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남이 없다. 비는 꽃에 향기를 더하려는 몸부림이다. 한층 짙어진 속내가 속절없이 파고드는 가슴에 방망이질이 멈출틈이 없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듯 방울방울로 향기 품은 꽂멍울을 아로새긴다. 다음 꽃이 필 때서야 비로소 향기로 풀어낼 수 있는 숙명이다.

아로새긴 향기가 어김없이 꽃으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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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그 강에 가고 싶다

그 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강가에서는 그저 물을 볼 일이요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이 거기 늘 앉아 있고
이만큼 걸어 항상 물이 거기 흐른다
인자는 강가에 가지 않아도
산은 내 머리맡에 와 앉아 쉬었다가 저 혼자 가고
강물은 때로 나를 따라와 머물다가
멀리 간다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김용택의 시 '그 강에 가고 싶다'다. 계절이 익어가느라 연일 안개 세상이다. 아침 출근길 차를 몰아 강으로 간다. 잠시라도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자는 것이다. 산을 품은 물이 숨을 쉬는 모습이 물안개로 피어난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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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쑥부쟁이'
가을 들판에 무수히 피는 꽃들을 정확히 구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의 시 '무식한 놈'이다. 매년 가을이면 한번씩은 찾아보며 미소 짓는 시다. 쑥부쟁이, 개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섬쑥부쟁이, 갯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등 꽃쟁이 눈에도 구분이 어려운게 쑥부쟁이들이다. 물론 구절초와 쑥부쟁이의 구분이 비교적 쉽다.


개쑥부쟁이는 쑥부쟁이의 한 종류로, 쑥부쟁이와 거의 비슷하다. 가지를 많이 쳐서 꽃이 핀 모습도 훨씬 풍성해 보이고, 잎의 톱니가 훨씬 더 뚜렷하고, 꽃이 진 뒤 봉오리에 털이 송송 나 있고, 꽃받침잎이 뒤로 까지는 것 등으로 구분되는 쑥부쟁이와의 구별은 쉽지가 않다.


흔하게 보여 그 이쁜 모습을 놓치기 쉬운데 쑥부쟁이는 누가 봐주지 않아도 묵묵히 가을을 넉넉한 풍경에 특별한 수를 놓고 있다. 쑥부쟁이의 꽃말이 '평범한 진리'라 이와 비슷한 이미지가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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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 피어나는 때와는 분명 다른 질감이다. 봄볕이 곰살맞다면 가을볕은 깔깔하다. 봄볕은 부드럽게 다가오는가 싶으나 성질머리가 사납고 가을볕은 까칠하게 덤비지만 넉넉한 품으로 반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얼굴에 닿는 가을볕의 질감이 참 좋다.

'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는 속담의 속내를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렇더라도 점점 짧아지는 낮이 아쉬운 것처럼 이내 사라질 늦은 오후 가을볕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다.

볕에 여물어가는 벼가 고개를 숙인 논둑을 걷다 만났다. 이질풀이 까실한 가을볕을 한껏 품고 뿌듯한듯 하늘 향해 활짝 웃는다. 꽃을 바라보는 이의 가슴도 그 볕에 이처럼 부풀었다.

애써 먼길로 돌아가는 것은 그 길에 가을볕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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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문선 5 - 보지 못한 폭포 한국 산문선 5
김창협 외 지음, 정민.이홍식 옮김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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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을 거울삼아

8권부터 시작한 읽기가 시대를 거꾸로 올라간다이번 5권은 효종과 숙종 시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의 글을 만난다. “14명의 작품 61편을 통해 정치적 부침과 사회의 혼란상가치관의 난맥상 속에서 다양한 작가 층이 펼치는 풍성한 이론적 모색과 넓은 스펙트럼을 엿본다.”

 

허목김득신남용익남구만박세당김석주김창협김창흡홍세태이의현최창대이덕수이하곤신유한

 

5권에서 만났던 사람과 문장으로는 주목했던 사람은 미수 허목의 사영자찬寫影自贊과 김석주의 '의훈醫訓'이다옛글을 통해 오늘의 자신을 돌아본다는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온 두 글이기에 오랫동안 머물렀든 문장이다.

 

먼저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이 23세 젊은 때를 그린 초상을 늙고 쇠잔한 때에 마주보는 감회을 담은사영자찬寫影自贊은 자기의 초상화를 보고 쓴 글이다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죽음에 임박한 때나 늘그막에 와서 기운 빠져 할 일이 없을 때나 하는 일이 아니다옛사람들의 글 속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가짐을 다잡는 글이 많다모두 자기성찰에 중심을 두고 있다셀카가 일상인 시대다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시대를 산다셀카를 찍으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모습들이 참 좋다이런 노력이 더해지면 뒷모습도 그만큼 아름다워진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늘 낯설기만 한 내 모습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까 보다.

 

다음은 김석주(1634~1684)의 '의훈醫訓'이라는 글의 일부다몇 달 동안 병을 앓고 난 이가 바짝 마른 자신을 본 주변 사람들의 염려하는 말을 하자 의원을 찾아가 해법을 묻는 이에게 의원이 들려준 이야기 형식의 글이다몸을 고치려갔다가 마음을 고치게 된 내력을 담았다.

글에서 언급한 네 가지 살찌는 이유 중 한가지도 해당하지 않은데 가을이라고 여기저기서 살찐다는 소리가 들린다우스갯소리로 들리기도 하지만 웃을 수만도 없는 이야기라 행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 길게 인용한다거친 바람결이 옷깃을 파고든다한기를 느끼는 몸이 자꾸만 볕을 찾아가자고 조른다파아란 하늘빛에 볕까지 좋으니 저절로 마음에 살이 오르는 듯하다.

 

옛글에 담긴 옛사람들의 마음을 엿본다사는 시대가 다르지만 사람 사는 근본 바탕은 다르지 않기에 오늘을 사는 나를 비추는 거울로 삼고자 함이다옛사람의 옛글을 일부러 찾아고 읽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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