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 나도 모르게 쓰는 차별의 언어 왜요?
김청연 지음, 김예지 그림 / 동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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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상대와 나를 잇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끊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은 상대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힘을 빼기도 한다. 상대를 격려하기도 하고, 좌절하게 하기도 한다. 말은 살림의 말이 될 수도 죽임의 말이 될 수도 있다. 말은 붕대가 될 수도 있고, 칼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말은 중요하다. 중요한 말임에도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상대에게 다르게 다가간다. 상대에게만이 아니다. 나에게도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 말은 중요하다. 잘 말해야 한다. 


그런데 가끔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 가운데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말들이 있다. 상처를 주는 말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말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은 그래도 사람들이 쉽게 인식한다. 그 말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쓰지 못하도록 막을 수가 있다.


문제는 자주 쓰는 말이라서 별다른 생각없이 쓰는 남에게 상처주는 말들이다. 심지어는 언론에서도 그 말들이 쓰이고 있어서 남들도 다 쓰는데 뭐가 문제야 하는 식이 되기도 한다. 이 책 제목처럼.


이 책은 그렇게 자주 쓰이는 말 중에서 차별을 담고 있는 말을 다루고 있다. 다른 말로 바꿔 쓸 수 있으니 사용하지 않거나, 바꿔쓰면 좋은 말들에 대한 이야기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으로 청소년에 관한 말부터 시작한다. 급식충...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면 듣는 사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런데 많은 말들에 이 벌레 '충'자가 붙는다. 남들을 비하하는 말로.


중고등학생을 급식충이라고 하고, 대학에 지역균형발전전형으로 들어온 학생을 지균충이라고 하고, 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말로 한남충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고 하니... 이건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이 말... '지방대 출신으로 대기업 입사' 

어디서 많이 본 구절 아닌가. 여기서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지방대'에 있다. 예전에 표준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말이 표준어이니 다른 지역 말들은 표준어가 되지 못한 불완전한 말들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각 지방의 말들 중에, 그러니까 서울이라는 지방의 말을 표준으로 삼아 맞춤법을 정리했을 뿐이라고, 말들에는 위계가 없다고... 이 말을 대학에 적용하면 각 지방에 대학이 있는 셈이니,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대학들도 지방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방대 출신이라는 표현은 서울을 중심에 놓고 다른 지역을 아래로 보는 차별이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모든 대학은 지방대다. 이런 생각을 지닌다면 위에 쓴 말을 쓰지는 못하겠지.


이런 예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호칭을 고칠 필요가 있고.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직업인들을 만날 수 있지. 그런데 직업인에 따라 누구한테는 '선생님' 또는 '님'이라는 말을 붙여 부르고, 누구한테는 '아저씨' '아줌마' 심지어 '어이' '여기'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어. 의사한테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붙여 부르면서 소방관한테는 '아저씨'라는 말을 붙여 부르는 게 대표적인 예지.' (45쪽)


이런 호칭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냥 생활에서 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면서 직업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지 하는 생각. 그 말들이 은연 중에 차별로 이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의사에게는 늘 의사선생님이라고 하면서 경찰, 소방관과 같이 우리들 삶을 다른 방향에서 살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저씨 또는 그냥 '-님'(이 경우도 많지는 않지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경우 말은 사람들을 잇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끊는 역할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직업이 말을 통해 은연 중에 구분되고 있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직업의 귀천이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쓰는 말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말들이 왜 문제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어서 받아들이기가 쉽다. 말, 한 번 나오면 다시 담기 힘드니, 잘 생각하고 내보내야겠다. 


