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고독으로부터 찾는 해답 서양문학의 향기 10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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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젊은 시인이 릴케에게 자신의 고민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그가 다녔던 학교에서 릴케를 가르쳤던 선생님을 만나고 릴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다음이다.

 

생면부지의 젊은 시인에게 편지를 받은 릴케는 정성을 다해서 답장을 보낸다. 그 답장이 열 편에 해당하는데...

 

단지 젊은 시인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독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편지글이다. 이렇게 진지하게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글을 읽은 젊은 시인은 그야말로 멘토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젊은 시인은 지금 우리에게는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이름은 카푸스다) 그는 릴케의 편지를 책으로 냄으로써 문학사에 공헌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한 세기가 지난 글들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또 릴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국 시인 아니던가.

 

그가 문학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책이니, 읽어볼 만하다.

 

첫번째 편지에서 릴케는 비평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이는 문학의 기준을 외부에서 가져오지 말고 자신의 내부에서 찾으라는 말이다.

 

"비평의 말은 언제나 다행스런 오해로 귀결될 따름이니까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모든 것들을 다 이해할 수 있고 또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건들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말이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영역에서 일어나니까요. 이 모든 것보다 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예술작품들입니다." (12쪽)

 

"당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당신의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그 깊은 곳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 원천에 도달하여 당신은 당신이 꼭 창작을 해야 하는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더 이상 그것을 캐묻지 말고 거기서 들려오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17쪽)

 

릴케는 문학을 하는 데 기본적인 것은 바로 자신의 경험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어려움. 고독 등을 들고 있다. 어려움, 문제가 없다면 예술은 탄생하지 않을 것이고 고독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을 피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 그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한다.

 

네 번째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의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는 것과 그 문제들 자체를 굳게 닫힌 방이나 지극히 낯선 말로 적힌 책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40쪽)

 

마치 김수영의 시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연상시키는 이런 말들. 그렇다. 예술은 문제를 빗겨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릴케는 바로 이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는데... 차분히 읽으며 하나하나 음미해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가 될 것이다.

 

열 편의 편지가 들어있는 작은 분량의 책이지만 문학에 관해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릴케의 고민, 릴케의 문학에 대한 생각도 엿볼 수 있는 책이고, 후배 작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예술관을 펼치는 모습도 좋게 다가온다.

 

문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 곁에 두고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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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9 0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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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9 1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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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눈 - 2013년 제28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2013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
조갑상 지음 / 산지니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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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이토록 착잡할 줄이야. 응어리지어 마음 속에 남아, 질기도록 남아 찜찜한 기분을 유지할 줄이야.

 

읽으면서 몇번이나 책을 덮으려고 했는데, 그냥 지나간 과거일 뿐이야, 다 알고 있는 내용이잖아, 지금은 많이 밝혀졌잖아, 우리 역사의 어두운 부분이지만, 이제는 밝은 부분을 봐야지 하면서, 그렇게 읽기를 멈추고 싶었지만...

 

소설은 1979년 부마사태로 끝나는데... 그런데, 그 이후 우리는 4.19이후와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소설을 덮지 못했다.

 

민중의 힘으로 독재자를 끌어낸 4.19이후 6.25때 벌어진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움직임들이 활발했다. 얼마나 억울한 죽음들이 많았을까? 그 억울한 죽음의 모습들이 이 소설의 2부를 이루고 있다. 전쟁 때 이유없이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

 

살아있어도 고통받아야만 했던 사람들, 그들을 단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중에 자신들에게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죽이는 사람들... 여기에 피해보는 여성들.

 

소설은 속칭 보련(국민보도연맹) 관련자 처형 사건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국민보도연맹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전쟁 속에서 일어난 비윤리적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학살 당한 사람들이 꼭 보련 출신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고, 자신의 사적인 욕망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한 마을의 사람들을 통해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적이 명확하지 않을 때 가장 두려운 적은 바로 '이웃'이다. 한 마을에서 서로 웃으며 지내던 이웃이 갑자기 적으로 돌변해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것. '네 이웃을 사랑하라'가 아니라 '네 이웃을 조심하라'가 된다.

 

외국인이 쓴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책을 읽었을 때 함께 울고 웃으며 지냈던 이웃이 너무도 무서운 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서 전율했었는데... (이 책은 보스니아 내전을 다루고 있다. 한 국가 다민족으로 유고슬라비아를 구성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각 민족들이 독립된 나라를 만들고, 서로를 학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지금은 절판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원일의 "겨울골짜기"에서 거창양민 학살사건을 다루었고, 황석영의 "손님"에서 신천의 양민학살 사건을 다루었다. 이 소설들을 읽으며 전쟁 기간 동안에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했는지를 간접 경험했는데...

