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는 학교 신나는 아이들 - 선구적 교육혁신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밀턴 첸 / 타임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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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부러워한다고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이 사람, 정말 한국 교육에 대해서 알고 하는 말이야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코웃음을 치고 말았는데...

 

이 책에도 가끔 한국 교육에 대해서 나온다. 교사의 질을 이야기할 때, 한국의 학생들은 상위 5%이내에 들어야 교육대에 진학한다는... 수치로 보면 너무도 자랑스러운, 그러나 내막을 알고나면 너무도 씁쓸한...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이 당연한 말을 우리는 너무도 무시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외국에서 말하듯이 상위 5%안에 드는 뛰어난 학생들이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대나 사범대에 가는데, 그 중에서도 임용고사라는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만이 교사로 임용이 되는데, 우리나라 교사들의 수준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이 누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우리나라 교육은 학원에 넘기고 학교는 탁아소나 친구들 만나는 사교의 장소밖에 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소리가 나오고, 교사는 결국 아이들을 특정한 시간까지 맡아두었다가 별다른 사로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맡은 보모이지 않은가 하는 소리가 넘쳐나고 있는 이 나라 교육을 부러워하다니...

 

미국이나 우리나 교육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높은데, 실효성을 거둔 교육정책은 없나 보다. 이 책을 보니 미국도 벌써 20여년 전부터 교육개혁의 목소리가 높았고, 또 방법론도 많이 제기되었나본데, 현재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을 이끌고 있는 대통령의 입에서 한국을 본받자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그 많은 미국 유학파들에 의해 미국교육을 따라가야 한다고, 배우자고 하는 소리가 드높은데 말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북유럽이나 또는 일본의 배움의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면 교육정책입안자들은 미국식 자유경쟁교육에 더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형편 아니던가?

 

그래서 오로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추구하고, 그것으로 평가를 하고, 교사나 학교를 순서지우고 차등 지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가? 전국의 학교들을 줄세우기 위해 일제고사를 보고 말이다. 또 이 결과를 가지고 학교 평가를 하고 있으니... 세상이 참...

 

이런 미국에서 오래 전부터 교육개혁에 대해 나온 주장을 알기 쉽게 정리해서 낸 책이다.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통할 수 있는개혁에 대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찌보면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어찌보면 쉬운 일인데... 사실 진리는 단순함 가운데 있지 않은가.

 

6가지 처방을 내리고 있다. 처방이라기보다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고, 그렇게 한 결과들이 성공적이었음을 사례를 제시하며 보여주고 있다.

 

처방은 별 게 아니다. 사실 교육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그러한 처방들이다. 다만 이를 얼마나 뚝심있게 밀고나가느냐다.

 

. 학습에 대해 좀더 현명하게 생각하라.

. 진정한 학습과 참 평가를 실시하라.

. 최신 도구를 학생에게 주어라.

. 언제, 어디서나 배울 수 있게 하라.

. 교사, 전문가, 학부모는 서로 협력하라.

. 디지털 학습자들을 생각하라.

 

다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이기에 실천해야 하는데... 왜 아직도 미국에서도 이 일이 실천되지 않았을까 의문을 던져 본다. 무언가 걸림돌이 있다는 얘긴데... 그 걸림돌이 무엇일까?

 

교사일까? 아니다. 이 책에서도 아니라고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처방에 앞서 무엇보다도 교사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교사들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리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교육을 하더라도 교사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관계를 맺어줄, 사람으로서 격려를 해줄 온기를 지닌 교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교육 주변의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첨단 기술의 시대에, 교육은 시대를 뒤따라가지 말고 시대를 앞질러가야 한다고 하는데, 학교 현장에 들어온 기술기기들은 이미 한물 간 것들이 많다. 그것도 달랑 교실에 한 대씩.

 

이 책에서는 학생 한 명당 컴퓨터 한 대씩은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예산 타령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투자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약간의 투자라고 하는데...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것을 실현한 주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얘기다.