다른 사람의 귀를 통해서 마음까지 닿는 것이 말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청소년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읽고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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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 교양으로 읽는 마약 세계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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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불법이라는 말도 동시에 떠오르고. 가끔 약물중독에 관한 연수를 받을 때가 있다. 약물중독? 이때 약물을 대부분 마약으로 생각하는데, 이 약물에는 술과 커피나 차도 포함이 되니, 약물중독 연수가 꼭 마약에 관한 연수는 아니다. 오히려 마약은 우리 생활과 멀리 있다고 생각해서 - 마약 청정국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나라를 - 마약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술, 커피, 담배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마약은 멀리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가끔 언론에서 마약사범이 체포되었다는 둥, 몇 킬로그램의 마약이 적발되었다는 사건을 다루기는 하지만, 연예인 모모 씨가 마약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사건을 듣기도 하지만, 이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과연 마약이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존재일까?


마약류에 해당하는 프로포폴이라는 의약품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고, 대마초 또한 심심치 않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마약은 우리 생활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마약은 모른다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적어도 알고는 있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에는 이중성이 있다. 우리 생활 또한 이러한 이중성들이 합쳐져 있는데,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과 '모르는 게 약이다'는 말처럼, 삶은 이율배반들이 함께 존재한다.


마약도 그렇다. 알면 힘이 될 때도 있고, 그냥 모르고 지내는 것이 약이 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마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면 좀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 적게 쓰면 약, 많이 쓰면 독이라는 말도 있으니.


이 책은 마약에 관해서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저자는 강하게 주장한다. 마약을 하라는 말은 아니라고.


마약이 몸에 나쁘다는 사실은 증명이 되었다고. 또한 마약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쉽게 중독이 된다고. 환경이 좋다면 마약을 하더라도 중독에 이르는 비율이 적어진다고.


그러니 마약에 관한 정책이 처벌 위주보다는 환경 개선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건강이나 중독이나 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고, 마약으로 인해 피해 역시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서 더 크게 일어난다고.


이런 이야기들... 마약이 꼭 나쁜가? 여기에서부터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마약은 인류 문명과 함께 해왔다는 말로 책을 시작하는데, 이렇게 인류의 생활과 함께 해온 마약이 언제부터인가 해서는 안 될 금지 물품으로 규정되었다는 것. 그러니 인류의 시작에서 마약은 나쁜 존재가 아니라 신성한 존재이기도 했다는 사실로 책을 시작한다. 


역사가 발전하면서, 종교가 확립되면서 마약은 좋지 않은 존재로 격하된다. 격하될 뿐만 아니라 해서는 안 될 금지 물품이 된다. 그렇게 마약은 우리 생활에서 쫓겨난다. 음성적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게 된다. 


과연 금지가 효과적인가? 저자는 미국의 금주법을 예로 들고 있다. 금주법이 술 판매를 줄였는가? 술로 인한 사고를 줄였는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불법으로, 음성적으로 유통되기에 더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고한다. 소비량이 줄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이 금주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마약에 관해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생각하자고 한다.


특히 마약으로 구분되는 대마초에 대한 이야기- 우리나라에서는 마약에 포함되어 대마초 흡입은 불법이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마약에서 제외기도 해서 합법적으로 유통이 되기도 한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기도 하고 - 는 많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대마초가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는 논쟁보다도 대마초에 관한 세계의 다른 정책들을 살펴봐야 한다.


어떤 정책이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이 책은 마약이 인간의 역사와 어떻게 상관관계를 이루면서 존재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아예 마약을 모르면 약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마약은 우리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알아야 한다. 아는 게 힘이 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마약에 대해서 알려주고, 마약에 대한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더 나아가서 마약이라는 존재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게 하고 있다. 똑같은 유전자라도 환경에 따라서 다르게 성장하듯이, 마약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마약에 대한 대응방식, 또는 중독여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약에서 시야를 넓혀 사회를 바라보게 한 점이 이 책이 지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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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 무심코 읽었다가 쓸데없이 똑똑해지는 책
오후 지음 / 웨일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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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라고 했지만, 결코 농담이 아니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농담은 '실없는 또는 진실이 아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사실이 아닌 내용은 없다고 - 자료에 바탕하고 있으니, 그렇게 믿자. 물론 어떤 자료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저자의 주장이 다르게 해석될 수는 있다 - 할 있느니, 제목에 '농담'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쉽게, 편하게 읽으라는 말로 받아들이면 된다. 


