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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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악마적 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한국전쟁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왜 총부리를 동족에게 겨눠야 하는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전쟁 자체가 가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성의 파멸로 몰고 가는 속성으로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랜 시간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게 한다. 그런 전쟁의 여파는 오늘 한국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 중심에 여전히 살아남아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하여,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이런 비극적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각기 작품마다 같은 전쟁을 다루더라도 작가가 주목하는 중심 주제가 다르기에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형에 주목하여 소설 속 상황을 따라가는 맛이 다르다.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 최인훈의 ‘광장’, 오영수의 ‘갯마을’, 윤흥길의 ‘장마’, 이범선의 ‘학마을 사람들’, 하근찬의 ‘수난이대’, 황순원의 ‘학’, 선우휘의 ‘불꽃’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는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소설 ‘파시’도 있다.

 

박경리의 파시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전선과는 거리를 둔 후방지역인 부산과 통영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전쟁을 이야기하지만 직접전쟁의 상황에서 한발 물러선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이기에 직접적인 전쟁의 참상은 비켜가고 있지만 전쟁의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그 전쟁과 무관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북에서 내려온 전쟁고아 수옥, 밀수꾼의 앞잡이 서영래, 극한 상황에서도 도리를 지키려는 조만섭, 돈에 정신이 팔려 수옥을 서영래에게 넘기는 조만섭의 아내 서울댁, 정신이상으로 죽은 어머니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명화, 그런 명화를 사랑하며 보수적인 아버지와 대립하는 응주, 집안의 몰락으로 비뚤어져가는 학자와 학수 등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그려지는 인간형 속에서 전쟁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전쟁은 기성세대뿐 아니라 응주와 학수를 비롯한 젊은이들에게도 꿈을 가질 수 없게 하며 미래에 대한 불투명 보다는 현실의 문제로 직결되며 삶을 파괴해 간다.

 

문학은 주제를 대표하는 인물형으로 작가의 의도를 밝히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의 빈틈을 비집고 발동되는 인간의 본성은 매우 다양하게 드러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적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 돈과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 합류하려는 비굴함, 변화된 상황에 순응하고 목숨만 이어가려는 사람, 그런 와중에도 따뜻한 인간성을 발휘하는 사람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는 전쟁이 가지는 근본적인 속성에 의해 극대화 되는 방향으로 발로되지만 꼭 전쟁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어쩜 이런 전쟁이라는 상황을 빗대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러한 사람의 본성을 직시하자는 것이 그 중심에 있을 것이다.

 

전쟁의 시작은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포로든 땅이든 물질자원이든 이를 둘러싼 인간의 욕심으로 시작된 전쟁이 결국 그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재앙을 동반한다. 전쟁의 피해자가 나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 바탕에 깔린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가해자,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결국 모두가 전쟁의 악마적 속성의 포로인 셈이다.

 

이 작품의 제목 ‘파시’는 “풍어기에는 어장(漁場)에서 어선과 상선 사이에 어획물의 매매가 이루어지는데, 이때 거래가 이루어지던 지역(바다)”을 의미하고 있다. 어확물에 의해 사람들이 모이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근거지가 만들어지며 시간적 제약을 받는 속성이 내포되어 있다. 작가가 전쟁의 이야기를 통해 ‘파시’가 갖는 속성을 인간의 본성이 발로되는 모습과 직결 지키고자 한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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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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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 청춘을 추억한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들여다보다 마음이 가는대로 꺼내어 페이지를 넘기다 예상치 못한 것들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메모, 명함 때론 지폐 등이 그것이다.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이런 물건들은 그 책과 함께 옛 기억을 더듬는데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하곤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러한 경험은 때론 시간을 거슬러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한 시대를 특정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일었던 시대가 있었다. 시대의 암울함을 벗어나기 위해 동시대를 살아가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학, 철학, 역사 등의 서적을 통해 조국이 안고 있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거나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은 경우라면 정신적인 위안이라도 삼을 요량으로라도 이러한 책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러한 시절 서점은 책만을 유통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소통의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시대의 중심적인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책을 매개한 이러한 소통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한 상징처럼 되다가 이주 점차 책은 사람들 사이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책을 통해 지난 시대를 기억하게 만드는 책이 발간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헌책방을 운영하며 책들을 통해 사람들과의 소통을 꿈꾸는 사람 윤성근의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가 그 책이다. 그는 헌책방을 운영하며 헌책 갈피에 숨어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을 담아 놓은 글들을 발견하고 이 글들이 담고 있는 따스한 온기를 전하고자 책을 펴냈다. 손 글씨가 담고 있는 매력이 물씬 풍기는 글맛이 오롯이 담긴 책이 기억의 뒤편에 잠자고 있던 사람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고 있다.

