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을 불태우다 삶창시선 45
노태맹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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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소통이 아니라 불덩어리다' (135쪽 10-6-1)

 

시인이 직접 한 말이다. 이 말과 '벽암록'을 연결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집의 많은 시들이 '벽암록을 읽다'이고 (무려 20편 연작시다), 그 다음에 단 한 편의 시 '벽암록을 불태우다'가 나온다. (하긴 불태우는 일은 한 번이면 족하다. 두 번이면 식상하다)

 

벽암록은 화두집이라고 할 수 있다. 화두(話頭), 짧은 말이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생각들을 담고 있는 말이다.

 

치열한 고민 끝에 화두가 나왔을테고, 그 화두에 대한 답은 어느 하나가 아니다. 어떤 때는 말이 아니기도 하다. 그만큼 화두는 치열하다.

 

삶의 치열함 그 속에서 진리가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집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벽암록에서 벽암(碧巖)이 푸른 바위라는 뜻이라면, 시인은 그것을 불태워버렸다. 푸른 색, 주로 보수에서 쓰는 색깔 아니던가.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정치계는 참 역설적이다. 가장 보수적인, 어쩌면 수구적인 새누리당이 붉은 색을 쓰고 있으니.. 야당을 표방하는 정당이 푸른색 계열을 쓰는, 참...뭐라 말할 수 없는) 

 

무언가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차분함... 정리정돈됨, 변화가 거의 없음. 그런 느낌을 푸른색이 준다면 반대로 붉은 색은 역동적임, 변화가 많음, 불안정함 등등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시집에는 붉은 꽃이 많이 나온다. 세상이 점점 푸른색으로 갈 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붉은 꽃이 필요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낙엽처럼 사람들이 자꾸 희망에서 떨어져내린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너무 많은 말들이 있다. 너무 많은 귀들이 있다. 물론 우리는 말하고, 우리는 들어야 한다.' (120쪽. 5-4)

 

이럴 때 시가 필요하다. 시는 그래서 소통이 아니라 불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이런 일이 있음을 보고 들을 수 있게 충격을 주어야 한다. 너무도 뜨거워서 잊을 수 없게 그런 불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벽암록을 불태워야 한다. 글 속에 갇혀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 '벽암록을 불태우다'를 보자.

 

벽암록을 불태우다

 

1.

 

검은 百日紅꽃 앞에 서다.

 

그렇게 서서,

붉은 百日紅꽃 필 때까지 서서

반질반질한 나무처럼 서서

經典이 푸른 문신처럼 새겨질 때까지 서서

그렇게 눈 속에 서서,

 

검은 碧巖錄 불 속에 던져버리다.

 

2.

  어떤 스님이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묻자 성공(性空) 스님이 말했다 합니다. "천 길이나 깊은 우물 속에 사람이 빠져 있는데 한 치의 새끼줄도 사용하지 않고서 그 사람을 건져낼 수 있다면 서쪽에서 오신 그 뜻을 답하여 주리라." 그러자 그 스님은 "이미 나왔습니다." 하였습니다. 누가 이겼을까요? 동그라미 안에 갇힌 개미가 동그라미 선을 밟지 않고 빠져나오는 방법을 묻는 현대 물리학의 질문과 비슷하지요. 정답은 4차원입니다. 그 도통한 스님은 이미 4차원을 알았던 것일까요? 그러나 이 건방진 스님의 대갈통은 스무 방 맞아 마땅합니다. 오히려 향림 스님이 옳습니다. 어느 스님이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묻자 향림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구부리고 있었더니 아이쿠 허리야, 머리야, 팔다리야, 죽을 것 같구나!"  헛똑똑이 스님과 오랜 참선으로 산재 입은 향림 스님의 정처는 어디서 갈라지는가요? 물론 침묵도 노동입니다. 이를테면

 

눈 속 흰 매화 피고

벽암록 불 속에 던져 버립니다.

살아 있는 것을 만나면 그와 함께 살고

죽은 것들을 만나면 그와 함께 죽습니다.

 

3.

 

하여,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읽을 것이 없을 때

검게 타버린 네 몸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라!

 

아무것도 두드리며 노래할 것이 없을 때

검게 타버린 저 둥근 허공을 두드리며 노래하라!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을 때

불 타 부서져 흘러내리는 네 옆의 사람을 기억하라!

 

노태맹, 벽암록을 불태우다. 삶창. 2016년 초판 1쇄. 69-71쪽. 

