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주는 학교 우리 교육의 희망과 대안을 찾아 2
커스틴 올슨 지음, 노승영 옮김 / 한울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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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겨울방학 중.예전 같으면 학생들이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몸을 비비꼬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할 때인데...집에서 몇 발짝만 나가면 학원가가 있고, 학생들은 오전에서 오후 또 밤까지

이 학원 거리에서 쏟어져 나온다.

 

방학맞이 특강이란다. 학교에 다닐 때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뒤떨어진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 관념이 널리 퍼져 있기도 하다. 이런 모습에 학교는 책임이 없을까?

 

오히려 아이들이 학원에 목매달고 있는 이 현실은 학교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원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잔다고는 해도 아직도 학교가 삶에서 중심이고, 학원은 학교를 보조하는 곳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면, 이런 학원 문화에 대한 책임에서 학교가 벗어날 수는 없지 않을까.

 

즉, 학교에서 받은 상처를, 특히 학습면에서 받은 상처를, 학원을 통해서 치유하려고 하지 않나 하지만, 학교에서 학습으로 상처를 받은 학생은 학원에서는 오히려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강화하고 만다. 학교보다도 더 심하게 우열반으로 나누어 학생들을 편가르는 쪽이 학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교는 역시 학생들에게 상처를 준 가장 큰 원인이 된다. 그렇기에 학원이 성업을 이루고 있겠지. 만약 학교가 학습만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학생들을 평가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학생들을 줄세우고 편가르지 않았다면 이렇게 학원이, 그것도 보충학습 학원이(말이 보충학습이지 사실은 선행학습 학원이다. 아이들은 미리 한 학기, 한 학년, 심하게는 두세 학년 분을 미리 배운다.) 이렇게 성행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런 상처를 사람들은 쉽사리 외면한다. 상처는 있는데, 없는 척한다. 또는 별 것 아닌 척 한다. 분명히 별거인데 말이다. 그래서 상처를 직시하지 못하기에 치유를 하지 못한다. 상처는 세대를 통해서 계속 덧나고 있다.  곪아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세계 최장의 공부시간을 자랑하면서 세계에서 우수한 학업능력을 뽐내고 있지만, 학업에 대한 만족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속하는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은, 미국의 학교 교육 실상을 그려내고 있는 이 책보다도 심하다.  

 

이 책에서도 상당히 심하다는, 이런 교육이 앞으로 몇 십 년만 지속되면, 아니 몇 년만 지속되어도 아이들이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보다 더 심한 우리나라 교육은?

 

하여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학교가 상처를 주는 것,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제일 먼저 학생들, 자신의 처지를 판단해야 한다. 남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그 다음 부모들. 자신들이 겪었던 학교 생활을 철저하게 다시 검증해봐야 한다. 반추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학교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러한 판단이 선 다음에 아이륻 보아야 한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이 보인다.

 

학생과 학부모가 이렇게 변해도 최종적인 열쇠는 교사가 쥐고 있다. 아무리 사방에서 교사를 쥐고 흔들어도 학생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는 교사다. 학교의 구조가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는 구조라 하여도, 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도 역시 교사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교의 구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방법에 대해서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언제까지 외면만 할 거냐고. 이제는 학교를 제대로 보자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자고... 그래,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온 말처럼, '변화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학부모는 학부모로서(우리나라 어떤 광고에서는 학부모와 부모를 대조하면서 학부모가 되겠느냐 부모가 되겠느냐 하지만, 학부모가 제대로 교육에 대해서 바라본다면 학부모와 부모는 분리되지 않는다), 또 교사는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

 

이 책이 상처주는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이 상처가 삶에서 아름다운 무늬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함을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교사의 자세, 모습에 대해서 쓴 시들이다. 교사들, 다들 이런 교사가 되고 싶어한다. 이 시에 나온 선생이 아니라, '선생님'이 되고 싶어한다.

 

어릴 때 내 꿈은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 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나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엇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해직교사 신작시집, 몸은 비록 떠나지만, 실천문학사, 1989년. 9-10쪽,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전문

 

그래서 이런 선생님은 아이들을 하나로 보지 않고, 하나하나로 본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바라보는 선생님, 이 책에서 말하는 상처주는 학교에서 치유자로서 존재하는 선생님일 것이다.