 

여기에는 1980, 90년대를 청년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꿈, 좌절과 고통, 사랑이 손글씨로 담겨있다. 간절하지만 어쩔 수 없는 마음을 글로 담았지만 전하지 못한 편지도 있고 순수하였기에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담을 수밖에 없었던 지성도 있으며 혼란스러운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을 성찰하는 자기고백도 있고 곁눈질로 머물기에는 벅찬 사랑에 대한 고백도 담겨있다. 그저 부푼 마음을 서툰 글씨로 옮겨지지도 않을 순수함이 담겨있는 83개의 손 글씨로 옮긴 마음들이 담겨있다. 이러한 글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기억 저편에 자리 잡은 소회를 꺼내놓아 글이 담을 수 있는 따스함을 드러내고 있다.

 

기억은 지금은 이미 사라진 무엇이 아니다. 사람마다 담긴 방법이나 깊이는 다를지언정 그 속에 담긴 사람 마음의 따스함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지나간 것들은 모두 따뜻할까'라는 저자의 물음은 이미 답을 얻고 있다. 추억할 수 있는 특정한 무엇이 없더라도 가슴 속에 담긴 지나간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 어느 때나 조건을 만난다면 새록새록 살아 숨쉬며 사람들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로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헌 책에 숨어있었던 소중한 마음의 자락들을 알아본 저자의 마음자리가 돋보인다. 이런 눈이 있었기에 헌 책속에 담겨 있던 마음들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헌책 속의 주인공인 찾아내 만나는 수고로움까지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이 첵을 통해 기억의 저편에 머물고 있던 내 청춘의 자락들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과 함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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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시를 말하다 토트 아포리즘 Thoth Aphorism
고두현 엮음 / 토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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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무엇일까?

평소 유명인들의 잠언이나 그에 얽힌 고사 성어 등을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는다. 한 사람의 사상이나 가치관을 짧은 문장으로 함축하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교훈과 지혜를 얻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그런 글이 주는 심리적 단절감에서 비롯된 나만의 버릇이라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때론 장황한 말 대신 짧은 문구가 담고 있는 핵심의 묘미는 거부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편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그 말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듣는 상황에서 유용한 것이기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대신 일상을 살아가는 도중 스스로를 성찰하며 자신의 마음가짐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경우 이처럼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요사이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제기되는 학문과 인간의 삶에 관한 관계를 개선하고 자는 노력의 일환으로 인문학과 사람의 연결을 시도하고 상당한 성과를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강단에 머무르던 인문학을 사람의 삶 깊숙이 가져와 사람들의 실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노력에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여전히 한정된 시공간에 머무르고 있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인문학적 가치관에 의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알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도 싶다.

 

몇몇 출판사에서 일정한 주제를 정하고 이에 걸 맞는 내용으로 책을 꾸며 독자와 만나게 하는 기획이 펼쳐지고 있다. 문학동네의 '키워드 한국문화', 다섯수레의 '아름답다 우리 옛 그림', 토트출판사의 '토트아포리즘' 등이 그것이다. 출판사의 이러한 노력들이 빛을 발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신의 현재를 살펴 삶의 깊이를 더해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래본다.

