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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기억을 더듬어 청춘을 추억한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들여다보다 마음이 가는대로 꺼내어 페이지를 넘기다 예상치 못한 것들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메모, 명함 때론 지폐 등이 그것이다.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이런 물건들은 그 책과 함께 옛 기억을 더듬는데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하곤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러한 경험은 때론 시간을 거슬러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한 시대를 특정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일었던 시대가 있었다. 시대의 암울함을 벗어나기 위해 동시대를 살아가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학, 철학, 역사 등의 서적을 통해 조국이 안고 있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거나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은 경우라면 정신적인 위안이라도 삼을 요량으로라도 이러한 책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러한 시절 서점은 책만을 유통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소통의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시대의 중심적인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책을 매개한 이러한 소통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한 상징처럼 되다가 이주 점차 책은 사람들 사이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책을 통해 지난 시대를 기억하게 만드는 책이 발간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헌책방을 운영하며 책들을 통해 사람들과의 소통을 꿈꾸는 사람 윤성근의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가 그 책이다. 그는 헌책방을 운영하며 헌책 갈피에 숨어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을 담아 놓은 글들을 발견하고 이 글들이 담고 있는 따스한 온기를 전하고자 책을 펴냈다. 손 글씨가 담고 있는 매력이 물씬 풍기는 글맛이 오롯이 담긴 책이 기억의 뒤편에 잠자고 있던 사람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고 있다.
여기에는 1980, 90년대를 청년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꿈, 좌절과 고통, 사랑이 손글씨로 담겨있다. 간절하지만 어쩔 수 없는 마음을 글로 담았지만 전하지 못한 편지도 있고 순수하였기에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담을 수밖에 없었던 지성도 있으며 혼란스러운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을 성찰하는 자기고백도 있고 곁눈질로 머물기에는 벅찬 사랑에 대한 고백도 담겨있다. 그저 부푼 마음을 서툰 글씨로 옮겨지지도 않을 순수함이 담겨있는 83개의 손 글씨로 옮긴 마음들이 담겨있다. 이러한 글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기억 저편에 자리 잡은 소회를 꺼내놓아 글이 담을 수 있는 따스함을 드러내고 있다.
기억은 지금은 이미 사라진 무엇이 아니다. 사람마다 담긴 방법이나 깊이는 다를지언정 그 속에 담긴 사람 마음의 따스함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지나간 것들은 모두 따뜻할까'라는 저자의 물음은 이미 답을 얻고 있다. 추억할 수 있는 특정한 무엇이 없더라도 가슴 속에 담긴 지나간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 어느 때나 조건을 만난다면 새록새록 살아 숨쉬며 사람들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로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헌 책에 숨어있었던 소중한 마음의 자락들을 알아본 저자의 마음자리가 돋보인다. 이런 눈이 있었기에 헌 책속에 담겨 있던 마음들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헌책 속의 주인공인 찾아내 만나는 수고로움까지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이 첵을 통해 기억의 저편에 머물고 있던 내 청춘의 자락들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과 함께할 수 있었다.