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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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우주다. 그만큼 광대한 존재다. 밝혀진 사실보다 밝혀질 사실이 더 많은 존재이기도 하다. 여전히 많은 부분을 알 수 없는, 그런 존재. 


그 중에서도 인간의 뇌에 관해서는 더욱 밝혀져야 할 부분이 많다. 우리 체중의 2%를 차지하지만 에너지의 23&를 쓴다는 뇌. 


정재승의 이 책은 과학 분야에서도 특히 뇌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강연체로 글이 쓰여 있어 더 친숙하게 접근할 수가 있다. 


책 표지에는 '생각의 모험으로 / 지성의 숲으로 /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 열두 번의 강의'라고 되어 있는데, '생각의 모험으로'가 아니라 생각이라는 모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주고 있고, '지도 밖의 세계로'가 아니라 뇌라는 세계의 지도를 어느 정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운전을 할 때 네비게이션에 목적지 설정을 하고 가면 안내에 따라 가기만 한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더 넓은 장소 속에서 위치를 가늠하지 않는다. 갔다 오면 갔다 왔을 뿐, 그 장소에 대한 지도는 없다.


그래서 가끔은 지도에서 목적지를 찾아본다. 네비게이션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넓은 위치 속에서 목적지가 어디쯤에 있는지 대략 알고 가면, 좀더 그 장소를 잘 알고 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지도 밖의 세계가 아니라 우주라는 지도에서 우리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뇌라는 광활한 우주에서 내가 생각하고 찾는 지식들이 어느 자리쯤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책은 과학을 이해하는, 뇌를 이해하는 지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지도를 읽을 줄 알면 장소를 찾기가 쉽다.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잘 알 수가 있고, 나아가고자 하는 곳을 찾기도 쉽다. 


정재승이 이 책에서 한 역할도 그러한 지도 역할이지 않나 싶다. 과학이라는 광대무변한 세계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그런 책.


열두 번의 강의. 하나하나 읽으면서 좋았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지식 두 가지. 


하나는 서양 사람과 동양 사람들이 사람의 표정을 인식할 때 보는 위치. 동양 사람들은 눈을 중심으로 파악한다면, 서양 사람들은 입을 중심으로 파악한다고... '헬로키티'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헬로키티에서 동서양을 읽다. 194-197쪽)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래, 우리나라 사람들 문자메시지에 이모티콘을 보낼 때 주로 눈 모양을 사용한다. 감정 표현을 그렇게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입 모양으로 주로 한다고? 이런 것들 역시 우리들 뇌에 각인되어 있으니, 역시 문화 차이가 인식 차이로 가는 데는 뇌가 한 몫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다른 하나는 언어가 각인되어 있는 뇌부위가 있다고 한다. 어떤 특정한 단어를 들었을 때 활성화되는 뇌가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단어들이 뇌의 특정한 부분들에 속해 있다면, 그 특정한 부위의 뇌를 조정하면 사람들의 언어 표현도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인지...


아마도 더 발전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상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하니, 뇌 부분만으로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섬뜩함. 그렇다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로 처벌받는다는 영화 속 현실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인지...


하지만 아직도 뇌라는 우주는 우리에게 밝혀진 부분보다는 밝혀지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 창의성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상식이라고 알고 있었던 지식을 뒤집는다. 뇌에 관한 또는 창의적이라고 인정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창의성이 단지 기발한 발상이 아님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는 우리 인간에 대해서 모른다. 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그것이 우리를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한다. 그렇게 나아가는데 지도가 있다면 조금 더 편해지겠지. 정재승의 이 책, '열두 발자국' 그런 지도 역할을 잘하고 있다.


이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인터뷰에서 정재승을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388쪽)라고 부르고 싶다고 하는데, 그만큼 그는 우리가 어렵게 여기는 과학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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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16 08: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대식, 김대수 교수님까지 읽었는데
정재승 교수님을 아직 안 읽었어요 ㅜㅜ
기대 됩니다~

kinye91 2021-08-16 09:05   좋아요 0 | URL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말이 잘 맞다고 생각해요. 정재승 교수는 과학을 우리 곁에 있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드는 책이었어요.
 
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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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노트라는 제목으로 여러 식물에 관해서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전문적인 이야기보다는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식물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던 식물에 관해서도 모르고 지냈던 부분들을 알게 된다.