 

 

화두로 우리의 정신에 불을 붙였다면,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고도의 정신 노동에서 끝나버리면 안 된다. 벽암록을 불태워버려야 한다. 정신노동에서 그치지 않고 몸으로 나아가야 한다. 저 향림 스님처럼.

 

그래서 시인은 벽암록을 불태워버린다고 한다. 불태워버리고 이제는 자신을 본다. 주위 사람들을 본다. 그들과 함께 한다. 그들과 함께 함은 정신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몸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가능성, 그것이 바로 불덩어리다. 이게 바로 시다. 이렇게 시인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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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 개정판
조이담.박태원 지음 / 바람구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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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이토록 문학적으로 잘 드러낸 작품이 있을까? 서울을 걸으면서 서울을 드러낸 주인공으로 우리는 '구보'를 잊을 수가 없다. 이 '구보'는 세월이 흘러도 우리 곁으로 다가와 또 다른 '구보'로 살아 있게 된다.

 

일제시대에 박태원의 '구보'가 있었다면, 1960-70년대에는 최인훈의 '구보'가 있었고, 1990년대에는 주인석의 '구보'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문학 작품 속에 '구보'로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수많은 '구보들'이 있고, 이 '구보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아니, 바로 내가 '구보'가 될 수 있다. '구보'가 되어야 한다. 또 '구보'가 꼭 서울에만 있을 필요는 없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산책하면서 그곳을 드러내면 그 사람이 바로 '구보'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구보'다. '구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장소'로 바꾸는 일이다. 

 

이런 '구보'를 최초로 창조한 박태원. 그가 남북이 갈린 다음 북한에서 시력을 잃었음에도 구술을 통해 소설을 (갑오농민전쟁) 집필했음이 알려져 있는데... 모더니스트였던 그가 리얼리스트로 생을 마감했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신 박태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박태원에 관한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박태원의 일생을 다루지 않고 그의 '구보'가 탄생하기 직전까지를 '팩션'의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사실에 기반하되, 세세한 상황묘사는 허구적으로 꾸며내는. 그래서 박태원에 대해서 더 생생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서술방식이다.

 

이 부분에서 박태원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넷이 나온다. 하나는 숙부인 박용남, 숙부가 아끼는 제자인 한위건, 또 고모가 아끼던 제자 이덕요 (한위건과 이덕요는 나중에 부부가 된다), 그리고 춘원 이광수다.

 

어린 시절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중에 박태원을 문학으로 이끈 사람이 이광수라 할 수 있는데 (그가 박태원을 등단시켜주었다고 이 책에 나와 있다), 박태원을 문학에 관심을 갖고 그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은 이덕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공산주의자가 되는 한위건은 나중에 박태원이 북쪽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도 하고.

 

이렇게 어린 시절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집안의 가업이라 할 수 있는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으로 나아가, 결국 '구보'를 창조하는 장면까지가 그의 새로운 전기문이라고 할 수 있다면...

 

두 번째 부분은 이제 본격적으로 경성(서울)을 돌아다니는 '구보'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다.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원문을 장면장면으로 나누어 다 실어놓고, 그 장면장면에 해당하는 해설을 곁들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말처럼 원소설보다 해설이 더 긴 편집인데... 어쩌면 '천천히 읽기(슬로 리딩)'를 하는데 이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해설이(주석이라고 해도 좋다) 잘 되어 있다.

 

이런 해설을 중심으로 더 심화 확장하면 이 짧은 단편소설을 가지고도 한 해 넉넉하게 읽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사회, 문화, 역사, 지리, 문학과 더불어 음악, 미술. 여기에 함께 했던 문학인들까지. 특히 김기림과 이상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공부할 필요도 있으니...

 

1930년대 서울을 산책하는 '구보'를 통해, 그는 그 당시 현재를 탄구하는 '고현학'이라는 말을 썼지만, 구보가 사용한 '고현학'이 작품을 읽는 우리에게는 '고고학'이 되었으니, 어쩌면 이 책은 고현학으로 고고학 하기가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서울을 걸으며 30년대 '구보'가 걷던 서울을 느끼고, 비교하면 이보다 더한 문학체험은 없을 듯하다.

 

도시를 걷는 '구보'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하게 한 책. 우리 모두 '구보'가 되자.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나와 동떨어진 공간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내가 속한 '장소'가 될 것이다.