 

개학 첫날

 

여름방학 끝낙 다시 출근했더니

등꽃이 먼저 반겨주더군

다른 놈들은 이미 서너 달 전에 피었다 졌고

휘감아 올라간 넝쿨마다

기다란 씨앗주머니들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어쩌자고 뒤늦게 몇 놈

수줍게 고개 내밀고 있더군

 

늦된 게 부끄러운 줄 알기는 아는 모양

무성한 이파리 틈새에 숨어 있는

보랏빛 꽃송이를 보고 있자니

꼭 그런 놈들이 떠오르더군

 

수업시간 내내 졸다가 끝날 무렵

엉뚱한 질문이나 해 대는 놈

남들 다 해오는 숙제

미루고 미루다 막판에 내는 놈

몇 박자씩 꼭 늦는 놈

 

하지만 그런 놈들도 꽃은 꽃 아니냐

남들보다 서너 걸음 뒤졌지만

언젠가 한번은 꽃 피는 인생 아니냐

 

개학 첫날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군

선생 노릇 다시 돌아보게 되더군

( 박일환, 푸른 삼각뿔, 내일을여는책, 2001년. 94-95쪽. '개학 첫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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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 - 협력적.다중지능적.창의적 발달을 위한 새로운 교육학
심광현.노명우.강정석 지음 / 살림터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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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얘기만 나오면 누구나 전문가가 되는데... 누구나 전문가란 얘기는 결국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저마다 자신의 답이 옳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해법이 나오기도 한다.

 

그 예가 서울에서 추진하고 있던 혁신학교다. 진보적 교육감이 중도 하차하고, 보수를 표방하는 교육감이 취임을 했는데, 혁신학교에 대한 더 이상의 추진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혁신학교가 전부는 아니다. 혁신학교는 지금의 공교육을 개선해 나가는 하나의 시범으로서 운영되었으며, 이런 혁신학교는 장기적으로는 모든 학교에서 실시해야 하는, 그래서 혁신학교라는 말이 사라지게 하는 역할을 하는 학교여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혁신학교가 서울에서 시행된 지 이 년만에 더이상 추진력을 얻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해야 하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말로는 떠들어대지만 어떤 정권이 들어섰느냐에 따라 교육정책이 조변석개하고 있으며(하다못해 교육을 주관하는 부처의 이름을 보라. 문교부에서 교육부로 다시 교과부로, 이번엔 또다시 개편을 한다고 얘기가 되는 모양인데...), 교육감이 누구냐에 따라서 지방교육은 변하고, 교장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학교 교육이 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와 무관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교사들의 정치적 중립성 운운하면서 교사들의 정치 참여를 막고, 처벌까지 하는 나라에서 정권에 따라 교육이 바뀌고 있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그러면서 무슨 교육의 정치중립성 운운하는지...

 

이런 정책들이 교육의 불모성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인데, 우리나라 교육은 창의성을 말살하는 교육이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경쟁, 입시, 지식 위주의 교육이었는데, 앞으로 다가올 사회는 경쟁보다는 협력을, 입시라는 걸림돌은 없애야 할 것으로, 지식 위주에서 지식을 활용하는 창의성을 강조하는 사회가 될 거라고 한다.

 

지금까지 사회를 유지시켜왔던 교육의 모습이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기에,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교육을 실천해나가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그래서 미래교육은 협력적, 다중지능적, 창의적 발달을 도모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교육을 하기 위해서 초중등 교육을 개혁하는 것은 물론, 대학의 교육도 개혁해야 하고, 우리 사회의 모습도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방안들이 제시되고,, 이를 교육학 이론으로 정립하고 있기도 한데, 문제는 이를 실현시키는 방법이다.

 

어느 한 곳에서만 실현되어서는 안되고, 국가 차원에서, 지방 차원에서, 그리고 학교 차원에서, 또한 학생과 교사 차원에서 따로 또 같이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교육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교육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 교육 운동 진영에서 내놓은 안들을 종합해서 좀더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정부가 교육개혁을 해줄 것을 기대만 하고 있으면 안되겠지. 교육에 관계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우선 하면서, 거시적인 차원에서 서로 협력해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창의적 문화교육 운운하면서 자신들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창의적이지 않다면 그 또한 모순일테니 말이다.