 

이 소설은 이런 이데올로기를 표방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가는 인간들이 나온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인간성보다는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말이 더 위력을 떨치던 시대다. 미국의 정치권력이 이런 말을 했었지. '부수적 피해'라고.

 

강력한 적을 섬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민간인 피해는 부수적일 뿐이라고. 아마 이 말이 의미하고 있는 핵심적 의미의 원조는 우리나라일 것이다. 빨갱이를 잡는데서 생긴 억울한 사람들의 죽음은 그야말로 '부수적 피해'일 뿐이라고. 그러니 학살한 사람들, 대다수는 죄가 없다고. 

 

그러니 그런 시대에 살아남은 사람들, 숨 죽이고 살 수밖에 없다. 사건이 일어난 뒤 십년을 숨죽이고 살고, 유해도 찾지 못한 채 살다가 4.19민주화운동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밖으로 표출하게 되는데... 관련자 처벌에 앞서 이들이 주장한 것은 진상규명이다. 진실을 밝히라는 것, 그리고 희생자들의 유골을 찾아 모시겠다는 것.

 

이들의 열망이 실현되기도 전에 5,16군사쿠테타가 일어나고, 쿠테타를 미국에 인정받고 싶어하는 세력은 다시 반공을 내세워 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겨우 십년 만에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 다시 줄줄이 끌려가 고문받고, 재판받고, 이들은 다시 범법자가 된다. 비국민이 된다. 이들만이 아니라 자식들까지도 국민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가혹한 연좌제.

 

반면 이들을 탄압했던 자들은 승승장구한다. 역사의 아이러니... 역사는 힘 센 자, 이긴 자의 편에 서는가... 짧은 기간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긴 역사로 보면 그렇지 않다.

 

소설이 끝나는 시점인 1979년은 새로운 희망, 그렇다, 29년이 지난 세월에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끝난다. 소설의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후 몇번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족해 활동을 한 것이 우리 역사의 전개인데...

 

소설은 여기까지 가지 않는다. 갈 필요가 없다. 어두운 역사 속에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다음 몫은 읽은 사람에게 돌아온다. 이렇게 우리나라 아픈 현대사를 꼭 집어서 보여주는 소설은 우리에게 역사를 잊지 않게 한다.

 

과거 역사책 속에 갇혀 있는 글자들로만 기억하게 하지 않고, 생생하게 마음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래서 문학은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존재해 온 것이고, 독재자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문학을 통제하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픈 역사,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도 아프지만, 그런 비극에 마냥 눈 감을 수밖에 없다. 제대로 진실을 밝히지 않아, 제대로 처벌을 하지 않아 우리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뼈저린 후회를 하고 다시 길거리로 나서지 않았던가.

 

소설을 읽으며 마음 속에 새겨넣는다. 이런 일, 진상을 확실히 밝혀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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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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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나라. 어쩌면 중국과 일본은 우리에게 그런 이웃나라일테다. 중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는데도, 중국 문학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지내고 있는 형편.

 

과거 삼국지, 수호지, 열국지, 초한지 등은 열심히 읽었으면서도 현대 중국 문학은 루쉰을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았다. 기껏 최근에야 위화나 모옌, 바진(파금), 장아이링 등의 작품을 읽긴 했지만,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고, 수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작가들에 대해 이 정도면 무지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현대 중국과 교류가 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애써 위로하면서 이제 많이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렇다면 일본은? 일본 문학은? 어렸을 때 읽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고, 그나마 최근에 읽은 작가라고는 오쿠다 히데오 정도일테니...

 

일본을 이웃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식민지 치욕을 안겨준 나라라서 그런가, 그럼에도 근대 우리나라 문학에서 일본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텐데...

 

일본 작품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너무도 서양에 편중되어 있던 문학 읽기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하면서.

 

오에 겐자부로는 이름을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쓴 '히로시마 노트'나 '오키나와 노트', '나의 나무 아래서' 등은 읽어서 알고 있는 작가다.

 

그렇지만 그가 쓴 소설은 읽은 적이 별로 없다. 어쩌다 지나가면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엮어 있는 소설을 읽은 적은 있을지 몰라도, 특별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단 한 편도 과거에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서 너무 소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인데... 정작 작품은 읽지 않고 다른 글들만 읽었다니 하는 생각.

 

오에 겐자부로 자신이 직접 선택한 작품들을 모아 놓은 책이라고 한다. 이제 말년에 접어든 그가 자신의 과거 작품을 다시 읽으며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놓았다.

