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을 보고자 연못을 찾아 어슬렁거린다. 꼼꼼하게 수를 놓은듯 채워진 바탕에 연잎 하나 펼쳤다. 묘한 어울림으로 발걸음을 붙잡는다.

틈을 내었다. 잇대어 있는 사이의 틈은 스스로 숨구멍이며 더불어 사는 생명의 근본이다. 틈은 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어주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사람의 관계도 다르지 않아 이 틈이 있어야 비로소 공존이 가능하다. 물리적ㆍ심리적인 시ㆍ공간의 틈이 있었기에 당신과 내가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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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비 사이,

빼꼼히 나올 볕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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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등불버섯

키큰나무들로 숲은 이미 그늘에 들었다. 나도제비란을 보기 위해 들어간 숲에서 보았던 이 노랑빛을 내는 이상한 녀석을 만나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데 지난해 그곳과는 다른 곳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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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와 머리가 확연이 구분된 모습에 노랑색이 눈을 사로잡는다. 길어봤자 손가락 크기만 한 것들이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치 콩나물이 자라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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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으로 같은 모습의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고 이름을 '습지등불버섯'이라고 한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도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DB에도 검색되지 않는다. 습지에서 자라고 등불을 켜놓은 모습이 연상되기에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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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더구나 알지 못하는 대상의 이름이라도 알아보려고 이곳저곳을 기웃대는 동안 신비로운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마음이다. 숲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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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꽃이 다음생으로 건너가는 중이다. 꽃은 피고지는 매 순간을 자신만의 색과 향기로 온몸에 생채기를 남겨 기록함으로써 다음생을 기약하는 자양분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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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꽃이 떨어져 다시 피었다가 땅으로 스며드는 것을 무심한듯 끝까지 지켜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정情이 든다는 것도 상대방의 그림자에 들어 나 있음을 억지로 드러내지 않는 것과 서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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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정情이 들었다는 것은 각자 생을 건너온 향기가 서로에게 번져 둘만의 새로운 향기를 만들어내는 것임을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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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이 든다는 것,

스며든 향기에 은근하게 잠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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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

제왕으로 군림하는 독보적 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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詠牧丹 영목단

風流富貴百花尊 풍류부귀백화존

國色天香到十分 국색천향도십분

如何箇樣花開大 여하개양화개대

不及區區芥子孫 불급구구개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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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단을 읊다

풍류와 부귀는 온갖 꽃 중에서 높고

국색과 천향은 온전함에 이르렀네.

어이하여 그토록 꽃이 크게 피면서도

보잘것없는 겨자의 자손만큼도 번성치 못하는가?

-서거정, '사가시집' 권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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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스물여덟 번째로 등장하는 서거정(徐居正, 1420 ~ 1488)의 시 "詠牧丹 영목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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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은 중국이 원산지로 5월에 붉은색의 꽃이 피는 나무다. 비슷한 꽃이 여러가지 색으로 피는 작약은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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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라 하면 우선 신라의 선덕여왕의 설화에 등장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당태종이 모란 그림과 함께 씨앗을 보내왔는데 덕만공주가 그 꽃에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듬해 핀 모란은 향기가 없었다고 한다. 공주가 그렇게 이야기 한 이유는 그림 속에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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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에는 향기가 없을까? 무수한 벌들이 날아들어 꽃속에 묻힐듯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란은 진한 향기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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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은 대체로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풍성한 꽃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양반집 뜰에는 반드시 모란을 가꾸었던 것과 수많은 문학작품과 그림에 등장하는 것이 반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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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모란은 어린시절 외갓집 장독대 옆에서 붉게 피던 그 모란으로 기억된다. 학창시절에는 김영랑의 모란으로 옮겨왔고 내 뜰을 가진 지금엔 삼백예순 날을 기다려 겨우 닷새 보고 마는 애뜻함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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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으로 피는 모란이 주는 화려함 보다는 흰색으로 피는 모란의 단아함에 더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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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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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주머니란(개불알꽃)

때맞춰 그곳에 가면 꽃 피어 반겨준다는 믿음이 주는 위로는 참으로 크다. 매년 혹시나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는데 올해도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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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염색한 조그마한 항아리를 달고 당당하게 서 있다. 특이하고 이쁜 꽃이 키도 제법 크니 쉽게 보인다. 이로인해 급격한 자생지 파괴가 일어났으리라 짐작된다. 그만큼 매력적인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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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알꽃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꽃이 개의 불알을 닮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냄새 때문에 까마귀오줌통, 모양 때문에 요강꽃이라하며, 복주머니꽃, 작란화, 포대작란화, 복주머니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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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에서 희귀식물로 지정한 보호대상종이다. '튀는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은 이꽃이 수난당할 것을 예고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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