 

이제 새정부가 출범할테고, 새로운 교육정책이 나올테다. 정권에 따라서 바뀌는 교육정책이 아닌 정말로 백 년, 아니 천 년 앞을 내다보면 교육정책, 이는 교육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교육정책을 입안할 수 있도록 지켜볼 때 나오지 않을까 한다.

 

교사는 당연히 이런 책들을 읽어야겠지만, 교사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그래서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하다못대 교육학을 가르치는 교수들까지 포함하여, 교육 관계자들, 이런 책을 읽어볼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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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가르고 치다 - 난장과 끝장의 교사 욕망 분출기
김준산 지음 / 네시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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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하로부터 시작한다. 아니 그의 시로부터 출발한다.

가슴 아픈 현실을 에둘러 가지 말고 똑바로 가자고.

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교육은, 또 지금도 하고 있는 교육은 바로 이 시에 나와 있는 것과 같지 않냐고.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교육에 대해서, 교사에 대해서 좋은 말로만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한 번 표현해 보자고.

여기서 부터 출발하자고.

 

시를 보자.

살벌하다.

교육이, 아니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대표되고 있는 학교가 우리에게 얼마나 안 좋은 존재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학교의 맨살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유하)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 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그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교육의 전부를 학교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즘은 좀 다르려나? 평생교육 운운하는 소리들이 많으니) 우리 인생에서 얻은 배움 중에 학교에서 배운 배움은 겨우 일할이란다.

 

아마도 인생을 백년으로 보면(요즘은 백세 시대라고 하니) 학교에 다니는 시간이 (의무교육만 보면) 일할 정도가 맞다.

의무교육이 현재는 9년이니까. 하지만 의무교육은 아니더라도 고등학교까지는 다녀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하고, 거의 모든 청소년이 고등학교까지는 다니니 12년, 일할이 조금 넘는 기간을 학교에 다닌다.

 

여기서 제대로 배웠다면 아마도 '인생의 일할'을 학교에서 배웠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학교에서 과연 일할을 배울까? 유하가 말한 일할은 정말로 엄청나게 많이 쳐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할을 밑의 행에 나오는 '침묵, 비교, 굴복' 등으로 채운다면 그 일할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많다. 일할이 인생의 방향을 좌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시를 보면 교사, 참, 모골이 송연해지는 직업이다.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두려운 직업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이걸 이 책의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교사는 자신만이 잘 사는 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의 삶보다는 남의 삶이 더 잘 살아지기를 바라고, 노력하는 지식인이어야 한다(155쪽)고 하는데,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 교사가 지녀야 할 태도와 또 가야 할 길이 만만치 않음을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교사는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하여 교사는, 그런 교사가 하는 교육은 카프카가 말한 책의 기능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다만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책들을 읽어야 할 게야.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게야.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카프카,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솔(2004).70쪽  오스카 폴락에게 보내는 편지(1904.1.27)에서

 

사람들 내면에 얼어 붙어 있는 것들을 깨부술 수 있는 도끼 역할을 교육이 해야 한다.

교육이 그렇게 하기 위해 교사는 늘 깨어 있어야 하며,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교사는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이 책 역시 교사들에게 도끼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 인문학에 대한 공부를 통한 성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망.

 

이런 자세를 지닌 교사,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사의 모습이고, 유하가 말한 '학교에서 배운 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힘들게 교육 활동을 하고 있는 교사들, 힘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 힘내서 행복한 교육을 하자고, 저자는 현실을 제대로 보자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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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교육 존 듀이에게 묻다 - 듀이 실험학교와 우리 혁신학교의 이론적 연결 뿌리
서용선 지음 / 살림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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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교육이론은 우리에게는 참고서와 같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우리 실정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

 

듀이라는 교육학자, 아니 철학자라고 해야 하는 사람은 20세기 초반에 자신의 사상을 정립했다. 그의 사상은 크게 민주주의, 경험을 교육에 접목시켰다. 이는 지금 교육에도 필요한 덕목인데, 이것이 과연 잘 실현되고 있는가는 의문이 든다.