특히 식물하면 움직임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식물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고, 식물도 경쟁을 하기도 하지만, 협동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므로 식물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생각이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여기에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는 부분에서 다시 우리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모든 존재에게서 배울 수 있다. 아니 배워야 한다. 식물에게도 마찬가지다.


관심을 가지고 식물을 바라본다면, 또한 사랑하는 마음으로 식물을 바라본다면 그 식물을 통해서 배울 점이 있다. 그런 배움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두 책을 떠올렸다. 조금 오래된 책이긴 한데, 윤구병이 쓴 "잡초는 없다"라는 책과 황대권이 쓴 "야생초 편지"다. 다 식물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통찰하는 내용의 책이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그 책들과 마찬가지로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은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다. 만물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고, 어떤 존재의 사라짐은 우리 삶의 풍요로움이 순차적으로 빠져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식물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결국 어떤 존재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들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으면서 또 여러 번 읽으면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식물들에 관해서 생각하고, 이 책에는 없지만 주변에 있는 많은 식물들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지녀야겠다는 마음도 지니게 하고, 또 식물을 비롯한 다른 모든 존재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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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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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하면 내게는 칼 세이건이 쓴 책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우리나라 늦여름부터 가을이면 지천에서 볼 수 있는 꽃인 코스모스도 떠오르지만. 그 꽃만큼이나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는 내게 코스모스의 대명사라고 할 만할 정도였다.


그만큼 칼 세이건의 책이 내게 경외감을 주었는데... 그 내용을 이해하고 말고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행복을 느꼈고, 광대한 우주를 세이건과 함께 여행하는 느낌을 지니곤 했다. 지금도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또다른 책인 [코스모스]를 봤다. 어라, 세이건 책이 아니네. 앤 드루얀. 어떤 내용이지. 작은 제목이 있다. '가능한 세계들'


우주 속에서 우리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별을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인가? 제목이 코스모스니 우주에 관한 내용이리라 추측을 하고 빌렸다. 읽어야지, 당연히.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지 궁금해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기 전에 저자를 보니, 칼 세이건과 함께 작업을 했던 사람, 세이건이 죽기까지 함께 살았던 사람이다. 그들은 함께 우주를 탐색하고, 과학을 대중들에게 알리려는 일을 했던 사람이다. 앤 드루얀이 [코스모스]란 제목으로 여러 번의 작업을 했음도 작가 소개에 나와 있으니 책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진다.


이 기대는 감탄으로 바뀌는데는 책장을 얼마 넘기지 않아서였다. 칼 세이건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장에서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 그 말 하나면 이 책을 정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 하나로 과학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26쪽)


이 말을 실천하는데 칼 세이건만큼 행동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앤 드루얀도 마찬가지다. 이 책 역시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 과학은 골방에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만에게 해당하지 않고 우리 인류 모두에게 필요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듯이.


우주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주를 이야기하기 위해 앤 드루얀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리고 우리 지구가 걸어온 역사와 인물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지금 인류세라는 절명위기 시대를 겪고 있지만, 지구 역사, 우주 역사를 보면 그런 일들은 늘 있었고, 그것을 거쳐온 과정이 지금까지 우주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절망만 할 필요도 없다. 많은 과학자들이 예언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카산드라 이야기처럼, 과학자의 예언을 믿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반대하는 이익집단들이 있었다. 하지만, 카산드라의 예언은 비극적일망정, 사실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의 예언은 실현된다.


과학자들의 예언은 예언이라기보다는 예측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에 기반한 증거를 해독해서 그 증거를 토대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예측한다. 그러므로 예측은 행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즉 예측을 통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앤 드루얀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자연을 완전히 경험하지 못하도록 막는 어둠의 커튼을 살짝 들추는 방법을 하나 안다. 그것은 바로 과학의 기본 규칙들이다. 어떤 발상이든 실험과 관찰로 확인해 볼 것, 시험을 통과한 발상만 받아들일 것, 통과하지 못한 발상은 버릴 것, 어디든 증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의심할 것. 권위에 대해서도. 이 규칙들만 지킨다면, 코스모스는 우리 것이다." (33쪽)


자연을, 우주를 완전히 안다는 생각을 버린다. 그저 살짝 들출 뿐이다. 그런데 살짝 들추는 방법도 쉽지는 않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증거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가. 또한 증거가 있음에도 권위에 굴복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과정이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역사는, 코스모스의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옳은 길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 결과다. 그런 과정을 감동있게 표현하고 있기도 한데...