 

그의 삶을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사소설(私小說)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소설집을 읽다보니 사소설이라는 말이 머리 속에 들어온다.

 

작가의 경험을 소설 속에 드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사소설의 기본 아니었던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사를 소설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젊은 시절, 그가 도쿄대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는 것, 그것은 초기 단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고, 일본이 미군의 점령으로 겪었던 일들을 '아인간양, 돌연한 벙어리'라는 단편에서 만날 수 있다.

 

중기나 후기 단편에서는 평화주의자로서의 오에 겐자부로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사회문제들과 더불어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사적인 이야기도 소설에 많이 등장한다. 자신의 아들과 관련된 이야기.

 

이렇게 소설을 통해서 그의 삶을, 또 전후세대라고 자처하는 일본 사회의 지식인들의 고뇌를 알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집을 통해서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지금까지 일본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었던 점들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이 소설이 지닌 특징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 자신의 삶이 개인의 삶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삶이 될 수 있음도 이 소설집을 통해서 잘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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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눈, 벌레의 눈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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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이 책에 나와 있는 단어로 이 책을 정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정리가 아니라 마음에 파고들어오는 말들이라고 해야겠다.

 

시인인 김해자가 여러 시인들의 시에 대해서 쓴 글인데..

 

모심(母心)

 

어머니 마음이다. 동사 '모시다'의 명사형인 '모심'이 되겠다. 모심이라는 말은 그래서 모시다라는 말과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뜻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고로 시인이란 세상만물을 모시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은 높은 데서 내려다 보는 새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땅을 기어다니는, 또는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시의 눈, 벌레의 눈'이다. 시인은 이런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고, 동물과 식물과 사회를 본다. 그렇게 자신이 본 것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시다.

 

이런 벌레의 눈을 누가 지니고 있는가. 섬김, 모심. 바로 어머니 마음이다. 어머니는 그런 마음으로 자식들을, 세상을 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존재를 내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그런 어머니 마음이 아닐까 한다.

 

많은 시인들의 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의 시에는 이러한 '모심'이 드러나 있다. 그런 '모심'을 읽으며 우리도 위로만 위로만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짓밟고 올라가려고 하지 않고 밑에서 함께 하려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김해자는 이런 시인들의 마음을, 시인들의 표현을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다.

 

도서관, 미싱(재봉틀), 자전거 그리고 시

 

근대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온갖 이상 기후들은 우리 인간이 초래한 결과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문명을 건설해온 인간에게 그래도 생태적인 문명이 무엇이냐고 하면 세 가지를 꼽는다고 한다.

 

도서관과 재봉틀과 자전거. 인간이 이룩해낸 문명이기는 하지만 생태와 공생할 수 있는 존재들. 이런 존재들과 비슷한 존재가 바로 '시'라는 것이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어떤 이는 세상에 시인이 나무보담도 흔하다며 너도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시인이 많은 게 무슨 죄인가 전 국민이 시인이면 어떻단 말인가 그들은 밥을 굶으면서도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은 시인이 정치꾼보다 많기 때문 아닌가'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은'이란 시의 부분... 정희성 "그리운 나무"  이 책 289쪽에서 재인용)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들, 시인. 그렇담 시도 역시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적어도 우리들 마음을 순화시킨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시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니 이 책은 인간 문명이 탄생시킨 생태적인 것들 중에 시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시는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외면해도 자신들의 마음을, 자신들이 본 것을,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한다. 결코 멸종되지 않을 종족, 시인들. 이들의 시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이런 시들을 좀더 친숙하게 만나볼 수 있게 하는 책, 김해자의 이 책이다.

 

문(門)

 

좋은 책은 읽으면서 다른 책을 읽게 만든다고 한다. 김해자 역시 한 책을 읽으며 다른 책을 읽는다고도 한다. 그랬을 때 모호하던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온다고도 했다. 시를 철학과 연계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도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왜 아니겠는가. 시 자체가 이미 삶에 대하여 고민하는 철학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는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온갖 크기의, 온갖 모양의 문들이 우리 앞에 있다. 그 문들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우리 몫이다. 그냥 안을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그냥 보여주기만 하면 흥미를 갖지 않는다. 누구나 열 수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열어젖혀야만 열리는 문들. 시는 그렇게 우리 앞에 갖가지의 문을 갖다 놓는다.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 그 문을 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렇게 많은 문이 있는데 안 열고 배기겠는가 하는 듯한 마음이 들게 이 책에는 다양한 시들이 소개되어 있다. 시라고 하기보다는 시인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정말 많은 문 앞에 선 느낌을 받는다. 열고 싶은 문, 어떤 문은 그냥 지나치고 싶은 문. 하지만 그 문들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내가 놓치고 있던 세계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시는 문(門)이 된다. 김해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를 이런 문으로 이끈다. 이제 문을 여느냐 마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난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그런 세계로.

