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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코스모스]하면 내게는 칼 세이건이 쓴 책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우리나라 늦여름부터 가을이면 지천에서 볼 수 있는 꽃인 코스모스도 떠오르지만. 그 꽃만큼이나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는 내게 코스모스의 대명사라고 할 만할 정도였다.
그만큼 칼 세이건의 책이 내게 경외감을 주었는데... 그 내용을 이해하고 말고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행복을 느꼈고, 광대한 우주를 세이건과 함께 여행하는 느낌을 지니곤 했다. 지금도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또다른 책인 [코스모스]를 봤다. 어라, 세이건 책이 아니네. 앤 드루얀. 어떤 내용이지. 작은 제목이 있다. '가능한 세계들'
우주 속에서 우리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별을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인가? 제목이 코스모스니 우주에 관한 내용이리라 추측을 하고 빌렸다. 읽어야지, 당연히.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지 궁금해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기 전에 저자를 보니, 칼 세이건과 함께 작업을 했던 사람, 세이건이 죽기까지 함께 살았던 사람이다. 그들은 함께 우주를 탐색하고, 과학을 대중들에게 알리려는 일을 했던 사람이다. 앤 드루얀이 [코스모스]란 제목으로 여러 번의 작업을 했음도 작가 소개에 나와 있으니 책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진다.
이 기대는 감탄으로 바뀌는데는 책장을 얼마 넘기지 않아서였다. 칼 세이건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장에서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 그 말 하나면 이 책을 정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 하나로 과학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26쪽)
이 말을 실천하는데 칼 세이건만큼 행동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앤 드루얀도 마찬가지다. 이 책 역시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 과학은 골방에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만에게 해당하지 않고 우리 인류 모두에게 필요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듯이.
우주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주를 이야기하기 위해 앤 드루얀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리고 우리 지구가 걸어온 역사와 인물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지금 인류세라는 절명위기 시대를 겪고 있지만, 지구 역사, 우주 역사를 보면 그런 일들은 늘 있었고, 그것을 거쳐온 과정이 지금까지 우주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절망만 할 필요도 없다. 많은 과학자들이 예언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카산드라 이야기처럼, 과학자의 예언을 믿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반대하는 이익집단들이 있었다. 하지만, 카산드라의 예언은 비극적일망정, 사실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의 예언은 실현된다.
과학자들의 예언은 예언이라기보다는 예측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에 기반한 증거를 해독해서 그 증거를 토대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예측한다. 그러므로 예측은 행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즉 예측을 통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앤 드루얀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자연을 완전히 경험하지 못하도록 막는 어둠의 커튼을 살짝 들추는 방법을 하나 안다. 그것은 바로 과학의 기본 규칙들이다. 어떤 발상이든 실험과 관찰로 확인해 볼 것, 시험을 통과한 발상만 받아들일 것, 통과하지 못한 발상은 버릴 것, 어디든 증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의심할 것. 권위에 대해서도. 이 규칙들만 지킨다면, 코스모스는 우리 것이다." (33쪽)
자연을, 우주를 완전히 안다는 생각을 버린다. 그저 살짝 들출 뿐이다. 그런데 살짝 들추는 방법도 쉽지는 않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증거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가. 또한 증거가 있음에도 권위에 굴복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과정이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역사는, 코스모스의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옳은 길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 결과다. 그런 과정을 감동있게 표현하고 있기도 한데...
특히 바빌로프(4장.바빌로프)에 관한 부분에서는 지금 우리 인류가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굶주림 앞에서도, 굶주려 죽어가면서도 인류를 위해 씨앗(종자)를 먹지 않았던 학자들. 바빌로프의 동료들.
그들은 인류가 굶주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종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고, 그 종들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세계를 돌아다니면 세계의 씨앗들을 모아두었다. 전쟁으로 굶주림에 시달릴 때 그 씨앗들을 먹으면 굶어죽을 일이 없을텐데도, 그들은 미래를 위해서 굶어죽는 길을 택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알기에, 그 미래를 파괴하면서 현재를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 과학자들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태도 아닌가. 그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 택해야 하는 천형과도 같은 윤리다. 그 윤리를 저버리면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10장, 두 원자 이야기)원자폭탄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데 참여한 데서 더 나아가 더욱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텔러와 같은 과학자처럼 된다.
로트블렛이라는 과학자는 전쟁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한 폭탄을 개발하는 쪽으로 나아가는텔러와 같은 과학자도 있다고 하니...참고로 아인슈타인이 마지막으로 서명한 문서가 핵개발을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인류가 합심하자고 하는 버트런드 러셀이 쓰고 로트블렛이 발표한 문서였다고 한다.
텔러라는 과학자와 아인슈타인 또는 로트블렛이라는 과학자가 걸어간 길은 다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은 바로 아인슈타인과 로트블렛이 걸어간 길. 즉 과학이 파멸의 길로 가지 않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의식하는 과학자. 그리고 그런 과학을 깊은 의미까지 이해해야 하는 우리들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과학자들은 예측을 했다. 그들을 카산드라로 만들지 않을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힘을 합쳐 그들의 목소리에 반응해야 한다. 그래야만 예측을 통해 결과가 바뀔 수 있게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힘만으로도 결과는 엄청나게 바뀔 수 있음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앤 드루얀이 쓴 이 책, 광대한 우주 이야기가 결국 우리 인간 이야기임을, 우리 역시 우주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멀리 별을 보아도 좋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아도 좋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존재들을 보아도 좋다. 우리는 모두 우주니까.
그런 코스모스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고, 또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 앤 드루얀과 칼 세이건이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칼 세이건을 만날 수 있다는 행복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