(글 중간 중간 괄호를 통해서 저자의 생각을 쓰고 있는데, 그 부분을 통해서 가벼운 농담처럼 미소를 짓게 된다.)


그만큼 이 책은 쉽게 쓰여졌다. 어려운 용어가 나오지만, 그런 용어는 건너뛰어도 된다고, 이해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전체 맥락을 이해하면 되니, 맥락을 이해한 다음에 더 깊게 공부할 사람은 하면 된다.


총 7개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질소, 단위, 플라스틱, 성별, 우주 개발, 빅데이터, 날씨를 다루고 있다. 과학이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루고 있는 분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과학은 농담처럼 쉽게 우리에게 다가와야 한다. 우리 삶과 떨어질 수 없으니.


첫장에서 다루는 질소는 과학의 양면을 보여준다, 과학의 양면? 또는 과학자의 양면? 어떤 방면으로 쓰이느냐 따라 긍정과 부정, 양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그런 과학(기술)


따라서 과학에는 책임이 따른다. 윤리를 생각하지 않는 과학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질소와 플라스틱, 빅데이터, 날씨(특히 인공강우)가 그렇다. 좋게도 안 좋게도 쓰일 수 있는 과학이다.


인구 증가로 인해 굶주림에 시달리게 될 미래, 그 미래를 기우로 바꾸어버린 것이 바로 질소를 고정시킬 수 있는 과학이다. 질소비료다. 식량생산을 엄청나게 증대시킨 질소비료. 식량난을 해소할 수 있게 해준 질소비료. 이 질소비료를 만들어내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하버라는 사람.


그런데 이 하버라는 사람은 질소비료를 통해 인류를 식량난에서 구해냈을지 몰라도 독가스 개발로 인류를 대량살상의 길로 이끈 사람이기도 했다는 사실.


이렇게 양면을 지닌 과학, 플라스틱으로 인해 인류는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됐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문제로 고심하게 되었고, 빅데이터로 수많은 자료들을 관리, 이용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위험한 지경에 빠지게도 되었으니... 플라스틱이든 빅데이터든 결국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단위가 왜 과학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학교 다닐 때 무슨 무슨 왕의 업적이라고 외웠던 '도량형 통일'이 바로 단위이고, 이는 사회의 안정 뿐만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을 알려주기도 한다는 사실.


언어는 같지만 단위가 다르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남을 이 장을 시작하면서 보여주고 있고, 지금 별 생각없이 쓰는 단위가 사실은 오랜 세월을 거쳐 확정되어 왔다는 사실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그러니 이 단위 이야기에서 진시황과 프랑스혁명이 연결이 되니, 역사와 과학을 연결시켜서 이야기해주고 있으니, 과학이 다른 분야와 연결되어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최근 우리는 다누리호를 통해 다시 달탐사를 시작한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소련과 우주의 우주경쟁에 대한 이야기. 우주 개발에 관한 이야기 중에 특히 구 소련에서 한 일들이 이 책에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예산이 별로 없어서 투자를 잘하지 못한 소련이 오히려 우주비행사들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역설을 발휘했다는 것. 그렇다.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지원이 별로 없다면?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니 그들은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기술을 익히고 정교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요듬은 냉전시대라고 할 수 없으니 (여전히 평화시대는 아니고, 러시아와 미국의 갈등, 중국과 미국의 갈등 등, 세계는 많은 갈등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서로 협력해서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데, 그 전에 이루어진 우주 개발의 역사를 발판으로 삼는다면, 더 나은 우주 시대가 개척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장이다.


날씨와 기후에 대한 장도 마찬가지다. 이 장에서는 특히 인공강우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인공강우의 장단점을 생각하게 한다. 과학의 양면, 신중하게 고려하고 실행해야 함을 더 생각하게 해준다.


성별에 관한 장. 아마도 이 책은 성소수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읽으면 놀랄 것이다. 놀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는 성소수자에 대해서 명확한 관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 성별만이 존재한 적은 없다는 것. 성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또한 성전환 수술 역사도 꽤 오래되었다는 점 등등. 


