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다는 외부에서 (백년의 고독의 주인공들인) 부엔디아 가의 일원이 된 사람이다. 그러니까 부엔디아 가로 시집 온 사람이다. 그녀는 바다에서 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어느 음울한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음산한 밤이면 돌을 깐 골목길들에서는 부왕들의 마차들이 여전히 덜커덩거리는 소리를 냈으며, 오후 여섯시면 서른두 개의 종탑에서 죽은 자들의 명복을 비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묘석을 깐 저택 안에는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았고 공기는 집안 곳곳에 멈춘 듯 정체되어 있었다. 페르난다는 종려나무로 장례용 화한을 엮으며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해동안 누군가 옆집에서 연습삼아 치는 구슬픈 피아노 소리 만을 바깥 소식으로 듣고 자랐다.
12살이 되어서야 페르난다는 겨우 집 밖을 나와 두 블록 밖의 수녀원 학교를 마차를 타고 다녔다. 페르난다는 장차 여왕이 될 학생이었기에 급우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라틴어로 시를 썼고, 클라비코드를 연주했으며, 신사들과는 매 사냥에 관해, 주교들과는 혹론에 관해 대화를 하고, 외국의 통치자들과는 국사를, 교황과는 신에 관해 설명하는 법을 팔 년에 걸쳐 배운 뒤 집으로 돌아와 부모와 함께 종려나무로 장례용 화환을 엮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어느날 가슴에 황금 메달을 단 군인 하나가 찾아왔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 아버지는 페르난다를 부엔디아 가가 있는 마꼰도로 보냈다.
클라비코드는 페르난다의 처녀 시절을 대표한다. 동시에 부엔디아 가의 새로운 역사를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부엔디아 가의 사건의 시발점이자 고독의 매개물이 되었던 자동피아노는 페르난다와 딸인 메메를 통해 클라비코드로 대체된다. 메메를 수녀학교에 데려다주면서 클라비코드는 부엔디아 가에 들어왔다. 남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여전히 정부의 집에 살면서 본가의 부인을 가끔 찾아 부인의 정부 노릇을 했다. 버림받음으로써 유발된 권태 속에서 페르난다는 낮잠 시간에 꼬박꼬박 클라비코드 연습을 했으며 아이들에게 온 편지를 읽었다.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취미였는데 아이들에게 보내는 자상한 편지 속에는 단 하나의 진실도 없었다. 페르난다는 아이들에게도 숨겼던 자신의 고통을 어디에 털어놓았을까. 페르난다의 클라비코드는 그래서 음울한 음색이었을까.
클라비코드는 건반을 누르면 탄젠트(피아노의 해머와 같은 장치)가 튀어 나와 현을 쳐서 소리가 나게 되는데 이때 소리는 피아노의 단단한 소리보다는 기타의 부드러운 소리에 가깝다. 그래서 기타줄의 울리는 소리를 클라비코드에서도 낼 수 있다. 이를 베붕 기법이라고 하는데 페르난다는 이 베붕 기법에 혹, 위안을 받았을까. 클라비코드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자신의 현으로 울었을까.
딸 메메는 첫 방학을 맞아 집에 왔으며 방학 때도 오후엔 매일같이 클라비코드를 연습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방학 때 집안의 어른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죽었으며 졸업연주회와 더불어 탈상을 했다. 경망스러운 성격의 메메는 클라비코드 앞에만 서면 성숙한 태도로 변했는데 이는 향후 몇 년간이나 지속된 각종 연주회에서 알 수 있다. 물론 이 태도는 메메의 극기심 때문이었다. 메메는 어려서부터 완고한 성격의 어머니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했으며 수녀들까지도 박물관의 화석처럼 여기는 클라비코드를 매일같이 연습한 것도 그 이유였다.
사실 메메 그 자신은 클라비코드 따위는 관장기로나 쓰라고 던져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메메에게 애증의 관계가 되어 버린 클라비코드. 그러나 그 연주는 더없이 아름다울 뿐이다. 보이지 않는 옷처럼 고독을 걸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사랑이 같은 의미이듯이. 굴다의 아름다운 연주를 들으며 메메의 마음에 잠시 닿아본다.
사랑을 알게 된 메메는 어머니에 의해 감금 상태에 들어간다. 그러나 메메는 평화롭게 잠을 잤으며 규칙적으로 식사를 했고 소화도 잘 시켰다. 다만 목욕을 아침이 아니라 저녁에 했는데 저녁나절이면 노랑나비들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수많은 나비들에 숨어 목욕탕으로 스며들곤 했던 연인은 어느날 결국 들켜 척추에 총알을 맞았다. 발가벗은 몸으로 전갈과 나비들 사이에서 사랑의 갈증으로 몸서리를 치던 메메는 총 소리와 연인의 고통스런 울음을 듣자 그순간부터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나 마지막 노랑나비가 선풍기 날개에 부딪혀 찢겨 죽었을 때 그때서야 연인의 죽음을 인정했을 뿐이었다. 메메의 비통한 마음 위로 클라비코드 선율이 나비처럼 조용히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