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 개정판
조이담.박태원 지음 / 바람구두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서울을 이토록 문학적으로 잘 드러낸 작품이 있을까? 서울을 걸으면서 서울을 드러낸 주인공으로 우리는 '구보'를 잊을 수가 없다. 이 '구보'는 세월이 흘러도 우리 곁으로 다가와 또 다른 '구보'로 살아 있게 된다.

 

일제시대에 박태원의 '구보'가 있었다면, 1960-70년대에는 최인훈의 '구보'가 있었고, 1990년대에는 주인석의 '구보'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문학 작품 속에 '구보'로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수많은 '구보들'이 있고, 이 '구보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아니, 바로 내가 '구보'가 될 수 있다. '구보'가 되어야 한다. 또 '구보'가 꼭 서울에만 있을 필요는 없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산책하면서 그곳을 드러내면 그 사람이 바로 '구보'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구보'다. '구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장소'로 바꾸는 일이다. 

 

이런 '구보'를 최초로 창조한 박태원. 그가 남북이 갈린 다음 북한에서 시력을 잃었음에도 구술을 통해 소설을 (갑오농민전쟁) 집필했음이 알려져 있는데... 모더니스트였던 그가 리얼리스트로 생을 마감했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신 박태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박태원에 관한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박태원의 일생을 다루지 않고 그의 '구보'가 탄생하기 직전까지를 '팩션'의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사실에 기반하되, 세세한 상황묘사는 허구적으로 꾸며내는. 그래서 박태원에 대해서 더 생생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그런 서술방식이다.

 

이 부분에서 박태원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넷이 나온다. 하나는 숙부인 박용남, 숙부가 아끼는 제자인 한위건, 또 고모가 아끼던 제자 이덕요 (한위건과 이덕요는 나중에 부부가 된다), 그리고 춘원 이광수다.

 

어린 시절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중에 박태원을 문학으로 이끈 사람이 이광수라 할 수 있는데 (그가 박태원을 등단시켜주었다고 이 책에 나와 있다), 박태원을 문학에 관심을 갖고 그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은 이덕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공산주의자가 되는 한위건은 나중에 박태원이 북쪽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도 하고.

 

이렇게 어린 시절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집안의 가업이라 할 수 있는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으로 나아가, 결국 '구보'를 창조하는 장면까지가 그의 새로운 전기문이라고 할 수 있다면...

 

두 번째 부분은 이제 본격적으로 경성(서울)을 돌아다니는 '구보'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다.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원문을 장면장면으로 나누어 다 실어놓고, 그 장면장면에 해당하는 해설을 곁들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말처럼 원소설보다 해설이 더 긴 편집인데... 어쩌면 '천천히 읽기(슬로 리딩)'를 하는데 이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해설이(주석이라고 해도 좋다) 잘 되어 있다.

 

이런 해설을 중심으로 더 심화 확장하면 이 짧은 단편소설을 가지고도 한 해 넉넉하게 읽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사회, 문화, 역사, 지리, 문학과 더불어 음악, 미술. 여기에 함께 했던 문학인들까지. 특히 김기림과 이상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공부할 필요도 있으니...

 

1930년대 서울을 산책하는 '구보'를 통해, 그는 그 당시 현재를 탄구하는 '고현학'이라는 말을 썼지만, 구보가 사용한 '고현학'이 작품을 읽는 우리에게는 '고고학'이 되었으니, 어쩌면 이 책은 고현학으로 고고학 하기가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서울을 걸으며 30년대 '구보'가 걷던 서울을 느끼고, 비교하면 이보다 더한 문학체험은 없을 듯하다.

 

도시를 걷는 '구보'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하게 한 책. 우리 모두 '구보'가 되자.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나와 동떨어진 공간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내가 속한 '장소'가 될 것이다.

 

덧글

 

어라, 이 책 품절이라고 뜬다.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 봤는데... 이 책 읽으며 서울을 산책하면 좋을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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