최근에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지고 있지만 아직도 그들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 책에 쓰인 성별에 관한 이야기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는 과학을 통해서 그런 배타적인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우선 이 책은 재미 있다. 그리고 그 재미를 통해서 생각을 한 단계 나아가게 된다. 과학이라고 과학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생활 전반과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농담처럼 우리 생활에 과학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으니, 과학은 몇몇 과학자들만의 분야라는 생각을 깨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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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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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용서는 아름답지 않다. 어떤 용서는 더 큰 폭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용서를 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니 '모든'이라는 말을 용서에 붙이면 안 된다.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나치 SS대원이 죽을 때가 되어서 유대인에게 자신이 한 행동을 용서해 줄 수 있느냐고 한다.


그 말은 들은 비젠탈은 침묵을 지키고 그 방에서 나온다. 그리고는 그 일이 마음에 남아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고, 세월이 흐른 뒤에도 과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한다.


이 책은 그러한 비젠탈이 경험한 내용과 질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보내준 사람의 글을 모아놓았다. 자, 과연 용서를 할 수 있을까? 


학살에 가담한 행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미 사람들은 학살당해 죽었는데, 그들은 용서를 할 수가 없는데... 또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은 사실을 같은 유대인이라고 대표로 용서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독일인은 진정으로 참회했는가? 


다양한 논점에서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정답은 없다. 상황에 따라서 또 사람에 따라서 용서에 대한 개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글쎄 개인의 차원과 집단의 차원이 있고, 용서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용서하지 못할 문제가 있다. 또한 비슷한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입은 피해를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표로 용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있다.


비젠탈이 침묵을 지키고 용서를 하지 않은 일은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용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자신의 죽음에 임박해서 용서를 구하는 일은, 진정한 참회가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한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청준이 쓴 '벌레이야기'와 그 소설을 영화로 만든 '밀양'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용서의 문제... 누가 용서를 해줄 것인가? 당사자가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가해자가 다른 존재에게서 용서를 받을 수 있는가?


다른 존재에게 용서를 받기 전에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참회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행동을 해야 한다. 용서를 받느냐 마느냐를 생각하지 않고, 진정한 참회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냥 해야 한다.


용서는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가해자의 행동을 보고 피해자가 결정할 문제다. 그것이 용서의 의미다. 그런데 가해자가 당사자도 아닌 그 집단의 일원인 한 사람을 제멋대로 대표로 설정해서 용서를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안 된다. 이는 진정한 참회가 아니라 자기만족일 뿐이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는 비젠탈이 용서를 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젠탈 역시 유대인으로 희생자에 속하지만, 학살을 당한 사람들을 대표할 수는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침묵이었다. 그 침묵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데, 나치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용서 운운할 말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치 대원은 진정 참회를 했다면 유대인을 불러서는 안 됐다. 그들에게는 앗 하는 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아무 유대인이나 불러달라고 한 그의 행동은, 아무 유대인이라는 말에 진정한 참회가 담겨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아무 유대인이라니, 유대인들이 개개인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당시 유대인이 개인 행동을 했다가는 사살당하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유대인을 아무나 불러달라고 하다니...


그가 만약 유대인들의 상황에 대해 생각을 했다면 그런 행동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진정 참회하려면 수용소장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유대인 중에서도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의 말을 듣는 유대인도 위험에 빠지지 않게 된다. 그런 절차, 행동을 하지 않고 무작정 아무 유대인이나 불러달라고 한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진정으로 참회했다고 할 수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책 제목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에 대해서 아니다. 모든 용서는 아름답지 않다고 답하겠다. 어떤 용서는 오히려 악을 조장하고 수용하게 하기도 하니까. 또 어떤 용서는 진정한 참회가 아니라 자기만족에 불과하기도 하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이 절규하면서 하는 말, 내가 용서를 안 했는데,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가 있지라는 말. 그렇다.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일이다. 가해자가 받고 싶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가해자는 자신이 잘못한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행동해야만 한다. 피해자가 용서해주든 해주지 않든. 그것이 참회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용서를 언급하지 않는가. 너무도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을 편협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는가.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용서로 인해 악이 근절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용서를 구하기 전에 진정으로 참회를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고쳐야 한다. 그때서야 용서라는 말을 할 수가 있다. 이것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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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2-09-07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저는 이 책 읽다가 조금 남기고 중지중인것 같은데 리뷰 덕분에 완독의지를 다져 봅니다!ㅎ 즐거운 저녁시간되십시요!