 

예산과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 관료들의 행정편의주의 등등 여러가지가 아직도 교육개혁을 부르짖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늘 남탓만 할 수는 없는 일. 이 책에 나온 말대로 좋은 것들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번져 나간다고 한다.

 

교육개혁은 결국 교사들로부터 시작하여 학생들로, 그리고 학부모들로 번져가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장에서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교사들을 격려해야 한다. 그들로부터 교육개혁은 번져나갈테니 말이다.

 

이런 과정을 조급해 하지 말고 길게 여유를 가지고, 또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는 자세를 우리들이 지닌다면... 교육개혁은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우리 눈 앞에 확 나타나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러면 이책의 제목처럼 "살아나는 학교, 신나는 아이들"이 될테고, 우리나라는 행복이 넘치는 나라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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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늦게 피는 꽃이다
김인숙 지음 / 휴(休)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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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을 읽었다. 경쟁, 경쟁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데, 이런 경쟁에서 벗어나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그런 마음이 담긴 책을 읽는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아직도 희망이 있음을, 이 책의 겉표지에 쓰여 있는 돈보스코의 말처럼 "맨 끝자리에 있는 아이를 구원할 수만 있다면 희망은 채워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했다.

 

반면에 오늘 신문에 난 기사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했는데, 교육을 주관하는 부처에서 이런 식의 교육밖에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한심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말은 교육과학기술부인데, 어쩌면 교육포기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 기사의 제목만 보면 이렇다.

 

"교과부, 학교폭력 기재거부 교사 징계 강행" (헌겨레 신문 2013.02.19. 12면)

 

학교 폭력을 저지르고 징계를 받은 학생은 생활기록부에 기록을 하여 몇년 동안 그 기록이 남아 있게 해야 한다는 지침, 그건 교육이 아니라고 거부한 교사들을 징계하라고 계속 압력을 넣더니, 징계를 거부한 교육청 자체도 문제 삼는 교과부.

 

어쩜 이렇게 돈보스코 교육과 정반대에 있을까? 폭력, 절도, 음주 등등 온갖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아이로 대하는 돈보스코 교육과는 상반되는 이런 교육관을 우리나라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도대체 무엇이 교육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그런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인지.

 

관계를 포기하고 오직 규정에만 의존하는 그런 교육을 하라는 것인지... 그것이 과연 교육인지.

 

오히려 그러한 교사들을 지지해주어야 하지 않나? 그런 순간에도 교사들이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라고 해야 하지 않나? 왜 거꾸로 가는가?

 

변화는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는 일어난다. 그것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러한 믿음이 돈보스코 예방교육에 실려 있다.

 

세상이 기쁨으로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기쁨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그런 사상. 그런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그 행위가 변할 수 있음을 믿고 오래도록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이다.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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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천국, 쿠바를 가다 - 세계적 교육모범국 쿠바 현지 리포트
요시다 타로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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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름대로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나라라서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적어도 어떤 방면에서는 세계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코 앞에 있으면서도 미국과는 다른 길을 가고, 미국의 압력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나라. 이를 카스트로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카스트로가 지금처럼 존재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를 지지하는 국민이 있게 때문일테니 말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지도자는 이미 지도자가 아니라 독재자에 불과하리라.

 

여기에 체 게바라에 대한 향수까지 더해져 쿠바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유기농업 방면이나 의료 방면에서는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은 이미 인정받고 있는 사실이고.

 

교육은?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쿠바의 교육제도가 상당히 좋다는 책이 나왔다. 그것도 교육 '천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교육 문제에 관해서는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독일 등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 있지만 쿠바가 교육 문제에서 앞서 간다는 얘기는 별로 들은 바가 없던 차에 이런 책이 나오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읽기 전에 생각을 해보니, 유기농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또 의료 천국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이 발전할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교육이 발전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말인가.

 

교육은 다른 길을 꿈꿀 수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다른 자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방법 아니던가. 교육은 과거를 현재를 통해 미래로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지 않던가.

 

그런 교육이 없다면, 교육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힘들지 않겠는가?

