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눈, 벌레의 눈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에 나와 있는 단어로 이 책을 정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정리가 아니라 마음에 파고들어오는 말들이라고 해야겠다.

 

시인인 김해자가 여러 시인들의 시에 대해서 쓴 글인데..

 

모심(母心)

 

어머니 마음이다. 동사 '모시다'의 명사형인 '모심'이 되겠다. 모심이라는 말은 그래서 모시다라는 말과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뜻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고로 시인이란 세상만물을 모시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은 높은 데서 내려다 보는 새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땅을 기어다니는, 또는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시의 눈, 벌레의 눈'이다. 시인은 이런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사람을 보고, 사물을 보고, 동물과 식물과 사회를 본다. 그렇게 자신이 본 것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바로 시다.

 

이런 벌레의 눈을 누가 지니고 있는가. 섬김, 모심. 바로 어머니 마음이다. 어머니는 그런 마음으로 자식들을, 세상을 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존재를 내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그런 어머니 마음이 아닐까 한다.

 

많은 시인들의 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의 시에는 이러한 '모심'이 드러나 있다. 그런 '모심'을 읽으며 우리도 위로만 위로만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짓밟고 올라가려고 하지 않고 밑에서 함께 하려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김해자는 이런 시인들의 마음을, 시인들의 표현을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다.

 

도서관, 미싱(재봉틀), 자전거 그리고 시

 

근대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온갖 이상 기후들은 우리 인간이 초래한 결과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문명을 건설해온 인간에게 그래도 생태적인 문명이 무엇이냐고 하면 세 가지를 꼽는다고 한다.

 

도서관과 재봉틀과 자전거. 인간이 이룩해낸 문명이기는 하지만 생태와 공생할 수 있는 존재들. 이런 존재들과 비슷한 존재가 바로 '시'라는 것이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어떤 이는 세상에 시인이 나무보담도 흔하다며 너도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시인이 많은 게 무슨 죄인가 전 국민이 시인이면 어떻단 말인가 그들은 밥을 굶으면서도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은 시인이 정치꾼보다 많기 때문 아닌가'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은'이란 시의 부분... 정희성 "그리운 나무"  이 책 289쪽에서 재인용)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들, 시인. 그렇담 시도 역시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적어도 우리들 마음을 순화시킨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시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니 이 책은 인간 문명이 탄생시킨 생태적인 것들 중에 시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시는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외면해도 자신들의 마음을, 자신들이 본 것을,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한다. 결코 멸종되지 않을 종족, 시인들. 이들의 시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이런 시들을 좀더 친숙하게 만나볼 수 있게 하는 책, 김해자의 이 책이다.

 

문(門)

 

좋은 책은 읽으면서 다른 책을 읽게 만든다고 한다. 김해자 역시 한 책을 읽으며 다른 책을 읽는다고도 한다. 그랬을 때 모호하던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온다고도 했다. 시를 철학과 연계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도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왜 아니겠는가. 시 자체가 이미 삶에 대하여 고민하는 철학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는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온갖 크기의, 온갖 모양의 문들이 우리 앞에 있다. 그 문들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우리 몫이다. 그냥 안을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그냥 보여주기만 하면 흥미를 갖지 않는다. 누구나 열 수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열어젖혀야만 열리는 문들. 시는 그렇게 우리 앞에 갖가지의 문을 갖다 놓는다.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 그 문을 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렇게 많은 문이 있는데 안 열고 배기겠는가 하는 듯한 마음이 들게 이 책에는 다양한 시들이 소개되어 있다. 시라고 하기보다는 시인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정말 많은 문 앞에 선 느낌을 받는다. 열고 싶은 문, 어떤 문은 그냥 지나치고 싶은 문. 하지만 그 문들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내가 놓치고 있던 세계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시는 문(門)이 된다. 김해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를 이런 문으로 이끈다. 이제 문을 여느냐 마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난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그런 세계로.

 

그렇게 문을 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주는 책이고,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시인과 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 시집을 읽는 것과는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김민기에 대한 글이 있는데... 재작년에 노벨 문학상을 밥 딜런이 탔듯이, 김민기 역시 시인을 다루는 이 책에 나올 수 있음이 반갑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25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5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