kinye91 2022-09-07 21: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2부에 실린 비젠탈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답들이 여러 생각을 하게 해요. 그 점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하라 2022-09-08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즐겁고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kinye91 2022-09-08 13:49   좋아요 1 | URL
이하라 님께서도 즐겁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thkang1001 2022-09-08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행복하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kinye91 2022-09-08 15:19   좋아요 0 | URL
thkang1001 님께서도 즐겁고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渼沙_常水 2023-02-27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살아남은자가 죽은이를 대신하여 용서를 할 수 없습니다. 살아남은 유가족 으로서 자신의 고통에 대하여 용서를 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만 입니다. 가해자는 잘못했다는 사과와 반성만을 해야 합니다. 용서를 구하는것 자체가 이기심입니다.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용서를 받았다 하더라도 모든 죄책감에서 해방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kinye91 2023-02-27 15:55   좋아요 0 | URL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가해자는 사과와 반성만을 해야 한다는 말씀 요즘 더 새겨야 할 자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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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법정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었다. 법정 드라마가 가끔 나오는데, 검사가 주인공일 때도 있고, 변호사가 주인공일 때도 있다. 판사는? 잘 모르겠다.


법원의 세 축이 판사-검사-변호사다. 어느 한 축으로 기울지 않는다. 검사와 변호사는 서로의 주장을 법률 근거를 들어서 제시하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이를 통합해서 판단하고 판결을 내리는 존재가 판사다.


그런 판사들의 세계는 어떨까? 판사들의 세계는 알기 어렵다. 검사나 변호사는 언론에 자주 노출이 되는 반면 판사는 언론에도 잘 노출되지 않는다.


그리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하는데, 판결문은 참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많다. 그들은 법정 높은 곳에서 판결을 내리듯이 판결문에서조차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그래야 권위가 생기는가.


이 책은 판사들의 세계를 다룬 소설이다. 물론 완전 허구는 아니다. 작가가 판사고, 자신이 겪은 일들을 상상을 가미해서 표현한 팩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판사들의 세계를 잘 느낄 수 있다.


판사들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판사들은 판결을 할 때 망치를 두드리지 않는다는 사실. 


땅! 땅! 땅! 이것에 익숙해져 있는데, 그런 권위적인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긴 판사도 사람인데... 사람이기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 그럼에도 법에 의해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들의 고충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다양한 사건이 제시되고, 그 사건이 법원에서 어떤 판결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소설. 어떤 사건은 결말을 내지 않고, 또 1심 판결만 나오고 항소심에서 어떻게 판결이 내려질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배석 판사 두 명을 주인공으로 삼아 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 소설 속에서 정의는 무엇일까? 법은 정의를 어떻게 실현할까? 그럼에도 법이 지니는 한계는 무엇일까까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마지막 장이 국민참여재판으로 끝나고 있는데, 다수결이 아닌 끝장 토론을 통해서 만장일치로 결정하게 하는 모습은 왠지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생각나게도 하는데, 다른 사람의 운명이 걸린 일이니 판사만이 아니라 국민들이 참여하는 방법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박차오름 판사의 활약상이 처음에는 통쾌하고 웃음을 자아내지만, 뒤로 갈수록 임바름 판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어서 통쾌함은 줄어들지만, 법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함무라비 법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것이 사실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라는 점. 그렇다면 법관은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약자를 보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 또한 시민들 또한 자신들의 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


이것이 이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이 말, '권리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말라'는 말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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