 

물질적인 풍요가 인간을 행복으로만 이끌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그런 바탕에는 교육이 작용하고 있단 사실을 우리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적어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무상교육을 하려고 하고, 조금 더 나아가는 나라들은 평생교육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교육은 내가 내 돈들여 받아야 하는 소비재, 사유재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아야 하는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고 학교를 만들어 교육하고 있는 나라. 물자는 부족하지만 그 부족상태를 협동, 즉 함께 살아감의 기회로 만들고 있는 나라, 있는 자원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내 최대한 활용하는 나라. 

 

이런 결과로 농촌에서도 작은 학교들이 존재하면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 없고, 고등교육을 받기 위한 장소가 부족하면 컴퓨터를 이용한 원격교육과 근처 중학교 건물을 이용하여 대학교육을 하는 창의성까지 발휘하고 있다.

 

다만, 대학교육은 까다로워, 일정한 능력을 발휘해야만 졸업이 가능하다고 하니, 전문적인 직업에는 까다로운 기준을, 그렇지 않은 보통교육에는 모두가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나라니, 가히 교육천국이라고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쿠바의 교육제도가 완벽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완벽하다기보다는 아마도 보완할 점이 많겠지.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쿠바의 교육은 문제점을 부정하지 않고, 그 문제점을 창의적으로 극복해나가는 태도를 지닌 국민들로 인해 더욱 좋아지겠다는 느낌이 든다.

 

읽으면서 부럽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의 제도를 부러워만 해서는 안되니, 우리나라는 어떤 방식으로 교육제도를 만들어나갈까를 고민하는데, 쿠바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나라의 제도들은 아무리 좋아도 우리나라에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이 있기에 거기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배우는 자세다.

 

배움은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 수용이니 말이다.

 

덧글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용어의 문제다.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민영화, 자율화, 수월성 이런 개념들을 많이 쓰고 있는데, 민영화는 사실 백성이 운영하는 학교가 아니라, 개인이 소유하는 학교라는 점, 그래서 민영화는 사유화라는 말이 적당하며, 자율화 역시 사유화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많이 하고 있으니, 이는 자율화라기보다는 사유화 보장이라는 말이 더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월성은 영재교육과 맞물리는데, 과연 어떤 재벌의 말대로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살리는 사회가 좋을지, 아니면 모두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는 사회가 좋을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왜 유럽에는 따로 영재교육을 하지 않는 나라가 있는지 고민해 볼 일이고, 마찬가지로 쿠바에서도 따로 영재교육을 초,중등에서부터 한다는 얘기는 이 책에도 없으니, 역시 고민해 볼 일이다.

 

또한 이 책에 '리틸러시'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를 '읽고 쓰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리터러시(literacy)라는 말을 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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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교사 양성과정
홍세화.이상대.이계삼 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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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범생이 집단이 모인 공간이 교사 집단일텐데... 이들을 대상으로 불온하라고 연수를 하다니...이걸 배짱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렇지 않으면 우리 교육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해야 하나. 불온한 교사 양성이라는 강좌에 교사들이 들으러 왔다는 사실 자체도 참 놀라운 일이다.

 

내가 경험한 교사들은 범생이 중에서도 범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은 학창시절에 범생이였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교 생활을 하면서 교사들과 부딪히지 않고 학교 생활을 했으며, 또한 성적도 좋아서 교사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학교 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대대학에서도 다른 방면으로 눈을 돌리지 않고 공부를 했으며, 그런 결과로 임용고시라는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을 하였을 터다.

 

이런 과정을 거친 그들은 자신들의 사고가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가 마치 세상의 전부인양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요즘은 교사들의 경제적 지위도 높아졌으며(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정규직에다가 평생이 보장되어 있는 직장에, 월급이 밀릴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태에, 월급도 평균 이상이라고 할 수 있고, 방학이 보장되어 있다), 또한 경제적 지위가 어느 정도 되는 사람들이 교사가 되는 경향이 많다.