 

덧글

 

어라, 이 책 품절이라고 뜬다.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 봤는데... 이 책 읽으며 서울을 산책하면 좋을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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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야. -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 생일시 모음
곽수인 외 33명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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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이 시집을 사기가 망설여졌다. 사야 하는데, 살 수 없었다. 아니 살 수는 있었지만,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이 시집을 읽기에는 많은 시간과 많은 의지가 필요했다. 어쩌면 읽지 않는 편이 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어차피 이 시집을 샀으니까... 왜? 시집을 산 것으로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이 시집의 뒷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책으로 발생하는 모든 인세 수익은 / 다시금 이 책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 보통 시집의 두 배 정도의 분량을 가진 이 책의 가격을 / 보다 많은 분들이 보다 마음 편히 구입하실 수 있도록 / 최대한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데는 ... (257-258쪽)

 

그래 샀잖아. 최소한의 일은 했잖아. 참 안일한 생각이다. 몰라도 무얼 모르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쉽게 시집을 펼치기가 힘들었다.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읽으면서 느낄 그 슬픔, 그 분노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세월호 청문회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도 이 시집을 펼칠 수가 없었다. 도대체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진실은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에 묻혀있고, 세월호가 인양된다고 해도 과연 진실이 밝혀질까 하는 의문이 더 강하게 들고 있으니... 그 마음 아픔을 어떻게 감당할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럼에도, 읽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의미는 그냥 사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들의 시를 통해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끝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 아이들의 추움을 껴안아주세요. / 아이들이 그러잖아요. / 엄마 나야, 라고. (258쪽)

 

그렇다. '엄마, 나야'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냥 허공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이 시집을 읽어야 했다. 읽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아이들의 소리, 시인들의 시를 통하여 세월호의 진실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결코 잊혀지지 않게. 그러므로 읽어서 잊혀지지 않게 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이 시집은 읽기 힘들다. 계속 다음 시로 넘어가기가 힘들다. 한 편 한 편에 아이들의 삶이 담겨있기에...

 

힘들어도, 마음이 자꾸만 시집을 밀어내도, 읽어야만 했다. 이제는 별이 된 아이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기에... 들어서 슬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어야 했기에...

 

지식채널e 윤동주 편에서 윤동주를 19450216호 별이라고 했듯이, 이제 우리는 이 아이들을  20140416호 별이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별이 된 아이들... 저 멀리에서 빛나는 그런 아이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더 말해 무엇하리... 시집을 통해 20140416호 별들의 소리를, 저 멀리서 빛을 통해 소리를 들려주는 그 별들의 소리를 들으며, 결코 세월호를 잊어서는 안됨을, 세월호가 잊혀져서는 안됨을...

 

덧글

 

이비에스 지식채널e 윤동주 편 주소 링크다. 젊은날 별이 되어 우리에게 시를 남겨준 시인의 이야기. 그래서 절대로 잊을 수 없듯이, 이 책도 마찬가지이리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부 - 별

http://home.ebs.co.kr/reViewLink.jsp?command=vod&client_id=jisike&menu_seq=1&enc_seq=1177779&out_cp=ebs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2부 - 시

http://www.ebs.co.kr/tv/show?prodId=352&lectId=1177783&gnbVal=1&pageNum=1&srchType=1&srch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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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여성작가 대표 소설선 59클래식Book
이사벨 아옌데 외 지음, 송병선 옮김 / 더스타일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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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명의 라틴아메리카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이 책은 세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라틴아메리카라는 특수성. 우리가 흔히 남미라고 하는 이 나라들, 흔치 않은 역사의 굴곡을 경험한 나라들이다.

 

식민지에서부터 독재정권까지 험난한 현대사를 겪어온 나라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루고 있는 나라들. 이 중에서 코스타리카는 군대까지 없앤 나라이지만, 아직도 정치적, 군사적 갈등을 겪는 나라들이 많이 있다.

 

그런 역사적 상황들이 이 책에 실린 소설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 책의 두 번째부터 다섯 번째 소설에서는 이런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이 집약되어 나타난다.