 

토트출판사의 '토트아포리즘' 시리즈로 발간된 이 책 '시인, 시를 말하다'는 시와 관련된 아포리즘을 모아 소개하며 시인인 저자의 생각을 더하여 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아포리즘'이란 "인생의 깊은 체험과 깨달음을 통해 얻은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기록한 명상물로서 가장 짧은 말로 가장 긴 문장의 설교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경구(警句)나 격언(格言), 금언이나 잠언(箴言) 등을 일컫는 말이다.

 

시인인 저자는 '시'에 대한 정의와 관련된 문구를 발견하면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 다른 이들이 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바탕으로 시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시도 했다고 한다. '시인, 시를 말하다'는 그런 수고로부터 얻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시대, 다양한 사람들의 시에 대한 정의를 모았다. 18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정의에 저자 고두현 시인의 덧붙임이 추가되어 시를 이해하는데 맛을 더해주고 있다.

 

"시라는 것은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본디 비겁하다면 제 아무리 고상한 표현을 해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사상이 본디 협애하다면 제아무리 광활한 묘사를 하려해도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 정약용(1762-1836), 증언(贈言)

 

저자가 인용한 정약용의 글이다. 이는 시뿐만 아니라 모든 글이 담아야할 근본 요소가 아닌가 싶다. 짧은 시어로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시인들 뿐 아니라 글을 통해 무엇인가를 공유하고자 하는 누구나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시인의 독특한 시각과 이를 담아내는 시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불러온다. 그로인해 시는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미래를 꿈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대가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아포리즘을 통해 그 가치를 체험할 기회가 되었으며 싶다. 시말고도 철학, 예술, 역사, 문학 등 인문학 전반에 걸쳐 발간되는 아포리즘 시리즈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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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신 백파선
이경희 지음 / 문이당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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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으로 살다간 조선 서기장 백파선

텔레비전 장수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다양한 물건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거기에 감정가를 매겨 흥미를 더해주는 내용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꾸준한 인기를 보이고 있다. 소위 골동품이라는 이름으로 자산 가치를 더해주는 이러한 유물들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청자, 백자 등을 비롯한 갖가지 자기류다. 이러한 자기들은 수 백 만원에서 때론 억대를 넘는 자기들이 출품되어 자기가 갖고 있는 예술성과 조상들의 지혜가 현대인들의 잠자고 있는 예술성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오기도 한다.

 

자기를 비롯한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이러한 유물들은 조상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로 태어난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조선의 사회를 보더라도 시대에 따라 분청사기, 백자 등으로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다른 성질의 자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이러한 과정에 직접 참여해 자기를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남자들로 이 역시 조선이라는 사회가 갖는 남녀구별 등의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남자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자신의 재능을 펼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전재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도 예외가 있다. 바로 여성으로 자기 생산의 중심 역할을 하는 사기장으로 활동한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백파선'이 그 사람이며 그는 광해군의 뒤를 이어 인조가 왕위에 올랐던 "1623년경 심해종전(深海宗傳)의 미망인 백파선(百婆仙)이 동족인 조선 사기장 960명을 이끌고 아리타의 히에고바에 가마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역사상 실존인물로 일본의 자기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보인다.

이 책 '불의 여신 백파선'은 바로 그 백파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임진왜란 후 조선의 사기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당시 '왜'로 불렸던 일본의 조선 해안지역을 침략하며 약탈을 일삼는 과정에 조선의 사기를 만들던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데려가 일본 내에서 자기를 생산하게 한 것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과정에서 끌려간 도공들에 대한 이야기며 그 중심에 있던 사기장의 남편이 죽자 부인 백파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사기장으로 활동하게 되는가를 그려가고 있다.

 

말과 풍습, 생활환경과 자연조건이 다른 왜국에서 조선의 자기생산 선진기술을 바탕으로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무사집단에 이끌어가던 왜국에서의 생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백파선은 여성의 신분으로 도자기를 만들며 아리타 영주 무사 다다와의 사랑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삶이 슬프게 그려진다.

