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눈 - 2013년 제28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2013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
조갑상 지음 / 산지니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이토록 착잡할 줄이야. 응어리지어 마음 속에 남아, 질기도록 남아 찜찜한 기분을 유지할 줄이야.

 

읽으면서 몇번이나 책을 덮으려고 했는데, 그냥 지나간 과거일 뿐이야, 다 알고 있는 내용이잖아, 지금은 많이 밝혀졌잖아, 우리 역사의 어두운 부분이지만, 이제는 밝은 부분을 봐야지 하면서, 그렇게 읽기를 멈추고 싶었지만...

 

소설은 1979년 부마사태로 끝나는데... 그런데, 그 이후 우리는 4.19이후와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소설을 덮지 못했다.

 

민중의 힘으로 독재자를 끌어낸 4.19이후 6.25때 벌어진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움직임들이 활발했다. 얼마나 억울한 죽음들이 많았을까? 그 억울한 죽음의 모습들이 이 소설의 2부를 이루고 있다. 전쟁 때 이유없이 죽어가야 했던 사람들.

 

살아있어도 고통받아야만 했던 사람들, 그들을 단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중에 자신들에게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죽이는 사람들... 여기에 피해보는 여성들.

 

소설은 속칭 보련(국민보도연맹) 관련자 처형 사건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국민보도연맹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전쟁 속에서 일어난 비윤리적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학살 당한 사람들이 꼭 보련 출신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고, 자신의 사적인 욕망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한 마을의 사람들을 통해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적이 명확하지 않을 때 가장 두려운 적은 바로 '이웃'이다. 한 마을에서 서로 웃으며 지내던 이웃이 갑자기 적으로 돌변해 자신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것. '네 이웃을 사랑하라'가 아니라 '네 이웃을 조심하라'가 된다.

 

외국인이 쓴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책을 읽었을 때 함께 울고 웃으며 지냈던 이웃이 너무도 무서운 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서 전율했었는데... (이 책은 보스니아 내전을 다루고 있다. 한 국가 다민족으로 유고슬라비아를 구성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각 민족들이 독립된 나라를 만들고, 서로를 학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지금은 절판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원일의 "겨울골짜기"에서 거창양민 학살사건을 다루었고, 황석영의 "손님"에서 신천의 양민학살 사건을 다루었다. 이 소설들을 읽으며 전쟁 기간 동안에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 당했는지를 간접 경험했는데...

 

이 소설은 이런 이데올로기를 표방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가는 인간들이 나온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인간성보다는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말이 더 위력을 떨치던 시대다. 미국의 정치권력이 이런 말을 했었지. '부수적 피해'라고.

 

강력한 적을 섬멸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민간인 피해는 부수적일 뿐이라고. 아마 이 말이 의미하고 있는 핵심적 의미의 원조는 우리나라일 것이다. 빨갱이를 잡는데서 생긴 억울한 사람들의 죽음은 그야말로 '부수적 피해'일 뿐이라고. 그러니 학살한 사람들, 대다수는 죄가 없다고. 

 

그러니 그런 시대에 살아남은 사람들, 숨 죽이고 살 수밖에 없다. 사건이 일어난 뒤 십년을 숨죽이고 살고, 유해도 찾지 못한 채 살다가 4.19민주화운동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밖으로 표출하게 되는데... 관련자 처벌에 앞서 이들이 주장한 것은 진상규명이다. 진실을 밝히라는 것, 그리고 희생자들의 유골을 찾아 모시겠다는 것.

 

이들의 열망이 실현되기도 전에 5,16군사쿠테타가 일어나고, 쿠테타를 미국에 인정받고 싶어하는 세력은 다시 반공을 내세워 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겨우 십년 만에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 다시 줄줄이 끌려가 고문받고, 재판받고, 이들은 다시 범법자가 된다. 비국민이 된다. 이들만이 아니라 자식들까지도 국민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가혹한 연좌제.

 

반면 이들을 탄압했던 자들은 승승장구한다. 역사의 아이러니... 역사는 힘 센 자, 이긴 자의 편에 서는가... 짧은 기간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긴 역사로 보면 그렇지 않다.

 

소설이 끝나는 시점인 1979년은 새로운 희망, 그렇다, 29년이 지난 세월에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끝난다. 소설의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후 몇번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족해 활동을 한 것이 우리 역사의 전개인데...

 

소설은 여기까지 가지 않는다. 갈 필요가 없다. 어두운 역사 속에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다음 몫은 읽은 사람에게 돌아온다. 이렇게 우리나라 아픈 현대사를 꼭 집어서 보여주는 소설은 우리에게 역사를 잊지 않게 한다.

 

과거 역사책 속에 갇혀 있는 글자들로만 기억하게 하지 않고, 생생하게 마음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래서 문학은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존재해 온 것이고, 독재자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문학을 통제하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픈 역사,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도 아프지만, 그런 비극에 마냥 눈 감을 수밖에 없다. 제대로 진실을 밝히지 않아, 제대로 처벌을 하지 않아 우리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뼈저린 후회를 하고 다시 길거리로 나서지 않았던가.

 

소설을 읽으며 마음 속에 새겨넣는다. 이런 일, 진상을 확실히 밝혀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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