 

두 번째는 여성 작가들이라는 사실. 요즘은 여류작가란 말을 붙이진 않지만, 남녀 차별이라는 말을 떠나서 남녀의 감수성에 차이가 있고, 시대적 상황을 겪어나가는 과정과 그를 기억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우리는 험난한 세상에서는 여성과 아이들이 더 큰 고통을 받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 책의 첫번째 소설인 "복수"를 보아도 여성이 어떤 고통을 받는지, 그 고통을 자신의 온몸으로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잘 나와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여성들의 시각에서 본 라틴아메리카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에 실린 작품인 "훌륭한 어머니처럼"을 보면 여성이 가정에서도 얼마나 힘들게 지내는지... 육아라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은 일임을, 육아에 빗댄 사회생활이라면 여성에게는 남성보다는 더한 짐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세 번째는 단편소설이라는 점이다. 단편소설은 우선 짧은 분량으로 읽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사건이 다양하지 않고 등장인물도 적어서 읽을 때 책장의 앞뒤를 다시 왔다갔다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짧기에 역사적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체적인 모습을 표현하기는 힘들다. 다만, 특정한 사건 속의 인물들을 표현하기에 적합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에 대해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그냥 직접적으로 사건으로 들어간다. 그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짧은 분량이지만 충분히 그 상황을 이해하고,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낼 수 있다. 단편소설이 지닌 묘미가 잘 나타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알면 짧막한 단편소설이지만, 더욱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듯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 여성작가들의 단편'을 모아 놓은 책이다. 열세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작가들의 작품이 골고루 실려 있어서 한꺼번에 새로운 문학을 접하는 경험을 하게 되어 좋다.

 

결국 문학은 삶과 동떨어질 수 없는 것이니, 특히 라틴아메리카와 우리나라는 비슷한 역사적 경험, 식민지, 독재정권을 경험했으니, 이 소설들이 꼭 남의 나라 이야기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우리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 역할도 해주고 있으니, 이래저래 읽어볼 만한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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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대 소설의 탄생 - 발자크에서 카뮈까지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17
김화영 지음 / 돌베개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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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세계문학 전집이 많이 팔렸었다. 논술을 위해서도 명작을 읽어야 한다고 했고, 삶에 대한 성찰을 하기 위해서도 명작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명작보다는 세계명작이라는 책들이 많이 읽혔었는데, 그 중에서도 지금도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작가들을 뽑아 보면 이상하게도 프랑스 작가들이 많다.

 

러시아 작가들도 우리의 머리 속에 남아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친숙한 것은 프랑스 작가들이 아닌가 한다.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 다룬 작가들은 명작 하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가들이니.

 

시작을 스탕달에서 시작한다. 바로 그의 작품 "적과 흑" 출세를 지향하던 한 청년의 야망과 좌절을 그린 작품으로, 신분이 세습되던 시기,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신분제 사회가 붕괴되던 시기를 살아간 인물부터 프랑스 현대소설이 탄생했다고 저자는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스탕달을 거쳐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까지 나아간다.

 

작품으로 따지면 약 110년 간인데... 맺음말에서 이야기하듯이 이 책에 등장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단두대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단두대의 죽음"을 기다리면서 끝난다.

 

"죽음 앞의 인간"이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는 서술인데...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난다. 그렇다면 이 사이에 있는 발자크부터 프루스트까지는 그 죽음 사이에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형상화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즉, 저자는 프랑스 현대 소설을 통해서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인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하고 싶었다고 할 수 있다.

 

명작이 무엇인가? 소위 우리가 "고전"이라고 하는 것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 아닌가? 삶에 대한 성찰을 이룬 작품들이 고전이고 명작일테니...

 

프랑스의 그 유명한 작가들과 작품들 중에서 6편을 선정한 기준은 바로 이런 기준, 즉 죽어야만 하는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삶이 유한한 동안에 제한된 공간인 사회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 그래서 삶과 사회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이 작품들을 읽어보면 된다. 대부분 학창시절에 읽은 작품이라 이 책을 읽으며 (인물들에 대한 평이나, 작가에 대한 소개, 그리고 당시 사회의 모습, 또 작품의 내용을 잘 요약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옛날 읽었던 기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다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은 그 방대함에 또 문체의 난해함에 기가 죽어 읽지 못했지만...

 

결국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외국 소설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우리 소설에서 좋은 작품을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데 참고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을 보는 안목 못지 않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삶에 대한 성찰을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서 할 수 있다는 점... 그런 작품을 소개해주고 있다는 점이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덧글

 

한 가지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이 책의 부제다. 부제가 '발자크에서 카뮈까지'인데, 왜 발자크부터지. 이 책은 분명히 스탕달로부터 시작하는데... 특히 스탕달과 카뮈의 두 주인공이 사형선고를 받는다는 공통점을 지니는데..

 

즉,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놓인 작품들에 나타난 삶의 모습이라면... '스탕달부터 카뮈까지'가 부제로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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