 

예전에는 돈이 없는 머리 좋은 학생이 사대나 교대를 가서 교사를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면(그래서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었다면), 요즘은 어려운 가정형편의 학생들은 교사도 되기 힘든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교사들, 지금의 학생들을 이해하기 힘들리라. 그러니 교육이 안된다는 둥,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둥 이런 하소연들을 학생이 아닌 교사들이 하고 있는 실정이리라.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학생과 교사가 겉돌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것이 불온한 교사 양성과정이라는 강좌를 개최한 이유이기도 하리라.

 

불온하다는 얘기는, 지금 내가 속해 있는 곳을 그 곳의 시선이 아니라 밖의 시선에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즉,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순응하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밖을 볼 수 있는 능력,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그래서 희망을 잃지 않고 희망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태도를 지닌다는 얘기다.

 

이 강좌에서도 나오지만 기대란 남이 해주기를 기다리는 순응적인, 무비판적인 태도라면, 희망이란 내가 하겠다는, 내가 해야만 한다는 그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그리고 비판적인 태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교사들, 적어도 학생 앞에서 삶을 보여주는 존재들이라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강고한 교육의 틀에 얽매여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학생들로 하여금 이 체제에 빠져들어가게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하여 교사들은 불온해야 한다. 불온하지 않으면 자신이 비판하고 있는 교육제도, 교육현상을 고착화시키는데 앞장서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규교사들, 한 때는 벌떡 교사, 비판의식이 있는 교사였으나 지금은 한걸음 떨어져 있는 교사들이 들으면 좋은 강좌라고 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들었겠지 하고는 있지만, 제목에서 주는 불온이라는 말을 듣고도 강좌를 듣겠다고 온 사람이라면 이미 볼온한 교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학교라는 조직 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 많지만, 학교를 벗어났다고 해도 교육을 그만둔 것은 아니라는, 교육은 단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꼭 교사들이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교사들은 읽어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주된 내용이 교사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 때 공부는 수업방법론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 또 교육과 관련된 폭넓은, 그리고 깊이 있는 공부를 의미한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몇몇 교사들끼리라도 모여 이야기한다면 교육은 조금씩이라도 변해갈 희망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불온한 교사 양성과정이라는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안 돼. 이미 틀렸어. 이런 얘기는 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세 아닌가 반성하라고 한다.

 

학교라는, 교육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자신을 그냥 내맡기지 말고 그 흐름을 밖에서 볼 수 있는 자세, 이것이 불온한 자세이고, 밖에서 본 것을 가지고 내부에서 흐름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자세, 그것이 불온한 교사가 지녀야 할 자세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교사들이여, 제발 불온해져라. 불온한 교사들이여, 그대들이 학교에서 자신의 뜻을 펼쳐라.

 

그런 교사가 많아져야 한다. 학생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사들 자신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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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주는 학교 우리 교육의 희망과 대안을 찾아 2
커스틴 올슨 지음, 노승영 옮김 / 한울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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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겨울방학 중.예전 같으면 학생들이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몸을 비비꼬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할 때인데...집에서 몇 발짝만 나가면 학원가가 있고, 학생들은 오전에서 오후 또 밤까지

이 학원 거리에서 쏟어져 나온다.

 

방학맞이 특강이란다. 학교에 다닐 때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뒤떨어진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 관념이 널리 퍼져 있기도 하다. 이런 모습에 학교는 책임이 없을까?

 

오히려 아이들이 학원에 목매달고 있는 이 현실은 학교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원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잔다고는 해도 아직도 학교가 삶에서 중심이고, 학원은 학교를 보조하는 곳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면, 이런 학원 문화에 대한 책임에서 학교가 벗어날 수는 없지 않을까.