 

작가는 백파선의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다른 현재시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일본에 유학하던 중 현실적인 요구와 사랑 사이에서 타협한 사람이 남편이 죽고 시아버지와 사이에 다시 타협점을 찾아 백파선이 만들었다는 마지막 자기를 찾아 나선다. 백파선의 중심적인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의 전개가 두 이야기의 사이를 한층 강화시켜 주는 역할이라면 좋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두 이야기가 상호작용하여 중심을 이끌어가기 보다 부수적인 이야기의 구성도가 흐릿하여 중심으로 향하는 집중성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쉬운 점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로 역사드라마가 있다. 요즘 '불의 여인 정이'라는 조선 도자기의 중심에선 한 여인의 일생을 그려가는 내용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백파선이 400여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우리 앞에 등장하고 있다.

 

"조선의 당찬 여자 백파선. 지금은 아리타에 있는 작은 사찰인 호온지 뒤꼍에 수많은 도공비 하나로 검은 이끼를 뒤집어쓴 채 초라하게 남아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도자기의 현실이 조선의 그 찬란함을 이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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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도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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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는 섬의 존재방식 - 사랑

사람을 표현하는 말에는 다양한 표현이 있다. 사람의 어떤 점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사람의 사회적 속성 중 해결되지 못하는 근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라는 군중 속에 얽혀 살면서도 늘 고독한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방식에 대한 표현으로 ‘섬’이라는 외부로부터 단절된 공간을 써서 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정현종 시인의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섬이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섬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독감이나 소외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와는 달리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섬이 아닌 사람 자체가 하나의 섬이라고 보며 그 섬은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닌 표류하고 있다고 보는 작품이 있다. 박경리의 장편소설 “표류도”가 그것이다. “표류도”는 “토지”로 유명한 한국문학의 대표작가 박경리의 초기작품이다.

 

삼십 대 초반의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성 강현회와 대학교수직을 그만두고 신문사 논설위원인 이상현과의 사랑이야기가 중심 줄거리다. 여주인공 강연회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한국전쟁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미혼모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상황만큼이나 극적인 삶을 살다 마돈나라는 다방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상현은 사랑 없는 결혼으로 가정을 꾸렸지만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아가며 혼란기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사명에 호응하려는 사람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가 주요한 줄거리를 구성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불륜”이다.

 

“불륜”도 남녀 간의 서로를 향한 감정에 기초한 것이기에 보통의 사랑이야기처럼 기승전결이 있다. 만나고 우여곡절을 겪다가 헤어지는 결론에 이른다.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이기에 여기에는 부담스러운 사회적 시선까지 감내해야하는 마음의 부담감까지 함께한다. 온갖 사람들의 정거장인 다방 마돈나에는 삶을 살아가는 군상의 모습이 펼쳐진다. 카운터에 앉은 현회는 다방을 찾는 손님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속성을 살피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의 증인과도 같은 출판사 김 사장은 현회의 불안한 일상에 비빌 언덕으로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 상황 반전이 일어난다. 현회의 우발적인 살인이 그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불안했던 상현과의 사랑은 끝이 난다.

 

“전쟁, 죽음, 기아, 사랑,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이러한 인간사를 나도 이제 웬만큼 겪은 셈이다. 사람도 죽였고, 죄수라는 이름도 붙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막다른 골목까지 온 셈이다.”

자신을 지탱해 주던 의지가 꺾인 현회에게 출판사 김 사장은 인간의 의지작용의 긍정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삶을 포기하려는 현회의 마음을 붙잡는다. 사람의 삶이란 표류하는 섬처럼 떠다나다가 물속으로 잠기게 마련이며 물속으로 잠기기 전까진 의지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표류란 사전적인 의미로 “어떤 방향이나 목적을 잃고 헤맴 또는 일정한 원칙이나 주관이 없이 이리저리 흔들림”을 뜻한다. 각각 떨어져 떠내려가는 섬처럼 사랑하는 사람도 미래를 알 수 없는 삶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줄거리이지만 사랑의 감정보다는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한 질문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섬처럼 떠다니는 삶 속에서 그 삶을 지탱해주는 인간의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조는 인간의 근본 속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랑, 삶 모두를 관통하는 근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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