특히 바빌로프(4장.바빌로프)에 관한 부분에서는 지금 우리 인류가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굶주림 앞에서도, 굶주려 죽어가면서도 인류를 위해 씨앗(종자)를 먹지 않았던 학자들. 바빌로프의 동료들. 


그들은 인류가 굶주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종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고, 그 종들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세계를 돌아다니면 세계의 씨앗들을 모아두었다. 전쟁으로 굶주림에 시달릴 때 그 씨앗들을 먹으면 굶어죽을 일이 없을텐데도, 그들은 미래를 위해서 굶어죽는 길을 택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알기에, 그 미래를 파괴하면서 현재를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 과학자들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태도 아닌가. 그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 택해야 하는 천형과도 같은 윤리다. 그 윤리를 저버리면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10장, 두 원자 이야기)원자폭탄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데 참여한 데서 더 나아가 더욱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텔러와 같은 과학자처럼 된다.


로트블렛이라는 과학자는 전쟁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한 폭탄을 개발하는 쪽으로 나아가는텔러와 같은  과학자도 있다고 하니...참고로 아인슈타인이 마지막으로 서명한 문서가 핵개발을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인류가 합심하자고 하는 버트런드 러셀이 쓰고 로트블렛이 발표한 문서였다고 한다. 


텔러라는 과학자와 아인슈타인 또는 로트블렛이라는 과학자가 걸어간 길은 다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은 바로 아인슈타인과 로트블렛이 걸어간 길. 즉 과학이 파멸의 길로 가지 않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의식하는 과학자. 그리고 그런 과학을 깊은 의미까지 이해해야 하는 우리들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과학자들은 예측을 했다. 그들을 카산드라로 만들지 않을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힘을 합쳐 그들의 목소리에 반응해야 한다. 그래야만 예측을 통해 결과가 바뀔 수 있게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힘만으로도 결과는 엄청나게 바뀔 수 있음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앤 드루얀이 쓴 이 책, 광대한 우주 이야기가 결국 우리 인간 이야기임을, 우리 역시 우주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멀리 별을 보아도 좋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아도 좋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존재들을 보아도 좋다. 우리는 모두 우주니까.


그런 코스모스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고, 또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 앤 드루얀과 칼 세이건이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칼 세이건을 만날 수 있다는 행복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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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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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1호면 좋은 줄 아는 시대가 있었다. 반대로 1호면 안 좋다고 인식하는 때도 있었다. 하여간 숫자를 붙이고, 그 숫자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살았던 과거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 심심풀이로 우리나라 국보 제1호는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아이 때는 헷갈리기 마련, 숭례문이 남대문인지도 잘 모르는데, 여기에 동대문과 남대문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남대문이다, 동대문이다 말다툼을 한 적도 있었다.


국보를 지정하고 1호라고 하면 굉장히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냥 편의대로 붙인 순서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숫자로 가치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국보를 지정하면서 굳이 번호를 붙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국보나 보물 지정에 번호는 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국보면 국보, 보물이면 보물이면 되지, 무슨 몇번 몇번 하는 번호를 매기고 그런단 말인가.


하여든 국보하면 가끔 이렇게 1호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1호를 바꾸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얼핏 생각하면 번호에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나라에서 국보에서 번호를 빼지 못하겠으면 정말로 문화재 위원회나 국민들에게 물어서 번호를 재지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정말로 이렇게 실행하지는 않겠지. 국보면 모두가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그것들을 다시 가치로 경중을 매기고, 순서를 정한다는 행위 자체가 국보에 대한 모독이니)


이 책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기자가 자신의 관심 분야에 천착해 국보라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관해, 그 역사에 관해 썼다.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글이 읽기 쉽다. 잘 읽힌다. 그리고 내용이 방만하지 않고 짤막하게 핵심을 잘 전달한다. 게다가 국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곁들여서 더 좋다.