 

그렇게 문을 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주는 책이고,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시인과 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 시집을 읽는 것과는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김민기에 대한 글이 있는데... 재작년에 노벨 문학상을 밥 딜런이 탔듯이, 김민기 역시 시인을 다루는 이 책에 나올 수 있음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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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5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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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5 1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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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비밀
홍명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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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단편소설들이 묶여 있는 소설집이다. 다른 내용들이지만 소설을 흐르는 주된 흐름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이다.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은 사람,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 불현듯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 등등.

 

하나같이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 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정규직 비율이 50%가 안 되는 나라에서,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직장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 - 이것은 곧 생계와 직결이 된다 - 한창 경제활동에 종사해야 할 사람들도 이렇듯 실직의 위험을 곁에 두고 있는데, 이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허덕이며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이 과정에서 받은 상처들이 자신의 삶을 환하게 드러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첫번째 소설에서부터 그런 모습이 나타난다. 자원봉사로 야간에 전화상담을 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사소한 밤들'

 

주인공 역시 비정규직으로 생활하다가 해고가 된 뒤에 자원봉사로 상담활동을 한다. 상담활동을 할 때는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말해서도 안되고, 가르치려는 듯이 이야기해서도 안된다. 그냥 말하는 사람에게 곁을 주면 되는 것이다.

 

말할 틈, 말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게 들어주는 일, 남의 상처를 터뜨리지 않고, 그렇다고 그 상처를 무시하지도 않고 그냥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

 

상담자원봉사를 하는 주인공은 이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남의 상처 곁에 조용히 머무를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상처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에서는 죽음으로 떠나간 동창생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던 친구들. 그들은 같은 시간을 살았지만, 같은 공간에 있기도 했지만 함께 했다고 할 수가 없다.

 

결국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함께 지내기는 했지만 서로에게 열려 있지 않았기에, 자신들만의 시간을 살았기에 이들이 함께 한 시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이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육체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함께 한다고 할 수 없음을, 동창생들의 삶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게 형식적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마음과 마음이 통하지 않을 때 어떤 삶이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조용한 생'이다. 주인공 순조는 소박하고 조용한 생을 원했지만, 보여주는 삶을 추구하는 그의 아내 모란과는 맞지 않는다.

 

이러니 이 부부는 함께 살고 있지만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그런 생활을 하게 된다. 이것이 어쩌면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곁에 있는 사람의 상처를 보아줄 시간, 마음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아닐까 한다.

 

제 상처가 있지만 다른 사람의 상처를 제 상처처럼 아파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음을 '당신의 비밀'에서 보게 된다.

 

삼남매를 키웠지만 늘그막에 홀로 지하방에서 사는 노인. 그에게 자식들은 애물단지다. 그러나 그런 애물단지라도 자신에게는 귀한 자식일 뿐. 그런 점을 옆집에 사는 성범죄자를 자식으로 둔 엄마를 보면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는 주인공.

 

그렇다. 세상 모든 부모들에게 자식은 그냥 자식일 뿐이다. 아무리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부모에게는 사랑스런 자식일 뿐. 자식들의 상처를 감싸주고 싶을 뿐.

 

이런 자신의 마음을 자원봉사자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식들이 다른 사람의 입질에 오르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부모의 마음을 제대로 아는 자식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 이렇게 소설집에 나오는 소설들은 각자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주로 자신의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게 된다.

 

'마순희'라는 소설이 그렇다. 청각장애인인 마순희를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게 된다. 동종요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은 마순희가 그럼에도 제 삶을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바로 보게 된다.

 

'해피크리닝'에서 아무런 대가없이 상처를 보듬는 모습이 나오고, '너무 멀리 가지 마'에서 결국 능선을 넘지 않는 모습, 저 멀리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내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는 모습이 나온다.

 

상처, 외면하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 내 상처든, 남 상처든 그 상처를 인정하고 함께 할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그냥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삶임을.

 

소설을 읽으며 이런 상처입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럼에도'라는 말을 떠올리며 상처를 보듬고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생각했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즐겁게 잘 읽었다. 우리들 삶을 이렇게 보여주는 소설, '삶창'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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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7: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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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7: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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