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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평점 :
나에게 처음으로 소설의 세계를 알게 해 준 사람은 김훈이다. 그래서 괜찮은 소설을 발견하게 되면 아무래도 김훈과 비교를 하게 된다. 김훈은 이런 식인데 다른 작가는 이런 식이구나, 라고. 내가 소설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앞서 말했지만 김훈은 한 문장으로도 사람을 홀린다. 그 문장이 쌓이고 쌓이면 문장의 감옥에 갇혀 때로 오랜 시간을 방황하게 되기도 한다.
바둑에 비유하자면 김훈은 산 정상에서 바둑을 (실제로) 두는 도인들 중 한 명이다. 독자인 나는 바둑을 구경하며 곁을 지키는 강아지라고나 할까. 모형 건축물에 비유하자면 김훈의 건축물은 빈 공간으로 시작한다. 소설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그제서야 김훈은 벽돌을 쌓는다. 쌓는 벽돌이 성이 될지 너른 광야가 될지는 김훈도 모르고 독자도 모른다. 김훈은 글을 써나가면서 공간을 확보하고 그의 세계를 펼친다. 등장인물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등장인물들이 가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하며 숨 쉴 수 있는 여지를 곳곳에 남긴다. 그래서 그의 세계는 한없이 넓어질 수 있다. 그것이 비루하든 고독하든. 김훈의 소설은 그래서 독자가 소설에 빠져들기 쉽다. 건물을 짓는 걸 구경하다보면 독자도 덩달아 응원하게 되고 마치 같이 집을 짓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도 된다. 어느순간 고개를 들어봤을 때 김훈의 건축물에 들어와 헤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물론 빠져 나오는 비상구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김훈은 아니다. 비상구는 셀프. 본인이 알아서.
김애란은 (이미 다 두어버린) 바둑의 해설자다. 소설의 첫 페이지든 마지막 페이지든 어느 부분에서 한 번 정도는 김애란의 완성된 바둑판이 드러난다.그래서 가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빠지기도 한다.
서윤이 태국 지폐를 꺼내 은지에게 건넸다. 그러곤 문득 자신이 벌써부터 은지의 영어에 의지하고 있음을 느꼈다. 외국인과 단둘이 있다면 어떻게든 얘기해볼 수 있을 텐데. 같은 한국 사람이 곁에서 자신의 영어를 '평가'하고 있다 생각하니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두 사람이 겪을 불화의 작은 씨앗이 될 터였다. (p.259 호텔 니약 따)
즉, 독자는 작가가 가리키는 방향 외의 다른 방향을 보기가 힘이 든다. 작가가 독자의 시선을 한정시켜 놓는다. 나는 왠지 작가가 일부러 '한정'시키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이유는 김애란의 세계관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루함을 '한정'된 세계 속에서 진저리나게 느껴보라고, 일부러 '고립'시키는 것 같다. 고립이 효과적이기 위해선 아무래도 배경이 하나인 것이 유리하니까. 독자는 집요하게 반복되는 문장을 읽으며 배경 속에 서서히 스며들게 된다.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아주 먼데서 형성된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와 내게 영향을 주던 시간이.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p.85. 물 속 골리앗)
물러지던 날들이 (있었다), 영향을 주던 시간이 (있었다), 자꾸 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처럼 김애란은 하나의 배경을 제법 여러 번의 반복으로 해석한다. 그 반복은 술어를 생략하면서 리듬을 타기도 하고, 시야를 바꾸면서 배경이 확대되었다 축소되었다 한다. 자꾸만 비가 내리는 시절이라는 평범한 말을 '세계'라는, 그리고 '지구'라는 단어를 써서 시야를 바꾸고 '당도를 잃고'나 '싱거워지던' 이란 형용을 쓰면서 단일한 배경의 음영이 바뀐다. 물론 이 사건은 '내게 영향을 주는 시간'이기도 해서 세계적인 상황은 개인적인 상황이 되어버리고, 나와 세계는 연결이 된다. 브리핑에 비유하자면 완공된 건축물을 한 장면 보여준 후, 암전이 되었다가 하나씩 한 부분을 훑으며 세세하게 보여주는 형식이다. 얼핏 봤던 전체를 떠올리며 혹은 떠올리려 애써며 독자는 김애란의 후래쉬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게 된다. 얼핏 김애란이 쳐놓은 그물이 눈에 뻔히 보이는 듯해서 갑갑한 느낌이 들 듯도 싶지만 그물은 생각보다 커서 읽는 내내 갑갑한 느낌이 들기는 커녕 벌써 마침표가 눈 앞에 있는 걸 보며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다.
결론은, 김애란의 소설은 재미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너무 재미있어서 후딱 읽게 된다. 물론 읽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린다거나 시원한 청량제를 들이킨 느낌 같은 건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책을 읽기 전의 세상에 비해 읽고 난 후의 세상이 변한 게 없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의 '열쇠'를 손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김훈의 비루함이나 던적스러움과 약간 다른, 이 지겹고 불안하기 그지없는, 미래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차라리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워지지만,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만, 그 뿐이지만 말이다. 김애란 역시 '열쇠'를 독자의 손에 쥐어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