 

즉, 학교에서 받은 상처를, 특히 학습면에서 받은 상처를, 학원을 통해서 치유하려고 하지 않나 하지만, 학교에서 학습으로 상처를 받은 학생은 학원에서는 오히려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강화하고 만다. 학교보다도 더 심하게 우열반으로 나누어 학생들을 편가르는 쪽이 학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교는 역시 학생들에게 상처를 준 가장 큰 원인이 된다. 그렇기에 학원이 성업을 이루고 있겠지. 만약 학교가 학습만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학생들을 평가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학생들을 줄세우고 편가르지 않았다면 이렇게 학원이, 그것도 보충학습 학원이(말이 보충학습이지 사실은 선행학습 학원이다. 아이들은 미리 한 학기, 한 학년, 심하게는 두세 학년 분을 미리 배운다.) 이렇게 성행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런 상처를 사람들은 쉽사리 외면한다. 상처는 있는데, 없는 척한다. 또는 별 것 아닌 척 한다. 분명히 별거인데 말이다. 그래서 상처를 직시하지 못하기에 치유를 하지 못한다. 상처는 세대를 통해서 계속 덧나고 있다.  곪아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세계 최장의 공부시간을 자랑하면서 세계에서 우수한 학업능력을 뽐내고 있지만, 학업에 대한 만족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속하는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은, 미국의 학교 교육 실상을 그려내고 있는 이 책보다도 심하다.  

 

이 책에서도 상당히 심하다는, 이런 교육이 앞으로 몇 십 년만 지속되면, 아니 몇 년만 지속되어도 아이들이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보다 더 심한 우리나라 교육은?

 

하여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학교가 상처를 주는 것,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제일 먼저 학생들, 자신의 처지를 판단해야 한다. 남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그 다음 부모들. 자신들이 겪었던 학교 생활을 철저하게 다시 검증해봐야 한다. 반추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학교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러한 판단이 선 다음에 아이륻 보아야 한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이 보인다.

 

학생과 학부모가 이렇게 변해도 최종적인 열쇠는 교사가 쥐고 있다. 아무리 사방에서 교사를 쥐고 흔들어도 학생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는 교사다. 학교의 구조가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는 구조라 하여도, 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도 역시 교사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교의 구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방법에 대해서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언제까지 외면만 할 거냐고. 이제는 학교를 제대로 보자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자고... 그래,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온 말처럼, '변화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학부모는 학부모로서(우리나라 어떤 광고에서는 학부모와 부모를 대조하면서 학부모가 되겠느냐 부모가 되겠느냐 하지만, 학부모가 제대로 교육에 대해서 바라본다면 학부모와 부모는 분리되지 않는다), 또 교사는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

 

이 책이 상처주는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이 상처가 삶에서 아름다운 무늬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함을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교사의 자세, 모습에 대해서 쓴 시들이다. 교사들, 다들 이런 교사가 되고 싶어한다. 이 시에 나온 선생이 아니라, '선생님'이 되고 싶어한다.

 

어릴 때 내 꿈은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 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나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엇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해직교사 신작시집, 몸은 비록 떠나지만, 실천문학사, 1989년. 9-10쪽,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전문

 

그래서 이런 선생님은 아이들을 하나로 보지 않고, 하나하나로 본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바라보는 선생님, 이 책에서 말하는 상처주는 학교에서 치유자로서 존재하는 선생님일 것이다.

 

개학 첫날

 

여름방학 끝낙 다시 출근했더니

등꽃이 먼저 반겨주더군

다른 놈들은 이미 서너 달 전에 피었다 졌고

휘감아 올라간 넝쿨마다

기다란 씨앗주머니들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어쩌자고 뒤늦게 몇 놈

수줍게 고개 내밀고 있더군

 

늦된 게 부끄러운 줄 알기는 아는 모양

무성한 이파리 틈새에 숨어 있는

보랏빛 꽃송이를 보고 있자니

꼭 그런 놈들이 떠오르더군

 

수업시간 내내 졸다가 끝날 무렵

엉뚱한 질문이나 해 대는 놈

남들 다 해오는 숙제

미루고 미루다 막판에 내는 놈

몇 박자씩 꼭 늦는 놈

 

하지만 그런 놈들도 꽃은 꽃 아니냐

남들보다 서너 걸음 뒤졌지만

언젠가 한번은 꽃 피는 인생 아니냐

 

개학 첫날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군

선생 노릇 다시 돌아보게 되더군

( 박일환, 푸른 삼각뿔, 내일을여는책, 2001년. 94-95쪽. '개학 첫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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