꼭 국보로 지정되지 않았어도 관련된 다른 문화유산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다. 그 점이 이 책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시대를 거치고, 전쟁을 거쳐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하고 아낀 사람들도 있어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문화재를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다.


그런 문화재를 통해서 우리 역사를 만나고, 우리 조상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한 부분이 끝날 때마다 '국보 토막 상식'이라고 해서 그동안 잘 몰랐던 점이나 궁금했던 점을 알려주고 있어 좋다.


국보에 관한 내용은 알고 있는 사실도, 몰랐던 부분도, 아직 확실히 정리가 안된 부분도 있으니 책을 읽으며 찾아보면 더 좋을 듯하고, 여기서는 '국보 토막 상식'에서 다루는 내용만 소개한다.


아마도 평소에 알고 싶었던 점들이 아닐까 한다.


숭례문은 왜 국보 1호인가(56-59쪽)

세 번이나 놓친 몽유도원도 (96-101쪽)

전쟁을 이겨낸 국보(146-151쪽)

고유섭, 국보 연구의 선각자(186-191쪽)

국보 신고와 보상금 (228-233쪽)

국보 도난의 역사(268-273쪽)

국보 지정의 문제점(310=313쪽)

국보의 가격(360-363쪽)


이 국보 토막 상식만 읽어도 재미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아쉬움이라고 해야 하나? 훈민정음 해례본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 말고, 한 권이 더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보상 문제로 지금은 어디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세계에서 지금까지는 딱 두 권밖에 없는 책인데, 이미 간송미술관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로(번호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정이 되었으니, 발견된 책도 국가에서 사들여도 되었을텐데... 1000억을 요구한 소장자로 인해 무산되고,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니... 이거야 원.


국보 신고 부분을 보니, 보상금이 1억이 최대라고 하는데(233쪽), 그동안 개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2020년 초판이니, 아마도 개정이 안 되었다고 봐야겠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1조 정도의 가지가 있다고 하니, 그 1/10인 1000억과 보상금 1억은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해외로 반출만 안 되면 국보 소장자도 판매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데... 국가에서 이 문제는 현명하게 잘 해결해서, 또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이 우리들에게도 공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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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 시대를 앞서간 SF가 만든 과학 이야기
조엘 레비 지음, 엄성수 옮김 / 행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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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이라고 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소설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지금까지 인간이 발전시켜 온 역사를 보면 공상과학이 현실에서 실현되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된 순간, 우리는 작가를 놀라운 눈으로 보게 된다. 그들의 예지 능력에 놀라기도 하고. 하지만 그들의 예지 능력에 놀라기보다는, 그들이 상상했던 일들을 현실로 만들어낸 인간의 노력에 더 놀라워해야 한다.

 

우리의 상상은 가능성을 이미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한다. 도전과 실패. 우연과 필연이 겹쳐 상상 속에 존재하던 일들이 우리 현실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옛날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했던 우주선, 자율주행차(아직은 좀 미미하지만), 잠수함, 복제, 가상현실, 사이버 공간, 영상 통화 등등... 우리가 실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 많다.

 

이 책은 이렇게 공상과학 소설 속에 등장했던 존재들이 지금은 우리 현실 속에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과거의 생각이 현재에 실현되었다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일들이 미래에 실현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고 봐도 좋다.

 

어느 날, 누군가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그것을 이야기했다고 하자.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핀잔을 받고 무시를 당할지 모르지만, 이미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면 이제는 상상이 현실이 되게 하기 위한 노력들이 시작된다고 보아도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 지닌 능력이자 특성이다. 우리는 상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왜 상상이 현실이 되면 안 되는가라는 의문을 지니고 꾸준히 노력한다. 그러므로 상상 속 존재는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우주-교통, 군사-무기, 생활 방식-소비자, 의학-생체공학, 커뮤니케이션'으로 나누어 SF소설에 등장했던 존재들이 어떻게 현실화되었는지를, 또는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꿈꾸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음을, 상상은 공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하려는 노력을 촉발하는 동기임을 생각하게 한다.

 

다양한 존재, 다양한 작품, 다양한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주제는 명확하다. 상상은 상상에 불과하지 않다. 상상은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일 뿐이다. 바로 이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이들에게 'SF소설을 읽혀야 한다'는 말, 허투루 들으면 안 된다.

 

상상은 현실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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