 정도다. 짧은 생애를 아쉬워하고 덧없어 할 수는 있지만, 꽃은 짧게 피고 지기 때문에 더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른다.

 

영원함, 영속함은 지루함을 주고, 감명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짧기 때문에, 끝이 있기 때문에, 순간 피워낸 아름다움이 화려함으로 또 우리 마음에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러니 꽃의 삶은 덧없음이 아니라 의미있음이라고 해야 한다.

 

여러 꽃들이 나온다. 사실 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도시에 살아서 주변에서 꽃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들과 기껏해야 가로수, 그리고 화단에 있는 몇 종류 안되는 꽃들만을 볼 뿐.

 

꽃을 보려면 꽃가게(이걸 화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나 가야 한다. 그렇게 꽃은 내 삶과 거리가 멀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꽃과 사람들이 얼마나 가까이 지냈는지를 알 수 있다.

 

온갖 꽃들에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 신학,음악 등 예술이 함께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꽃은 피고 지지만, 그 꽃을 기억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예술이다. 예술이 꽃에게 영속성을 부여하고, 아름다움이 지속되게 한다.

 

그러므로 꽃을 꽃만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꽃에는 우리 인간들의 삶이 함께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꽃의 짧은 생애에 감탄하는 이유도, 그 화려함이나 쓰임새를 이야기하는 것도 다 우리들 인생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삶의 끝자락에서 헛되고 헛되도다를 외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생애 동안 충실히, 열심히 살아왔다면 그 자체로 충만한 삶이고, 의미 있는 삶이다. 그렇게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 그것을 꽃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란 시를 보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기서는 덧없음이 아니라 충만함이 드러나고 있다. 이 시에 어떤 꽃인지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이렇게 꽃과 우리들의 삶은 늘 연결된다.

 

이 책은 주로 영국에서 만날 수 있는 꽃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영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바라기를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영국에만 머무를 수 있는가? 또 양귀비를 이야기하면서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보다 더한 것은 장미다. 장미는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꽃 아닌가. 너무도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뭐라 의미를 정하기가 힘든 꽃이라고 하는 그런 장미.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꽃도 꽃이지만 이 꽃과 관련된 많은 예술작품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꽃과 예술을 통해서 우리 삶을 생각하게 된다.

 

더하여 주변에서 그냥 지나쳤던 꽃들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한다. 도시라고 어찌 꽃들이 없겠는가. 도시에도 찾으려고만 하면 온갖 꽃들이 있을 테니...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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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1-06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꽃 넘 좋아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도 꽃으로 많이 하고, 정말 어쩌다 한 번씩 생화를 사서 날 위한 선물로 주기도 해요. 페이퍼 읽으니 책에 흥미가 확 생기네용~ 확실히 덧없다는 말과는 잘 연결이 안되는 거 같아요~^^

kinye91 2021-01-06 14:07   좋아요 1 | URL
꽃을 좋아하시면 읽었을 때 꽃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을 알게 되니 나름 괜찮을 책 같아요.
 
원소 쫌 아는 10대 - 세상의 가장 작은 것이 만들 가장 큰 세상 과학 쫌 아는 십대 6
장홍제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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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쫌 아는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과학책이다. 화학에 관한 책인데, 원소에 관해서 쉽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 각 과목과 관련된 다른 책들을 학생들이 얼마나 읽을까 하는.

 

교과서는 기본을 가르쳐주는 책. 교과서만 공부한다는 것은 기초지식만 익히고 만다는 얘기인데, 우리나라는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거기에 더해서 참고서라고 해서 교과서 내용을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책까지 달달 외운다. 그러고는 공부 끝.

 

더 나아가지 않는다. 교과서에서 원소를 설명한다면 원소에 관한 다른 책들을 읽고 정리하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한때 슬로리딩이라고 해서 한 학기 책 한 권 읽기라든지, 책 한 권으로 끝내기 등등의 교육방법도 있었지만...

 

책 한 권으로 끝내기라는 것은 교과서가 한 권이라는 뜻이지 달랑 한 권만 읽는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소설 한 편으로 한 학기 동안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들을 공부할 수 있다는 방법이었는데...

 

수많은 교과서를 통해서 얻는 지식이 교과서에만 국한되면 실력은 더이상 늘지 않는다. 교과서를 기본으로 그와 관련된 책을 읽고 지식의 범위를 깊게 하고 넓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공부라고 할 수 있을텐데...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과연 그럴 시간이 있을까?

 

성적순으로 주욱 줄을 세우는 이 나라에서. 수능 점수가 거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이 나라에서. 그러므로 청소년을 위한 이런 쉬운 과학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정작 청소년들이 이 책을 얼마나 읽을까다.

 

화학을 어렵게만 여기는 사람들에게 화학은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역사적으로, 또 동시대적으로 살피면서 알려주는 책인데, 학생들이 잘 읽지 않을 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안 되는데... 주기율표. 사실 주기율표를 외우기 싫어서 화학을 포기한 경우도 많은데, 왜 주기율표가 중요한지, 주기율표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들이 우리가 찾은 원소들의 전부이고 앞으로 더 찾으면 주기율표에 첨가된다는 것.

 

참으로 중요한 화학에서 사전 역할을 하는 것이 주기율표라는 것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러면서 흥미진진하게 원소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 원소들이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어떻게 발견이 되었는지, 현대 사회에서 어떤 쓰임새를 지니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화학에 흥미를 갖게 한다. 또 화학이 실험실에만 박혀 있는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화학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사람들이 찾아낸 모든 원소가 주기율표에 있고, 이 주기율표는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더 채워질 수 있음을,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암흑물질이라고 한다는데, 이를 하나하나 밝혀나가는 것도 우리의 과제임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학, 화학에 관심 없는 학생들에게는 화학도 참 매력적이고 쓸모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는 앞으로도 연구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원소 쫌 아는 10대에서 화학에 관심을 가지는 10로, 거기서 더 나아가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니까.

 

화학의 발달 역사에서 원소들이 지니는 장단점, 부작용 등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있는 책이기에 더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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