 

경험을 통해서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은 옳지만, 어떠한 경험이냐가 중요하다. 이것을 듀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라고 얘기하는 듯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을 개인의 경험만으로 그치지 않고 집단 경험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은 어떤가? 우리는 사회과라는 과목이 있지만, 과연 학생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을 하게 하고 있는가 질문을 해보면 답은 아니오라고 나오게 된다.

 

사회과를 비롯하여 다른 과목들도 경험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지식을 암기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기에 노동교육, 인권교육, 생명교육, 환경교육 등은 교육과정에만 존재하고 실제로는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듀이도 자신의 이론이 실제 학교에서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실험학교를 세우고 자신이 직접 자신이 이론을 실천한 것을 보면.

 

듀이의 이론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긴 한데, 도대체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어떤 민주주의의, 어떤 경험을 학생들로 하여금 하여야 할까?

 

최소한 민주시민으로서 시민성이라고 갖추도록 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지 않은가.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명목하에 정치적 행동은 물론이고 발언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무슨 시민성 교육이 이루어진단 말인가.

 

시민성을 가르칠 수 있는 조건이 안되는 현실부터 고쳐야 한다. 입시로만 매진하는 교육 현실을 고치기 위해서는 조금 덜한 수업량, 더 많은 시간, 그리고 다양한 평가들, 교사 개개인에게 평가권과 교육과정 편성권을 주어야 한다.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야만 경험을 통한 민주시민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듀이의 교육철학은 한물간 교육철학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직도 실현하고 있지 못한 교육철학이다.

 

이런 듀이의 교육철학을 혁신학교에서 하려고 한다. 일률적이지 않은 각 학교의 특성을 살려 교육을 이뤄내려고 한다. 여기에 듀이의 교육철학이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듀이의 교육철학을 정리해서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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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친다는 것 - 교실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든 교사들에게
윌리엄 에어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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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먹먹하다.

가르친다는 것.

이 말이 주는 무게가 엄청나게 다가온다.

 

도대체 가르친다는 것이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말에는 엄청난 책임이 지워져 있다.

가르친다는 것,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지식을 단순히 전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살아있는 유기체인 학생과 관계를 맺으면서 또다른 살아있는 유기체인 교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 무언가를 함께 고민해나간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결국 교과서만 반복하는 교육은 가르친다는 것이 될 수 없고, 위에서 지시한 내용만을 답습하는 것도 역시 가르치는 것이 될 수 없으며, 일괄적인 시험으로 학생들을 줄세우는데 여기에 안절부절 못하는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가르친다는 것은 윤리적이고 철학적이며, 사회적인 일이 되고, 창의적인 일이 되는 인간 활동의 종합적 능력이 발휘되는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 지금 우리의 교육은 가르친다는 것에서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에어스가 하는 주장과 우리의 교육현실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마치 지구와 안드로메다의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

 

답답해진다.

이렇게 좋은 교육에 대한 책이 있는데, 이것은 교육학과 교수들이 하는 말과 너무도 다르기에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교사들에게는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책일텐데, 과연 학교 현장에서 또는 다른 곳에서 가르친다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먹어야 영양소로 가는데, 마찬가지로 교육에 대해 좋은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라고 하더라도 읽지 않고, 또 고민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르친다는 것, 이것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창의적인 반항을 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일제고사 때 체험학습조차도 못하게 막고 있는 나라에서 어떤 창의적인 반항을 할 수 있을까?

 

교과서 내용까지도 문제삼는 나라에서 교육과정을 벗어난 교육이 가능할까? 일제 시험을 아무리 비판해도 객관성 확보라는 명목으로 교사들에게 평가권을 주지 않는 이 나라에서 가르친다는 것,이건 도대체 뭘까?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이 교육에서 명언으로 삼아 주위에 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는 말들이 많다.

 

정말 가르친다는 것, 이건 엄청난 일이다. 엄청난 일이기에 정말로 가르치는 사람은 스승이 된다. 그러한 스승을 꿈꾸는 사람들,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이 책에 있는 고민에 자신의 고민을 더하자.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하자.

그게 바로 이 책을 창의적으로 읽었다는 이야기가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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